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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제2번 C단조 Op.18
09/10/2019 14:09 댓글(0)   |  추천(0)

Sergei Vasilyevich Rachmaninoff  -  Piano Concerto No.2 in C minor, Op.18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제2번 C단조 Op.18




Sergey Rachmaninov, Piano
Leopold Stokowski, Cond
Philadelphia Orchestra


첫 부분의 피아노 터치가 인상적인 곡이다. 
이 부분은 크렘린의 종소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그만큼 장중하고 아름답다. 
누가 들어도 단번에 러시아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애수에 찬 감미로운 2악장, 
빛나는 3악장도 많은 영화, 드라마, CF에 삽입되어, 
이 곡은 처음 듣는 사람에게도 아주 친숙하게 느껴진다.
라흐마니노프는 작곡가로도 유명하지만, 그 자신이 아주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다. 
그는 아주 손이 크고 테크닉도 뛰어나, 힘과 기교를 겸비한 빼어난 연주를 하였다. 
그의 피아노 곡들은 당연히 직접 연주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작곡되었느니, 
연주하는데 피아니스트의 엄청난 기량이 필요하다. 
관객들에게는 피아노의 능력을 극대화한 명곡이지만,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을 절망에 빠뜨리는 난곡들이기도 하다. 
현재는 라흐마니노프를 마판증후군 환자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 병은 손가락을 길고 유연하게 만드는 특성이 있다. 
그러니 정상적인 사람이 라흐마니노프의 테크닉을 쉽게 따라 하기란 애당초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도 역시 마판증후군 환자로 의심된다. 



1. Moderato; Allegro 
소나타 형식 먼저 독주 피아노의 거센 연주로 시작하고 
이에 따라 오케스트라가 주요한 테마를 유도한다. 
제 2테마는 독주 피아노의 연주로 전개되는 장중한 선율이다. 
이에 오케스트라가 독주자에 의해 모방적으로 취급되어 코다로 들어간다. 
이것이 발전부와 재현부를 거쳐 여러 갈래로 진전되다가 행진곡풍으로 바뀌어지면서 
급속한 템포이며 광휘에 찬 악장은 끝난다.
그는 평생 4개의 피아노협주곡을 작곡했는데, 그 중 2번과 3번이 가장 유명하다. 
1번은 10대 후반에 작곡했다가 나중에 전면적으로 수정해서, 
실질적으로는 이 2번이 첫 번째 협주곡이라고 보아도 큰 무리는 없다. 
라흐마니노프는 작곡에서 차이콥스키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평가 받는다. 
실제로 라흐마니노프는 차이콥스키에게 배웠으며 그를 멘토로 삼았다. 
차이콥스키가 죽었을 때 그를 [위대한 예술가의 회상]이라는 곡을 쓰기도 했다. 
그래서 라흐마니노프의 경향을 회고적이라고하기도 하고, 
그를 낭만파의 마지막 작곡가라고 하기도 한다. 
그는 당시의 다른 작곡가들이 보았을 때는 좀 구닥다리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어쨌던 간에 라흐마니노프는 10대 때부터 작곡을 시작하여 많은 훌륭한 곡을 쓴다. 
피아니스트로의 기량도 뛰어나서 연주자로도 인정받고, 지휘도 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한다. 
그런데 라흐마니노프가 24세 되던 해부터 약 3~4년간 작곡가로 큰 슬럼프를 겪게 된다. 
사실상 그 기간 동안 아무 곡도 쓰지 못했다. 
그 이유는 1897년에 초연한 교향곡 1번이 무지막지한 악평을 들어 
작곡에 완전히 자신감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인적인 불행도 겹쳐서 그는 우울증에 빠지고 만다. 
협주곡 2번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고, 작곡가로서의 그의 명성은 그 후로 확고 부동하게 된다. 
그런 사연으로 이 곡이 니콜라이 달에게 헌정되었다.
후에 라흐마니노프는 미국에서도 활동하여 큰 명성을 쌓는데, 
그런 계기로 나중에 러시아 혁명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하여 정착하게 된다. 
러시아 쪽 음악가 중 그와 비슷하게 미국에 정착하게 된 경우가 여럿 있다. 
피아니스트 호로비츠도 그 중 한 사람인데 라흐마니노프는 호로비츠가 자신의 곡, 
특히 [협주곡 3번]을 연주하는 것을 굉장히 높게 평가했다고 한다. 


