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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를리 (orullee001)

전설이된 독일군가 릴리 말린
11/03/2016 02:11 댓글(4)   |  추천(7)

2차대전중 북아프리카에서 사막의 여우 나치독일의 롬멜장군과

대치하고 있든 영국군 전차병들이 한낮의 살인적이 더위가 식어가는

밤 9시55분이 닥아 오면서 라디오 주위에 한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영문을 모르는 한병사가 큰소리로 무슨일이 있냐고 묻자 한

상사가 손으로 자신의 입에 검지 손가락을 대면서 조용히 하라고 했다. 영문을

모르는 병사는 입을 다물고 둥글게 모래위에 모여 앉아 숨을 죽이며

라디오에 귀를 기울리는 전차병들 사이에 끼어들어 잠시 기다리자

젊은 여인이 독일어로 부르는 노래가 직직 거리는 잡음과

함께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무슨 뜻인지는 이해 할 수가 없었으나 그선율은 자신이

이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였다.

영국군 전차병들이 이해를 할 수 없는 독일어로 부르는 그노래는

"가로등이 환하게 밝혀진 병영의 문앞에서.." 로 시작되는 이군가의

이름은 릴리 말린이었다. 릴리 말린(Lili Marleen은

이차대전중 독일군이 처음 사용하기 시작 했으나

전쟁의 막바지에는 적군과 아군의 구별없이 2차 대전에 참전한

병사들이 다함께 가장 즐겨 부르고 듣던 군가로 세계 전쟁사를

통해서 유래가 없는 일이었고 또 인류역사상 가장 인기가

있었든 전설적인 군가가 되였다.

 

 

 

릴리 말린 포스터

 

나치독일 군가 릴리 말린의 탄생은 세계 1차대전때 독일제

국군대에 징집되여 참전한 독일병사 Hans Leip (1893-1983)가

자신의 여친과 다른 한여인의 이름을 조합해 릴리

 말린 시가 태어났다.

 

이시는 "Das Lied eines jungen Soldaten auf der

Wacht" ("The Song of a Young Soldier on Watch"젊은초병의

노래)로 1937년 출판되였다. 일년후, 1938년 Norbert Schultze의

작곡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Hans Leip이 쓴 최초의 시이름은 "Das Madchen unter

der Laterne" (German for "the girl under the lantern

"기로등 아래 서있는 여인), 그러나 1939년 레일 앤더슨이 처음

음반을 취입한후 릴리 말린이라는 이름으로( "Lili Marleen")

유명해졌다.

 

릴리 말린이 2차대전때 유명한 계기가 된이유는 1942년 벨그라드를

점령한 독일군은 지중해 연안 제국과 유럽까지 가시청지역인

Soldatensender Belgrad ( 벨그라드 병사의 방송국)을

개설하면서였다.

 

벨그라드 방속국에 근무하는 한 소위가 1941년, 비엔나로 휴가를

떠날때 방송국으로 부터 방송에 사용할 레코드판을 사오라는

부탁을 받았다. 소위는 중고 레 코드판 상점을 뒤져 그당시 700여장

팔린 레일 앤더슨이 취입한지 2년된 레코드판을 구입해

들고 방송국으로 돌아왔다.

 

쓸만한 음반이 별로 없었든 벨그라드 병사의 방송은 릴리

말린을 자주 내보냈다. 릴리 말린이 전파를 타자 나치

선전상이었든 조셉 궤벨은 병사들의 사기를 저해 한다는

이유를 들어 릴리 말린의 방송을 금하는 명령을 내렸다.

 

릴리 말린의 방송이 중단되자 유럽각지역에서 독일 병사들이

방송국으로 릴리 말린의 재방송 요청이 쇄도했다.

이들과 함께 아프리카 군단장이었던 롬멜장군도 릴리 말린의

방송을 요청하자 나치 선전상 궤벨도 어쩔수 없이 방송을

허락하면서 이때부터 릴리 말린은 밤9시55분에 방송이

끝나는 씨그널 음악으로 전유럽에 다시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릴리 말린을 애청한 나치독일 아프리카 군단장 사막의 여우

어윈 롬멜 장군

 

놀만디 작전이 성공한후 연합군은 릴리 말린에 자신들의

가사를 붙여 "The D-Day Dodgers song"으로 편곡해 불렀다.

최초의 영변 릴리 말린의 음반 취입은 Anne Shelton's,로

알려졌고 1940년대 독일 출신 Marlene Dietrich가 영어와

독일어로 음반을 취입해 미군들은 그녀가 부른 릴리

말린을 가장 좋아했다.

 

일설에는 그녀가 독일어로 부른 릴리 말린을 방송해 연합군이

독일군의 사기를 저하 시키려 했다고 주장하나 독일군이 먼저

방송을 한 릴리 말린으로 독일 군의 사기를 저하시키려 했다는

설은 터무니 없는 낭설에 불과하다.

 

릴리 말린의 애잔한 선율속에서 이글을 쓸때 월남전때 편지를

주고 받았든 나의 17세

릴리 말린이 기억속에서 되살아 나기 시작했다. 월남으로 떠나기

일주일전, 마지막으로 쌘프란시크코를 다녀오는 버스에서

옆좌석에 앉은 중년 여인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묻는데로 대답을

하다가 보니 이여인은 동부 택사스주에서 캘리포니아에 사는

친척을 방문하는 길이었다. 일주일 후면 월남으로 떠난다는 말을

들은 이여인은 애인이 있냐고 물었다.

