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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박사는 내가 하와이로 축출했다 그린 증언
05/07/2018 16:05 댓글(0)   |  추천(3)

이 박사 부처가 살아서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

타고 가신 CIA 기내   허정 수반도 보인다.  (경향신문에서뽑음)

하와이 교포가 보낸 전세기로 알려 졌으나, 사실은 CIA 소속기 였다


이박사는 내가 하와이로 축출했다: 그린 증언


미국측은 이화장의 이박사 동태 예의주시


너무 많은 인사들이 몰려들어

   

               권토중래 꾀할 같아

   

               영원히 국외 축출 시켰다


마샬 그린이 모든 일을 기획하고 실행해


  으로 쿠데타 고수로 명성 날려

                                          (CoupMaster)


우리만 모르고 전세계는 알아


다시는 이러한 국치를 격지 말자


이조말 대원군도 청에 납치되어 갔다


이박사    숭상배    모두  모르쇠로 일관


한마디 미국 세우 미국



수치도 알아서  후대에도 전해야


마치 유태인 애굽 바빌론 노예살이 전하듯

 

 

 

지난 달에 올린 글에서 4.19 이후에 이박사가 자진하야 아니라  미국측이 기획하여 사직을 강권해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했음을 알려드렸다. 당시 우리 국민들은 이박사의 독재에 항거하여 데모를 했지만 독재자 수하들 (최규하, 곽영주 ) 발포 명령으로 많은 시민이 죽고 다쳤으며,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까지 동원해서 독재 정권을 유지하려했기 때문에   이상 우리 시민들의 힘으로는 이박사를 권좌에서 퇴출시킬  방도가 없었.  ( 1)


그러던 참에, 전해 (1959)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 노망든 이박사에게 미네소타 하원의원이며 이박사와 친교가 있는 져드 의원을 비밀 특사로 보내서  후계자에게 권력을 물려주고 2선으로 물러나도록 권고한 사실을 파악하고 있든 당시 마샬 그린 부대사 본국에서 이미 용도 폐기 결정을 내린 이박사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도록 상급자인 대사에게 강력히 권고하여  매카나기 대사가 총대를 매고 일을 해치웠다는 점을 그의 회고 회견기에 자세히 설명하였다. ( 2)


여기서 이박사가 자진 사퇴하지 않았다는 증언을 한가지 소개한다.  그전해 (1959)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비밀 특사로 져드 하원의원을 경무대로 안내한 있는 와츠 (William Watts) 서기관 이화장으로 물러나 있는 박사에게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을 일어난 재미있는 일화 그의 회고 회견기에 소개했다.


편지는 아이크가 이박사의 용퇴를 치하하며 편안한 은퇴 생활을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박사는 편지를 프렌체스카 여사에게 읽게 하고 읽은 다음에 그편지를 받아서 침을 뱉어 땅에다 내동댕이질 했다 것이다.  것은 무슨 뜻일까?  만일 이박사가 자진 사퇴했다면, 편지를 고맙게 생각해서 와츠 서기관에게 우선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라고 하며 자신이 답신을 보내겠다고 했을 것이다.  (  3)


그러나, 이박사는 자신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장본인인 아이크가 맘에도 없는 빈말을 한다고 화가 나서 침을 뱉어 내동댕이 아닐까? 이로써, 당시 역사의 현장에 있었든 미국의 외교관의 회고록에 분명히 박사가 자진 사퇴가 아니었다는 점을 증거로 남겼다. 두분의 증언은 미국 국무성 문서에는 나오지 않기 때문에 비밀 해제된 외교문서에만 목을 매단  많은 소위 학자들이 모르고 있다. 

 

그린 부대사는  자신이 모든 일을 기획했다고 직설법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설쩍 자신의 부인이 말한 처럼 둘러 대었다.  ( 4) (맥카나기 대사를 면접하려한 한국 특파원과 학자를 모두 자신의 수하였든 마샬 그린을 만나도록하고 자신의 면담은 피했다. 이유는 그린이 해치웠기 때문이고 자신은 명목상 앞장만 섰다는 뜻이다.)


(마샬 그린) 용의 주도한 활약상은 이박사가 이화장으로 칩거한 이후에 발휘한다. 모든 것이 그의 회고 회견기에 적나나하게 적혀 있으나, 많은 소위 학자들이 아직 읽었거나, 극소수의 읽은 사람들도 회견기에  나오는 글의 뜻을 바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혹은 알고도 입을 다물었을 있다고  본다.


