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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MIA 존스 일병 68년만에 귀향 한국전 미군 전사자 유골 발굴 송환 합의 결과
03/20/2019 21:03 댓글(0)   |  추천(3)

존스 일병  58년 지나서 조국으로 환국하였다



한국전  MIA  존스 일병 68년만에 귀향


작년 6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당일 제의 정은 즉석 수락으로


한국전 미군 전사자 유골 발굴 송환 합의 결과


시신 대퇴골과  가족의  DNA 일치로 확정


맥아더 한국 통일보다 중국 수복위해


한만 국경 진격하며 X-Mas  귀향 큰소리쳐


평안도 산골에서 여명이 죽고 포로가 되었으나


이승만 정권 사실 밝히지 않고 작전상 후퇴로 포장해


16 상자 대퇴골 보자 유골 전문가 키큰 흑인추정


발굴지 룡연리라서 존스 일병 가능성 판단


한국전 행불자 8,100 가운데 가족  DNA  92%  확보


유골 송환은 트럼프가 가장 내세우는 대북 협상 업적



 

작년 6 싱가포르에서 븍미 정상회담 다음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자 회견에서 사전에 아무도 몰랏든 북한에 있는 미군 전사자/행불자 (KIA/MIA) 유골을 발굴해 송환하는데 합의한 배경을 설명했다.

트럼프는 의제로 사전에 쌍방간에 협의한 적도 없는 사항을 자신이 위원장과의 단독 회합시에 제의하자 의원장이 두말 않고 즉석에서 동의해줘서 싱가포르선언의 4항으로 들어가게 되었다면서, 이를 수용한 김위원장에 사의를 표했다.


미국은 대국답게 살아있는 군복무자에게 좋은 대우를 뿐만 아니라, 전시에 죽거나, 행방불명이 군인들의 죽엄을 가습적 가족들에게 빨리 예를 갖추어 전해주며, 사고 당시 회수 못하는 경우에는 끊임 없이 이들을 회수하기 위해 노력해서 유족들에게 돌려주려고 애쓰고 있다.


그런데, 한국전에서 시신을 수습 못한 미군 유해가 아직 8 여구가 북한 지역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에, 주된 이유는 9.28 이후 맥아더가 38선을 넘어 가려는 움직임이 있자 중국 (당시 중공으로 불렀다) 한국군 단독으로 38선을 넘는 것은 용인하지만, 미군등 타국군의 월경을 좌시 않겠다고 경고를 발했다.


그랬지만, 미국은 중공의 경고가 허풍에 지나지 않는다고 무시하고 월경을하였다. 미국의 모든 사람이 이에 동조한 것은 아니다. 국무부의 정책실장인 캐넌씨는 월경하지 말도록 주의를 발했으나, 그의 현명한 판단이 무시되었다.



트루먼 대통령이 맥아더에게 훈장을 달아주고 있다. 맥아더가 중국 참전 않는다했지만 최대의 참패당해


당시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아무래도 맥아더의 북진이 찜찜해서 그를 태평양상의 웨이크 (Wake Island) 에서 만나 중국의 개입 가능성에 대해 맥아더에게 묻자 그는,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만일 개입한다면, 우리 (미군) 공군기의 밥이 것이다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해서 트루먼을 안심시켰다.  (1950.10.15)



놀랍게도 맥아더가 중공 개입이 없을 것이라고 소리친지 바로 4 후인 10 19 중국 인민 지원군 (소위  중공군) 압록강을 건너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야간에 행군하고 새벽 4시에 정지해서 야영 자리를 마련하고 다음 어두울 때까지 꼼짝않고 있다가 어두워진 다음에 행군을 계속해서 평안북도와 함경남도의 산골에 포위망을 구축했다.


그리고 그들은 시월 경에 가장 북쪽에 진군한 한국군을 기습공격해 겁을 다음  다시 사라져서 그들의 개입규모와 목적이 무엇인지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맥아더는 중공군이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진 것을 보고 겁낼 없다면서 미국의 추수 감사절바로 뒤에 전쟁을 끝내는 작전을 시작하면서 크리스마스를 집에서 (Home by X-Mas)” 보낼 있다고 다시한 뻥을 쳤다.


첫날은 나갔으나, 평북 산골로 진군하든 한국군 2군단은 궤멸적 참패를 당하여 군단이 해체되었고, 2사단은 10 Km 산골 길로 퇴각하면서 산골에 이미 배치된 중공군의 집중포화를 받아 4천명이 사망하고 3 여명이 포로가 것을 위시해 서부 전선의 모든 부대가 무질서하게 도망 가기 바빳다.

전사자가 생기면 시신을 수습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워낙 일이 급히 전개되어서 자기 목숨을 구하기도 급한데 전사자 시체 구습은 생각할 여유가없었든 터이다.


존스 일병이 속한 부대는 11 26 포위당했다. 부상당한 군인들은 후송됐지만 사망자는 손 틈이 없었다.  육군은 그의 19 생일 부터 한달 뒤에 행방불명”으 기록하고 존스 일병의 모친인 메리 존스에게 1951 1 7 통보하였다. 그녀는 실종된 아들을 그리며 90세까지 살다 유해의 환국을 보지 못하고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났다.


존스 일병의 누이와 형이  DNA 검사를해서 당국에 제출했기 때문에 그의 유해가 귀환했을 쉽게 확인이 가능해졌다. 이에 앞서 미군 유해 수습팀이 원산의 갈마 비행장에 날아가서 55상자의 유골을 먼저 점검했는데, 상자 16번에 있는 깨끗하고 가늘며 대퇴골을 전문가는 이를 보자말자 사망자가 키가 큰 흑 병사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오산에 돌아 와서 엑셀 스프레드 쉬트의 데이터 베이스를 보고 그의 시신 발굴지가 룡연- 것을 보고  존스 일병일 것이라는 짐작을했다.


하와이의 유골 처리소에서 그의 대퇴골에서 추출한 DNA 그의 누이와 형이 제출한 DNA  매치가 되어서 존스로 확정이 되었다. 또한 그의유 골 상자에는 대퇴골 외에도, 아래 , 쇄골, 다리, , 골반, 척추골, 이빨 다섯개까지 들어 있어서 존스 유해의 대부분이 수습된 것으로 보인다.


존스의 유해는 국립 묘지에서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룰 예정이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미래를   있다(관왕지래觀往知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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