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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禪涅槃(선열반) (zenilvana)

마스크 쓰고 맞이하는 죽음의 계절
04/10/2020 07:04 댓글(0)   |  추천(9)

내가 사는 北加州(북가주)의 봄은 유독히 음산하다. 전년 보다도 비가 더 자주 내린다만, 우량은 많지 않고 그저 음산하고 흐린 날씨가 계속된다.  지난 겨울의 동부지방에는 유난히도 추웠다는 뉴스보도가 자주 있었다. 엎친데 덮친다고 할까, 코로나 바이러스의 만연으로 모두들 집 안에 웅크리고 앉아서 惡疾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망했는 가의 뉴스에 촛점을 맞추고 전전긍긍한다. 우리가 "죽음의 계절"을 마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이 부활절의 금요일인데, 교회의 부활절 예배도 없고 심지어 Wall街의 증권거래 마저 멈춘 상태다. 기독인들의 그토록 원하던 復活(부활)의 기회마저 박탈되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기리지 못하다니...인류의 정신적 再生(재생)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굳이 교회에서만 이것이 이루어진다고 믿는 교인들에게는 더욱 그러 하지 않을까? 


죽는다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표현하는가? "한 세상을 다 살고 죽음을 맞이했다"는 말을 점잖게 불러서下直(하직)했다고 한다. 원래의 의미는 "먼 길을 떠날 때 웃어른에게 작별을 고한다"는 뜻이라고 사전에서 정의한다. "세상을 떴다"든가, "죽었다" 하는 俗(속)된 말도 있다 마는, 故友(고우)를 哀悼(애도)하는 마당에서 적절치 않은 표현이 되겠다. 


어디로 돌아가셨을까? 중국사람들이 말하기를 北邙山(북망산)에 무덤이 많았다 하여 그래 부르게 되었다고. 중국 河南省 뢰양에 위치한 낮은 산의 이름으로 後漢(후한) 이래로 거기에 무덤이 많았다고 해서 그리로 간다고. 또한 중국古史(고사)에 의하면 "사람이 죽으면 용마루에 걸터 앉아서 흰수건을 북쪽을 향하여 바람에 날린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한국사람의 경우는 조상의 곁으로 갔다던가, 黃泉(황천)이란 말도 쓴다는데 그 뜻은 사람이 죽어서 간다는 세상이란다. 또는 저승이란 말도 있다. 비슷한 뜻인데 魂(혼) 즉 넋이 가서 사는 세상을 의미한다. 결국 以生(이생)에서 저세상으로 가는 것을 말한다. 기독교에서는 天堂(천당)이란 곳, 하늘에 있는 집이다. 죽는다는 데에는 왜 이처럼의 표현이 많아야 할까? 


한 말로 줄이자면 미우나 고우나 같이 살았던 사람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상황에 접하여 애석함을 어찌 할지 몰라서 딴 세상 어디로 갔다가 다시 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먼 길을 떠나는 경우와 같지 않을까? 다시 오지 못할 것은 분명해 보이나 자신도 조만간 그리로 가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는 생각을 한다.


여기에 또한 여러가지 표현들이 다시 등장한다. 나이가 많은 분들에게는 "長壽(장수)하셨다"느니, 大壽(대수)니, 永壽(영수)니, 萬壽(만수)니, 하는 말이 조금이라도 유족들에게 위로가 된다고 믿는다. 그럼 젊은이에게는 早猝(조졸), 요졸이라고... 애석하다는 뜻을 전한다. 그러나 나이에 상관없는 적절한 말로 "冥福(명복)을 빈다"라는 말이 종종 쓰인다. 무슨 뜻인가?


<冥福(명복)이란 漢字를 풀이하면, "어두울 冥에서의 福"을 의미한다. "어둡다는 어떤 데에 이르러서 무슨 복을 받으시라"는 얘긴데, 뭐가 어둡고 또 무슨 복을 비는가? 이 말은 원래 佛敎(불교)에서 쓰는 말이다. 요즘 상당 숫자의 기독교인들도 이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그 올바른 뜻을 알지 못한 所致(소치)다. 冥途(명도) 즉 '어두운 길'이란 말도 함께 사용하는데, 비슷한 단어로써 죽은 후에 들어가는 세계로 명경, 명계, 冥府(명부), 冥土(명토)라는 단어들이 있다.>


영혼이 육체를 떠나면 다른 세계로 가는데, 좋은 세상으로 가시길 빈다는 뜻이 담겨있다. 소위 극락세계로 가서 오래 오래 사시라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 점에서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天黨(천당)과 유사한 개념이건만, 한국 기독교인들이 冥府(명부)를 천당으로 인식한 이유가 이러한 전래의 개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내 친구가 76세에 他界(타계)했다. 그럼 "오랜 수명을 누렸다"고 봐야 할까? Yes or No... 예전에는 분명한 長壽였다만 이즘에는 너무 빠르지 않았을까 한다. 한 90세 정도는 살아야 했지 않을까? 내 기준으로 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는 주로 늙은이들이 많이 죽고 있다고 한다. 


옛날에 비하면 오래 살았던 사람들이 이번 기회를 타고 그간에 힘들고 지겨웠던 세상을 코로나 덕택에 더 빨리 죽을 수가 있게 된 것이 아닌가? "죽지 못해서 살아간다"고 푸념에 맞게 노년층들에게 好期(호기)가 된 셈이란 생각이 든다. 어차피 가야할 처지에서 뭣하려고 부질없는 목숨을  苦(고:괴로울)로 연장한다는 건가? 더 오래 살아서는 뭘 하는데... 비관적인 이야기 같지만 실상 죽음의 문제에서 이제 천연스러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禪涅槃

4/10/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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