미국 대사관측은 이박사가 경무대를 나와 이화장에 칩거하고 있었으나 그에 대한 감시의 경계는 한시도 늦추지 않았다. 그의 회고록에 많은 인사들이 이화장으로 문안 인사 형식으로 찾아 갔다고 기술하면서 현상을 “(하늘의 구름에서 번개나 천둥이) 피뢰침 (Lightning Rod) 으로  몰리는 같다고 표현했다. ( 당시 필자는 D 일보에서 장성이 이화장을 찾았다 기사 읽은 기억이 지금도 난다.) 그린은 현상이 달갑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박사가 권좌에서 물러 났으나, 법도, 국회도, 정부 관료도 모두 박사 때와 같아서 그가 마음만 먹으면, 다시 권부에 복귀하는 일이 손바닥 뒤집듯 (여반장: 如反掌) 쉽다고 생각되었다. ( 5)


그래서, 그는 이박사가 권토중래 (捲土重來) 없도록 그를  국내에서 추방시켜서  후환을 없애려고 공작을 시작했다. 지금도 사정은 비슷하지만, 때는 거의 모든 저명인사들은 모두 기꺼히 미국의 앞잡이 노릇을 자진해서 했기 때문에 그의 공작은 손쉽게 이루어졌다. 이들을 나무랄 수만은  없다. 원래 우리 민족의 사대근성은 알아줄 만하다. () 나라가 세면 그기 덧붙었고, () 이강하면 그기 읍조렸고, 일본 (日本) 똥깨나 뀐다고, 쪽발이에게 아양을 떨었는데, 양코백이에게 아양을 떨었다고 누가 감히 나무랄 있을까? 소위 말하자면 생계형 친미파 (?) 였다. (한국군의 원로로 원수 자리까지 노린 백모 장군은 미국을 등에 엎고 이박사 자리까지 노렸다. )


(그린) 먼저 접촉한 사람들은 이박사 의료진이었다. 그들을 통해 심신의 피곤을 풀기 위해 몇달간 전지요양을 하시는 것이 좋겠다고 이박사에게 권고를 드리게 했다.  (이박사가 1959 5 하순부터 노망 상태가 심해졌다는 미국 CIA 보고는 어디서 나왔겠는가?  바로 의료진에서 캐낸 것이다.)  (  6)


다음으로, 그린은 이박사의 측근에게 전지 요양을 직접 권고하도록 바람을 넣었다.  그리고 나서는 그들이 하와이의 이박사 친지들에게 연락을해서 초청장을 보내고 성금을 모아   내외분의 전세기 경비를 마련하도록 꾸몄다. 


하와이 친지(최백렬) 들로부터 초청장은 왔는데, 그리로 비행기 경비 마련이 힘이 들었는지


<< 박사의 배우자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1960) 5 25 미국대사 부인 (Mrs. McConaughy) 찾아와서 종전의 친우와 정치를 같이한 인사들이 이박사가 다시 정치 일선에 나서기를 강력히 권장하는데 이러한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와이로 가려하니 미국 군용 비행기편을 마련해 달라는 청원을 했다.”

그래서 매카나기 대사는 다음날 (5 26) 문제를 (한국 정부의) 허정 수반과 상의했다. 그랫드니, 수반은 박사가 국내에 있으면, 정국을 불안하게 하며, 불안정하게 만든다면서 그들을 (이박사 부처) 하루 빨리 국외로 내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응대했다. 


이에 대해서 대사는 미국은 이박사가 한국 법과 사법 절차를 회피하는데 도와 준다는 인상을 있는 어떤 행동도 연관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고, 수반이 그의 (한국) 정부가 박사 출국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다짐하였다.>> ( 7)

 

상기와 같은 내용을 본국 국무부 본부에 통보햇드니, 본부가 이에 동의하면서, 미국 정부가 이박사 부처에 하와이에 오도록 초청하며 비자는 발급하지만, 그들에게 미국 정부의 공식적  교통편을 제공하지는 않는다고 못박았다. (주 8)


이박사부처는 5 29 아침일찍 전세기 편으로 (서울) 김포 공항을 출발하여 그날 (같은 : 5 29 현지시간) 늦은 오후에 하와이 주의 호놀루루에 도착했다 문서 번호 319 호는 이박사의 한국 출국을 간단히 기록했다.