2. Adagio sostenuto 
극히 느린 템포의 가장 아름다운 악장인데 꿈을 보는 듯이 자유로운 형식의 환상곡이라고 하겠다. 
말하자면 그의 다성부의 음악에 대한 역량과 오케스트라의 취급에 대한 천제적인 성능을 과시한 악장이다.
이 곡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다 보니 많은 영화나 드라마 등에도 삽입되었다. 
[애수], [노다메 칸타빌레] 등에도 들어갔고, [호로비츠를 위하여]에서도 그렇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호로비츠가 라흐마니노프 연주로 아주 유명하지만, 
정작 이 곡은 녹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클래식 애호가 중 호로비츠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을 찾는 사람이 꽤 있는데, 
안타깝게도 세상에 그런 음반은 없다. 반대로 [2번]의 명반을 남긴 리히터는 [3번]이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면 [호로비츠를 위하여]라는 제목 또한 꽤 절묘한 것 같다.


3. Allegro scherzando 
빠른 템포의 강렬하고 찬연한 악장인데 불규칙한 형식으로 테마가 2개 나타난다. 
먼저 오케스트라의 서주로 시작하여 피아노가 중심 주제를 연주한다. 
제 2테마는 오보와 비올라로 나타나는데 독주 피아노가 이를 반복한다. 
발전부를 중심으로 한 개의 선율이 몇 개의 다른 악기로 뒤쫓아 얽혀지는 
푸가를 거쳐 재현부를 지나 코다로 끝난다
1901년에 완성되어 같은 해 모스크바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차이코프스키의 (제1번)과 쌍벽을 이룰 만큼 많이 연주 되고 있다. 
섬세하게 다듬는 악상에 정서가 깊고, 
천재 피아니스트답게 피아노의 효과도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중 걸작으로, 널리 연주되는 이 작품은 
1899년부터 1901년에 걸쳐 작곡된 명작이다. 
그는 4곡의 피아노 협주곡을 썼는데, 2번과 3번이 주로 연주되고 있다. 
그는 26세 때부터 얼마 동안 신경 쇠약에 걸려 모든 것에 흥미를 잃고 고통스런 생활을 했는데 
친구의 권고에 따라 다알 박사의 이른바 암시 요법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 
박사는 매일 그를 자기의 진료소에서 어떤 암시를 주는 것이었다.
"당신은 이제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 그것은 대단히 훌륭한 것이 될 것이라."라는 덕분에 
라흐마니노프는 다시 펜을 들어 제2번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 작품을 다알 박사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바쳤다.
1901년 10월 27일 모스크바에서 자신의 피아노 독주로 초연하였는데, 
1904년에 이 작품은 글린카 상을 받게 되어 500루블을 타게 되었다. 
이 작품은 일반에게 친숙하기 쉬운 통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긴장되고 힘찬 그러나 시적인 정서가 풍부한 협주곡이다
이 아름다운 피아노 협주곡은 1901년 10월 27일 모스크바에서
라흐마니노프 자신의 피아노 독주로 초연하였는데, 
1904년에 이 작품은 글린카 상을 받게 되어 500루블의 상금도 타게 된다. 
이 작품은 시적인 정서가 풍부한 협주곡이어서 일반인들도 쉽게 친숙해 질수 있다. 
이 때부터 시작해서 1917년 혁명을 피해 파리로 망명하기까지가 그의 작품활동의 전성기 였다. 
파리를 거쳐 미국으로 간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 협주곡 4번>, <심포닉 댄스>,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등을 작곡한다. 
파리에 망명한 1년 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주로 연주 활동을 하다가 
1926년부터 다시 작곡을 시작해 <제4 피아노 협주곡>, 
관현악곡 <파가니니의 주제에 의한 광시곡>
그리고 <교향곡 제3번>등을 작곡한다. 
만년에 들어 스탈린이 1급 예술가로 대우하는 조건으로 그의 귀국을 권유했으나 
라흐마니노프는 고국 러시아로 돌아가지 않았고 
결국 1943년 미국 LA 비버리힐즈 자택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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