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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의 시초는 처칠의 황당한 몽상 때문
11/23/2017 14:11 댓글(0)   |  추천(4)


냉전의 시초는 처칠의 황당한 몽상 때문


2 대전이 끝나기도 전에 대쏘 침공 작전지시


Operation Unthinkable


대일전에 쏘련 참전 바라는 미국의 반대로 무산


영국은 연합국의 승리보다 전후 자국 지위에 신경


여러분들은 좋은 이름을 가지고 사실 줄로 믿습니다간혹 한국의 최순실 같은 이는 이름 바꾸기를 밥먹 듯해서 아마 자신도 현재 이름이 무엇인지 헷갈릴 정도이겠지요. 2차세계 대전이 끝날 즈음에 영국 수상 처칠이 어처구니 없는 작전을 지시해서  작전명 처럼되고만 황당한 일이 벌어졌으나 워낙 비밀리에 추진된 일이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체면을 구긴 것을 다행으로 여기지요.


 1945 2 크리미아 반도의 휴양지 얄타에서 미영소 3 거두가 대독 전쟁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전후 처리를 어떻게 할지 대충 합의를 보고 런던에 돌아온 처칠은 대전 발발전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든 쏘련과 영도자 스탈린이 전후에 자신과 맞먹는 정도를 넘어 유럽 대륙에서 제일 강자로 등장하게 되어서 설사약으로 다스릴 없을 정도로 배가 아파고,  골치를 썩이게함으로  쏘련이 독일과의  전투로 국력이 쇠퇴해진 틈을 이용하여 쏘련을 내리치자는 착상을 하고,영국군 통합 참모부에 구체적 작전 계힉을 수립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이지시는 독일이 2 세계대전에서 공식적으로 항복해서 적어도 유럽의 모든 사람들이 전승국이든 전패국이든 오랜 전쟁의 참화를 벗어났다고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든 5 8일에 내렸고, 처칠은 그의 고민을 해결해야한다고 아주 중대 결심을 내렸는데, 이를 받아본 장성들은 양반이 너무 오래 권좌에 눌러 앉아 있어서 전장의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영국 육군 참모총장 브룩 (Brooke) 장군은 그의 일기에, 쳐칠이 벌써 새로운 전쟁 (3 대전) 시작하려는 망상을한다고 비꼬았다.

처칠의 지침에는 (아직 구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미국도 합류하고, 기가 막히는 것은 항복한 독일병사 10 명도 참전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으며, 폴란드 군도 10 사단을 보태줄 것으로 계산에 넣도록 하였읍니다.


그리고, 전쟁 목적은 미국과 대영제국의  의지를 러시아에 부과하려는 것이라고 적시하며, 쏘련군을 독일에서 내치고, 가능하면 폴랜드밖으로 까지  밀어내야 한다고 적었읍니다.

어처구니 없는 지시를 받아 깜짝 놀란 장군들은 성사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빤히 내다보이지만 수상의 명령인지라 , 작전명을 상상을 초월한 작전 (Operation Unthinkable)”  이라고 부르며 나름대로 실현 방안을 작성하지만, 실전의 어려움도 토를 달듯이 나열했읍니다. ( 1)



Operation Unthinkable  작전지도


그리고, 작전 개시일은 처질의 지시에 7 1일에 개시하도록 도어 있읍니다. 그런데 그날은 영국의 총선거일 보다 4 전이어서 처칠 나름의 장기 집권 구상으로 짐작하게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 2)

침공군은 미군, 영연방군, 독일군 포로 10 등을 합쳐서 103 사단과 (vs 유럽 주둔 쏘련 228 사단) 기갑 사단 23 (vs 유럽 주둔 쏘련 36 기갑 사단) 등이 독일의 동서독 경계지점에 있는 드레스덴에서 동진하도록 되어 있읍니다. 한편 항공기를 비교하면 서방 침공군은 전투기 6,714대와 폭격기 2,464대가 있고, 쏘련군은 전투기 9,380 대에 폭격기가 3,380 보유했다.


