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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禪涅槃(선열반) (zenilvana)

내 모습 이대로 날 받아주소서
12/14/2015 09:12 댓글(1)   |  추천(2)

찬송가의 한 구절이다.  나는 허물이 많은 사람이니 내 생겨먹은 그대로 나를 영접해달라는 뜻이다. 누구보고 이런 주문이랄까 소원을 부탁하는 겁니까?  물론 예수님 그리고 그의 아버지에게 간구(懇求)하는 겁니다.


자기를 받아줘 달라고 간절히 구하는 그 자세를 살펴보면 받아주는 분은 완전무결한 분, 다시 말해서 하늘에 계셔서 누구 말대로 "우리 인간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리하는 창조주라는... 인간의 모습을 한 절대자를 말한다.  그의 눈으로 봤을때 자기는 너무나 부족하고도 쓸모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자신을 보는 겁니다.  왜 그렇게 보이냐?  


하나님, 즉 여호와의 중재자인 예수의 기준으로 볼때 터무니없이 모자라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신앙인으로서 당연히 넘어서야할 어떤 마땅한 것을 다 노력했음에도 그 결과는 생각으로는 "염불을 외우는데 마음은 젯밥에 있음"을 늘 깨닫는다는 현실의 자기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 속어는 불가(佛家)에서 불도를 통하려는 승려들의 고충이랄까, 아니면 아무리 그래봐도 땡중으로 끝나는 소위 인간타락자 임을 자타(自他)가 인정한다는 얘기다.


이거 매우 심각한 얘깁니다. 예수가 지배자들의 학정 밑에서 찌들리고 몽매한 필부필부들에게 알아듣게 말하고 십자가 위에서 뭘라고 말했다구요? "아버지여!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읍니다." (누가23:34) 무지한 백성들이 알아듣도록 3년 동안에 소위 공생애(共生愛)를, 즉 인간을 사랑해서 같이 살며 가르친 분이 그들의 손으로 십자가에서 죽으면서 하신 말씀이다.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른다..."


한편 기독교의 대부(大夫)되시는 사도바울은 뭐라고 절규했는가? 선(善)한 일을 하고 싶어하면서도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나의 옛 성품 속에는 善한 것이 없음을 알 수 있읍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善한 일은 하지 않고 원치않는 악(惡)한 일을 하고 있읍니다. 만일 내가 원치 않는 것을 한다면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죄(罪)가 나로 하여금 그렇게 만들고 있읍니다. (로마書 7:18-19)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로마書 7:24) <"What a wretched man I am! Who will rescue me from this body of death?>


이러한 것이 신앙의 세계요 동시에 믿음의 현주소인 겁니다. 


내가 엊그제에 381마일을 8시간이 걸려서 인터네트에서 알게된 법자란 분을 위시해서 그가 초청한 두분을 얼굴과 얼굴은 맞대려고 Los Angeles를 달려갔었다. 불란서 음식도 대접받고 또 노래방을 들러서 노래도 부르며 즐거운 하룻 저녁을 보냈다. 그 다음날에 밤 늦도록 7시간을 운전하며 집으로 되돌아 왔다. 만남의 장소에서 이런 기이한 만남을 기념하기 위하여 사진도 찍었다. 돌아오자 마자 늦은 저녁을 마치고 열당이란 웹site를 열어봤지 않았겠나?


우리 방문객 중에서 누군가가 그 모임의 사진을 올렸던 모양이고, 그에 덩달아 여러분들이 그 여행기를 올리라고 야단을 하던 차에 법자가 몇 마디의 글과 댓글을 올렸었다. 나야 한 나절 늦게 컴퓨타를 열어보는 시간 차이가 있었던 지라 그 사이에 무슨 왕래가 있었는지 모른다. 하여간에 올렸던 사진은 삭제가 됐고 우리들이 만남의 뜻깊은 여운은

예대로 그냥 지속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한 고깝은 말의 오고 감의 골짜는 이거였다. 내가 장거리를 달려서 인터네트에서 알게된 과거의 앙숙끼리 만났으면 뭔가 달라진게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줄여서 당위(當爲)냐, 아니면 실존(實存)의 문제를 거론하는 모양인데... 앞에서 말한 정신적 및 신앙의 혜성들도 다 하지 못한 일을 그저 "너나 나"의 보통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겠는가, 하는 거지요.  심지어 알렉스선생은 말하기를 "가서 만나나 마나 마찬가지다"라고 이미 예언한 마당이 아니던가?


내가 법자에게 강요랄까, 기대랄까, 아니면 원하는 것, 다시 말씀드려서 나를 초청했고 또 내가 수고스럽게 그에 응했으면 뭔가 달라져야 할게 아닌가... 하시는 말씀 같은데, 그런 요구를 청하는 분은 도무지 변함이 없다 할까, 오히려 더 열기를 내서 법자의 모자람을 비판하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종류의 인격체냐고 묻는 겁니다. 


인터네트의 諸賢(제현)들... 아니 여러분들 자신은 잘난 사람이니 내 기준에 마추어 달라고 시비를 걸 훌륭한 자격을 구비하신 분들있네까? "내 모습 이대로 받아 주실 수가 없가시요?" 


禪涅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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