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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놀라운 법의학 자살 가장 사건 타살확증하고 주범과 공범 찾아내 엄벌
12/31/2018 17:12 댓글(0)   |  추천(2)

박소사 사건 관련자들    (수다몽 캡쳐)



조선시대 놀라운 법의학 자살 가장 사건


타살확증하고 주범과 공범 찾아내 엄벌


26 암행어사가 해결  솔로몬이 따로 없다


온갖 과학적 검사 기기나 시약 없이도


사례와 교본에 따라 나름대로 과학적 분석 판단


시집온지 석달된 며느리의 석연찮은 죽음


자살로 꾸며서 관아 연락없이 매장해 사건 묻으려


괴소문이 돌아 평산 부사 직접 부검 지휘


1 결과 자살로 결론 냈으나


황해 관찰사 복검 실시 같은 결론나와


친오래비 성종께 탄원 관찰사 보내


시어미를 진범으로 밝혀지만


성종 여인 단독범 아닐터라고


총명한 26 암행어사 보내 철저 조사지시


이곤수어사 시조카 어색한 진술 에서 전모 밝혀내


시어미 주범참형, 시조카 종범 교살형 처하고


조사 잘못한 관원들 파직 또는 유배형


정조의 명철한 판단과 위대한 해결 유도로


억울한 죽음의 진상 파헤친 성군

 

 

예나 지금이나원인 불명의 사망 사고나 사건이 되어서 미제 사건으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주말에 이조 시대에 며느리 사망 사건이 처음에는 시어멈의 구박에 마음 여린 며느리가 자결한 것으로 넘어가느듯이 관아에 신고도하지 않고 매장한 사건이어려번의 부검에도 자살로 굳어지는듯 했으나 친정 오라버니가  정조 대왈께 친소를 얼린 덕분에타살고 판병도고 주범과 공범이 밝혀져서 억울하게 묻혀 버릴 듯한 사건이 자초지종이 밝혀지고 범죄자들을 엄벌한 역사극을 보고 독자 여러분들과 정조대왕의 훌륭한 치적과 이조 시대에서도  과학적 수사로 억울한 죽음의 원수를 갚게하는 놀라운 단면을 나누고져합니다.


사건은 지금부터 234 전인 이조 정조 8 (1784) 황해도 평산의 토호인 조씨 가문의 시집온지 석달 밖에 되지 않은 며느리 박소사 시어미 (최아지) 구박을 견뎌내지 못하고 목매 자결을 기도했으나, 죽지 않자 칼로 목을 찔러서 자결하였고 이에 관아에 통보도 않고 매장하여 사건이 그냥 자살한 것으로 넘어가는 듯해 보였다.


그러나, 평소 행실이 나쁘다고 소문난 시어멈 (최아지) 시집온 며느리가 아무리 힘든다고 석달만에 자결까지 있겠느냐는 소문이 돌아 평산부사 정경중이 검험관 ( 부검관) 이끌고 현지에 출동했다최아지의 시가인 조씨 일족은 평산일대에서 위세를 떨치는 양반 가문이었다.


부사는 증인들 심문을 통해서 각자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아서 자살인지, 타살인지, 아니면 자살을 위장한 타살인지를 가려낼 수는 없었으나, 다만, 최아지가 며느리에게 구박을 심히 것과 그의 행실이 나쁘다는 것만 알아낼 있었으나 구녀가 누구와 관계를 맺은 것인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정부사는 유족들의 반대에도불구하고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 검행 (부검) 실시토록했다의생과 오작세령 (시체를 검시하는 하인) 이 박소사의 시체에서 목 부근에 칼자국 세 곳을 발견하였다.

자살을 하면서 목을 한 번도 아니고 스스로 세 번 씩이나 찌른다는 것은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정경증은 친지와 증인들의 증언과 『무원록 (無寃錄)』의 자살 기록과 다소 일치한다는 것을 근거로 자살 사건으로 결론지었다.

박소사의 죽음을 자살로 단정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목을 맨 넓은 베는 부드럽고 느슨하여 세끼처럼 단단하지 않아 박소사가 목을 매었으나 목숨이 끊어지지 않자 칼로 목을 세 네 번 찔러 자살했다. 오른손이 부드럽고 눈이 감긴 등의 증상은 『무언록』에서 스스로 목을 찌른 조문과 딱 들어맞고 손으로 칼을 맞은 자국이 없다.

손에 칼자국이 없다는 것은 범인이 칼을 휘두를 때 피해자가 방어를 하기 위해 칼을 잡아 상처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런 방어흔이 없었으므로 자살로 단정한 것이다.

