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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禪涅槃(선열반) (zenilvana)

2016년 벽두에 본 천국(天國)과 지옥(地獄)
12/31/2015 14:12 댓글(1)   |  추천(6)

신학자 Reinhold Niebuhr는, “성경은 문자 그대로 믿을 필요는 없으나, 뜻깊게 읽어야 한다.” (You don’t have to take the sacred stories of the Bible literally, but you have to take them seriously)고 했다.


나는 성경이 “이솝 우화”와 비슷한 책이라고 본다. 이솝 우화에서 여우와 토끼가 이야기할 때, 진짜 여우와 토끼가 인간의 말로 대화를 했다고 보지는 않으나, 그 우화에서 들려 주고자 하는 교훈적인 메시지는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우주보편적인 지혜와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이해하는 방법으로는 우선 잘 알려진 “축자영감설”이라고 해서 성경에 나오는 말들을 모두 문자 그대로 사실로 믿는 것인데, 이것은 이미 대부분의 지성적이고 양심적인 학자들에 의해 옳지 않은 성서해석법임이 드러났다.


독일어 성서학자 Rudolf Bultmann에 의하면, 성서에 있는 신화적인 이야기, 가령, 예수가 물 위로 걸었다던가,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을 먹이고 남았다던가 하는 이야기들을 문자 그대로 믿으면 안되고, 이 이야기에서 신화적인 요소를 제거한 후 그 신화에서 전하고자 하는 교훈적인 메시지를 깨달아야 한다는 비신화화론 (Demythologization)을 소개했다.


 천당과 지옥에 대한 개념도 나는 비신화화하여 이해하려는 입장이다. 즉, 신화적인 개념인 천당과 지옥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기 보다는 천당과 지옥이라는 신화적인 표상을 통해 우리가 현세에서 배우고 깨달아야 하는 가르침이 무엇인가에 촛점을 맞추고 싶다.


불교에서도, “독화살 이야기”라고 해서, 내 몸에 독화살이 박혔다면, 이 독화살이 어디에서 왔느냐? 독의 성분이 어떤 것이냐 하는 현실도피적인 질문을 하는 것 보다, 당장 독화살을 뽑아 내는 것이 시급한 일인 것 처럼, “천당과 지옥이 있느냐?”하는 인간의 순수이성으로는 알 수 없는 주제를 다루는데, 탁상공론을 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것 보다, 지금 있는 이 곳에서 얼마나 더 의미있고 아름다운 삶을 사느냐에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천당과 지옥이라는 개념은 원래 유태교 히브리 사상에는 없던 것이라고 한다. 유태인들은 하나님만 영원하시고, 인간은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유한한 존재로 보았는데, 희랍의 이원론과 영혼불멸사상, 그리고 이란의 조로아스트교의 영향으로 천당과 지옥의 개념이 나중에 도입이 되었다고 한다.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 지드가 말했다던가: “진실의 색깔은 회색 (The color of truth is gray)”이라고 했듯이, 사람들을 어떻게 두부 자르듯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구분하여, 천당과 지옥에 양분하여 보낼 수 있을까 조금만 생각해 봐도 그럴 것 같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과 악이 섞여 있는데, 하나님이 무슨 독재자처럼 예수를 믿었다고 천당에 보내고, 착하게 살아도 불교나, 유교, 유태교나 이슬람교나 힌두교를 믿었다고 지옥에 보낼까?


나는 아인슈타인이, “자기가 지은 사람들이 자기 뜻대로 안 했다고 지옥에 보내는 그런 하느님은 나는 믿지 않는다.”고 했는데, 나는 아인슈타인이 용기있는 발언을 했다고 본다. 우리 아버지 같은 경우는 예수를 믿지 않고, 교회근방에도 가 보지 못한 채 돌아 가셨는데, 나는 우리 아버지가 예수를 믿지 않고 죽었으므로 지옥에 갔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궂이, 천당이 있다면, 천당에 가 계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솔직히 잘 모른다. 그리고 별로 걱정도 하지 않는다. 나는 Mark Twain이 전통적인 기독교의 교리를 조롱하듯이, “경치 좋은 곳에 가려면, 천당에 가고, 친구가 많은 곳에 가려면, 지옥에 가라”는 말이나, “나는 천당과 지옥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는다. 내 친구들이 두군데 다 있기 때문이다.”라고 한 말을 좋아한다.


선불교에서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어느 스님이 명상을 하고 있는데, 산적이 나타나 스님의 목에 칼을 대며, “천당과 지옥이 있는지 말해 보시오.”라고 했다고 한다. 스님은 산적을 쳐다보며, “웬 거지 발싸개 같은 놈이 남이 기도하는데 방해 하냐?”하고 말하니, 산적이 칼을 들어 치려고 하며, “늙은 중놈이 감히 내게” 했다. 그러니, 스님이 산적에게, “이보게, 자네의 화낸 마음이 지옥이네.”하고 일깨워 주니, 산적은, “아, 스님, 그렇습니까?” 하고 사과를 하니, 스님은, “자신의 무례한 잘못을 깨닫고 사과를 하는 착한 그 마음이 천당이네”하고 알려 주었다고 한다.