 

나에겐 이곳에 가족도 없고 연인도 없고 오직 나혼자라고 하자

월남에 가면 편지를 해줄 연인이 없어서 외롭겠다는 말을 하면서

자신의 딸과 편지를 나누며 월남에 있는 동안 친구를 해보라고 했다.

몇살이냐고 묻자 16섯살의 고등학생이라고 했다.

 

20대중반을 넘은 내가 어린애와 무슨 말을 나눌수 있냐고 하자,

그래도 그녀는 없는것 보다는 낳지 안겠냐면서 사양을 해도

자신의 딸이 병명도 없이 많아 아파 일년에 학교를 6개월

정도 쉰다고 하면서 딸의 이름과 주소를 적어서 주었다.

안받을 수도 없고 해서 주소를 받아서 지갑에 넣고 월남으로 떠났다.

 

월남에서 몇개월이 지난 어느날, 지갑을 뒤지자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든 16세 여고생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있는 메모지를 발견했다.

편지한장 해주는 연인이 없든 나는 위문편지라도 받으려고

편지를 당장 썻다. 몇주후, 지금은 이름도 잊은 여학생으로

부터 답장과 함께 사진이 한장왔다.

 

그녀는 은발에 파란눈을 가진 병약해 보이는 가냘픈 몸매를

가진 소녀였다. 몇번 편지를 주고 받고 오팔 목거리를 17세 생일

선물로 보내주고 나는 한국으로 전근을 한후 그녀는 나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병약했든 그소녀가 살아있다면 아마 60대중반이 되였겠지...

릴리 말린의 선율속에 떠오른 나의 어린 릴리 말린....

 

Vor der Kaserne, vor dem grossen Tor,

Stand eine Laterne und steht sie noch davor.

So wollen wir uns wiedersehn,

Bei der Laterne wolln wir stehn,

Wie einst Lilli Marlene,

wie einst Lilli Marlene ...

 

가로등이 환하게 밝혀진 병영의 정문 앞에,

여전히 그녀는 서 있네.

그렇게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며,

가로등 옆에서 우리는 계속 서 있고 싶어,

언젠가 릴리 말린이 그랬듯이,

언젠가 릴리 말린이 그랬듯이 ...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A Lili Marleen and Lale Andersen memorial in Langeoog

(Langeog에 세워진 릴리 말린 과 레일 앤더슨의 기념상과 비)

 

몇주전 검색을 하다 릴리 말린(Lili Marleen)이 되고 싶은 여인이 가상의 병영앞 길건너 가로등 믿에서 길건너 병영에 근무하는 연인을 기다리고 있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2차대전에 끝난지 71년이 지난 21세기에도

미국인들의 릴리 말린 사랑은 여전하다.이밤, 릴리 말린을 들을때, 이노병은 맥주잔에 부으면 하이얀

거품이 피어오르는 맥주 거품 같은 독일인들의 낭만이 나에게  전염될때, 좀비 처럼 벌떡 일어나

이포스팅을 찾아 컴을 뒤져 수정,을 하고 윗 사진을 추가로 넣어 올렸다.


김영삼정권에서 그의 아들은 소통령으로 불리며 김영삼의 비호아래군안사권까지 주믈르고 대기업으로

부터 알려진거만 60억을 갈취 하고, DJ아들의 비리,그의 가신들이 동아건설을 개떼처럼 달려 들어 뜯어

먹어 기업을 파산시키고, MB정권때는 형님의 비리로 포항제철은 정권의 막잇감으로 전락해 탄탄

했든 포항제철의 재무구조는 조만간 거덜이 나게 생겼어도 어느넘 하나 촛불 들고 시위하는

군상들이 없었다가 쇠고기 파동때 나타난 촛불 시위 이건 바로 종북좌파들이 보수정권

타도를 위한 음모의 결과다.


어제밤 광화문에서 촛불들고 나타난 집회도 쇠고기 파동때와 같은 정권타도가 목적이다,

검찰의 수사 결과를 기다리자,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자청하지 않았나!


종북좌파 어딜가도 지겹다, 릴리 말린을 들으며, 이제 가족도 생겼으니 다시 군복을

찾아 입고 가족과 이별하고 중동의 IS와 싸우기 위해 전장터로 훌쩍 떠나가기

어울리는 이별의 가을비가 내리는 이밤은

속절없이 깁어만 간다. 


(2008년 8월에 쓴 포스팅 수정과 추가)



이차대전 유럽 참전 각국 언어로 부른 Lili marleen

 

German Willy Fritsch 678KB ~1939

Heyn Quartett 352KB

Panzergrenadierdivision 272KB

Lale Andersen 732KB 1939

Lale Andersen 680KB

Lale Andersen 242KB tri-lingual

Marlene Dietrich 694KB

Mimi Thoma 791KB Grammophon

Lucy Mannheim 339KB anti-Hitler version, BBC 1943

English Lale Andersen 401KB 1942

Anne Shelton 326KB 1944

Vera Lynn 341KB

French Suzy Solidor 127KB WMA

Italian Milly(Carla Mignone)?-Meme Bianchi 42/43? - 805KB

Russian Natalia Shmidt - 497KB

Dutch Lou Bandy & Orkester 333KB 1942

Hungarian Ilona Nagykov?si 454KB

Finnish Georg Malmsten 525KB 1942

 

 


James Last 악단의 릴리 말린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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