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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선언 이승만 공헌설은 역사 왜곡의 극치
11/10/2017 14:11 댓글(0)   |  추천(4)

카이로선언


이승만 공헌설은 역사 왜곡의 극치


이 박사 對美 로비 못해 


국무부 직원 한명 만난 기록도 없음


생전에 본인  입도 벙긋한 적 없어 


XX 가 조작하여 국사편찬 위원장됨

이것은 사후 약방문이나 다름 없다


본국 중앙 일보에 게재됐음

[뉴스로] 입력 2015.11.25 12:18 수정 2015.11.25 18:30   http://news.joins.com/article/19132348


[카이로선언74주년한국현대사연구가 


 김태환회장 관련 문헌 발굴 공개





카이로의 3 거두 (장제스 총통, 로즈벨트 대통령, 처칠 수상)



미국측 초안 (합킨스의 초안을 로즈벨트가 수정함)


【뉴욕=뉴스로】노창현 특파원 = 대한민국 건국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카이로선언이 27일로 74주년을 맞는다. 카이로선언(Cairo Declaration) 1943 11 27 미국의 루즈벨트대통령과 영국의 처칠 수상 중국의 장제스(蔣介石) 총통이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 모여 발표한 공동선언이다

1943
1123일부터 5일간에 걸친 회담을 통해 3 연합국은 승전하더라도 자국의 영토 확장을 도모하지 않으며, 일본이 1차대전이후 약탈한 영토를 반환할 것을 요구했다. 특히 한국을 자유독립국가로 승인할 결의를 하여 처음으로 한국의 독립이 국제적으로 보장된 역사적 회담이다.

"
대일 전쟁을 수행중인 3 강국(,,) 한국인들의 노예 상태를 유념하여, 적절한 절차를 거쳐서 한국을 자유로운 독립 국가로 수립할 것을 결의한다.(The aforesaid three great powers, mindful of enslavement of the people of Korea, are determined that in due course Korea shall become free and independent.)"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 내용은 위와 같다. 두줄의 문장으로 한민족의 운명이 결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역사교과서 논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역사학자 사이에는 한국독립의 문구가 들어간 것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장제스가 주도했다는 의견부터, 루즈벨트 대통령의 특별보좌관 해리 홉킨스가 독창적으로 타이피스트에게 구술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같은 주장의 이면엔 누가 장제스나 합킨스(로즈벨트 대통령) 움직였느냐, 다시 말해서 김구 임시정부의 공이냐, 아니면, 이승만 박사의 대미 로비 덕이냐라는 것을 놓고 서로 다투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재미한국역사가인 김태환 하버드대 남가주한인동창회장은 24 뉴스로에 그간 발굴한 문헌들을 처음 공개하며 "카이로선언에 이승만박사가 공헌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미외교에서 이승만박사의 로비는 없었다" 단언했다.

김태환 회장은 "김구 공적을 내세우는 편에서는 장제스 총통과 김구 주석, 김원봉 임정 간부의 회동을 비롯한 임시정부 기록과 장제스의 일기장, 장의 비서장인 왕충후이의 회담 자료를 증거로 제시한 반면, 이승만의 로비설을 주장하는 측은 아무런 물증도 없이 박사가 감리 교인이고, 또한 합킨스도 감리 교인이었기 때문에 서로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당치도 않는 추측 밖에는 내세운 것이 없다" 지적했다.

김구의 공으로 돌리는 측은 1943 여름 임시정부에서 중국의 장제스 총통을 찾아가 만난 사실을 들고 있다. 임정은 미국의 로즈벨트 대통령을 만나러 간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7 26 김구 주석을 위시하여 조소앙, 김규식, 이청천, 김원봉, 안원생(통역) 총통을 찾아가서, "미국과 영국은 조선 문제에 대해 국제 공동 관리 방식을 채택하려하니, 중국은 전후 즉시 조선의 자주 독립성취에 대한 미국과 영국의 합의를 얻어달라" 요청했다.

총통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며, 둘로 갈라져 있는 조선독립단체가 하나로 합치도록 당부하며. 그래야 중국도 문제를 쟁취할 있고, 이일에 착수하기 쉬울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김태환 회장은 " 총통과 임정 간부 간의 회동은 임정 기록에도 있고, 중국 정부측 기록에도 있기 때문에 아무도 부정할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사실 중국측이 조선 독립을 약속한 것이 때가 처음이 아니고, 전해 12월에 새로 외교부장에 취임한 송자문 박사(Dr. T.V. Soong) 최초의 기자회견에서 일본 패망후에 조선은 독립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소개했다.

