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 zenilvana
  • 禪涅槃(선열반) (zenilvana)

조선기생이 韓日우호관계를 망쳤다
05/12/2019 07:05 댓글(2)   |  추천(8)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조선기생이란 수백년 동안 벼슬아치들의 外道(외도), 공적 '바람피우기, 酒色(주색)잡기, 요새 말로 sex의 상대, 다시 말해서 공적 娼女(창녀)들을 일컸는다. 그 역사는 고려 및 신라에 까지 거술러 올라가지만 이조 500년의 기록으로도 충분히 그 실태를 증명함으로 최근, 2-300년 전에서 얼마 전까지의 양상으로도 가히 한국인들의 sex문화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얼마 전까지란 해방이후와 1950년 6-25사변까지로 계속되었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이맹박이...박근해는 여성이다 보니 소위 料亭(요정)정치가 마침내 살아지게된 계기가 됐다고 단정할 수가 있다. 外道란 불교용어로 '道의 바깥세계로 나간다'는 뜻을 가진다. 


이조는 국가 종교랄지 儒敎(유교)에 몰두한 시대다. 孔子 자신이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라는 遺示(유시)가 없었던 것으로 알지만, 불교신자였던 세종대왕이 조선땅에 기생문화를 시작한 사람이었다. 이 분이 훈민정음 서문에서 백성 만을 '어여삐 여긴 것'이 아니라, 변방을 지키는 군사들의 sex의 고충을 배려해서 현지 여성들로 하여금 잠자리를 편케 마련해 주셨다. 


이로써 그곳에서 기생이란 직업이 처음 생겨났고, 무관이나 문관들이 얼씨구 외롭지 않은 군무를 즐겼지만, 外地(외지)가 아닌 內地(내지), 다시 말해서 충청도나 경상도 그리고 전라도의 춘향이의 고향까지 官妓(관기)들, 계집종들이 공식적으로 살아갈 길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이런 흐름은 세종이 의도했던 바는 전혀 아니었다.  이들, 높은 양반들은 이미 수십에서 수백의 머슴 奴와 계집종 婢를 거느리고 있었으나 그 정도로는 性慾(성욕)을 다 만족시킬 수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몇일 전에 언급한 조선의 남녀奴婢가 전 인구의 半(반)을 능가했다는 내 글을 연상하시라. 이를 일러 "계급적 公娼제도"라 한다면, 서민들, 즉 보통백성에게도 술 한번 사고 short이 되던지 long time의 sex를 즐길 수 있는 길이 있었으니...'주막의 酌婦(작부)'들의 one night stand라 말해야 할지...이를 私娼(사창)제도였다고 보면 어떻겠오? 조선시대의 지배층들이 어찌나 여성의 인권을 유린했는지는 七去之惡(칠거지악)이라 해서 아내를 쫒아내는 7가지를 열거해 놓았다. 


이들의 살길이 어느 메뇨? 당연히 술을 따르는 '알바'라도 있었으니...한국의 인구가 그나마 증가하지 않았겠나 하는 거지비. 그리고 한다는 짓이 여자는 貞操(정조)와 절개를 지켜야 사대부의 여인이라는 정저대를 채워놓고 남자녀석들은 온갓 음탕한 짓을 公的 및 私的으로 sex호루몽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첩지랄'을 해서 낳는 자식들은 庶子(서자)라고 해서 학문의 길도, 출세의 길도 막아놓았으니, 오직 창궐하는 것은 관가의 기생들이요, 민가의 술따르는 작부들을 즐기는 남정네들이고 거기에 종사하는 여성들이었다.


일본인도 동물이다 보니 여자가 필요하지요. 그러나 그들은 높은 넘이나 천한 사람이나를 막론하고 자연스런 정액의 흐름을 노골적으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할까, 성병의 만연을 방지하기 위함이라 볼까... 遊廓(유곽)이라는 公娼제도를 발달시켰다. 특히 에도시대의 풍습을 Zatoich라는 정의파, 장님검객의 활략을 Youtube에서 video 또는 영화로 당시의 개방된 성문제를 잘 다루고 있다. 1960년 초에서 부터 현재에 이르기 까지 수백편이라면 과정이겠지만, 상당한 분량의 사무라이 계급이 퇴색하던 시기의 양상을 일본의 대중에게 인기리에 제공하였다.


이 연장선에서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동남아 일대인, 조선, 대만, 만주, 그리고 중국 등지에서 침략의 전선에 시달리던 군인들의 sex 결핍을 해결해주는 민간인들의 돈벌이, 동시에 버려진 하층 여성들이 좀더 나은 살길을 마련해주게 되었다. 동남아 일대에 퍼져있던 際國(제국) 용사들의 사기와 성병의 만연을 막을 방책으로 군부대가 私企嶪(사기업)에 간여하여 일정 규정을 준수하도록 요구했다. 다시 말하는데 일본정부가 한 짓이 아니란 말씀...이 점을 문재인 일당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유가 된다.


역대 한국대통령들이 '정신대와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며 일본정부를 난처하게 하기를 수십년동안 하던 남어지 일본정부가 once for all 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도 한국인들은 용서 못하겠다고 날뛰었다. 수차례의 공식사과를 했어야 했었고, 박근혜 정부에서 다시는 거론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이 마지막인가 했더니...문재인 주사파 일당이 "사과받기를 거부하기 위한 사과를 요구하며" 북핵문제로 한국민이 괴멸될 수도 있는 위기상황에서 가장 중차대한 미-일-한국의 동맹관계까지 有名無實(유명무실)하게 만들고 말았다. 


이 내력을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계시던 이영훈이란 분이 학문적 논문에 해당하는 연구를 YouTube에서 자세히 방영하고 있다. 1편에서 11편에 걸치는 강연을 듣고, 문재인이란 인간이 얼마나 무식한 가를 또 한번 확인하기에 이른다. 그 이야기는 실로 흥미진진하다. 위안부 문제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만, 그 실상은 조선의 구린 역사였다는 사실이다. 남녀의 육체적 현주소가 우리 현대인들에게도 알게 모르게 어떠하게 영향을 주어왔음을 알게 된다. 나 자신 그 일부로써의 한 젊은이로서 그 날들을 회상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오늘의 국제정세까지 그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 YouTube 평론가, 정규재씨의 눈도 뜨게 했다. 정씨는 제9편 하나만을 추천했지만, 나는 1편으로 부터 11편까지의 전부를 시청하고 말았다. 재미가 꼴꼴하다 할까, 이 한민족의 비극을 처음부터 꼭 시청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위하여가 아니라 당신네들의 현재를 다시 보게 함이외다. 진짜 학자적 양심이 어떤 것인가를 이영훈 교수를 통하여 이번에 알게 되었고, 내가 같은 경제학도로서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규재씨의 https://www.youtube.com/watch?v=YS0EYB4Ucgs 의 양심선언도 감사하구요.


한가지 특기하고 싶은 것은 '유성룡의 후예가 유시민'이라면, 이퇴계의 후손 이용낙이란 양반 나부랭이들이 문옥주로 하여금 위안부였다는 과거를 세상에 밝히도록 힘써 종요했다는 사실이다. 그녀의 인생편력이 책으로 출간되어 일본에서 best seller가 되었고 한국에서도 그러했다고 한다.  이 주시파가 문옥주란 불우했던 여인의 가슴에 또 한번의 못질을 했다는 이야기에서 분노를 느낀다. 사람이 무식하면... 문재인이나 그 일당이 이처럼 무지막지할 수가 있을까? 참으로 개탄한다.


禪涅槃

5/12/2019


이런 일 저런 생각 카테고리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