시체가 발견되면 반드시 복검 (재검)을 해야 했으므로 상급관청인 황해도 관찰사 홍병찬은 복검관으로 백천군수 이서회를 파견했다. 이서회는 시체가 이미 부패하기 시작하여 검험하기가 매우 어려웠는대, 목을 찌른 자국은 있어도 목맨 자취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당시 목맨 흔적을 찾는 방법으로 이서회가 사용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물로 목을 적신 후 파의 밑동을 짓찧어 살짝 데친 후 의심스러운 부위에 바르고 그 위에 초를 적신 종이를 덮은 후 한동안 그대로 두었다가 종이와 파의 밑동을 벗겨낸 후 목을 살핀다. 그러나 목을 맨 흔적이 나타나지 않자 두 번째 실험을 했다. 다시 종이로 시체를 덮고 술지게미를 바른 뒤에 초주를 뿌리고 한참 후에 그것을 걷어내고 목을 조사했으나 역시 목을 맨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서회는 시체를 검험한 후 관련자들을 다시 신문했는데 이 과정에서 박소사의 친정아버지 박장혁이 사위 조광선을 협박해 시어머니인 최아지가 죽였다는 자술서를 받아내려고 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복검에서도 살인에 대한 단서는 나오지 않자 자살로 결론 내린 뒤에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박소사는 베로 목을 매었으나 조여지지 않아 죽음에 이르지 못하자 후골을 두 번 찔렀으나 칼이 무디어 들어가지 않았고 이에 그 빈 곳을 찔러서 칼이 깊이 들어가 죽음에 이르렀으니 자살이 명백하다. (중략) 최아지는 행실이 아름답지 않아 며느리를 거느리기에 부족하고 마을에 음란한 소문이 퍼진 것을 구실로 며느리를 가혹하게 구박하여 죽게 만들었으니 협박죄로 논하는 것이 옳다. 

복검 (재검) 에서도 자살로 단정했으므로 사건은 마무리되는 듯 했다. 그러나 황해도 관찰사 홍병찬은 초검과 복검의 발사와 검안 기록을 근거로 다음과 같이 판결을 내렸다.

‘네 번 스스로 찌른 칼자국은 초검과 복검의 검안 결과가 같아 죽음의 원인이 자살이라는 사실에는 의혹이 없고 손을 대고 거둔 칼자국이 『무원록』의 스스로 목을 벤 조문과 일치하므로 살인사건이 성립될 수 없다. 그러나 비록 성품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고는 해도 박소사가 스스로 목을 매고 목을 찔러 죽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재검을 한 후에도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자, 박소사의 친정오빠인 박용해가 서울로 올라가 정조가 행차하는 길목에서 징을 쳐서 억울함을 호소하였고 정조는 관찰사 엄사만으로 하여금 직접 조사하라는 명령을 내려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엄사만은 정조의 명령에 따라 초검과 복검을 검토한 후 『무원록』에 의할 경우 ‘목구멍 아래 스스로 다친 칼자국은 하나이며 다친 뒤에는 다시 베지 못한다’라는 조항을 근거로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고 보고했다. 즉 그동안의 검안 기록에 목에 칼로 찔린 상처가 서너 군데나 있다는 것은 『무원록』의 기록과 일치하지 않아 초검과 복검 때 판결을 잘못 내렸다는 것이다.

엄사만은 박소사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고 결론 내리고 범인은 최아지이며 최아지와 간통 의심이 있는 이차망을 종범으로 보고했다. 자살사건이 살인사건으로 바뀌었지만 정조는 여자인 최아지가 단독으로 살인할 수 있느냐며 인명과 관계있으므로 다시 조사하라고 명했다.

그런데 엄사만의 계속된 신문에도 이차망이 끝까지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자 정조는 26세인 암행어사 이곤수를 황해도에 파견하여 박소사 살인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하라는 영을 내렸다.

암행어사인 이곤수가 최아지와 이차망을 신문할 때도 이들은 자신의 범행을 부인했는데 최아지의 인척인 시조카 조광진만은 그들을 변호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살인범이라는 사실을 계속 주장하는 것이었다. 이곤수는 조광진의 진술에 의심을 품고 대질신문을 하여 결국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었다

최아지와 조광진이 서로 정을 통하여 아이를 낳은 뒤에 사람들 몰래 산에 묻은 것을 박소사가 알게 되자 박소사를 살해했다는 것이다. 당시에 근친상간은 엄격한 유교 논리에 의해 강상죄로 처벌했다. 형조는 최아지가 끝까지 자백하지 않았지만 그녀를 주범으로 참형에 처하게 하고 조광진을 종범으로 교수형에 처하게 했다.

자살사건이 살인사건으로 바뀌고 범인이 밝혀지자 정조는 초검 재검을 잘못하고 신문을 잘못하여 무고한 사람(이차망)을 구속하는 등 법을 잘못 집행한 전 황해감사 홍병찬(洪秉纘)을 삭직하고 엄사만을 파면했다또한 이 사건과 관련된 많은 관원들을 파직 또는 유배을 보냈다.

이 사건은 여러 차례 조사와 검험을 거친 끝에 자살사건이 타살사건으로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진짜 범인을 찾아낸 것으로 조선시대 과학수사가 얼마나 철저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로 인용된다.

또한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문제를 현명하게 파헤친 어사 이곤수한국판 솔로몬이라하겠다.

국회 법사위에 걸린 흠흠신서 서문 (정약용이 지은 형법서)



과거를 되돌아보면 미래를   있다(관왕지래觀往知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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