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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는 파란눈의 백정이 있었다
05/24/2016 18:05 댓글(8)   |  추천(34)

나는 관상에 취미가 있다. 그래서 꽤 많은 관상에 관한 책을 소유하고 독학으로 관상을 공부한다.

매년 서울로 휴가를 갈때마다 나는 청계천 헌책방 이집저집을 기웃거리며 원하는 책을 몇권씩 사오는데

그중의 한권이 관상보감이다.


이책은 내가 소장한 책중 가장 오래된 관상 전문 책으로 그야말로 쌍팔년도라고 한국군대에서 악명 높은

해로 꼽히는 단기 4288년, 서기 1955년에 발행한 책이다. 6.25전쟁 휴전 2년후에 발행한 책이라  인쇄한 종이의 질이 좋지가 않아 책장이 모두 누렇게 빛이 바래 만지면 당장 손끝에서 부스러질 정도로 질이 나쁘다.


최근에 구입한  관상에 관한 책은 허영만 화백의 관상만화 전7권 꼴로 현대 한국 관상의 대가중 한사람인 신기원씨가 저자이며 또 그가 감수한 책이 있다.


허영만의 꼴과 1955년에 발행된 관상보감의 내용은 비슷하나 관상보감이 조금 특이한 내용 있어 차이가 있는데 열거 해보면 아래와 같다.


하체가 상채 보다 길면 빈천한 상이다.

뒷머리가 튀어 나온 골상은 배신의 상이다(조선조에서 이런 골상을 가진 자는 배신의 상이라

출세를 하지 못했다고 했는데 확인할 방법이 없다).

곱슬머리와 머리칼의 색상이 금발이나  붉은 머리도 흉상이다.

특히 붉은 수염을 자진자는 독종이라 상종할만한 사람이 못된다(역사상 붉은 수염을 가진 유명인중

이순신장군이 있다)


눈이 녹색이면 장수할 상이다.


구렛나루가 수북하고 수염이 많은자는 천한 상으로 문신은 못되고 무인이 될 상이다.

이목구비가 뚜렸하면 백정의 자식이다(옛날 부터 전해오는 말).


위에 열거한 상들은 서역에서 온 아랍인이나 유럽 백인종인 아리안의 상이다. 우리선조들이 우리와 다른

이민족의 상은 모두가 흉상에 천박한 상이라는 족쇄를 채운 이유는 무엇일까?  이 아마추어 관상가가 몇년전에 찾은 해답은 이렇다.


우리의 현명한 선조들은 그들의 이웃으로 살고 있는 서역에서 밀려들어온 아리안계 이민족과의 결혼을 막고 종족 보존을  위한 한 방법으로 이민족의 특징은 모두  흉상이라는 족쇄를 채워 이민족과의 결혼으로 태어나는 혼혈을 배척했다.


그럼 우리 선조들과 이웃으로 살았다는 이민족의 실체는 누구였을까? 이런 생각을 가끔 하다가

몇일전 구글선사에게 "백정"에 대해 질문을 하자 선사는 아래와 같은 놀라운 사실들을 들려주었다.



EBS교육 방송은

1899년 조선에 상륙한 미국 공사관 서기관 ‘W.F.샌즈(W. F SANDS)’가 인천 제물포항에서 처음 본 조선인이 바로 백정이다. W.F.샌즈가 ‘극동회상사기(1930년 발행)’에서 묘사한 백정의 모습은 인상착의가 동양인과는 사뭇 달랐는데 눈동자가 회색이나 푸른색 혹은 갈색이었고, 머리칼은 붉고 안색이 좋았으며 키가 180cm를 넘었으며 그들 가운데에는 얇은 파란 눈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W.F.샌즈는 백정을 이민족 혈통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고려시대 백정의 또 다른 이름은 ‘달단(??)’이다. 달단은 타타르족을 일컫는 말로 중국 한족이 북방 유목민족에 대한 총칭으로 명나라에서는 동몽고인을 가리켰고, 지금의 네이멍구와 몽골 인민공화국 동부에 거주해왔다.


고려시대 거란과의 전쟁 과정에서 북방 유목민들이 대거 고려 땅으로 넘어오게 됐다. 이들은 고려땅에 정착하면서 ‘화척’ 혹은 ‘양수척’으로 불리었다.