김회장은 "따라서 임정 간부가 총통을 찾아간 것은 중국이 조선 독립 성취를 약속해 달라고 부탁하러 갔다기보다는 미영 수뇌와의 회담에서 종전후 조선 독립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총통이 힘써 주기를 요청한 "이라고 분석했다.

이승만 박사 공헌론을 주장하는 측은 이박사가 로비를 통해 미국 정계를 움직여 조선 독립 조항을 삽입시키는데 역할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회장은 "이승만 로비를 완강히 주창하는 유력 학자의 주장은 불행하게도 자신의 연구 결과가 아니라, 앞서 다른 교수가 언급한 추정에 불과한 가설을 아무 증빙 자료 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놀라운 것은 오늘날 그의 말이 사실인 일부 언론이 떠받들어서 정설로 전파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김태환 회장은 "이승만 로비설 주장을 보면 카이로회담이 성명 기초위원회조차 만들지 못할 만큼 난장판이었다 하고, 합킨스특별보좌관이 참가하지도 않은 소련 수상 스탈린도 만났다는 전혀 사실에 부합되지 않는 얘기들을 하고 있다"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합킨스가 미국측 초안을 작성한 것은 맞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미국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회담 내용과 루즈벨트의 복안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초안을 작성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국측도 성명서 초안을 만들었고 중국측은 미국 초안을 보고 자신들의 의견만 반영시켰다. 이렇게 성명서 초안들이 조율되서 최종안이 작성됐다" 말했다.








영국측 초안 (문제의  " in due course"  가 들어 있음)



김회장은 "초안을 마치 즉흥적으로 합킨스가 구술해 만든것처럼 말하기도 하는데 이런 중요한 협약을 그렇게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예를 들면 이런 증거도 있다. 초안은 로즈벨트의 승인을 얻은 처칠이 검토하는 과정에서 '적당한 과정을 거쳐(in due course)' 라는 구절을 삽입했다. 'in due course' 처칠이 평소에 말버릇처럼 애용하던 문구였다" 설명했다

또한 수많은 식민지중 유독 한국을 지목해 '노예상태에 놓여있다' 표현까지 보태며 독립을 보장한 배경을 들어 이승만 로비설의 근거로 추정하는데 이는 카이로 회담의 성격을 전혀 모르는 무지에서 나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카이로 회담은 루즈벨트 미국대통령이 처칠 영국수상과 함께, 스탈린 소련수상을 만나러 테헤란에 가는 중간 기착지인 카이로에서 중국의 장개석 총통과 함께 만나서 대일 전쟁 수행과 전후 영토 처리 문제를 다루는 장소였다

김태환 회장은 "만주, 대만, 팽호도는 중국에, 일본의 태평양에 있는 위임 통치지는 국제화하고, 전전 유럽측 식민지는 종전의 소유국에게 일단 돌려주고, 마지막으로 남은게 조선이었기 때문에 조선 문제를 다루게 것이지 특별히 예뻐서 준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승만의 이른바 '편지 외교' 앞뒤가 안맞는 논리라고 통박했다. 이승만박사는 로즈벨트 대통령에 보낸 1943 515일자 편지에서 미국이 1882 조선과 체결한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위반해 1905년과 1910 일본이 한국을 병탄하도록 도운 일을 상기시키면서 동아시아를 시작으로 불행한 사태가 확산된 것은 서양의 정치가들이 독립된 한국이 동양 평화의 보루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로즈벨트가 이든 영국 외상에게 이미 신탁통치 제안함 (1943년 3월 27일)


그러나 로즈벨트 대통령이 이든 영국 외상에게 한국의 신탁통치안을 제시하고 동의를 받은 것은


반이나 앞선 327이다. 따라서 편지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DA 300


김태환 회장은 " 유력 학자는 '이승만은 비록 상하이 임시정부와 하와이 교민사회를 원만히 이끄는 데는 실패했지만 행정부를 향한 전방위적인 외교 노력으로 카이로선언을 이끌어내는 숨은 공을 거뒀다' 했는데 박사가 자신이 노력해서 카이로선언에 조선독립조항을 삽입시켰다면 생전에 그렇게 중대한 공에 대해 함구했을까?" 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중국에 있던 김구 주석을 위시한 임정측은 장제스 총통과 회동하여 조선 독립을 촉구했으나, 박사가 보냈다는 편지는 관련 기록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이 읽은 적이 없고 국무부 담당자가 회신한 적도 없다. 안타깝지만 이박사는 카이로 선언과 관련해 국무부 관리 한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지적했다.


필자 주


본국에서 루즈벨트로 표기하는 것을 필자는 로즈벨트로 고쳤읍니다, 마찬 가지로 홉킨스

 합킨스로 고쳤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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