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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사태는 케네디 대통령 쿠바 불침공 공약으로 해결되었다
08/31/2017 11:08 댓글(0)   |  추천(8)

쿠바 미사일 위기 사태는

케네디 대통령 쿠바 불침공 공약으로 해결되었다



쏘련 KGB 워싱턴 지부장 포르민 사태 해법 제시


현재 북핵 미사일 개발로 인한 북미 대결을 1962 가을에 있었든 쿠바 미사일 사태와 비견하고 해결책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하는 시사 평론가들이 최근에 많이 나타났다. 이러한 분들은 적어도 사건이 일어난 배경과 사태 진전상황, 또한, -쏘간 막후 교섭상황 그리고 양측의 합의사항과 어떻게 사태가 진정 국면으로 옮겨 갔는지를 알고 얘기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일부는 사태의 근본 원인은 잘모르면서 1962 당시 대외적으로 발표된 정도로만 아는 상태에서 의견을 개진하는 분도 있어서, 신문 보도 이상으로 수면 밑에 있는 사항까지 두루 아시는 것이 좋을듯하여 벌써부터 벼르든  것이어서 이참에 설명드리고져한다.


우선, 필자가 글을 쓰지 않을 없는 이유는 한국의 내노라고하는 언론인이고 학자들이 쿠바 사태 해결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든지, 아니면 아직도 진실을 밝히기엔 제도적 장애가 있어서 없기 때문인지 간에 바로 알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북미간   핵싸움이 한창일 ,  D일보의    K 논설 실장과 저명한 보수 논객 J씨가 쿠바 사태 해결을 설명하면서 미국과 영향권하에 있는 어느 나라나 단체도 쿠바를 앞으로 침공하지 않겠다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후르시쵸프 쏘련 수상에게 공약한가장 중요한 해결 방안에 대해서는 일언 반구도 다루지 않아서 한국에 계시는 분들과 미주에 계시지만 한국 언론을 정보 쏘스로 활용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진실과 동떨어진 독재 정권과 아류들의 일방적 언론 장악으로인한  거짓에 세뇌되어 왔는지를 백일하에 폭로하려 합니다.


독자 분들의 이해와 편의를 위해 가급적 연대 (chronologically)  으로 간단히 설명 드리겠 읍니다. 19 세기 말엽에 뒤늦게 식민 제국 건설에 뛰어든 미국은 평화로운 하와이 왕국을 접수하고 (1893: 선교사들을  앞세워 강탈함), 그에 앞서 먼로 대통령은 미주 (북미와 중남미) 우리 (미국) 뒷뜰이니까 유럽은 넘보지 말라는 몬로 주의 (Monroe Doctrine) 발포했읍니다. 그러든 참에, 당시 미주에 남은 유일한 미독립국인 스페인 쿠바 (Cuba) 잡스런 구실을부쳐 스페인 (Spain) 전쟁을 치뤄 (1898)  기울어 들어가는 스페인에 쉽사리 이겨서, 쿠바 (Cuba) 포르토 리코 (Puerto Rico) 차지하고, 서태평양 상의 필립핀 (The Philippines) (Guam) 따내 식민지로 만들었읍니다.  많은 분들이 요즘 북한의 미사일 타격 대상이 되어 유명해진   (Guam) 어떻게 미국령이 되었는지 궁금해 하시는데, 이때 미국이 전리품으로 양념삼아 잡수신 것입니다. 쿠바는 - 전쟁 처리를 위한 파리 회의결과 미국의 보호령 (Protectorate) 되었다.


그런데, 쿠바엔 스페인 식민자들의 후예가 많고, 민도도 비교적 높아서 제일 먼저 독립 시켜 줬읍니다. (1902) 그렇지만, 미국이 사실상 종주국이되어 쿠바의 내정 간섭을 맘대로 뿐만 아니라 무장 개입도 네차례나 행해졌읍니다. 그러고,쿠바의 주요 산업은 주산품인 사탕수수 재배를 위시하여 미국의 독점 자본가들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또한 통치자들은 거의 모두가 미국의 꼭두각시였읍니다. 비참한 쿠바 시민들의 참상과 미국의 하수인에 불과한 독재 정권에  분연히 일어난 카스트로를 위시한 혁명 세력이 산중에서 게릴라 전을 개시하여 드디어 바티스타 독재 정권을 붕괴시키고 (1959) , 혁명 정부를 수립하였읍니다. ( 당시 많은 사람들이 바티스타를 가이 새끼 (Son of Bitch)"  불렀는데 당시 국무부 고문인 윌리암 위랜드 (William Wieland ) 는그의 정권이 무너지자,  “가이 새끼는 맞지만 그래도 그는 미국의 가이 새끼였다며 (at least he was our son of a bitch.)" 애통해 했답니다. 지금 한국엔 수도 없이 많은 미국의 가이 새끼 (특히 군부) 들이 늘려져 있음을 애통해 합니다

           

카스트로가 집권한 다음 제일 먼저 시행한 정책은 산업 국유화 였읍니다. 이에 따른 가장 피해자는 미국 자본가들이고, 미국은 쿠바와 금수 조치 (1960/10/19) 단교 (1961/1/13) 대응해서 쿠바의 주산품인 설탕의 판매처가  없어졌으며, 또한  미국이 석유 수출을 중단하자 쿠바는 아주 경제적으로 힘든 국면에 접어듭니다.


