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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촌놈 서울 방랑기 4 3-1 독립 선언이 성공하려니 매국노 이완용도 밀고 안해
10/04/2019 19:10 댓글(0)   |  추천(4)


악질 친일파 1호 이완용 독립선언 발기인 권유 거부했으나 밀고안해


친일 경찰 천도교 인쇄소 선언문 인쇄 보고도 묵인 결과는 고문치사


수많은 인사 관여했으나 발각되지 않은 것은 일제 강압통치 실패 입증


비록 무자비한 탄압이 있었으나 3-1 운동 덕에 일제 문화정치로



삼일 (3-1) 운동 과정에서 생긴 놀라운 사실들이 3110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어제 서울 프레스 센터에서 열린 “도쿄에서 함흥으로: 일제 문서로 보는 2-8 독립 선언과 3.1운동”세미나에서 발제자들에 의해 밝혀 졌다.


(***어제 세미나 참석등으로 기사가 늦어졌읍니다.)


그 가운데 특히 필자에게 가장 충격적인 사실 두 가지만 먼저 알려드립니다.


첫째는, 이완용도 발기인의 한사람으로 가담하도록 접촉하고 종용했으나, 물론 거절했다. 여기까지는 의당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라 놀랄 것 없지만 그 다음이 정말 놀라운 사실이다.


나라를 일제에 팔아 먹은 매국노 1호로 꼽히는 이완용이 3-1 운동 거사가 진행되는 것을 관련 중추 인사와 면담에 가담까지 종용 받았지만 이 사실을 밀고하지 않았다는 것은 먼저 자신에게 접촉한 인사를 보호하려는 의도가 강했을 것이고, 자신과 같은 신분이었든 구 한말 고위 관료들도 접촉했을 저황도 알고 있어서 경찰과 참고인 조사를 당ㅎ면 자신과 많은 인사들이 관해에 불려가 심문을 당하기를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밀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3-1 독립 선언 행사가 사전에 차ㅏ단되지 않고 성사할 수 있었다. 적어도 이 부분만은 그에게 클딧을 주고 싶다. 물론, 그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지는 않지만, 그의 불고지가 삼일 독립 선언이 방해 받지 않고 성사 됐음을 기억해야할 것이다.


둘째는, 종로 경찰서 근무 조선인 형사 신승희의 정탐/역정탐 (Espionage/ Counter-Espionage) 이 뒤엉킨 사연이 종국적으로는 고문 치사로 희생된 소위 스릴과 서스펜스를 느끼게하는 한편의 스파이 스토리이나 그가 독립 선언서 인쇄를 적발하고도 눔 감아줘서 독립선언서가 때마춰 인쇄가 성공하여 3-1 독립 선언 성사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원래 그는 형사 직을 맡아 했어나, 일본인 간부들이 그당시 조선어를 필수적으로 배워야하는 규정이 없어서 일본 경찰 간부가 조선인 주요 인사들과의 면담 시에 그를 대동하고 다니면서 통역을 맡았다.


일본에서 2-8 독립 선언이 일어나자, 경무 총감부에서 일반인에 대한 감시를 강화했고, 종로서의 서장인 경시 간자키의 명령과 고등 경찰계 주임인 경부 오카모토로 부터 사찰 근무에 대한 특명을 받고 천도교 내부를 정탐하기 시작했다.


신승희는 박노학이란 인물에게 일정한 금액을 주고 천도교 내부 사정을 염탐하게 하였다. 박노학이 천도교 대종사장 정광조와 친분이 있었기 때문인데, 2월 상순에 정광조가 신을 매수하려는 역제안이 들어오는 상황이 되어 신은 이 사실을 상사인 오카모도 경부에게 보고하자 “진짜로 매수 당해서는 안되지만, 겉으로만 매수당하는 것 같은 형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고 승인하였다.


이러든 가운데 매우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다. , 신승희가 천도교를 감시하든 중에 3-1 독립 선언에 사용될 독립 선언서가 천도교계 춮판사인 성사 인쇄소에서 인쇄되고 있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당시 독립선언서 인쇄를 담당한 이종일이 신에게 상부에 보고하지 말도록 사정을하고 손병희를 통해 5,000원이라는 거금을 그에게 넘겼다. 그 돈이 얼마나 커냐를 가늠하렴면, 교사 초임이 25원임을 감안하면 이 도니 현재 200만원 가치로 환산되어 대략 4억원에 상당한다.


이 돈을 받은 신승희는 눈 감아 줘서 3-1 운동이 예정대로 일어 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3-1 운동이 일어난 뒤에는 평소와 같이 ‘독립 운동가를 잡는 악질 형사”로 활동했다.


그런데, 신승희는 3월 이후에도 정광조로부터 계속 돈을 받고 있었는데, 515일 그는 조선 헌병대 사령부 경성헌병 분대로 끌려가 천도교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이유로 조사를 받게되는데, 그 이튼 날인 516일 아편 중독으로 자살하였다는 발표가 나왔다.


신의 죽음이 석연 찮았는데, 신승희와 가까히 지낸 윤치호가 1920년 오카모도 경부와 경기도 경찰부 하시모토 경부와의 식사 자리에서 신승희가 자살을 가장한 고문치사당한 사실을 확인했다.



독립 선언서 인쇄를 눈감아 줘서 성공리에 인쇄를 완료하게끔 해준 공을 세웠으나, 그가 이중 플레이 한다는 정황이 파악되어 고문 치사당해서 뒷끝이 씁쓸하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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