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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무라 전쟁 직전까지 임무 수행 "동풍, 비" 예보듣고 기밀 문서 소각
12/26/2017 14:12 댓글(0)   |  추천(1)


모리무라가 전한 정보 이용한 일본 해군 진주만 기습 기동대 항진 경로


모리무라 전쟁 직전까지 임무 수행


단파 방송에서 "동풍, 비" 예보듣고


기습임박알아 암호책 기밀문서 소각


시월 하순 본국서 세명 보내 군함 배치 지도 받아감


후임 나치 독일인 잠복 첩자에 공작금 전달


그해 (1941) 시월  (10) 들어 모리무라는 (앞으로 전쟁이나서 영사관을 폐쇄하게된 다음에) 자신의 임무를 이어 받아 수행할 사람으로 도쿄에서 이미 선정해 놓은 후임자를 만나게 된다 사람은 버나드 줄리어스  오토   (Bernard Julius Otto Kuhn)이라는 나치 (Nazi) 당원으로 1936년에 일본 정보 당국과 계약을 맺고 하와이로 가족과 함께 이주해와 있었다그는 필요할 때부터  첩보 활동을 시작하는 장기간 휴면상태에 있는  슬리퍼 (Sleeper) 였다.  ( 1)


모리무라는 컨을 만나서 그에게  활동 지침서 (1) 부와 활동비로 현금 1 4 ($14,000) 건넸다그러나, 미국 방첩대는 그를 요주의 인물 명단에 올려 놓고 감시해온 터라, 일본 기습 이후 체포되어 오랜 기간의 하와이 휴가 생활에 종지부가 찍혔다


<<, 일본 정보 당국은 하와이 기습 공격 5년전에 모리무라를 현역으로 보내기 전에 슬리퍼부터  심 놓았다는 것은 그들이 상당 기간 부터 대미 전쟁을 준비해왔었다는 결정적 증거다.>>


시월 하순에 미국이 일본 여객선 입항을 잠시 허용하는 기간 동안 일본 요코하마에서 호놀루루로 타이요 마루가 들어 왔는데, 배에는 세명의 해군 장교가 타고 있었는데, 그들은 항해 도중에 일본 함대 진공항로 사정을 살피고 일본 영사관에서 보내온 정보를 확인하며, 새로운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 새로운 정보 획득 임무는 모리무라의 몫이었다. 그는 거의 잠도 제대로 자고 부과된 임무를 수행하여 오아후 일원의해상  육 군사 시설 현황을 보여주는 지도를 작성해서  타이요 마루에 있는 해군 장교들에게 보냈다그들은 미국측의 엄중한 감시 때문에 타이요 마루에서 내리지 못했으나, 모리무라 새로 마련해준  자료에 만족하여 임무를 수행하고 본국으로 귀환했다.


십일월 (11) 5일 대본영 회의에서 12  7  (일요일: 오아후 시간) 진주만 기습 동격을 결정해서 고조된 긴장과 궤를 같이하여 정보수집의 속도 또한 같이 상승했다.  11 내내  일본과 호놀루루 사이에 정보 요청과 이에 대한 답신이 분주히 왕래했다.    


모리무라 그의 조력자들이  오아후 섬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동안  일본의 기습 공격 부대인  기동 부대 (  [])먼저  쿠릴열도 (2 대전 전에는 일본 영토였고 전후 소련이 되찾았다) 북부에 있는 조그마한 섬에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히도카푸 항에 집결한 다음 동쪽으로 소리와 연기를 줄이고 북태평양을 향해 항진했다. ( 2) 때까지도 기동대 대부분의 장병들은 행선지도 모르고 있었다.


모리무라는 11 말경에 최후의 2회씩 보내는  함정 위치도를 보냈다. 그리고,  그는 도쿄에서 내보내는 딘파 방송에서   “동풍,”  라는 문귀가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것이 일본의 진주만 침공이 다가왔다는 미리 정해진 암호이므로  일본 총영사관의 암호 코드책과  기밀 문서를 모두 태우도록했다.

12 1 일왕 히로히토가 참석한  어전회의에서 진주만 공격을 공식적으로 재가했다 다음날 동경에서 기동부대로 진주만 공격을  예정대로 진행하도록 명을 내렸다.


12 5 모리무라는 택시 운전사 미카미의 택시를 불러타고 지금 모아날루아 프리웨이 (Moanalua  Freeway) 대체된 길을 따라 진주만 북쪽으로 드라이브하면서 태평양 함대의 세척의 항공모함이 순양함과 구축함의 호위를 받으며 진주만을 빠져나가는 것를 목격했지만, 일본 기습 공격 계획에 변경을 가져다 주기엔 너무 늦었다.  (이들 항모가 진주만 밖으로 빠져 나갔기 때문에, 기습 공격을 회피한 것은 이후에 일본 함대를 반격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게된다. )


모리무라는 진주만에 정박한 해군 함정들이 방공 풍선 (Anti-Aircraft Balloons) 어뢰 방지용 (Anti-Torpedo Nets)으로 보호를 받는지의 문의를 받았다. 이에 대해 그는 부정적 답변을 보내면서 기습과 연관을 지을 수있는 표현이  달린 수가 있어서 미국측 암호 해독가들이 이를 풀어냈으나, 기습이 끝난 다음에 이루어져 쓸모가 없었다.


모리무라는 12 6 그의 최후의 정탐 활동이되는 셈인데, 무라카미의 택시를 타고, 진주만을 시티 (Pearl City) 부두에서부터 시작해서 바퀴를 돌아봤다. 그 영사관에 돌아와 기타 총영사와 협력해서 최종 보고서를 도쿄의 외무성으로 RCA 통신을 통해 보냈다.  (영사관의 무전 시설은 이미 파괴했기 때문) 이를 받은 외무성은 이를 즉시 해군성에 보냈고, 해군성은 또한 즉시 기동부대에 전달했다. 기동부대는 오아후를 향해 남쪽으로 힘차게 나아가고 있었다. 이튼날 있을 진주만 기습 작전은 순조롭게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필자

1원래 현지에 있든지 또는 퍄견한 요원을 지령이 내릴 까지는 일반인과 같은 생활을 오랫동안 하다가 필요할 스파이 홀동을 시작하는 요원으로 현역과 구분하여 마치 동면 중인 동물과 같다하여 슬리퍼 (잠복 요원) 부른다.


2: 정찰기에 발각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연기가 안나는 경유를 사용하였다.

 

추기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한국에서 이중 첩자 최종 처리 방법 들었다대체로 첩자를 이북으로 보내서 살아 오면 2 첩자로 본다고 하며, 어느 시점에 가면 용도 폐기 때가 된다고 한다. 폐기 처분할 , 우리 쪽에 유리한 활동을 했다면남미지역으로 변성명해서 이민해서 살도록 내보내준다


그러나, 이북에 유리하게 활동을 했다고 평가가 요원은 다시 이북에 활동하러 보내는 것처럼 서해 바다 위로 비행기로 나르다가 요원을 밖으로 밀어던져 버린다 한다.  우리가 가끔 신문에서  신원 미상자가 서해 바다에서 발견했다는 기사를 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적에게 유리한 활동을 해서 비행기에서 버려진 케이스라고 설명해 주었다.  


말은 1970 년도에 들은 것이고, 이야기를 분은 기관의 3인자로 까지 올라갔으니  믿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사이 많은 시간이 흘렀으니 방법도 진화했을 믿는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미래를 알 수 있다(관왕지래觀往知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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