참모부가 작전 계획에 첨가한 쏘련의 전력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대쏘 전쟁은 독일군이 체득해서 알아낸 바와 같이 공원을 산책하듯 쉬운 일은 분명히 아니다.” 쏘련 육군은 능력 있고, 유능한 참모부를 욱성했으며, 쏘련 육군은 놀라울 정도로 강인하며, 서방 군대 보다 가벼운 정도의 유지상태에서 생활하고 이동할 있다그리고 용맹스런 전술을 활용하며, 목적 달성을 위해 인명은 별로 고려하지 않는다.


장비는 대전 중에 빨리 개량되었고, 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장비 개발 분야는 많이 발전되어 서방과 비교해서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현존하는 군수물자와 장비를 개발하고 개량시키며 대량 생산하는 시설은 놀라운 수준이다더구나, 독일군이 쏘련의무기 체계를 모방한 사례도 많을 정도이다.

육군 참모총장이 이상과 같은 평가서에  6 9  (1945) 서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신속하고 제한된 성공을 얻는 것조차 우리의 능력 밖입니다. 그리고 승산이 거의 없는 지구전에 빠져들어가게 것입니다. 이에 더해, 만일 미국이 힘이 빠지고 무관심해지며, 태평양 전쟁으로 힘을 쏠리면 전쟁의 가망성은 환상적이되어버릴 것입니다.


이를 받아본 처칠 수상은 6 10 다시 다을과 같은 질의를 보냈다.

미국이 태평양 전쟁을 위해 병력을 유럽에서 빼어가면 쏘련은 그들의 병력을 대서양과 북해 지역으로 진군할 있는데, 경우 어떻게 영국을 방위할 있겠는지 연구해 보십시요.


이에 대해, 군부는 쏘련군이 충분히 대서양에 도달해 영국을 봉쇄하고 지난 나치의 영국 공습과 V-2 포격 보다 강력한 공격을 가할 있다고 봅니다 라고 답했다.


그러자, 영국 전시 내각은 103 사단으로 나폴레온과 히틀러도 성공하지 못한 일을 해내기에는 역부족이다 라고 두손을 들게 되었다. 참모총장 브룩 장군은 그의 일기장에 앞으로 러시아가 유럽에서 가장 강대하리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라고 기입하였다.


그러든 차에 미국의 해리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한통의 전보가 와서 미국이 쏘련을 유럽에서 축출하는 것은 고사하고, 도움의 손길도 건낼 없다 미국측 입장을 정리해서 처칠의 허황된 꿈은 그가 즐기는 파이프가 파이프 드림 (Pipe Dream) 되어 연기로 사라졌다. 그리고 처칠의 황당한 계획은 비밀의 족쇄에 묶여 그의체면 유지에 일조했다. 이로써, 영국 장군들은 모처럼  년만에 여름 휴가 계획을 세울 있게 되었다.


흉칙스런 계획은 냉전의 시초를 만들었고, 1998 년에 와서야 비밀에서 해제되었다. 문서를 보고나서  냉전을 쏘련이 시작했다는 정치가나 학자들은 모두 말을 잃어 버렸다.


*** 처칠은 사실상 이 이전부터 전통적인 영국의 (유럽) 대륙내의 세력 균형에 더 신경을 써서 발칸 지역의 세력 퍼센티지 (%) 협약을 스탈린과 맺은 것을 위시하여 제2 전선을 계속 미루는 등 전후 영국의 세력 유지에 전념했읍니다. 그리고, 그는 전후 첫 총선에서 패배해서 권좌에서 밀려 났으나, 계속해서 미국에 대쏘 핵 공격을 권유했읍니다. 앞으로 틈나는대로 냉전 이야기를 더 실을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필자

1: Unthinkable 전혀 고려할 가치가 없다 뜻도 있읍니다.

2: 총선은 예정되로 치뤄졌고 처칠의 보수당이 참패해서 포츠담 회담에서 중도 하차해서 애틀리가 수상이 되어 회담 후반에 그가 영국을 대표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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