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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의 영웅은 맥아더가 아니라 아이젠하워 LA 김태환 회장
07/20/2017 08:07 댓글(1)   |  추천(5)


"한국전쟁 영웅은 맥아더가 아니라 아이젠하워

LA 김태환 회장


입력 2015.06.20 10:36   수정 2015.06.21 04:33

 


"이승만의 반공포로 석방은 자충수"

【뉴욕=뉴스로】 노창현 = "이승만 박사의 반공포로 석방은 자충수, 한국을 살린 것은 맥아더가 아니라 아이젠하워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유엔군과 공산군과 휴전협정이 무르익어가던 1953 618일 전격적인 반공포로 석방을 결행했다. 유엔군의 눈을 피해 전국 각지의 포로수용소에 은밀히 전달된 명령에 따라 618 00시를 기해서 수용소를 경비하는 헌병대는 미군들을 따돌리고 27000여 명의 반공포로를 석방하는데 성공했다

당시 우리 정부는 유엔군과 공산군의 휴전협정의 선결 과제인 포로 맞교환이 110의 비율로 아군에 절대적으로 불리했고 휴전이후 미군의 안보가 담보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강력 반대하고 있었다

휴전협정을 방해하려는 이승만 대통령의 전격적인 반공포로 석방은 미국을 놀라게 했고 결국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어 휴전 이후의 불안감을 제거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 역사가의 일반적 평가이다

그러나 반공포로 석방 62주년을 맞은 18일 한국전쟁사료연구가 김태환 남가주 하버드 한인동창회장은 뉴스로와 인터뷰에서 "이승만 박사의 반공포로석방은 나라와 민족을 생각한 영웅적 쾌거가 아니라 자신의 과실을 감추기 위한 고도의 언론플레이였다"고 비판했다.

유엔연합군과 공산군이 휴전협정에서 전기를 마련한 것은 1953 525 일이었다. 유엔군 측은 송환을 원하지 않는 포로들을 중립국 위원회에서 심사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수정안을 제시해 공산군 측의 동의를 얻어냈고 68일 포로 송환 협정 최종안에 서명했다.

협정에 따르면 포로들은 자유의사에 따라 북과 남, 혹은 제3국으로 갈지를 선택할 자유가 있었다. 우리 정부는 그러나 북측이 제시한 국군포로 송환수가 8300여명에 불과했던 반면 북한에 돌려보낼 포로수가 10만 명에 달한다는 점과 무엇보다 휴전 후 전쟁이 다시 일어나면 유엔군이 다시 참전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들어 휴전을 반대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북진통일론'을 외치며 더욱 강경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은 중공군까지 참전한 상황에서 북진통일은 제3차 대전을 초래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발상으로 보았다. 전쟁영웅 출신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아이젠하워는 직접 전선을 시찰하며 단기간에 전쟁이 끝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더 이상 소중한 목숨들을 무의미하게 희생시킬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사실상 휴전 협상이 타결됐음에도 전선은 더욱 뜨거워졌다. 특히 중공군은 '북진통일'을 주장하며 휴전협정에 반대하는 이승만의 기를 꺾기 위해 이른바 6월 대공세를 펼쳤다. 포로송환 협정이 타결된 지 이틀 뒤인 610일부터 17일까지 한국군 2군단(군단장 정일권 장군)이 단독으로 방어하는 중부전선 금성 돌출부(Kumsong Salient)를 일제히 공격했다. 아군은 총 13㎞의 전선에서 평균 4㎞씩 물러나는 패퇴를 당했고 단독 북진을 외치던 이승만 대통령의 체면도 뭉개졌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18일 전격적인 반공포로 석방으로 금성 대참패를 묻히게 했다. 김태환 회장은 "노회한 이승만 박사는 서방식 언론플레이에 능해 패전 다음날 이미 합의가 된 반공포로 석방의 핵폭탄급 뉴스를 터뜨려 중공군의 승전보를 무색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반공포로 석방으로 휴전협정이 물거품 되는 위기는 피할 수 있었지만 중공군의 '7월 대공세'라는 더 큰 비극을 초래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중공군은 이승만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기 위해 금성천 돌출부를 지도상에서 완전히 밀어버리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713일 밤, 중공군은 한국전 개입 이래 최대의 포 사격을 가한 후에 물밀 듯이 진격해 왔다. 한국군은 수도사단 부사단장이 포로가 되는 등 최악의 참패를 당했고 실제로 금성 돌출부는 완전히 일직선이 되어 사라져버렸다

금성천 전투 참패이후 이 대통령은 미국의 지원 없는 독자 북진이 불가능한 점을 깨달았기 때문에 휴전을 더 이상 반대할 수 없었다. 결국 727일 판문점에서 쌍방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3 1개월의 기나긴 전쟁을 멈추는 역사적인 조인식이 열렸다.

