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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는 패전을 남탓으로 돌리고 확전만 주장
04/04/2018 15:04 댓글(0)   |  추천(1)

장진호에서 철수하는 미군들 산골을 걸어서 오고 있다


맥아더는 패전을 남탓으로 돌리고


확전 주장 안통하자  한국 포기 주장


하마트면  한반도가 쓰레기


필리핀 부하 전원 포로 만들고 혼자 도망친 전력 재현하려


전선 사령관이 일국 원수 같이 착각


함부로 발표 못하게 함구령 내렸으나


제멋대로 하다 결국 파면 구실 제공

 

동해안 쪽의 X 군단 장진호에서 타격을 입고가까스로 흥남으로 후퇴하여 함정으로 후송되고, 서부 지역의 워커 장군 휘하의 8 쪽으로는,  한국군 2군단이 완전 궤멸되어 군단 자체가 해산되었고,   2 보병사단 군우리에서 순천까지 10 Km 산골길을 포위 상태에서 빠져 나오면서 양쪽 기슭에 매복한 중공군의 집중 사격을 받아 4천명이 전사하고 3 여명이 포로 되며,  거의 모든 장비와 보급품이 적의 손에 들어가는 참혹한 패배를 보게되고 사단장은 바로 직위 해제되고 옷을 벗었다 .


서부전선의 좌측에 배치된 미 제1군단(백선엽 장군의 한국군 1사단 포함)은 지형도 대체로 평탄하고 체계적으로 후퇴 작전을 실행하여 거의 피해가 없었다. 12 1일께 전 부대가 청천강 이남으로 집결하자, 워커 중장은 12 3 38선까지 후퇴 명령을 내려서 사실상 북한 땅을 포기했다.

 

패전에 대한 책임은 위로 올리고 확전만 주장하는 맥장

 

그로부터 20일간의 190km(120mile)의 후퇴는 미군 역사상 최장의 후퇴라고 불리운다. 맥아더 장군은 자신의 판단 착오로 당한 미군의 참담한 패배에 대해 일말의 책임도 느끼지 못하고, 오직, 미국 정부가 자신의 작전에 제약을 두어서 (그의 말을 빌리면, 자신의 한 팔을 뒤로 묶어두었다고 둘러댔다) 그렇게 당했다고 강변했다. 

 

그는 그 정도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만주 폭격, 중국해안 봉쇄, 국부군 한국전 참전허용 뿐만 아니라, 원자탄 사용까지 주장하여, 트루만 대통령이 막지 않았더라면, 한국전쟁을 세계대전으로 확대시킬 뿐더러 한반도가 핵폭탄 투하로 핵오염 지대가 되어버릴 뻔했다. 다시 말해서, 맥아더 장군은 잘된 것은 다 내 탓이요 못된 것은 모두 남 탓으로 돌리는 무책임하고 몰염치한 군인으로 그 당시 군재에 회부하든지 해임시켰어야 옳았을 것이다.

 

맥아더 장군이 상부 허가도 없이, 그리고 상의조차 하지 않고, 대외정책을 일방적으로 발표하자, 트루만 대통령은 대노하여 합참을 통해서 맥아더가 대외 관계에 대한 성명을 발표하기 전에 외교 문제는 국무장관, 국방 문제는 국방장관의 사전 허가를 먼저 받은 다음에 발표하도록하고 사본을 반드시 백악관에 먼저 제출하도록 합참의장 브래들리 장군을 통해 지시했다.( 1950 12 6: JCS 98134)

 

맥아더의 더 해괴한 짓은 자신이 요구하는 조건들을 들어주지 않자, 그러면 유엔군을 한국에서 철수시키자고 제안했다. 풍전 등화의 조국의 운명이 어떻게 풀리는지 다음회를 기다리시라.

 

맥아더를 이여송 이상으로 숭상하신분들은 맥아더라면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으십시요. 그는 지금부터 67년 전에 한국을 포기하고 일본만 지키겠다고한 쫄장이었읍니다.

 

그러는 사이에, 일본 아츠키 공군 기지에 파견나온 미국 국가 안보국 (NSC) 산하 기관에서 감청한 활동을 하는데, 일본 주재 스페인 대사가 본국에 보내는 전신을 감청한 자료를 보면, 맥아더가 자신과 환담하는 가운데, 맥아더는 장군은 한국전쟁을 만주 폭격과 본토 상륙을 통해 모택동 (중공)을 몰아내고 장개석군의 본토 수복 지원이 목표라고 말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 사실은 캐넌 (Kennan) 다음으로 미 국무부 정책실장을 지낸 니츠 (Nitze) 씨의 회고록에 나오고, 그가 상부에 보고했기 때문에 맥아더의 신임에 금이 갔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미래를 알 수 있다(관왕지래觀往知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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