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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禪涅槃(선열반) (zenilvana)

내 손이 간 고물차가 더 삐까삐까
04/11/2019 07:04 댓글(0)   |  추천(2)

오래 전의 일이다. 내 다니던 교회에 장로 하던 분이 내게 부탁하기를 이중창을 함께 불러보자고 제안해 왔다. 교회가 파하자 한 구석에서 둘이 좋아할 찬송가 한 곡조를 골라서 쏘프라노 음계로 부르다 보니... 그것은 二重唱이 될 수가 없었다. 이중창이라 하면 한 사람은 앨토로, 또 한 사람은 쏘프라노로 불러야 和音(화음)이 되어 듣기가 좋아진다. 


우리들의 것은 그렇지가 않았다. 한 곡조를 불렀는데 이 사람이 갑자기 찬송가 책을 접더니 돌아서며 하는  말이, 내가 너무 큰 소리로 부른다는 거다. 개미 소리랄까, 죽어가는 듯한 자기 목소리에 맞추어 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자기의 발성을 위압한다나? 10여년의 피나는 연습을 해온 나의 목소리다. 당연히 평소에 하던 대로였을 것이다. 그렇게 돈들여 가며 voice lesson을 2차례나 받었고, 아렛배는 힘을 주고 성대는 느슨하게 힘을 빼라... 선생들은 가르쳤다. 그걸 '벨칸토' 창법이라 캄네다. 물론 가슴을 한껏 부풀려 펴고 스리. 이 사람은 그래 해본 적이 없었겠지. 


이 분이 이민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뉴욕 맨하탄 Port Authority Bus Terminal (11 Av & W 36 ST) 앞에 세 비싼 점방을 하나 얻어놓고 대우니 삼성이니 하는 회사들에서 '툇자 맞은 전기제품'(returned or refurbished)등을 가져다가 팔아서 Rorex시계를 논목에 감고, Mercedes Benz S450을 타고 한인회에서 감투를 엿보며 뛰어다녔다. 장사가 시원치 않았던지, 아니면 씀씀이가 지나첬는지, 하여간에 하던 무역업(?)을 집어치우고 부동산에 뛰어들었다. 


경기가 이제 하향길로 들어섰으니 부동산 하기는 timing이 맞지 않는다고 충고했었지. 무시하고 한번 말아먹더니 몇년 후에 또 한 차례 덤벼들길래, 좀더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 말했지만 그게 먹히겠어요? 장사에도 경기변동이 있음네다레. 오르고 내리고...무식해서 그걸 알 理가 없다. 무대뽀의 허욕은 사람 눈을 멀게 한다. 위치 좋고 한 물간 헌 집을 손봐서 팔려다가, 잘 살던 집마저 은행에 빼았기고 말았다. 그 날로 남의 돈을 떼어먹는 일이 잦아졌다. 한번 배운 도둑은 날새는 줄 모른다. 동네에 평판이 좋지 않게 퍼졌음에도 집수리를 맡긴 사람들이 더러 있더라구요. 장로라는 감투가 힘을 써주었을까요? 그걸 아주 요긴하게 써먹더라구.


글을 쓰는 것도 이와 같다. 남의 것은 좋아 보여 펌을 했다만, 막상 독자들에게는 어딘가 어설프게 느껴짐은 어쩔 수가 없다. 펌者들의 한정된 안목었기 때문이리라. 제 눈의 안경이라고, 좋아보이는 같은 이야기. 인터네트 시대가 도래했을 초창기에는 그런대로 "좋은 글"이라는 것이 먹혔었다. 세월이 좀 지나자 그런 것으론 명함을 내밀 수 없는 시절이 왔다.  자기의 것인양 뭔가의 토를 다는 편법이 등장했지만 용대가리에 쥐꼬리를 단 모양새를 누가 좋아 하겠오? 필자 자신 만을 제외하고는... 어떤 친구는 아직도 아예 통채로 옮겨놓더군. 손질하기 조차 귀찮다 이건데, 마치 성악가에 빌붙여서 한가락 뽑겠다는 심산과 뭐가 다른고? 당연히 김이 새시겠지.


"즉석에서 생각나는 대로 썼다"는 자랑스런 글줄은 五十步 百步(오십보 백보)를 넘지 못한다. 맨날 제자리 걸음이다. 何 세월에 천리길을 가겠는고? 책을 두루 읽어야 나름의 물길이  도도하게 흐르게 마련이다. 남의 글이나 퍼와서는 한 장의 편지조차 쓰질 못한다. 문장의 세계는 오직 創作(창작)만이 존재한다. 이왕지사 자기 만의 글을 쓰시라, 잘 됐건 못 됐건. 남의 것이나 도적질해서는 등단할 날이 결코 오지 않는다. 아무리 삐까삐까 잘 달리는 차라도 뒷자리에 앉은 승차감이 어찌 손수 수리해서 모는 자신의 고물차만 하겠는가?  내 것이 아니면, the satisfaction shall never come in full, comprende, Amigo?


禪涅槃

4/11/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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