쏘련이 쿠바의 설탕을 좋은 값을 치루고 사들이기로 결정했읍니다. 이렇게 해서 쿠바는 쏘련과 급속히 관계가 가깝게되는 계기가 되어읍니다. 여기서 가지 확실히 하고 싶은 것은 카스트로가 집권할 때까지 전혀 외부 (쏘련 포함) 협조를 받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미국민들의 재산이 무상 몰수된 것만해도 분한데, 쏘련하고 가까워지니까, 미국은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기로 결정해서 CIA 주도로 망명자들을 규합하여 훈련시켜서 소위 1,500 명의 반혁명분자들을 보내서 돼지 만의 침공” (Bay of Pigs Invasion) (1961/4 /17 ) 조장했으나, 사전에 정보를 수집하고 대비한 정부군에 의해 와해되고 대부분 죽거나 포로가 되었읍니다 (포로들의 대부분은나중에 몸값을 치루고 석방되었읍니다).


한번 실패했다고 포기할 미국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카스트로는 쏘련에 미국의 침공을부터 보호해 것을 요청했읍니다. 제풀에 굴러들어온 떡인 쿠바가 지정학적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을 익히 아는 후르시쵸프가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미국은 돼지 침공 실패한 이후에도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 또는 흔들어 버리려고, CIA 역사상 최대 규모의 비밀공작 (Operation Mongoose) 시행해, 태업  암살 기도등을 했을 뿐만 아니라, 노골적으로 카리브 해에서 대규모 해상 군사 연습까지 실시했다.  이와 같이 미국은 눈에 가시 같은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각종 공개적 비공개적 (Overt and Covert) 공작을 스슴치 않았다.


무렵에 놀랍게도 고어 상원의원 (고어 부통령의 부친) 1961  2  (이는 쿠바 위기가 발생하기 무려 1 전임) 상원 외교 분과 위원회 비밀회의 도중에 당시 국무 장관 러스크 (Dean Rusk) 에게 미국이 터키에 중거리 미사일을 설치한 것은 (쏘련에 대한) 명백한 도발이라고  지적하며, 미국이 대쏘 포위망을 설치한 다음 선제공격할 으로 판단해서 쏘련이  쿠바에 미사일을 도입해 설치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견했다. 이어서 크레어본 ( Claiborne Pell) 상원의원도 그의 같은 취지의 글을 5 케네디 대통령에 전달했다훌륭한 사람들은 선견 지명이 있어서 남보다 앞을 정확히 내다 보는 감탄할 따름이다.


쿠바 침공의 기회를  노려온 미국은  정기적으로 쿠바 상공을 정찰해왔는데, 그해 (1962) 10   14 이렇게 수집한 항공 사진을 판독하는 과정에서 쏘련의 미사일기지 건설 공사 현장이라고 추정되는 여러 곳을 발견하고 그들이 미사일 기지임을 확인한 (10/15) 다음 케네디 대통령에 보고되었다 (10/16).


10 16 케네디 대통령은 안보회의 (NSC) 상임 위원들 (ExComm) 회의를 소집한 가운데, 도둑이 절린다 말이 있듯이, “후르시쵸프 수상이 이런 일을 했을까?  아마 우리가 터키에 다수의 탄두 중거리 미사일을 설치했기 때문일까?” 라고 독백조로 말하자, 대통령 안보 보좌관인 맥죠지 번디 (McGeorge Bundy ) 즉석에서, ”대통령 각하, 우리 (미국) 그렇게 한게 맞지요” (Well, We did it, Mr. President) 라고 맞장구쳤다. ( 1)


여러가지 대응 방안이 개진되었는데, 각군 참모 총장들은 전원이 쿠바애 대한 전면전을 개시해서 침공해야한다 (a full-scale attack and invasion of Cuba) 주장하면서 그래도, 쏘련은 미국의 쿠바 정복을 막지 않을 것으로 믿었다. ***이제나 그제나 군발이들은 미국이든 한국에서든 전쟁만 일으키려 한다***


그러나 케네디 대통령은그 제안에 다음과 같이 말하며 회의감을 표시했다.

