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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염한 이색 댄서 마타 하리의 비극적 인생
01/23/2018 13:01 댓글(0)   |  추천(3)



요염한 이색 댄서 마타 하리의 비극적 인생


유복한 가정에 태어 났으나, 부친의 파산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유치원 보모로 있을 원장이 추근데


대부가 갈라놓자 삼촌 댁으로 도피


구혼광고보고 21 먹은 남자 결혼


멀리 인니 가서 살아야 하지만 신분 상승에 혹한


마타 하리라는 예명 지었는데 


인니어로 (대낮의 )


생활고 세계의 수도 


파리 옮겨가기로 작정

 

  

마타하리 (Mata Hari) 라면 많은 분들이 미모의 여성 첩자라는 정도는 알고 있으나, 대부분은 이상은 모르시기 때문에 이난을 통해서, 그녀의 화려했으나 비극적인 일생을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그녀는 지금 네델란드 ( 1) 부르는 유럽 국가에서 1876 8 7 마르하레타 헤이르트라위다 젤러(네덜란드어: Margaretha Geertruida Zelle) 라는 이름으로 태어 났고, 마타 하리는 그녀가 나중에 프랑스의 파리에서 이색적 무용수로 등장할 사용한 예명이고, 이름이 그이후에도 계속 그녀에게 따라다녔다.


그녀가 태어났을 즈음 그의 아버지는 모자 상점을 경양하며, 석유 산업 관련 주식에 투자하여 유복한 생활을하여 그녀가 13살이 때까지 특수층이 다니는 사립학교에 다녔고, 그녀가 원하는 것은 거의 마련해줬다일부 서적에 그녀가 자바, 인도네시아 혈통 또는 중동 계통이라는 설을 올 놓기도하지만 양쪽 부모가 모두 네델란드인들이 확실하다.

그러다, 1889년에 그녀의 부친이 파산 선고를 하고 이어서 부모가 이혼을 하며, 잇달아 모친이 죽게된다 (1891), 그녀의 부친은 재혼했다 (1893). 그리곤 살림이 어렵자 그녀와 세명의 남동생들은 모두 인척들의 집에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는데, 그녀는 자신의 대부 (Godfather) 비서 (Visser) 댁에서 자라게 되었다.


얼마후에 유치원 교사로 재직하는데, 원장이 그녀에게 남의 눈에 정도로  성적 희롱을 일삼자, 그녀의 대부가 몹씨 화가 나서, 그곳에서 일하지 못하게 떼어놓았다몇달 동안 잠자코 있든 그녀는 대부의 집에서 도망쳐 나와  수도 헤이그 (The Hague) 사는 삼촌 집으로 갔다.


그녀가 18살이 되었을 , 어느 신문에 결혼 상대자 구인 광고난에서 당시 네델란드 동인도 ( 인도네시아) 근무하는 육군 대위 루돌프 맥리오드 (Rudolf MacLeod) 결혼 대상자를 구한다는 광고를 발견했다그녀는 집안이 풍지박산이 되어 이집 저집 전전하는 것에 싫증이나서, 앞뒤 가리지 않고 결혼이 그녀의 탈출구로 생각하여 나이 차이가 스물 살이나 되며,  곳에 가서 살아가야할 이국 생활을 결심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1985 7 11 헤이그에서 맥리오드 대위와 결혼식을 올렸다. 남편의 부친 (시아버지) 브리넌 맥리오드 대위 (Captain John Brienen) 원래 스캇트랜드 (Scotland) 출신이어서 스카티시 성을 간직했다. (Mac-, Mc- 등은 영국 북부 스캇트랜드와 아이리시들의 성에 쓰인다.) 그리고 시어머니는 상류층 출신이어서, 그녀는 자동적으로 신분이 홀랜드 상류 층에 입문하게 되었다. 아마 이것도 그녀가 나이 차가 많고 이국 생활을 해야하는 조건에도 결혼하게 되는 동인이 되었을 있다.


