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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가와 스파이 활동 성공적 수행 그러나 전후 아무도 공로 인정안해
01/02/2018 14:01 댓글(0)   |  추천(3)

세계에서 제일 가는 첩보 활동가를 조국이 외면해서

술타령으로 말년을 보낸 요시가와


요시가와 스파이 활동 성공적 수행


무사히 귀국해 첩보 업무 계속해


미군 진주하자 절에 들어가 중으로 위장


 알아주는 사람은 부인 밖에 없어


말년 술타령하다 요양소에서 세상을 원망하며 떠나


일본 영사관 직원들은 침공 날짜를 미리 연락 받은 없었기 때문에 운명의 12 7 (일요일) 아침 일찍 소란한 소리에 놀라서 일단 영사관으로 모였다총영사 기타와 부총영사 오쿠다는 그날 골프 약속을 했기 때문에 골프 복을 입고 나왔다모리무라는 자기 전세를 얻은 집에 머물고 있었다재빠른 신문 기자 한명이 영사관에 와서 밖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려줬다


정오가 지나서 하와이 경찰관들이 정문에 있든 보초를 제치고 건물 뒤에 주차한 다음에 건물을 접수하고 마지막 남은 서류를 태우는 작업을 중지시켰다. 조금뒤에 미카미가 그의 택시를 몰고 와서 건물 앞에  보초 경관에게 총영사와 부영사를 곺프장으로 데리러 왔다고 전해달라고 부탁을 했다그러자, 경관은 그의 손님들 (총영사와 부영사) 오늘은 골프장에 갈수 없다는 전갈을 받았다.고 전했다.



진주만 기습 공격 제1대로 날아온 일본 전폭격기 조종사가 찍은 군항의 모습


모리무라와 다른 모든 영사관 직원들은 영사관내에서 일주일 이상 지내야 했다그리고는, 해안 경비대  함정에 실려서 일단 캘리포니아 디아고 (San Diego) 로 가서 수용되어 있다가, 1942 3월에 본토의 일본인 2세들이 수용된 아리조나의 캠프로 이동되어가tj 그들과  같은 수용소 생활을 보내게 되었다. 모리무라는 자신이 사용했거나 작성한 기기와 서류를 일찍암치 모두 소각했기 때문에 아무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해서 구금을 면했다.


모리무라는 나중에 일본인 2세들에 대해 아주 냉소적인  잔인스런 농담을 던졌다 그는 하와이의 일본인 2세들 (재미 일본계 2) 도통 믿을 없어서 그들과 어떤 비밀 얘기도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미국에 (일본 보다는) 충성적이었다 틀어 놓았다( 1)


그와 일본 본국에서 와서 근무한 영사관과 대사관 관리들은 미국과 일본의 외교관 상호 교환때 일본으로 돌아 있었다. 그가 돌아 때까지 아무도 모리무라 (본명:요시카와) 하와이에서 일본 기동대의 기습 표적들을 정확히 탐사하여 전해줘서 심대한 피해를 입히는데 공적을 남겼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그는 적국 스파이였으나 그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모범적 첩보원이었다.


본국으로 돌아온 모리무라는 먼저 자기 이름부터 도루 찾아서 요시가와가 되고, 결혼도 하고, 해군성에서 태평양 전쟁이 끝날 때까지 첩보업무에 종사하였다. 그러나, 전쟁은 일본의 항복으로 끝났을 뿐만 아니라, 미군이 점령군으로 진주하게 되자, 혹시 자신의 하와이에서의 행적이 들어날까 염려하여 피신하기로 작정했다병서를 보면 삼십육 주위상책 (三十六 走爲上策) 이라고 하지 않았든가? 일단 도망쳐서 목숨부터 구하는 밖에 없다고 판단을 내렸다


여러모로 고뇌를 하든 중에 일본 역사에 많은 유명 인사들이 일이 여의치 않았을 중으로 변장하여 산속에서 피신한 생각이 떠올라서 언젠가는 점령군 (미군) 철수 터이니까, 그때까지 절에 숨어지내자고 결심하고 아내에게만 귀뜸을하고 어디론가 말도 않고 떠났다.


그가 다시 아내 앞에 나타난 것은 미군들이 완전히 떠난 1952 4 8 이후였다. ( 2)  그는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려고 애를 썼그래서 그는 1955년에 과지점을 열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사람들이 자기 (요시 가와) 때문에 (태평양) 전쟁이 났다고 수근거릴 뿐만 아니라, 심지어 원자탄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조차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데는 정말 어이가 없었고 . 사람들이 그의 상점을 피해다녀서, 그래서 그는 그것마저 접을 밖에 없었다.


전후에 일본 정부는 그를 완전히 외면해버렸다하긴 어깨 넘어로 감독하는 큰형이 무서워서 어느 누가 그의 공적 (?) 대해서 말을 끄낼 있겠는가? 한푼 없고, 직장도 없는 그는 생명 보험 와판원으로 일하는 부인에 의지할 있을 뿐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부인만이 자신을 역사상 인물로 간주하며, 매일 아침 자신에게 절하며 공경한다고 전했다그는 향년 79세로 요양원에서 일생을 마쳤다


대부분의 역사서에는 진주만 기습을 다룰 지나치 듯그의 이름을  두줄 비친다. 그래서 일로 일본인 2세들을 강제로 수용소에 억류시킨 것을 정당화 하지만, 정작 하와이에서 그는 한번도 니세이들 (알본인 2세들) 믿어 적이 없었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정자ㅏㄱ 스파이 활동한 사람은 외교관 명목으로 요시무라 한 사람이 당당히 했으나, 그는 꼭 빠지고 미국 본토 서부 지역의 미국 시민인 니세이들만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수용소 생활을 했다. 말 할 수 없는 아이러니이다.!!! ( 3)

 

 

필자

1필자는 뉴욕에서 많은 중국인 2,3세를 만나 봤는데, 그들은 모두 중국 (칸토니즈) 잘하고 물론 한자로 자기 이름을 알았다그러나, 미시간 자동차 회사 다닐   만난 알본인 3세는 이름을 한자로 모르고, 조상들이 일본 어느 고장에서 왔는지 아느냐고 물으니, 서부 지방에서 왔다고만 하지 어디인지 모른다고 하였다. 분은 물론 하와이 출신이다많은 일본인 1세들이 일본 서부에서 왔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들은 쉽게 얘기해서,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괄세 받든 지방 출신이어서 미국에 빨리 동화할 작정을 하고 태평양 건너 오면서 그쪽 일은 모두 잊자고 먹은 같다


주 2: 일본 전체가 항복 후에 미군 점령하에 있었다.  1951 9 8일에 강화조약이 서명되고 이듬해인 4 28일에 오키나와 등지를 빼고, 미군이 철수하고 일본의 주권이 회복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미국 큰형님 말이라면 절절기는 것을 아베의 행적에서 보면 있다.


3일본에 미국의 영향력이 거의 없어질 (언제 오려나?) 오면 그의 행적에 대한 평가가 나올 것으로 본다.   나중에 다룰 조르게에 대해서도 그가 처형 당한 한참 뒤에 공로를 인정했다.  


추기: 이번 회로 요시가와  편을 끝낼 계획이었으나, 요시가와의 인터뷰 기사를 새로 발견하고 전에 다루지 않은 부분과 특히 그의 입으로 표현하는 전쟁전의 일본과 전쟁후의 일본이 몹시 달라진 점이 매우 흥미로워서 부분을 다음 회에서 나누려합니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미래를 알 수 있다(관왕지래觀往知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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