쏘련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주 2그들이 많은 성명을 발표했는데도, 미사일을 철거하고, 수많은 쏘련 사람들 (군인들과 기술자들) 죽도록 내버려 수는 없을 것이다. 설령 쿠바에서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하드라도, 베를린에서 무슨 일을 저지를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케네디는 미국의 쿠바 공습은 쏘련에 베를린을 점령하라는 신호로 받아 들이게 되어 미국의 서방 동맹국들이 미국이 쿠바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지도 못해 베를린을 쏘련에 뺏겨버린 방아쇠부터 당기기를 좋아하는 카우보이  (Trigger-Happy Cowboys) 여겨질가봐 염려스러웠다.


다음으로 케네디와 참모들은 쿠바에 쏘련 미사일 설치로 인해서 -쏘간 세력 균형 (Balance of Power) 영향을 미치느지에 대해서 논의 했는데, 모두 설령 쿠바에 탑재 미사일이 설치되어 있다한들 힘의 균형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그리고, 쿠바에 쏘련의 미사일 존재가 국 정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논의한 결과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영향을 크게 미칠 것으로 내다 봤다. 조금 지나 11 초에 있을 미국의 중간 선거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으로 보였다.


케네디 대통령은 10 22 일에 전국 텔레비젼 앞에 나와서 쏘련이 쿠바에 미사일 설치 사실을 밝히고 쿠바 해역에  소위 격리선 (Quarantine) 설치하고 쏘련의 공격용 무기가의 반입을 해상에서 차단하고, 기존의 미사이등 공격 무기재거를 요청했다. 이로써, 미국은 사실상 쏘련에 대한 선전 포고 한셈이고 전세계가 양대강국간에 핵전쟁이 일어나서 인류 문명의 파멸이 닥쳐 왔다고 우려하며 양국 지도자들이 긴박한 서태를 어떻게 풀어 가려는지 손에 땀을 죄면서 걱정어린 눈초리로 사태 진전을 예의 주시하였다.


미군부의 대쿠바 공격을 당장 실행하자는 주장을 가까스로 막고  사태가 오게끔한데 대한 일말의 책임감을 느낀  케네디 대통령은 이면 접촉 (자신의 친동생인 로버트 케네디와 쏘련 대사 도브라닌 간의 교섭) 등을 통해 평화적 해법을 모색하게 되는데, 새로운 협상 채널을 마련하게된 연유 쏘련의 KGB 워싱턴 지부장인 알렉산더 포르민(Alexander Formin) 10 26 하오 1시에 ABC 뉴스의 국무부 출 선임 기자인 스켈리 (John Scali) 오찬을 히면서 전쟁 일보 직전의 미쏘 양대 초강대국 간의 대결 국면의 해결 방안을 제시했으므로 물꼬가 티였다.


포르민은 미쏘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많은 방책을 내놓았는데 그중 현실적으로 가장 시급하고 실현 가능성 높은 쿠바 사태 해법 듣고 스켈리는 사람간에 있은 대화 내용을 요약해서 힐스먼 ( 국무부 정보 연구 국장) 에게 전달했고, 이의 중요성을 알아 차린 그는 러스크 장관에게 보고하고, 국무 장관은 케네디 대통령과 맥나마라 국방 장관에게 전달했다


포르민의 해법은 아래와 같다( 3)


1.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 않는다는 공약 하면, 바에 있는 ( 미사일 관련) 기지를 유엔 감시 아래 해체하고, 카스트로는 쿠바에 다시 어떤 종류의 공격용 무기도 다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공약을 한다.


2.       유엔 주재 쿠바 대표가 안전보장 이사회 토의 상기 조항을 이미 제시했으나, 아직 아무른 대응이 없었다고 언급해서, 본인 (스캐리) 유엔 토의를 관찰해 왔으나, 그런 토의 했다는 기억이 없다고 답했다.

 

스켈리의 포르민과의 대화 내용 보고를 받아본 케네디 대통령등 고위 인사들은 포르민의 제의가 미국측에서 받아들일 있는 상당히 유연성있는 제의로 생각해서 케네디 대통령은 이를 공식적이며 (쏘련측의) 고위 인사와 협상을 진행하도록 그의 동생인 법무 장관 로버트 캐네디에게 쏘련 대사 도브린과 접촉을 해서 협상을 계속하게 했다.

 

과정에서 흐르시쵸프의 친서가 차례 걸쳐서 왔고 케네디도 답신 보내서 다음과 같은 쿠바 사태 해결 방안이 미쏘 쌍방이 합의했다.

 

1.       미국은 쿠바를 침공하지 않고, 3국이나 단체도 침범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한다.

