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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젠하워 한국에 평화와 번영 기틀 제공 영원히 감사해야
10/02/2017 09:10 댓글(0)   |  추천(1)





한겨레가 영원히 감사해야할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


한국에 평화와 번영 기틀 마련


특사보내 퇴임 종용해도 거부 하자



이박사 퇴진 출국시켜


미국 LA지역에서 필자가 언론 매체에 글을 올리게 것은 1980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당시 중앙일보 사장 (고) 이영섭 씨가 필자의 초등학교 (부산 사범 부속 국민학교) 고등 학교 (경기 고교) 선배이셨고,  제게 기고를 권유하셔서 4년에 걸쳐 당신도 재벌이 있다라는 칼럼을 매주 한번 4분의 1 페이지 (200 원고지 X 15) 기고했읍니다.  내용은 미국의 저명 기업가들이 어떻게 창업을해서 기업을 키워 갔는지를 보여드렸읍니다.  (앞으로 본난 (J브로그) 활용하여   40~50 창업자들을 소개하며 훌륭한 한인 2 기업가 출현을 기대해보려합니다.)


다음으로는,  2012년에 은종 선배 (상기 부산 초교) 께서 미주 서울대 총동창회 회장이 되셨고 그분의 동기이신 인수 선배께서 총동창희 편집 위원장이 되셔서 제게 한글과 영문으로 매달 글을 기고해 달라고 청탁을 하셔서 영문으로 처음 글을 , 우리 한겨레에게 만세토록 기억 해야할 구국의 은인이신 아이젠하워 대통령님의 업적을 편에 나누어 소개했읍니다.


그의 주요 업적으로는 우리 한국의 운명과 직결되는 1. 한국전 휴전 달성,  2. 비밀 특사 이박사에게 파견해 현직에서 퇴진토록 종용,  3.  4.19 이후 박사 퇴진과 한국에서 퇴출을 있읍니다. 그리고, 그의 다른 업적으로는 4. 인명 존중으로 일본에 원자탄 사용 거부 의사 표명과 2 대전 종결무렵 영국측의 독일 수도 베를린까지 진격 종용 거부로 10만명의 병사들의 목숨을 구제,    5. 미국의 고속도로 체계 설립,  6. 퇴임사에서 군산 복합체 (Military Industrial Complex) 대한 경계를 주문 것입니다.




이들 가운데, 한국 관계 1, 2, 3항은 모두 박사와 관련된 사항이므로 나중에 다루고, 4, 5, 6항을 차례로 다루는데, 한번에 읽기 편한 길이 만큼씩 올리고 남는 부분은 다음에 따로 올리겠읍니다.

필자가 앞에 저의 선배님들에게 감사의 글을 올린 이유는 그분들덕분으로 아이젠하워의 업적을 알게 되었고 그분에 대해 연구하는 과정에서 이박사가 노망이 것을 알아서 비밀 특사를 보내신 것을 발견했고, 지금까지 항간에 박사가 자진 사퇴하고, 자진 망명한 으로 잘못 알려졌으나 사실상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 이박사를 권좌에서 물러나게하고, 한국에 그대로 두면 무슨 일을 저지를까 염려하여 미국으로 압송한 사실을 발견했읍니다. 자세한 것은 뒤에 해당 부분을 다룰 기술하겠읍니다.


우리 역사상 외국인으로 존경 받는 분은 임진왜란에서 (이씨) 조선을 지켜주신 명의 만력황제 이여송 장군을 있는데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께서는 능동적으로 (Proactively) 한국전을 휴전으로 끝내서 한국이 평화속에서 재건과 경제 발전을 있는 터전을 마련하셨고, 아직 아무도 내놓고 말을 못하고 있는 박사를 권좌에서 퇴출시키고 이에 나아가 그를 영원히 한국 땅에서 추방시켜서 살아서는 다시돌아 없게하셨다.  그러므로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우리 한국민이 대대로 존경하고 감사해야한다.


아이크의 평화와 인명 존중 사상


먼저, 2 세계 대전 막바지에 서구 연합군이 독일의 서부에서 쏘련군이 동부에서 문자 그대로 파죽지세로 독일군을 쳐부수며 나아 갔읍니다. 독일의 패망의 날짜를 꼽을 정도로 연합군의 승리가 앞에 보였읍니다.

