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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참의장 브래들리 원수 증언 한마디로 맥아더 끽소리 못해
08/09/2018 19:08 댓글(0)   |  추천(3)


오마 브래들리 합참의장 : 그의 마디로 맥장 산 깨졌다


 

맥아더를 끽소리 못하게 만든 합참 상원 비밀증언

 

맥장 파면당했으나  개선 장군 행세해

 

합참이 극동 정세 상세히 밝혀

 

인천 상륙의 영웅은

 

신나게 북진하다 중공군 덫에 걸려

 

만여명 사상자와  5천명이 포로

 

참패당한 자가 모두  탓으로 돌려

 

맥장 원하는 확전 불가능

 

만주/중국 폭격하면 소련 자동 참전

 

소련 참전하면  미군 보급 불능 

 

철수    위험

 

 바로 3차대전 확대시켜

 

현지 미군  죽게 만들려해

 

자신은 안전하게 일본에 죽치고

 

전쟁터에 하룻밤도 보내지 않은 패군지장

 

상원 공화당의원들조차 등돌려

 

그렇게 바랐든 대통령 후보지명 못받고

 

대신 아이크가 지명받아 당선돼

 

맥장은 뉴욕 아스토리아 호텔에 칩거하다

 

84세에 타계하여 노포크에 안장되었다

 

사정을  모르는 한국에선 영웅대우나

 

미국에선 전쟁광으로 여겨져

 

 

 

지난 주에 55구의 미군 유해가 북한의 원산 갈마 비행장에서 오산 비행장으로 귀환하였고앞으로 남은 5 여구의 미군 전사자와 행방불명자들의 유해 발굴과 송환 작업을 계속할 것으로보인다.

 

 모든 것이  사람의 지휘관이 정세/상황 판단을 잘못한 때문이었다한국 사람들은 인천 상륙의 공이 맥아더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평안도 산골과 장진호반에서 만여명이 넘는 미군이 전사한 것이 맥아더 때문이라는 것은  모르고 있고아는 사람은 그것을 숨겨왔다.

 

미국은 조국의 자유와 안전을 위해 복무하는 미국 장병들에게 좋은 대우를  뿐만아니라 다친 군인들을 평생 원호 병원 (Veterans Hospital) 에서 치료 받게 해주며나아가 전사자에 대해서도 좋은 예우를 하며특히 전사자는 가족의 뜻에 따라 가족 묘지 또는 국립묘지에 안장한다.

 

그럼  이렇게 많은 유해가 아직 북한 땅에 있을까?  일반적인 경우 전사자가 발생하면 가능한한 빨리  시신을후방으로 보낸다그러나한국전의 경우에는 소총도 한자루씩 가지지 못하고 막대 수류탄과 기관총에 겨우 박격포같은 경무장만한 중국 인민 지원군 (이하 중공군)에게 완전 포위 상태에서 죽은 동료를 생각하기보다는 걸음아  살려라하고 도망치기 바빴기 때문이었다.

 

 뿐만이랴맥아더 장군 (이하 맥장) 자라보고 놀란 사람 솥뚜껑보고도 놀란다는 말처럼중공군에   당하자  뒤로는 싸우지도 않고,  38선도 내주고 서울도 내줬으며확전 (만주/중국 폭격허락 안해주면한국을 아예 포기하고 철군을 허용해달라고하여 약간  사람 같이 행동한 겁쟁이 사나이였다.

 

트루먼 대통령이 1950 12월에 영국 수상 애틀리와의 협의를통해 트루먼-애틀리 선언에서 한국의 무력 통일 방안을 포기하고 한국 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휴전을 모색하는 제안을 작성해서 참전국들의 의견을 들으려 했고  초안이 장에게도 참고용으로 전달되자 맥장은 휴전을 반대하므로 독자적으로  통첩성 통보문을공산측에 제의하는데당장 항복하지 않으면 중국 본토를 폭격한다고 위협하였다.

 

본국의 승인 없이 독자적인 확전 행태를 보인 맥장을 이번에는 그냥둘  없다고 판단한 트루먼 대통령은 측근들과 협의하여 4 11 새벽 (워싱턴 현지시간) “ 가이 색희가 사표쓸 틈을 주지 않기 위해” 기습적으로 기자 회견을 통해 맥장을 모든 현직에서 파면시킨다고 발표했다.

 

이후 미국에 환국하여 국회에서 연설하고 뉴욕에서 티커 테입 퍼레이드에 참가하여  환대를 받은 것은 어제 글에서 알렸읍니다.  ( 1) 맥장이 의기양양하게 설치는 동안 트루먼 대통령은 대외적으로는 한마디도 않고그녀석 “신나게 헛소리질하네 (a bunch of Bull Shit) 라며 독백을했다.

 

맥장을 돌연파면시켰다는 비난 여론 때문에 상원 외교위와 국방위가 합동으로 극동 세와  해임 경위를 묻는 합동 청문회가 (1951)  5 3 부터 비공개로 열렸다그러나군사상 극비 사항을 제외하고  시간마다 내용을 신문등 매체에 발표했다맥장이 최초 발표자로 사흘동안 나와서 6 시간이나 질의에  응답을 했다.

 

맥장은 자신의 전략이 트루먼의 반대를 받았지만 합참이 전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지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그는 자신의 실책은 언제나 남에게 뒤집어 씌웠다중공군 개입 규모를 바로 파악하지 못한데 대해 질의하자맥장은 CIA  판별을 잘못했기 때문이었다고 발뺌을 했다.

