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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가와 너무 잘해서 일생을 망친 진주만 스파이
01/08/2018 14:01 댓글(0)   |  추천(4)

요시가와 부인 에츠코 그는 아직 과거 속에 살고 있어서

진주만 기습 작전 지휘자 야마모토 (책 왼쪽) 존경했다



요시가와  너무 잘해 일생을 망친 진주만 스파이


전후 일본은 완전히 달라져


전전: 군인이 존경받고 어깨 힘주며 (침략) 전쟁 광분


전후: 모두 밖에 몰라 세계 신시장 개척에만 몰두


진주만 기습의 일등 공신    전후 아무도 몰라봐   연금 신청도 반려


전세계가 그의 활약상을 높게보지만


정작 본국에선 전쟁 일으키며   원폭 피해도 그의  탓으로


과자점 차렸으나 사주는 사람 없어 문닫고


모든 잊으려고   세월 보내

 


   

진정한 최후의 사무라이 (Real  Last Samurai)


요시가와 다케오는 2 대전 중에 활약한 가장 유명한 수퍼 스파이 였지만


너무 성공적으로 수행해서 그의 일생을 망쳐버렸

                                                                                                --- 레이트너 (Ron Laytner)

 

 

필자 : 우연히 제목의 요시가와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그의 전후 생활가운데  자신을 알아 주지 않는다는 넉두리를 읽고, 그가 겪은 전전 전후 일본 사회의 변화 주로 실리고, 이전 사항 가운데 빠진 부분을 간략히 소개합니다.


요시가와 다케오,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전엔 많은 미국인들이 이름도 모르는 일본인 스파이를 저주했었고, 일본 사람들은 그가 패전하는 전쟁으로 일본을 끌어 들이고, 심지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도 그의 탓이라고 비난을 삼았다.


인류 역사 기록 중에 가장 성공적 첩보 활동을 한 수퍼 스파이로 꼽히는 요시가와는 자기 나 최선을 다했으나 정작 일본 정부는 그에게 훈장도, 명예도 심지어 연금조차 주지 않았다. 회견자가 도쿄 남서쪽 섬인 시고쿠의 그의 고향을 찾았을 그는 일자리도 없이 평범한 촌로로 살고 있었다. 요시가와는 칠순 (70)이었다.


저의 행적은 일본 역사에서 말끔히 지워져 있었읍니다. 제가 5 (65: 일본 정년) 정부에 연금을 신청했는데, 담당 공무원이 당신 이름을 들어 적이 없다 반려했어요.”

그래서, 제가 그들에게, 첩보원 훈련 받고, 미해군에 관한 전문가가된 , 그리고 하와이 호놀루루 파견되어 위험한  첩보 활동한 일등을 설명했으나, 조그만 동정의 빛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일본은 남의 나라에 정탐하는 짓을 적이 없었노라고 면박을 받아 허허 웃고 돌아 왔어요.”


현대 일본인들이 어떻게 평가하든지간에, 진주만 기습 공격은 그것으로 (일본 해군이) 달성한 놀라운 성과는 영원히 해전사에우뚝 솟아 있을 것으로 본다. 아주 담대하고, 훌륭하며, 예상을 불허하는 작전을짜서, 성공적으로 수행한 군사적 대성과여서 과정을 바로 기술하려면 전쟁사 가운데 수십권으로도 적을 없을  정도의 분량이 된다.


지금 저자 앞에 앉아 사케 (일본 ) 마시고 있는, 작달막한 키에 허름한 농부의 옷을 입은 나이들고 비통해 하는 사람이 진주만 기습 공격 성사에 크 기여한 분이다.

오늘날, 전쟁은 나쁜 것이고 , 또한 잘못된 것이다라고 스파이 고수 (Master Spy) 선언했다. 그러나, 내가 자라든 시절의 (일본에서는) 전쟁이 좋은 것으로 인식되었다또한 전쟁은 정당했다. 그러므로, ( 당시나는 일본의 영웅이었다그러나, 지금 전쟁은 나이의 나를 비참한 상태로 몰아 넣었다. “ 그는 울분을 토로했다.


이제, 세상은 온통 바뀌어서 그들 (전후 일본 세대) 모두 돈만 생각하고 일본 상품의 새로운 시장 개척에나 열중하고 있다. 그 같이 명예를 존중하지 않으며, 연로자들을 존경하지도 않는다.”

요시가와의 소년 시절에는 일본 제국은 (침략 전쟁으로) 해외로 뻗어 나갔으며, 젊은이가 전장에서 죽으면 (전사하면) 일본 사람들은 벗꽃이 만개해서 활짝 뽐내며 땅에 떨어지는 같이 (아름답게 ) 나라를 위해 산화한 것으로 생각했다 옛적을 회상했다.


그래서 그는 에타 지마에 있는 해사에 입교했다.  (1929) 해사의 규율은 엄해서, 어느 학생이 잘못하면, 전학년이 단체 기합을 받았는데, 대나무로 종아리를 얻어 맞았다고 한다. 그는 4 수학 후에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래서 일본 해군은 그에 기대를 걸어서, 후에 함장이나 제독은 문제 없다고 보았다. 그는 전함 아사마에서 근무했고, 이어서 잠수함 근무도하고 해군 조종사 훈련도 받았는데 도중에 위장병으로 임관 2년만에 전역하게 되었다.