이러한 대사관/국무부 기록은 프란체스키 여사가교통편을 요청 하자 (1960 5 25)바로 다음날  (5 26) 매카나기 대사가 허정 과도 정부 수반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표시됨) 상의해서 미국 국무부에 보고하고 초청장과 비자를 내주기로 하며 교통 편은 제공 하지 않는 것으로 일사 천리로처리되어 두분이 김포를 떠난다고 나오는데, 미국 관리들이 일을 매우 신속히 처리한다고 크레딧 (Credit) 있다고 친다 하드라도, 하와이에서 전세 비행기 값을 모금하지도 않았는데, 이삼일 사이에 번개불에 콩뽁아 먹듯이 어떻게 전세기가 그렇게 빨리 도착했을까? ( 9)


그렇다면, 하와이 교포들의 성금으로 전세기가 왔다는 것은 새빨간, 아니면 새하얀 거짓말이고 마샬 그린이 불러서 CIA 극동에서 활약하는 간판 회사    CAT 소속 비행기 였다. 그의 회고 회견기에 일연의 사태를 자세히 적어 놓았는데 어느누가 이를 반박할 있겠는가?

그는 한국 사람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일을 말끔히 처리해서 국무부 내에서 쿠데타 고수 (CoupMaster)” 불리며 동료들의 부러움을 샀다. 노망이 들어 머리가 안돌아가는 박사는 자신이 납치당해 간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으나, 프란체스카여사는 뭔가 이상한 느낌을 알아차렷는지 비행기 승무원들에게 값비싼 선물을 주었으나 툇자를 맡았다 기록이 있다 행위는 공무원에게 뇌물로 매수하려는 것과 같다.


마샬 그린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복심을 읽어서 상부의 지시를 기다릴 것도 없이 자신이 이니시어티브 (Initiative) 쥐고 기획하여 이박사 권좌 퇴출과 그가 다시 권좌에 복귀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하여 사실상 납치해서 하와이로 유배를 보냈다.


이러한 막뒤에서 이루어진 움직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박사는 하와이에서 본국으로 돌아 가려했으나, 본국의 허가가 없어서 못들어 왔다고 하지만, 미국 정부가 위험 인물로 낙인찍은 이박사를 과연 한국 정부가 허락할 있었을까? 지금도 당시 정부 (허정, 장면, 박정희 ) 비난하고 있으나, 이와 같은 마샬 그린의 공작을 모르는 그들은  헛다리 짚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마샬 그린이라면 한국의 이승만 정권을 무너트린 주역으로 알고 있으나, 한국 사람만 아직도 모르고 있다.  (Marshall Green, known in the State Department as ‘the coupmaster’. Green had arrived in Jakarta only months earlier, bringing with him a reputation for having masterminded the overthrow of the Korean leader Syngman Rhee, who had fallen out with the Americans.)


이제는 부끄럽지만, 역사적 사실을 숨겨만 없다. 모국의 주류 언론도 명명백백한 사실을 밝혀서 국민들이 알고, 다시는 이러한 부끄러운 사실이 반복 되지 않기를 바란다.

 

필자


1: 이박사자진 사퇴설은 가짜

http://blog.koreadaily.com/teddykim/1057480

 

2: 이박사 노망들어 아이크 비밀특사 보내 사퇴 (http://blog.koreadaily.com/teddykim/1057622)


3: .” He opens it and he sort of squinted at it and then gave it to Madame Rhee to read it. She read it out loud to him. Rhee reached over for the letter, spat on it, threw it down, and turned around and walked away. (From P 21 of https://www.adst.org/OH%20TOCs/Watts,%20William.toc.pdf )


4: I did a great deal of the drafting. The ambassador did relatively little. He would review drafts in which other sections of the embassy made contributions, but I often brought it all together. My wife used to say I was the thinker and the drafter, and the ambassador was the talker and the doer. We had that kind of relationship.  (출처: 5 같음) 양반은 자기 공치사를 어지간히 바라는 같다.  필자의 글을 읽으면 저승에서 감사장을 보내 같다. 드디어 자신의 공적을 바로 알아주는 한국 출신이 나타났다고.

그의 가장 공적 가운데 하나는 4-19 당시 학생 데모대는 정당한 불만 (Justifiable Grievances)” 표출하며,   미대사관은 이를 지지한다고 발표했는데, 말을 자신이 만들어 냈다고 (I cooked up) 한다.


[5: But as long as he remained in Korea, he was a potential lightning rod for a reactionary move by his old supporters and 

by some military elements, for all we knew. It was important that he leave the country, and he indicated that he wanted to leave the country. So it was not a question of forcing him out. The problem was how to get him out of the country without again precipitating an 

inflammatory situation. We worked out, with the Korean authorities, Huh Chung in particular, a way of getting Syngman Rhee 

out of the country in the early dawn, before there were people around in the streets. He was driven in a car, with blinds drawn, 

out to the airport, where we had transportation arranged for him to take him to Hawaii. Therefore, he got out of the country without precipitating more trouble. 그린은 대사관측 (=CIA) 이 비행기편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공식 문서에는 미국 정부가 교통편을 제공하지 않늗고 했는데, 대사관이 CIA 소속기를 민항사 전세기로 둔갑한 것은 괜찮다는 말이고, 미국은 CIA 가 한 것은 모른다고 발뺌하는 전통이 있다. >>


Rhee stepped down on April 26 and was flown out of South Korea by the CIA.