, 영국측에서, 미군이 진격에 속도를 내어 독일 수도를 적군( 赤軍: 쏘련군) 앞서 점령해야 한다고 웅성댔읍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 장군은 이러한 잡음을 완전히 무시했읍니다. 모르는 측에서는, 베를린을 선점했드라면, 나중에 일어난 베를린 봉쇄와 같은 사태가 일어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이크를 비난하고 흠집을 내려했읍니다. ( 1)


그런데, 애초에 이보다 3 개월 쏘련의 크리미아 반도에 있는 얄타 (Yalta) 에서 로즈벨트 (), 처칠 (), 스탈린 () 삼거두가 회담을 , 독일의 패색이이미 짙어서, 엽합국간에 항복 후의 독일  분할 점령에 합의하고 베를린까지 분할하기로 합의한 있읍니다. 그러므로, 설령 미국이 먼저 가서 점령한다고 해도, 쏘련측 관할 지역은 도루 내줘야합니다. ( 2)


뿐만 아니라, 베를린까지 진격하는데 독일군은 저항도 하지 않고 길을 비워준답니까? 아이젠하워 장군은 문제 대해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입장을 밝혔읍니다.

첫째, 앞서 필자가 언급한 것처럼, 관할권 (管轄圈) 이미 정해져 있고, 베를린 점령을 위해 예상 밖의 인명 피해 (Casualties) 입을 필요가 없고, 쏘련군의 경우 베를린 공겨/점령에 10 만명의 전사상자가 났으니 그만한 인명 피해를 줄였다고 말합니다.

두째, 베를린 진격이 자신의 상급자 (로즈벨트/ 트루먼) 명령으로 하달했다면 이론의 여지 없이 그대로 시행했겠지만, 영국군 측에서 나온 조언 (Suggestion) 수준이어서 인명 피해를 감수하고 실시할 명분이 없었다고 일축했읍니다.

종래의 다른 지휘관 같았드라면, 적의 수도를 점령하면 군인으로서 커다란 영예로 생각할 있겠지만, 아이크는 허잘 없는 영예보다 부하들의 인명을 소중히 여겼읍니다.


다음으로, 독일이 항복하고 베를린 근교 포츠담에서 연합국 영수 회담을 마침 멕시코 실험장에서 최초의 원자탄 실험에 성공하자, 트루먼 대통령이 이신무기를 일본에 서용해야 하느냐 마느냐로 즐거운 고민을 하면서 주위의 의견을 물었는데, 아이젠하워 원수는 일본이 이미 전쟁을 계속할 능력이 없어서 조만간 항복할 터인데 원자탄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단정적 의견 내놓았읍니다.

그는 한국전에서도 원자탄 사용을 반대 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 디엔비엔프에서 월맹군에 프랑스 군이 포위당하자, 미국에 원자탄을 투하해서 도와 달라고 했으나, 아시아인에게 10 만에 다시 원자탄을 투하하는 것은 생각조차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읍니다.

붙이고 싶은 것은 그의 재임 기간 중에 미국이 새로운 전쟁을 일으키지 않은 평화의 대통령 이었읍니다.


필자


1: 무렵 영국은 대독일 전쟁 (2 대전의 유럽 방면 전쟁) 끝나기도 전에 미국과 힘을 합해 쏘련을 치자는 계힉을 세워 미국에 제안하였으나 미국 측에서 거부했읍니다  제안에는 놀랍게도 항복한 독일군 10만명에게 그들이 사용하든 군장비를 그대로 사용한다는 조항도 있었읍니다. 미국은 대일 전에 쏘련이 참전하기를 고대했기 때문에 독일의 항복을 받는 것이 급선무 였으나, 영국은 전후에 자신이 감당할 없이 강한 쏘련이 유럽 대륙에 출현한는데 미리 겁먹고 선수를 치려 했으나 작전명 “Operation Impossible”  (불가능한 작전) 처럼 도상 계획 이상으로 뜨지 못하고 주저 앉아 버렸읍니다여기서 영국이 전통적 유럽 대륙의 세력 균형정책에 얼마나 집착했는지를 있읍니다.

 

2: 별첨 독일 분할 점령 지역 지도 참조보라색 지역은 -영군이 종전 당시 점령했으나 쏘련 권활구역 (굵은 검은 동쪽)이어서 철수했다. 이처럼 미군이 쏘련군 보다 먼저 베를린을 점령할 있었다 해도 얄타 협정에 의해 쏘련에 물려주고 철수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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