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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타 하리 억울한 누명 쓰고 처형당해
04/02/2018 15:04 댓글(0)   |  추천(1)

Greta Garbo가  Mata Hari 분장한  MGM 영화  포스타



마타 하리 억울한 누명 쓰고 처형당해


당당히 죽음 맞았다


교수대에 묶이지도 눈도 가리지 않아

 


당시 프랑스 많은 전사자 때문에 희생양 필요


증거도 없이 덮어씌워 처리


재판과정 처형 신문에 대대적 선전


정부의 실책 외국 여인에게 독일 첩자라고 다 넘겨

 


영국 방첩대도 그녀에게 큰죄 없었다고 후일 밝혀


처형 100 주년 맞아 모든자료 공개


자료 연구해서 진실 밝혀질

 

 

마타 하리의 재판이 진행되든 1917년에 프랑스는 독일과의 1 대전을 치루면서 새로나온 기관총에 막심한 전사자를 내고, 니벨 공세 작전 (Nievelle Offensive) 실패로 프랑스 군부내에서 반란 사태도 발생하고 근로자들의 파업이 연달아 일어나는등 얼마 못가서 정부가 붕괴되리라는 말이 정도였다.

 

그해 7월에 조르주 크레망소 (Georges Clemenceau) 수상이 이그는 새로운 프랑스 정부가 들어서서, 만나을극복하고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다짐하였다.  이와 같은 상황아래서, 전쟁으로 인해서 일어난 모든 잘못을 독일 스파이에게 뒤집어씌우면 아주 편리 할것으로 생각되어 마타 하리가 좋은 희생양감이되었다.

 

 

그래서, 그녀의 재판 과정을 통해 그녀가 마치 일을 저지른 처럼 그녀의 역할을 과대 포장하고,  신문에 대서특필하도록 만들었다.   이와 관련하녀 많은 연구를 캐나다 역사학자인 웨슬리 와크 (Wesley Wark) 2014년의 인터뷰에서, 마타 하리는 거물급 스파이도 아니었고, 프랑스 군대에 실수를 가져다 일을 저지르지도 않앗지만 프랑스 육군이 자신들의 잘못을 탓할 희생양을 찾든중에 불행히 거려들었을 따름이라고 그녀를 변호했다. 

 

이와 마찬 가지로, 영국의 역사가인 줄리 휠라이트는 스페인의 지방 신문에 나오는 사건보다 중대한 정보를 전한 적도 없었다.  그리고, 젤르 (Zelle: 마타 하리의 본명) 어느 단체에도 소속되지 않으며, 이혼녀이고, 중립국의 시민이며, 무용수 였기에 프랑스 당국에서 아주 적합한 희생양으로 낙착이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한 휠라이트는 도덕성이 떨어진 사람에게 어떤 일이 당할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도 있다고 덧붙였다.

 

여듧 (8) 가지 죄목에 대한 혐의 사항의 증거로 내놓은 것은 알맹이가 없는 것이어서  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쉽게 그녀가 첩보최목을 뒤집어섰다는 것을 눈치체었으나 일반은 대중 심리에 휩싸여 정부의 선전술에 말려들었다.

 

적국 (독일) 특정 정보가 전달됐다는 증거는 하나도 똑바로 내놓지 못하고, 그녀의 도덕성 문제에 대한 경찰의 조사는 철저했다. 그녀가 사치스런 생활을했고, 여러나라 명사들과 관계를 했다고 까발렸다. 정보국장으로 그녀를 직접고용한 라두 (Ladoux) 실제로는 자신이 조작해 놓고  그녀가 독일 교신하는 것을 감청했다고 서류를 내놓기도 했다.

 

그녀의 변론인인 클리네 (Clunet) 나름대로 그녀의 무죄를 입증하기위해 그녀가 매혹적인 여인이긴했지만 그와 관계를 하면서 한번도 군사 기밀을 물은 적이 없었다는 증언을 하는 사람을 찾아 증인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가운데 사람인 앙리 마게리 (Henri de Maguerie) 프랑스 외상의 비서였고 1905 이래로 그녀와 관계를 맺어온 사나이였는데, 그녀의 결백성을 열열히 옹호했다. 

 

그렇지만, 짜놓은 각본대로 진행된 재판은 그녀를 최종심에서 그녀를 총살형에 처하도록 판결이 내렸다. 징역형으로 감형하려는 노력도 수포로 돌아가고, 대통령의 사면을 받으려는 노력도 허사였다

 

그녀는 1917 10 15 새벽 동트기 전에  파리 교외의 사형장으로 끌려갔다. 열두 (12) 명의 사수가 대기하는 앞에 서서 그녀는 죽음을 용감히 맞이하였다. 여느 사형수와는 달리 그녀는 몸을 사형목 (射刑木) 묶는 것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눈을 가리는 조차 거부하고 가냘픈 여자였지만, 조용하지만 어쩌면 장렬하게 억울한 죽음에 항의했다.