 

그러나 뒤에 출석한 합참측은 맥장의 주장과 정반대되는증언을했다 합참 의장인 오마 브래들리 원수는 맥장의 확전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시기에 한국전을 확전으로 수행하는 것은 미국 국익에 반한다는 뜻으로 다음과 같은 청천벽력과 같은 발언을 했다

 

합참의 견해로는  전략 (확전 전략) 지리적으로도 옳지 않은  (한반도에서시기적으로도 맞지 않고싸우는 상대 (중공군 옳지 않은 잘못된 싸움 (한국전터에서 확전에 말려 들어가게 됩니다  (“in the opinion of the Joint Chiefs of Staff, the strategy would involve us in the Wrong War, in the Wrong Place, at the Wrong Time and with Wrong Enemy,” he said.

 

이와 같은 합참의장의 증언이 나오자맥장의 열성 지지자들 조차도 자세를 가다듬고 종전의 그들의 입장을 재고하게 되었다. 그러나 맥장에 치명적인  발언은  당시 바로 공개 되지는 않았다

 

놀라게  증언은 소련이 극동 지역에 35 사단에  50만명의 병력 있고해군은 잠수함이  85 있으며우수한 공군력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소련 공군이 압록강 주변으로 출격하고 있다는 사실은 발표하지 않았다.)

 

만일 맥아더의 주장대로 만주나 중국으로 확전을 하면중소 상호 방위 조약에 따라서 소련이 자동 개입하게 되어서그렇게되면한국에 지원군을 보낼  없을 뿐만 아니라세가 불리하여 철수한다고    해상으로의 퇴각도 매우 힘들 것으로 내다 보았다.

 

맥장은 지원군이 본국에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했지만 당시 한국에 거의 모든 병력이 파견되어서  보낼 군대가 없다고 증언했다 정도는 과로 공군 참모 총장인 반덴버그는 “조그맣고 하찮으며  볼일 없는 나라 (한국) (One small, intrinsically insignificant country?Korea? ) 너무나 많은  공군 자산의 어마어마한 부분을 삼키고 있다고 불평했다. (미국 공군기: B-29 폭격기와 전투기들이 북한 상공에서 소련의 MiG-15기에  피해를 입고 있는데 대한 불평으로 보인다) *그는 그래서  우리 조국을 너무나 비하했다

 

그리고맥장이 건의한 대만의 장개석 군대 사용을 불허한데는대만군의 훈련 상태장비사기 등이 수준에맞지 않고 설령 장개석을 본토에 보내놔도 그곳 주민들의 환영이나 지지를 받지 못하고미국이 국공내전  많은 장비로 지원했으나 그들 장비가 모두 중공측에 넘어 가서 다시 재판을   없었다고 답변했다.

 

가장 주목할 증언은 한국전의 규모를 제한해서 미국이 손해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덕을 봤다는 점이다중공군은 공군 작전범위를 압록강 주변으로 제한하여일선의 미군 뿐만아니라부산등 주요  보급창과 일본에 있는 후방 지원군이 중공 공군의 공습 위험 없이 작동했으나미국이 전을하면소련이 공개적으로 참전하여 일본도 생츄어리 (안전 구역) 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증언을 들은 인사들은 맥장은 자신의 작전 계획은 세울 줄은 알지만, 작전이 실행되었을 일어날 후과 (Aftermath, Result) 전혀 고려하지 않은 멍청한 장군이라  일렀다.

 

 증언을  들은 제임스 레스턴 NYT 외교담당 전문 기자는 “맥장이 마치 검사처럼 들어와서 뻐겼으나이제는 피고로 전락한 셈이 되었다 촌평을 내렸다.

 

이즈음 휴전 제의의가 나와서 청문회는 6 25 막을 내렸다.

 

합참의장국방장관  정부의 주요인사들이 맥장의 주장과 배치되는 증언을해서 맥장의 지지자들도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서 그를 공화당 대선후보로 밀자는 사람이 없어져 버렸다.

맥장은 그의 대통령 후보의 꿈이 사라지고 그의 지지도 급격히 하락하였다그는 뉴욕의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지내다 병으로 월터 리드 육군 병원에서 84세로 1964 4 5 타계하였고 자신의 어머니의 출생지이며 부모들이 결혼한 곳인 버지니아주 노포크에서 영면하고 있다.

 

맥장은 인천 상륙으로 이름을 떨쳤으나2 대전 발발시 리핀에 있으면서 대비를 잘못하여 공군기를 본 공군의 공격을 받고 거의모두 피격되고일본군에 포위된 것을 로즈벨트 대통령이 잠수함을 보내 구출했다그는 그의 모든 휘하 장병을 내버리고 도망친 장군이었다. 남은 미군들은 모두 일본군 포로가되어 고초를 겪었다.

 

한국전에서도 인천 상륙이후에 그는 헛발짓만하고 (원산 상륙 작전등만명이 넘는 미군을 전사하게 만들고수천명을 포로가 되게 만들고는 자신이 책임지려는 태도는 보이지 않고 그의 패전을 확전으로 감추려한 비겁한 사나이였다.

 

필자 

 

 1맥아더 파면 당하고 다음 대통령 자리 맡아 놨다고

      http://blog.koreadaily.com/teddykim/1070655

과거를 되돌아보면 미래를   있다(관왕지래觀往知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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