김태환 회장은 "휴전협정이 미뤄지면서 6월과 7월에만 53000여명의 아군 사상자가 발생했다. 미군도 5000여명의 사상자가 나와 아이젠하워는 '이승만의 만용으로 죽지 않아도 될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됐다'며 크게 분노했다"고 전했다.

2차 대전 영웅 아이젠하워는 평화주의자이자 덕장

그는 "한국전쟁의 진정한 영웅은 맥아더가 아니라 아이젠하워다. 사람들은 9월 인천상륙작전만 알지, 맥아더의 11월 평안북도 참패는 모르고 있다"면서 "맥아더의 주장대로 원자탄을 사용했다면 세계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졌을 것이다. 사람의 생명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3차 대전을 막은 아이젠하워야 말로 한국전쟁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주장했다.

알려진 대로 아이젠하워는 2차 대전 때 연합군 총사령관으로서 1944 66일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성공해 독일의 항복을 받아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김태환 회장은 "아이젠하워는 독일이 항복하기 직전 영국 측에서 조금만 더 진격하면 수도 베를린도 손쉽게 장악할 수 있어 큰 공헌이 될 것이라며 진격을 은연중 부추겼지만 그는 '얄타협정에서 베를린은 소련의 진공목표이자 분할점령지로 할당됐는데 왜 아군의 피를 흘리냐'며 거부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소련은 베를린을 점령하기 위한 작전에서 10만 명이 넘는 전사자가 나왔다. 만일 미군이 적군의 수도 선점이라는 영예를 탐해서 진격했다면, 미군 역시 엄청난 인명 피해가 났을 것이라는 얘기다.

김 회장은 "아이젠하워는 포츠담 회담에서 미국에서 시행한 핵실험이 성공하자 신무기를 일본에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할 때 '이미 일본은 미 공군의 융단 폭격으로 많은 도시가 대파되고 인명 피해도 컸다. 전쟁을 더 수행할 능력이 없어서 조만간 항복할 텐데, 원자탄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의견을 냈다. 아이젠하워는 평화주의자이자 인명을 존중하는 덕장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발전과 번영을 도운 한명의 외국인을 꼽는다면 한국전 휴전 조인을 성취시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킨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공로를 돌려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태환 회장에 따르면 금성천 전투로 인한 웃지 못 할 희극도 벌어졌다. 한 사단에 사단장이 2명이 되버린 것이다. 중공군의 대공세가 시작되기 며칠 전에 부임한 사단장이 부대 파악이 안 된 상태여서 전임자를 도로 불러 다시 사단장으로 앉혔기 때문이다

또한 소대장들의 손실이 너무 많아서 교육도 채 끝나기 전에 임관해 일선으로 보냈는데 많은 신임 소위들이 열차에서 없어져서 탈영 보고를 하는 소동이 있었다. 알고 보니 가는 도중에 철로쪽 가까운 곳에 집이 있는 소위들이 기차에서 뛰어 내려 고향집과 선산을 찾아가 이제 가면 다시 못 올 수도 있다며 고별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전원 춘천으로 재집결, 실제 탈영자는 없었다는 후문이다

김태환 회장은 "천안함 희생자 50여명, 세월호 희생자 300여명과 비교해 보라. 죽지 않아도 될 목숨이 3만 명이었다면 얼마나 엄청난 숫자인가. 그런데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 이 모두가 이승만 대통령을 국부요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인사들이 진실을 가렸기 때문이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이 휴전만 방해하지 않았어도 수많은 젊은 병사들이 고향에 돌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의 독단적인 행동은 훗날 야당 당수를 법살 하고 야당 탄압과 독재 권력으로 자신의 몰락을 부채질한 최악의 자충수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robin@newsroh.com

 

본국 중앙일보에 실린 기사 URL:  news.joins.com/article/18067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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