 

아무 소리도 지르지도 않고, 열둘의 사수를 빤히 쳐다보면서 쏟아지는 총알을 맞았다. 그녀가 쓰러진 다음에, 하사관 한명이 쓰러져 누눠있는 그녀에게 다가가서 허리춤의 권총를 꺼내 그녀의 머리에 한발을 쏘아서 확인 사살했다. 그녀는 마흔 살이었다.

 

현장을 참관한 영국 기자 헨리 웨일스 (Henry Wales) 따르면, 사수들에게 손으로 키스를 보냈다 한다.  일반적으로 그녀는 팜므 파탈 (Femme Fatale: 치명적으로 매혹적인 여자) 로 불리우고, 자신의 선정성을 이용하여 남자들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남성들에게) 위험스런 강력한 매혹적인 여자로 여겨진다.  그러나, 1934년 뉴요커 (New Yorker)  잡지에 기사를 쓴 미구 역사가들인  노먼 파머(Norman Palmer) 와 토마스 앨렌 (Thomas Allen) 에 의하면, 그녀는 천진해서 남의 손에 쉽게 속히는 사람이어서, 남자에 희생을 당한 사람이지 남자를 희ㅛㅐㅇ시키는 그러한 부류의 여자는 아니었다고 평했다.

 

200110월 영국 방첩국 (MI5) 에서 발표한 자료를 검토한 화란의 마타 하리 재단 (Mata Hari Foundation)“ 은 영국 발표 자료에 그녀를 유죄로 판명한 죄목에 유죄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프랑스 정부에 그녀를 무죄로 판정해 달라고 재심을 청구했다. 

 

그 단체의 대변인은 젤르 (Zelle: 마타 하리의 본명) 는 기껏해야 저급 첨자에 불과하며, 그녀를 범죄 혐의를 입히는데 사용한 서류철에 의심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사건을 재심할 사유가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그녀가 완벽한 무죄라고 할 수 없다손 치드라도, 수천명의 병사를 전사하게 만들 중대한 군사 기밀을 적국 (독일) 에 보낼 정도의 최고위급 스파이는 결코아니라고 이유를 내세웠다.

 

그녀가 처형된지 100 주년 기념일이 되는 2017년에 프랑스군부가 그녀의 처형 심판과 관련된 서류를 공개하므로, 그 서류들을 검토한 다음에 그녀의 억울한 죽음에 동정적인 부류에서 강력한 항의를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필자 추기: 박정희 시절의 중앙 정보부 (현 국가 정보원 전신) 가 정권 유지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 특히 대학 교수와 학생들을 잡아 넣고, 고문하고 죽인 것은 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학생 조직에 뚫고 들어갈 프락치를 선발하기 위한 그들의 악행을 그곳 출신에게서 들은 바를 소개한다.  

 

60년대 중반에 한일 회담 반대 데모등 학원 소요가 심했고, 대체로 거의 모든 모의의 시초는 A 대학 학생회가 주동이었다. 그래서 학생들의 동태를 주시하고 예방등을위해 학생 조직에 프락치 심는 공작을 시작하는데, 최근 졸업한 학생회장 출신인 B 씨를 선발하기로 하고 바로 군에 징집했다.

 

훈련을 마치고 부대 배치가 된다음, 정보부는B 씨가 소속한 부대와 긴밀히 연락하여 그에게 아주 극심한 압박을 가해 도저히 정상적인 부대 생활을 할 수 없게 만들어 그는 탈영했다. 탈영병으로 쫓기는 몸인 그에게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그는 바로 지금까지 그를 군에 입대하도록 만들고,  너무 힘들어 탈영까지 하겟끔만든 장본인 C씨다. (그 이전까지B 씨는 자신에게 닥친 급박한 사태의 이면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C씨는B 씨를 붙잡아서, 우리가 원하는대로 할 것이냐, 아니면 탈영병으로 인생을 망칠 것이냐고 다그쳐서 그들이 원하는대로 그곳 요원이 되어 대학교/대학생 공작 활동에 가담했다고 한다.  마타 하리 케이스를 보면서, 예전의 학교 선배가 당하신 아픈 이야기  생각이 나서 여기 적었읍니다.  그 이후 소식은 필자가 이민 오는 바람에 더 듣지 못했읍니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미래를 알 수 있다(관왕지래觀往知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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