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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은 친일 부역자를 넘어 이승만 자리를 넘본 반역자
11/26/2018 17:11 댓글(1)   |  추천(7)

백선엽은 자신에게 별을 넷이나 붙여줬으나

그보다  이박사의 자리를 원했다



백선엽은 친일 부역자를 넘어 이승만 자리를 넘본 반역자


주제를 잊고 원수 (元帥) 따려한 사대망국자


기껏해야 연대장깜이 대장에 참모총장되


미국가서 이승만 대체 면접 시험보고와


낌새를 알아챈 이박사 호출로 허사로


반공포로석방의 후폭풍 예상 못해


중공군 최후 공세 직전에 전방 사단장 교체


이는 6 24 육본 파티연 것보다 나빠


금성천 공격 들어오자 신임 사단장 어리뻥뻥


상황 파악을위해 전임 사단장 도루 불러와


한국전 발발후 최대 인명 피해


(중공 주장 6만명 이상 전사)


군사혁명시 주중대사 (대만) 있으면서


박정희 인적사항 미측에 알리고


본국 소환하면 안가겠다 공언


백의조국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일본 아니면 미국

 

며칠전에 백선엽이라는 친일 부역자 98 생신이 있었다는 기사를보고 NOM (박정희 대통령이 즐겨 쓰든 용어로 필자도 사대 부역자들을 그렇게 부릅니다) 친일파라는 점은 알고 있으나, NOM 감히 이박사 자리를 넘보고 미국에 가서 면접을 보고 것을 아시는 분들이 별로 없어서 자리를 빌려서 그의 반역행위를 고발합니다.


미국에서 아이젠하워 한국전을 종식시키겠다는 공약을 내놓아 대통령이되고 바로 종전 방안을 찾기위해  한국전선을 시찰한 그가 아는 유럽 전선과는 달리 한국 전쟁의 전선인 중부 전선에는 산으로 들러쌓여서 고지전이 한창인 것을 보고 쓸모 없어보이는 산등성이 하나 차지하려고 그들 (미국) 자제들이 피를 흘리고 있다는 점을 파악하고 그동안 진행중인 휴전회담을 재촉하였고 또한 1953 3월에 공산국가들의 종주국인 쏘련 스탈린 수상이 죽자 회담은 더욱 속도를 얻었다.


그런데, 전쟁 당사국인 한국의 이승만 박사가 휴전을 반대해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그를 제거    내지 대체하는 구상을 현지 (한국전선) 지휘부와 소통하고 오퍼레이션 에버레디 (Operation Everready) 작성했다.


연세대 박명림 교수 글을 따르면 미국은 백선엽을 이승만의 대타로 면접한 것으로보인다. 교수의 글을 그대로 옮긴다:

전쟁의 최후 향방을 좌우할 중대한 전국(戰局)이었음에도 현장 최고지휘관을 전장으로부터 빼내는 이례적 초청을 감행한 군부는 가지 목적을 갖고 있었다. 하나는 한국전쟁 종전 문제의 향방과 관련해 · 상호방위조약 체결의 의지와 방향을 구체적으로 타진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승만 대안 모색의 실현 가능성을 점검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알았건 몰랐건 백선엽은 미국이 고려하던 대안의 명이었으며, 동시에 군부가 전쟁지휘와 종결문제를 가장 긴밀히 논의해 오던 인물이었다.

[
출처: 중앙일보] [6·25 전쟁, 1128일의 기억] (254) 박명림 연세대 교수 특별기


이 사실은 1953 5 29일 국방부 (펜타곤) 에서 합참과 국무부 고위 간부들이 협의 회의록에도 나온다. ( 1) 당시 육군참모총장 로턴 콜린스 대장은 한국군 참모총장 백선엽 장군이 자신에게 에버레디 작전을 “암묵적으로”(tacitly) 지지할 용의가 있음을 표시했다면서 그를 활용하는 것이 이 박사의 휴전 거부를 잠재우는 한가지 방도라고 제시했다. 그런데, 아무도 콜린스 대장의 의견에 반대입장을 내세우는 사람이 없었다 한다.


위에 밝힌 글에 따르면 백선엽이란자는 일제 때는 왜놈들을 빨다가 대한민국 정부하에서는 자신을 젊은 나이에 별을 넷이나 달아주고 육군 참모 총장까지시켜주었으나 미국NOM 들을 빨아서 이박사를 제키고 자리를 차지하려한 아주 극악무도한NOM 이다.


이는 실현이 되지 않았을 쁜이지 적어도 반역 예비 음모에는 해당 된다. 마땅히 그의 반역 가담의혹이 짙은 상황에서 이자를 반역 행위자로 재판에 회부해야할 것이다.


그의 죄과가 그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1960 5월에 군사 혁명이 일어나자, 당시 주중 대사 (대만) 재직 중이었던 백선엽은 주중 미국 대사 그럼라이트에게 혁명 주체 (박정희와 김종필) 용공 성향을 재빨리 밀고하는 미국에 일편단심적 충성을 발로한 증거가 나왔다. 이는 미국 대사가 그보다 하루전에 선엽을 만나 나눈 대화의 요점을 추려서 본국에 보낸 보고서 였다. 







백선엽은 혹시 본국에서 소환령이 나오드라도 이에 응하지 않을 것으로 말했다.  박정희가 죽게된 상황에서 구명해준 은인으로 자처하는 백선엽은 이때는 그가  자신을 잡아먹을 사람으로 본듯하다. ( 3)


백선엽은 군행정은 매우 처리한 것로보인다. 그러나, 그에게는 전략적 마인드가 되어 있지는 않은듯하다. 적의 다음 수를 내다 보지 못하고 그저 시키는 것이나 잘해내는 격으로 물론 전시여서 그러했겠으나,그의 참모총장으로서의 실책은 이승만의반공포로 석방후에 중공측의 공격을 전혀 예감하지 못했다는 점은 그가 죽도록 누구에게도 용서 받을 없는 참변에 대해서 책임질일이다.


원래 이박사가 반공포로 석방 (1953 6 18) 하지 않았드라면 6 중에 휴전이 조인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나자 중공측은 당시 유엔군 사령관 클라크 대장이 말했듯이 북진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는 교훈 이박사에게 주려고 7 13 금성천 전역 공격을 개시했다.


공교롭게도 며칠전에 일선부대 사단장 교체를했기 때문에, 새로 부임한 사단장들이 부대 파악이 되지 않아 어쩔줄 몰라해서큰 피해를 당했다. 이에 미군은 즉시 전임사잔장들을 다시 불러서 지휘하게해서 사단에 사단장이 둘씩 있었다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이것은 전적으로 앞을 한치도 내다보지 못안 백선엽의 책임이라 있다.


일제 때는 왜놈들에 부역하고 해방후에는 대한 민국보다 미군에 충성한 영원한 사대 반역자 백선엽을 처단하소서!!!

 

과거를 되돌아보면 미래를   있다(관왕지래觀往知來)

 

Copyright 2018 Teddy Kim  All Rights Reserved

 

  

필자

1: Memorandum of the Substance of Discussion at a Department of State?Joint Chiefs of Staff Meeting1  WashingtonMay 29, 1953?11 a.m.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52?1954, KOREA, VOLUME XV, PART 1

 

---My understanding is that Clark has the feeling that Paek has tacitly indicated that he would be prepared to back us if anything should happen which involves a split with Rhee. ---


2: 백선엽장군, ‘이승만제거연루설에 답해

      http://blog.koreadaily.com/teddykim/1025759


3: 아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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