그의 능력을 아끼는 상사가 해군정보 업무를 권장했는데, 그는 제의를 받고 자결할 생각까지 했으나, 선배의 권고를 받아 들여서 정보 업무를  시작하여, 그후 4년간 미국담당과에 속하여 우선 미국 해군에 관한 전문가로 양성되었다. 그는 제인스 군함과 항공기 (Jane's Fighting Ships and Aircraft) 년감과 미국에서 출판되는 신문, 잡지 책에 실린 미국 해군에 관한 모든 자료를 받아 정보를 얻어서 전문가가 되었다.


암호 교육을 받는 도중, 호주 병력 수송선 17척이 아프리카 서부 해안 국가 라이베리아 프리포트 항구 (Freeport, Liberia) 출항해서 영국으로 떠났다는 암호를 해독하고, 외무성을 통해 나치 독일에 사항을 전달해서 뒤에 히틀러가 요시가와에게 감사하다는 친서를 보내 왔다. 요시가와는 그것이 그가 받은 유일한 전시 활동에대한 공로 인정이라며 서운한  말했다.


그는 1940년에 일본 외무성 영어 시험에 합격해서 초급 외교관이 되었고, 이는 그의 신분 위장용이었다 이듬해 (1941) 그는 외교관 여권을 받아서 하와이의 호놀루루 총영사관 부영사로 발령을 받아 모리무라라는 가명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호놀루루에서 정보 수집에 열중하는데, 이부분은 먼저 다뤘고, 새로 나온 부분만 첨가합니다.


·         그는 대담하게 필리핀 사람으로 가장하여 미군함상 식당에서 디쉬워셔 (Dishwasher)로  일하며 설치된 함포등 무기 체계도 알아보고 해군 병사들 간의 얘기도 귀담아들으며, 가치있는 정보를 얻으려 노력했다.


·         그는 장거리 수영에 능해서 진주만 안에서 공기빨대로 숨쉬며, 해저 징애물 설치등을 살폈다.


·         그는 미국 정부가 매우 어리석게도 외교관 여권을 가진 자신의 활동을 전혀 의심하지 않아서 경비행기를 전세내어서 오아후 섬을 마음대로 날아 다니며 정찰할 있었다고 뽐냈다.


·         일본 다방 춘초로에 쉬러 왔다 귀대하는 해군 장병들에게 공짜 차편을 제공 (히치하이킹) 해주면서 그들의 주고 받는 대화에 귀를 기울여 가치 있는 정보도 얻었다.

 

진주만 기습 공격이후, 요시가와는 먼저  디애고로 송환되었고, 다음에, 애리조나 일본인 2세들과같이 수용소 생활를 하다,  다시 뉴욕의 애스토리아 호텔 (Astoria Hotel, New York City) 로 옮겨서 좋은 대접을 받다가 일본에 있는 미국 외교관들과 교환하여 본국으로 귀환했다. 

 

(진짜 스파이는 유유히 본국으로 무사히 귀국한 반면,  서해안 지역에 살든 무고한 일본계 시민 ( 십이 만명) 들이 캠프에서 억류  생활을 했다.)

 

그가 돌아 왔다고, 대대적인 영웅의 환국 행사도 없이, 그전처럼 해군 정보처에서 근무을 계속하였고  결혼도 하였다.

전쟁이 패전으로 끝나고, 미군이 진주하자, 신변의 위협을 느낀 요시무라는 시골 산으로 피신하여 절에 들어가서 중행세를 하다가 미군이 떠나자 집으로 돌아 왔다.

 

생계를 위해 1955년에 게익점 (Candy Shop) 열었으나, 그의 행적을 알아 버린 동네 사람들이 스파이 한테서 과자를 사먹겠다고 하여 문을 닫을 밖에 없었다. 그들은 요시가와가 패전으로 끝낸 전쟁을 일으키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탄이 터진 것도 그의 탓으로 돌렸다고 말하며 억울하다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는 직업도 없고 사업도 안되어 낙망했지만 그를 아직도 역사적 인물로  받들며 매일 절을 해 바치는 부인 에츠코가 보험 세일즈로 생계를 유지했다.

 

끝으로 요시가와는 저는 잊으버리려 술을 마십니다. 전쟁이 끝나고도 수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너무나 많은 생각이 떠오릅니다저는 임무를 수행했을 따름입니다자는 진정한 사무라이였어요 역사는 저에게 속임수를 사용하는지요?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저주했다.


그는 향년 79세로 도쿄의 요양원에서 일생을 마쳤다


요시무라는 본국이 사정상 인정해 없어서 불만이었지만,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고 목숨을 부지하고 돌아 것만으로 감사해야 것이다. 패전으로 가장 피해를 입은 사람은 누구일까두말할 것도 없이 일왕 히로히토일 것이다. 그는 신으로 받들다 인간으로 되돌아갔으니 그야말로 하늘에서 땅으로 낙하산도 없이 떨어진 셈이다. 그는 점령군 사령관인 맥아더가 부르면 찾아가 대령하는 초라한 몰골 보였다.

 

맥아더는 아무튼 중국 본토까지 호령하려다 파면 당했지만, 일본만은 완전히 손을 보아서  군국주의를 말살시켰다. 그러나, 이제 아베 다시 트럼프에게 알랑떨어서 재무장을 시도하니 경계해야 하겠다.

 

맥아더 앞에서 절절맨 일왕 히로히토  (전범이었지만 재판을 피했다)


추기: 다음에는 세기의 요염한 여자 스파이로 이름을 떨친 마타 하리, 기대하시라


과거를 되돌아보면 미래를 알 수 있다(관왕지래觀往知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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