2.       쿠바에 있는 모든 공격용 무기는 철거하고, 쿠바는 다시 공격용 무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3.       미국도 터키와 이태리에 설치한 중거리 미사일을 상대국과 협의를 그쳐서 철거한다 (6 개월이내로 하고 사항은 대외적으로 발표하지 않는다.)

 

합의 사항이 성실히 이행 되어감을 확인한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 사태가 원만리 해결 됐다고 전국 TV 방송을 통해 발표해서 (10 28)  1962 10월의 “13 핵전쟁 공포에서 인류가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뿜을 있었다.

 

미국과 쏘련의 정상들은 혹시라도 앞으로 상호 불신이나, 오판에 의해 일어날 수도 있는 전쟁을 미연에 방지하기위해 백악관-크레믈린 간의 직통 전화선 (Hot Line) 을 가설했고, 그래서, 현재의 북미간의 분쟁이 일어날 때까지 위협에서 해방 되어 왔으나, 언제 2 포르민 나타나서 문제를 조용히 그러나, 효과적으로 해결해 낼지 궁금하다.

 

그런데, 미국 정부는 쏘련의 미사일 철거만 신나게 나팔을 불고, 그외 이면 합의는 엄중히 비밀에 붙여서 이번 사태에서 미국이 일방적 승리를 거둔 것처럼 거드럼을 부렸다. 그래서, 아직도 많은 분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의 언론과 학자들은 쿠바 사태의 이면 합의가 무슨 신주 단지나 되는 같이 자기네만 알고 대중에게 알리는 것을 꺼려서, 사태 해결의 중심인 미국의 쿠바 불가침공약 미국 정부가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는 점을 내놓고 얘기를 못한다.

필자가 나름대로 분석한 결과, 혹시 북미 사태 해결시 미국이 쿠바 사태 처럼 북한 불가침 공약을 해서 미군이 철수할까 겁을 먹는 군상들이라고 생각한다.

 

쿠바 사태가 발생한 것은 미국이 바의카스트로 정권 제거 위해 끊임 없이 공개적 그리고 공개적 방법으로 침입, 태업, 암살등 방법으로 위협한 것이 직접적 원인이었고, 다음으로 미국이 터키와 이태리에 쏘련을 겨냥한 중거리 미사일을 설치했기 때문에 후르시쵸프가 대응 조치 쿠바에 너희 (미국) 한번 같이 좀보라고 한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미국은 자신이 일들은 빼고 쏘련의 미사일 도입으로 사태가 발생한 처럼 매도했고 전세계 시민들은 미국의 프로파간다 머신 (Propaganda  Machines) 대량적으로 생산해대는 선전에 속아 넘어 밖에 없었다.

 

필자


1: 케네디 대통령은 NSC 상임 위원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모든 회의를 녹음해서 후일 케네디 도서관에 23년간 근무한 역사가인 스턴 (Sheldon M. Stern) 녹음된기록을 녹취록으로 만들어 풀이해서 세상에 그당시 실상을 공개해서 진실이 알려졌다 (1997)


주 2: 한국에서는 앞서 언급한 J등은 미국이 북한에 선제 공격해도 반격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삼척 동자가 들어도 미친 소리라고 웃어버릴 괴상망칙한 이론 (?!) 을 전개하며 전쟁이 나도 자기 머리위로는 포/폭탄이 피해가는 줄 아는 용감 무쌍한 꼴통들이 전쟁 선동을 하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케네디의  지혜를 배우시기 간절히 바란다.  미국이 어떤 형태든지 북한을 공격하는 경우에는 전면전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3: 스켈리 힐즈먼에게 보낸 메모 전문

Memorandum From ABC Correspondent John Scali to the Director of the Bureau of Intelligence and Research (Hilsman)

Washington, undated.

Alexander S. Fomin, Sov Emby Counselor, at lunch which he sought urgently, asks if State would be interested in settlement of Cuban crisis along these lines:

 

Bases would be dismantled under United Nations supervision and Castro would pledge not to accept offensive weapons of any kind, ever, in return for US pledge not to invade Cuba.

 

I said I didn't know but that perhaps this is something that could be talked about. He said if Stevenson pursued this line, Zorin would be interested. Asked that I check with State and let him know. He gave me his home telephone number so I could call him tonight, if necessary.

 

Fomin claimed that Cuban delegate to UN during Security Council debate asked for such no-invasion assurances in return for dismantling but that he got no reply. I told him I'd followed the UN debate very carefully but could not recall any such remarks on Cuban's part.

 

Fomin also said Russia had been forced "to make some concessions" to Communist China in order to convince them to stop the fighting against India. He declined to say what under my questioning. But he recalled they hadn't helped the ChiComs with nuclear weapons or conventional weapons in the past, even tanks, and hinted it might be aid in the conventional field.

 

Sca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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