예수님도, “천국은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 할 것이 아니다. 천국은 네 마음속에 (혹은 너희들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Richard Bach는, “지옥은 사랑이 없는 곳”이라고 했고, 성경은,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했으니,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며, 하나님이 계신 곳이 천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루는 목사와 집사가 죽어서 천당에 갔는데, 예수님이 두 사람을 보더니, 집사는 무시하고 목사에게 가서 손을 잡고 반갑다며, “환영한다”고 기뻐했다. 집사는 예수님에게 화를 내며, “예수님, 천당에서도 목사를 집사보다 더 환영하니 이런 인간차별이 어디 있습니까?”했더니, 예수님은, “김집사, 오해 하지 마시오. 천당에 집사들이 하도 많이 와서 희소가치가 없지만, 요즘 목사들이 천당에 오는 사람이 너무 희귀하여 오랫만에 목사가 천당에 온 걸 보니, 너무 놀라고 반가워서 그랬소.”라고 했다고 한다.


그 집사가 천당을 돌아 보니, 공중에 사람 입처럼 생긴 것이 동동 떠 있었다. 예수님께 “사람 입처럼 생긴 것이 왜 공중에 떠 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아, 저 입들은 목사들의 입인데, 목사들이 좋은 말만 하고 실천에 옮기지 않아서, 입만 천당에 오고, 몸뚱아리는 다 지옥갔소”라고 했다고 한다.


사람은 어느 정도 살다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보니, 죽고 나면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예수 믿는 사람은 죽어서 천당에 가고,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지옥간다고 하며, 불교인들은 해탈성불하여 윤회의 바퀴에서 벗아나기 전에는 다시 인간이나 짐승으로 환생을 한다고 하며, 이슬람교도들은 알라의 뜻에 순종한 삶을 산 사람은 천당에서 영원복락을 누리지만, 이슬람을 믿지 않는 이교도들은 지옥에서 불에 타는 고통을 겪는다고 하며, 힌두교도들은 선한 삶을 산 사람들은 천당에서 코끼리 등에 타고 맛있는 것을 실컷 먹는 복락을 누리고, 악한 삶을 산 사람들은 지옥불에서 고통 당한다고 한다.


미국의 Rob Bell이라는 젊은 목사는, “Love Wins”라는 책을 통해, “간디나 부처 같은 착한 사람들이 예수 안 믿었다고 지옥에 간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사랑의 하나님이 자기가 지은 인간을 지옥에 보낸다고 볼 수 없다. 사랑의 하나님이 모두를 다 천당으로 구원해 주실 것이다. 사랑이 이긴다.”고 했다.


George Orwell은, “인류가 천당과 지옥과 같은 개념에 의존하지 않고 선과 악을 설명하는 체계를 계발하지 않고서는 인류문명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Mankind is not likely to salvage civilization unless he can evolve a system of good and evil which is independent of heaven and hell.)


나는 죽고 난 후에 어떻게 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본다. 죽고난 후 천당과 지옥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그렇게 믿을 자유가 있으나, 그것이 옳다고 증명할 길은 없다고 칸트는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알베르 까뮈 같은 이는, “나는 하나님이 없다는 생각으로 인생을 살다가 죽고 난 후, 하나님이 계신 것을 발견하기 보다는, 하나님이 있다고 믿고 성실하게 살다가 죽고 난 후,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는 쪽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성경말씀은,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No one has ever seen God. But if we love one another, God lives in us.)라고 했다.


“천당이란 어떤 장소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 (The Kingdom of Heaven is not a place, but a state of mind.- John Burroughs)란 말이 옳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자세가 우리 인간이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태어나기 이전의 일과 내가 죽고 난 후의 일은 내 소관이 아니고, 하나님 소관이 아닌가 한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지금 여기에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내가 여기서 하나님을 모시고 산다면, 죽고 나서 만날 하나님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어디에 있겠는가?“(Why worry about heaven if we are serving God here?)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찬송가 495장)


출처: 서울의 친구가 보내준 이메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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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매우 좋은 글이구먼.  누군가 뭘 좀 알고 하는 말일세.

자네들도 2016년 새해에는 천당엘 가는 축복을 누리시길...


천당과 지옥이 우리 맘에 있다 하면, 시간 또한  생각 속의 것이라서 
대 자연의 섭리 속에서 어영부영 어디로 가는 지를 모른다.

따라서 해가 뜨고 지는 것을 가름하는 달력이 필요했다.
그 변화함을 알려줄 뿐,

멈추었던 시계바눌이 갑자기 움직이며 내가 늙었다는 착각을
오늘 내일에 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비.

그저 영구히 움직이는 것에 내가 오직 실려갈 뿐이다. 
2015년에는 소원이 성취되지 않았으니 내일인 2016년, 

아니... 우리들의 조국,
그 한국땅은 이미 1월 1일의 새벽이 되겠네.

이런 계기를 꼭 손꼽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뭔가 더 좋은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래는 마음은

같다고 할 수 있지를.
그 오고 감을 구별하지 못하더라도 오늘 만은 예외로 하고

자네들에게 2016년에도 별탈없이 오래 살기를 기원한다.
그동안에 내게 보여준 자네들의 우정을 감사하면서...

禪涅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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