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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禪涅槃(선열반) (zenilvana)

동양福과 서양福의 엇갈린 개념
12/24/2015 07:12 댓글(0)   |  추천(1)

소위 산상수훈(山上修訓)이라고 알려진 八福(팔복)이란 것은 과연 무었인가? 오래 전에 이미 써놓은 원고가 준비돼 있다만 더 이상 발표하지 않을 생각이다.  실상 그 福이라는 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여호와의 축복을, 다시 말해서 이러 이러한 사람이 저러 저라하게 blessed, 즉 받는다는 얘긴데 교회 다니는 분들에게 해당되는 것이고, 일반인 혹은 딴 생활신조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별 큰 의미가 없지 않을까, 마~ 그런 취지에서 펴놨던 것을 접어 들인다.


나 자신이 기독교 신앙생활이랄까, 교회를 다니지 않은지가 여러해 되는 바이고, 실제로 그 내용을 제대로 파악했다고 하더라도 경건한 믿음의 경지를 실제 생활에 적용해서 그 참맛을 보기란 참으로 어려운 요구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좋은 말이 많다만 그것이 실생활에 옮겨지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마치 소금이 그 맛을 잃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말에 作心(작심) 사흘이란 말 그대로 정말 이를 갈아먹고 대들지 않을 바에는 그런 고답적인 말장난을 듣거나 읽고 싶지가 않은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그것이 사람들의 실태(實態)가 아닌가? 받아드리거나 말거나...


앞에 이미 언급한 다섯가지 福으로도 충분히 넘쳐나는 판에 무시기 새로운 福을 더 들이대며 보통사람들의 심기(心氣)를 불편하게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된다.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단지 5가지의 동양적 福과 서양적 福의 개념에서 뭐가 다른가 만을 생각해보고 싶다.


기독교가 중국에 발을 들여놓은 시기가 Mateo Ricci ( 1552년- 1610년)가 중국에서 활동하던 1600년 전후가 된다. 처음에 '폴투갈'의 조차지인 마카오였고, 점차적으로 북향해서 마침내 '베이징'의 자금성을 드나들면서 당대의 권력가들에게 세례를 주게 되었고, 그들에게 서양의 문물과 지리학 내지 세계지도를 그려주는 과정에서 천주실의(天主實義)가 세상에 나왔던 것이 조선땅에도 전해졌다. 이수광이란 중국사절이 3차례 왕래하면서 지봉유설(芝峰類說)이란 서양문물을 소개한 책을 발간하게 되었고, 이로써 유교의 공론을 떠난 실제적 학문, 즉 실학(實學)이 시작되었다 한다.당시는 임진왜란(1592-1598)이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이 두가지 사건에서 조선땅에 여러가지 새로운 것들이 도입되었는데, 서양의 지도 및 학문, 망원경, 한국의 명물인 김치의 원재료인 고추와 후추가 소개되었다. 


참고: 천주실의는 예수회 선교사인 루지에리 선교사가 1584년 저술한 《천주실록》(天主實錄)의 개정판으로서,1593년이나 1594년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선교사들의 저서는 해당선교지의 책임자의 검사를 거쳤기 때문에, 라틴어 요약본 형태로 1597년경 발리냐노와 일본선교 교구장 루이스 세르퀘이라(Luis Cerqueira)에게 제출되었다. 하지만 라틴어 요약본이 검열에 통과되기도 전에 이미 《천주실의》은 고급독서문화를 갖고 있던 명나라 말기 사대부들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기독교의 하느님이 유교의 상제와 같다는 주장과 기독교의 인간이해가 양명학과 상당히 비슷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국 지식인들의 관심으로 천주실의는 1594년 남창(南昌)에서 초판이 인쇄되었으며, 1601년 베이징에서 <1601년 베이징판 천주실의>가 출간되었다. 선교책임자의 출간승인을 받은 마테오리치는 1603년 베이징에서 증보판 <천주실의>를 출간했으며, 1605년이나 1606년 항주(抗州)에서 《항주판 천주실의》가 출간되었다.- 위키백과에서 인용함-


참고의 글에서 "루지에리(Michele Ruggieri ) 선교사가 1584년 저술한 《천주실록》(天主實錄)의 개정판"이라 했는데, 그 대부분을 '마테오 리치'가 조역하면서 '루지에리'가 불교적 이해에 근거하여 기독교를 소개한 것을 중국의 識者(식자)들이 대부분 공자의 사서오경을 중심한다는 사실에 입각하여 유교를 본격적으로 공부해서 심지어 '라틴'말로 번역한 것을 서양에 처음 소개했을 정도로 그는 기독교의 하나님의 개념을 유교적인 天主(천주) 또는 옥황이란 존재로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한다. 


여기에 동양적 '天의 사상'과 서양적 '유일신(唯一神)의 개념'적 차이가 있었고, 아직도 우리들에게는 기독교적 창조주에 대하여 확실한 이해를 못하고 있다고 하겠다. 흔히 '시베리아 유목민들이 믿던 무속신앙' 정도의 귀신사상 또는 중국식의 조상숭배에 더 가깝게 이해된다고 보겠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순복음교회"들이 대성황을 이루고 있지 않은가? 기독교가 한국땅에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 100년이 좀 넘을까 말까하는 처지에서 수천년에 걸쳐서 우리들에게는 하늘과 땅에 "스스로 움직이는 자연(自然)의 섭리"를 스스로 터득하는 길, 즉 道의 사상이 뇌리에 깊히 박혀서 사실상 우리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한국인들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축복(祝福), 즉 God's Blessing이 이러이러한 절대자의 믿음에서 근거한다는 설파가 그리 설득력이 없지 않은가 하는 추측을 하게된다.  왜냐하면 서양사람들이 이해하는 Deity, 혹은 라틴말로 Deus, 쉽게 말해서 "성삼위일체(聖三位一體)적 하나님의 존재"란 것이 매우 소원한 외래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Mateo Ricci가 이해하고 동양인에게 알아먹게 유교적 접근으로 이해시키려고 무슨 애를 썼다. 그가 죽자 그가 속한 '제수잍派가 아닌 Dominican파와 Franciscan파들이 들고 일어나서 카토릭의 교리를 더럽혔다고 아우성을 치기를 작으만치 400여년이 지나도록 계속했으며 섰다 멈추었다 하기를 지난 2014년까지도 해결보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기독교의 정신을 유교적으로 이해시키는 것은 기독교가 세워놓은 하나님의 개념을 더럽힌다고...  하지만 지금 한국땅에서 한국인들이 모시는 조상숭배를 이미 인정하고 있고, 심지어 불승(佛僧)들을 모셔다가 명동성당에서 설법하고 있지 않은가?  등소평처럼 검정고양이든 흰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될 것을, 덜 배우거나 무식한 치들은 오직 자기들이 이해하는 범위를 넘지 못하고 맹꽁 맹꽁하는 것이 세상의 다반사(多飯事)가 아니단가?   


요는 무지한 백성을 그들이 이해하는 범위 내에거 하늘의 뜻이 무었이고 그대로 살기를 원하는 것이 중요하지, 신학의 논리에 마땅하냐 아니냐가 무시기 말빨이 선다는 건가. 도대체.  이들마저 그 모냥 그꼴로 받아주는 것 또한 축복에 이르는 길이 아닌가 하고 이만 합니다. 여하튼 2016년 새해에는 모두들 福을 많이 지어서 나누어 주시고 본인들도 그 자리에 함께 하시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禪涅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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