From: The Fall of South Korean Strongman Syngman Rhee ? April 26,1960

(https://adst.org/2013/04/the-fall-of-south-korean-strongman-syngman-rhee-april-26-1960/)  4.19 부분만 다룬 글에 CIA (비행기 )으로 축출했다고 했다.


6: 한국 현지 CIA 의 이박사 건강 보고를 받은 미국 정부는 다울링 대사에게 이 보고서를 언급하면서 확인 보고를 보내라는 훈령을 내렸고 대사도 거의 같은 보고를 올렸다. 아주 흥미있는 사항은CIA 보고와 대사의 보고서는 둘 다 비밀 해제되었으나, 대사에게 (사실 확인하라고) 내려보내는 훈령은 아직도 기밀이 해제 되지 않았다. 필자의 견해로는 그 훈령에 이박사의 의료 정보 소스가 적혀있기 때문에 그의 신원을 보호하려하기 때문으로 본다. 다시 말해 자신들의 보고의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XXX 의사한테서 그 정보를 얻었다고 적시되었을 것이다.


7: << ……>> 속의 글은 문서 번호 319 를 그대로 옮겼읍니다.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58?1960, JAPAN; KOREA, VOLUME XVIII

Document 319 Editorial Note

On May 25 Mrs. Francesca Rhee called on Mrs. McConaughy to ask for Ambassador McConaughy’s assistance in arranging for U.S. military air transportation to Hawaii for Dr. Rhee and herself. She explained that Rhee was under great pressure from friends and former political associates to reenter the political arena, and wanted to remove himself from that strain. (Telegram 1215 from Seoul, May 25; Department of State, Central Files, 895B.41/5?2560) McConaughy took up the matter with Acting President Huh Chung on May 26. Huh responded that it was imperative that the Rhees leave Korea as quickly as possible, in that their presence in the country was unsettling and destabilizing. McConaughy noted that the United States would not want to take any action that might be misconstrued as assisting the Rhees to evade Korean law or judicial processes. Huh indicated that his government would take full responsibility for the Rhees’ departure. (Telegram 1222 from Seoul, May 26; ibid., 895B.41/5?2660) The Department of State on May 26 endorsed the position taken by McConaughy in his conversation with Huh Chung and indicated that the United States was prepared to extend an invitation and visas for the Rhees to visit Hawaii, but would not provide official transportation. (Telegram 1030 to Seoul, May 26; ibid.) Dr. and Mrs. Rhee departed from Kimpo Airfield outside Seoul in a chartered aircraft on the morning of May 29 and arrived in Honolulu, Hawaii, later that afternoon. (Telegram 1243 from Seoul, May 29; ibid., 895B.41/5?1960)

글은 프란체스카의 대사 부인 면담부터 박사 부처 출국 때까지 서울 주재 미국 대사관과 국무부 사이에 오간 전문을 종합한 내용임.


주 8이것은 완전히 눈감고 아웅하는 식이다. 공식 기록만 보시는 분들에게는 미 정부가 교통편을 제공하지  않은 것으로 알게 만들었다그러나, 민항사 CAT기를 주선한 사람은 마샬 그린이고,    그것은 바로  CIA 간핀 회사다. 선량한 한국 사람을 지금까지 하와이 교포들의 성금으로 마련한 (민항) 전세기로 알고 있으니 대단한 솜씨를 보였다.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이라 CAT   CIA 연결 짓기가 불가능했다. )


9: 이 부분은 전 월간 조선 기자 이 동욱씨가 이미 밝혔다. 하와이에서 전세기 성금을 모은 적이 없고 이박사의 출국이 망명이 아니라는 점을 밝혔다. 그의 공로를 치하한다. 출처: 이승만은 하와이에 망명한 적이 없다!

http://wildkim.tistory.com/496

그런데, 이분 (이동욱) 은 이 박사의 출국이 망명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냈지만 CAT 가 어떤 곳인지 Google 로 검색만 한번 했었다면 단번에 CIA소속이라는 것을 알아 차렸을 텐데, 엉뚱한 데만 두드리니 그야말로 암중 모색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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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되돌아보면 미래를 알 수 있다 (관왕지래觀往知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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