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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월남 파병 덕분에 경제개발에 큰도움 반면에 많은 희생을치뤘다 (공식 5,099명 전사)
02/26/2019 20:02 댓글(0)   |  추천(6)

월남전에 참가한 북한 조종사들  호치민과   기념 촬영



한국은 월남 파병 덕분에 경제개발에 큰도움


반면에 많은 희생을치뤘다  (공식 5,099명 전사)


필자는1966 여름 제주도 휴가 가서 일주도중


동내마다 월남 참전 전사자 묘비 발견


북한도 공군 조종사와 심리전 요원 파병


월남에서 공중전 실전 경험살려


이스라엘?이집트 전쟁(1974)에도  참전


사다트: 감사 표시로 스커드?B 선물


역설계해서 미사일 제작해 수출까지


발전에 발전 거듭하여   ICBM 까지 성공해


미국민의 안전을 위해


트럼프 협상장으로 나갈 밖에

 

글이 올라가고 얼마 뒤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2 정상회담이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河內) 에서 열리게 된다.  회담 장소가 하노이란 점은 북한으로서는 매우 의미가 심장하다 하겠는데, 오늘은 연유를 설명드리려 한다.


월남전이 가열되어가는 무렵에 미국이 파병을 요청하기도 전에 당시 한국의 철권 통치자였든 총통 (중국식으로 President 칭하는 단어 미국에 자진하여 파병하겠다고 제의를 하였으나, 처음엔 미국이 우리 (미국) 걱정할 필요 없으니 휴전선이나 지키시지요하고 툇자를 놓았다.

그러다, 전사자가 늘어나고, 징집 기피자와 국외 탈출자가 증가하자 이번엔 반대로 미국이 한국에 파병을 요청하였다. 한국군에 전시 수당을 주고, 과외로 한국에 경제 원조 자금까지 지원해서 이를 재원으로 경부 고속도로 건설에 활용하는 한국의경제 개발에 도움을 주었다.


반면에 한국은 피를 흘렸다. 공식적으로 5,099명이 전사하고, 11,232명이 부상당했으며, 상당수의 파월 장병들 (159,132 ) 고엽제 피해자로 고생하고 있다.


필자는 1966 여름 (한국군 전투 부대를 파월한지 1년이 지난 시점) 제주도로 휴가를 가서 일주를 하였는데, 가는 동내마다 파월 장병 묘비가 서있었다.  제주도는 거의 모든 마을이 바닷가에 있어서 많은 젊은이들이 (육군 대신에) 해병대로 자원 입대하여 본토의 여느 마을 보다 전사자가 많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당시에 필자는 너무나 많은 전사자에 놀라지 않을 없었고,월남 파병은 죽음으로 가는길인가 하는 강한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월남전 당시 미군은 월남 남부에서는 베트콩과 전선 없는 전쟁을치루고 있었으나, 북월남 (월맹)으로 지상군을 침공하지 않고 공군으로 폭격만 계속했다. 한국전에서 38선을 넘어 산보하는 기분으로 진군했다가 평안 북도와 함경남도에서 중국 인민 지원군 (중공군) 떡이 되는 참패를 당했기 때문에 17 선을 넘어 월맹을 침공했다가 다시 중국군과  전투를 벌일 생각을 감히 없었다.


끊임없는 공습에 시달리는 월맹을 소련은 방공 미사일을 재공하고, 중국은 방공포병대를 보냈으며, 북한은 그들의 훈련된 미그기 조종사들을 보냈다. 이외에도 월남에 참전중인 한국군 장병들에대한 심리전 요원과 월맹의 중요 정부 기관을 지하로 대피시키려고, 공병대도 파견했다.


파병된 북한군은 지상전에는 참가하지 않아서 알려진 것은 오직 14명의 공군 조종사들인 것으로 알려졌고 그들의 시신을 박장에 전사자 위령탑과 묘지가 있었는데 2002년에 시신을 북한으로 이장하여 렬사 묘지에 안장하고 현지에는 가묘만 있는 것으로 알려 졌다. 북미 정상 회담으로 하노이를 방문중인 김정은 위원장이 귀국 전에 이곳을 찾을 것으로 본다.


지금까지는 양념에 불과하고, 재미 있는 본론으로 모시려합니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의 시작은 이집트에서 소련제 스커드?B  전술 미사일 입수하여서 부터라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한국계 인사들이, 도대체 소련제 미사일을 소련이 아니라 어떻게 이집트에서 입수했는지 연고를 없었다.


우리는 모두 북한은 모든 정보를 인민들에게 차단한다고 하는데 남쪽의 시민들도 그점에서는 별로 크게 다를 점이 없었다.  필자를 분노케 하는 것은 아직도 미국에서는 쉽게 읽어보고 있어서 주변 인사들과 얘기를 나눌 있는 것을 한국에서는 금기 여기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가운데 하나는 이박사가 하와이로 망명한 것이 아니라 미국 CIA 작전에 걸려들어 하와이 교포들이 모금해서 보낸 전세기가 아니라  CIA  간판회사인   CTA   비행기로 사실상 납치 당해갔는데도 이박사 숭모자들이 그토록 많지만 어느 NOM 분개하는 자가 없다. ( 1)


4 중동 전쟁 (1973) 일어나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을 북한 미그기조종사들이 이집트 비행기들을 몰고 이스라엘 공군기와 공중전을 벌였다. 북한 조종사들이 얼마나 참전했고, 전과와 희생자 숫자를   없 뿐만 아니라, 어떤 연유로 북한에서 이집트에 조종사를 파병했는지는 없다.


지금 보면 장난감 같은 Scud-B 미사일이 북한의 ICBM 개발의 원조



다만 려진 것은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이 북한의 조종사들이 참전해서 이스라엘 기와 공중전을 벌여서 혁혁한 전과를 올린데 깊이 감사하는 마음에서 소련제 스커드?B  전술 미사일을 북한에 선물로 제공했다.


북한은 귀한 선물을 역설계 (Reverse Engineering) 하여 실물 제작에 성공하고, 이에 나아가  이를 대량 생산해서 이집트등 3국에 값싸고 유용한 전술 탄도탄으로  판매했다. 이것이 북한으로 하여금  대륙간 탄도 미사일 (ICBM) 발사 성공에 이르기 까지한 출발점이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북한의  ICBM  발사 성공이 없었드라면, 트럼프가 20 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넘어서 하노이로 북한의 김정은 만나러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필자주


 1: 이박사는 내가 하와이로 축출했다 그린 

      http://blog.koreadaily.com/teddykim/1059910


 

과거를 되돌아보면 미래를   있다(관왕지래觀往知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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