그녀의 동인도 ( 인도네시아) 에서의 결혼 생활은 마디로 실망스러웠다남편인 맥리오드 대위는 알코홀 중독자였고 툭하면 그녀를 쥐어 팼다. 그는 첩을 두었고 ( 당시 그곳 풍속은 첩이 허용되었다),  자신이 승진을 못하는 것도 그녀의 탓으로 돌려서 툭하면 때렸다


그녀는 잠시 동안 맥리오드와 떨어져서  다른 장교인 리드스 (Van Reedes) 동거했다. 기간 동안 그녀는 그곳 인도네시안 전통을 열심히 배우고, 그곳의 무용소에 가입했다그녀는 고국의 친척들과 편지를 교환할 그의 예명 마타 하리 (Mata Hari: 현지어로 해를 가리키는 말인데 문자 그대로의 뜻은 대낮의 이다) 처음 들어내었다 (1897).


남편의 강권으로 다시 합류헸으나, 그의 성질에 변한 것은 없었다지루한 남양 생활은 끝내고 에델란드로 귀환했으나, 1902 8 30 공식적으로 별거에 들어갔으며, 1906 정식 이혼이 성립되었다. 법원 판결로 맥리오드가 그녀에게 딸의 양육비와 위자료를 주기로 했으나, 그는 전혀 한푼도 주지 않았다.


딸이 남편을 방문했을 그는 딸을 돌려 주지 않았았지만, 딸을 찾고 싶었으나, 법적 수속을 돈도 없는데 다가, 남편이 자신한테는 여러모로 잘못했으나 딸한테는 했기 때문에 딸이 남편과 지내도록 허용할 밖에 없었다. 혼자 살기가 어려워, 당시 세계의 수도라 불리우는 파리로 옮겨가기로 결정했다.


(기대하시라, 모든 중요한 일은 파리에서 일어납니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미래를 알 수 있다(관왕지래觀往知來)

 

Copyright 2018  Teddy Kim  All Rights Reserved.

 

필자


1: 네델란드는 낮은 (Low Lands) 이란 뜻으로 지표면이 해수면 보다 낮은 지역이 많아서 뚝을 쌓아서 물이 들어 오는 것을 막고 물을 바다로 빼내기 위해 풍차를 이용한다홀랜드라고도 부르며 중세에 영국보다 먼저 해상 활동을하여 지금의 인도네시아를 화란령 동인도 회사가 지배했다. 당시 그들은 일본과 통상을 했고 나가사끼가 그들의 개항장으로 사용되어 일본의 개화에 도움을 주었다.


일본을 향하든 배가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표류하는 사례가 차례 있었는데 첫번째에 월트브레 (귀화하여 박연) 있고, 그는 1627 이조 인조시 표류하였고, 뒤에 귀화하여 훈련도감에서 무기 생산 조제에 공헌했다. 다음으로 1653년에 하멜등이 표류해 와서 1666년에 탈출하여 귀국한 다음 하맬 표류기 출판해서 조선의 사정을 서양에 소개한 최초의 책이 되었다. 이들 두분이 조선에 발을 디딘 것은 우리가 중국, 일본 다음으로 형님으로 모시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생기기도 한참 전에 일어난 일이다.


홀랜드 사람들은 영국 사람들에 앞서 맨해턴을 인디안들로부터 돈을 주고 사서 암스데르탐이라 불렀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영국처럼 강탈하지 않았지요). 그러나, 땅을 후발 주자인 영국이 강탈해서, 욕이라 불렀읍니다.)  지금도 , 저지 지역에 홀랜드식 지명이 많이 남아 있는데, 허드슨 위에 호수 같이 넓은 곳을 태판 (Tappan Zee) 라고 부르는 곳이  있는데 여기서Zee 영어로 Sea 뜻합니다. 한때 Fishkill 두고, 어떻게 물고기 (Fish) 죽인다 (kill) 지명을 사용할 있는가하고 야단 법석을 떨었으나, 지명이 원래 홀랜드 말에서 나왔다고 해서 가라 앉았읍니다.


홀랜드 이민 후예들 가운데 미국의 유명한 대통령이 두분 나오셨는데 모두 뉴욕 출신으로 먼저 뉴욕 출신인 26 대통령이된  시어도 로즈벨트 (Theodore Roosevelt) 있고, 다음으로는 하이드 파크 (Hyde Park) 출신으로  32 대통령이 되고  4선을 하신 플랭클린 로즈벨트 (Franklin D. Roosevelt)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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