이들은 ‘북방 유목민족’이기 때문에 키가 상당히 컸고, 골격도 상당히 컸으며, 이목구비도 또렷했다.

우리가 흔히 이목구비가 또렷한 사람들을 보고 ‘백정’같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즉, 체격이 상당히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사람들은 북방 유목민족의 혈통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북방 유목민족의 후예들이기 때문에 가축을 다루는 솜씨가 남달랐고, 그러다보니 고려에서 도살업을 주로 하게 됐다. 때문에 ‘백정=도축업자’로 이미지가 각인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이들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 다녔고, 도살업을 주로 했으며 자신들끼리의 집단생활을 좋아했다. 이 모든 것이 북방 유목민족의 습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고려시대에 넘어온 북방 유목민족들이 조선말까지 백정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유지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섞여서 생활을 하지 않고 그들만의 생활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조선 세종 때인 1423년(세종 5)에는 천민이란 인식을 없애기 위해 그동안 ‘화척’ 혹은 ‘양수척’으로 불렀던 사람들을 ‘백정’(일반 평민)으로 부르게 됐다. 그리고 우리땅에 정착해서 농사를 지으며 살라고 각종 혜택을 줬다. 하지만 백정은 본래 북방 유목민족이라서 자기들끼리 집단생활과 유랑생활을 하면서 도축업을 도맡게 된다.

(퍼온내용 인용 끝)


국영교육방송 EBS가 소개한 미국외교관 W.F샌즈는 미국공사관에 근무하다 25세에 고종황제의 고문으로 활약했다.그래서 그가 남긴 기록은 공신력이 있고 믿을수가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아마추어사가 노병은 윗글 내용중 고려시대 북방민족과의 전쟁으로  거란의 여진족이 고려에 정착했다는 기록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거란족이  가족들과 거주하면서 원주민 고려인들과 동화를 거부했다면 분명그들은 고려와의 전쟁에 참전할때 가족과 함께 고려를 침공했다는 뜻인데...전쟁에 출전한 병사들이 가족을 데리고 참전했다면 그건 21세기의 전쟁에서도 있을수 없는 현상으로  설득력이 없는 추상적인 주장이라고 본다.


더구나 그들이 북방민족이라 키가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햇다면 그들은 거란족이나 여진족이 아니다. 그이유는 거란족과 여진족은 몽골계로 분류되며, 여진족(현재 만주족)은 한민족과 가장 가까운 DNA룰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EBS교육방송의 내용중 북방민족에 대한  보총설명이 필요한 이유는  그들이 몽골계가 아닌 돌궐족으로 몽골인들이 북부몽골지역으로 이동해 오기전 그지역에 살든 돌궐족이  중국의 한족과 대항하기 위해 고구려와 동맹 관계를 유지한  돌궐계 족속들이기 때문이다.


달단 (Tatar)은  우랄 알타이어를 사용하는 터키계(돌궐)와 몽골족을 러시아인들이 지칭한 표현이다. 이들은 13세기 징기스칸이 유럽 침공때 그들과함께 이동한 몽골족이나 돌궐족으로 소련 볼가강 유역에 정착한 종족으로 그들은 현지 소련인과 혼혈이 되여 순수한 돌궐계나 몽골계와 거리가 먼 새로운 종족으로 변신했다. 몇년전에 우크라이나 영토였든 크림반도가 소련에 합병되는 분쟁중 CNN방송은 크림반도 주민중에는 징기스칸이 동유럽 정복때 침공한 몽골족의 후손들이 정착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그들은 현지인 슬라브족과 혼혈이 되여 타타르인으로 분류 되고 있는데, 그들중에는 징기스칸의 직계 후손도 그곳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CNN뉴스가 전했다. 크림반도에 살고 있는 몽골계 타타르족들이 밝히고 십지 않은  과거도  알려졋는데.. 그들은 옛날에 슬라브족의 여인들을 납치해  외국에 팔아먹는 악명높은 인신매매업에 종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돌궐계 아리안족이 고구려때에 이동해 들어올때 이들과 함께 갈족도 섞여 들어왔다고 필자는 추측하고 있다. 1899년 미국외교관 W.F SANDS가 그당시 현재 인천인 제물포에 상륙해 만난 푸른눈의 백정들은 갈족의 후예로 보이며, 이들은 페르시아계 아리안족으로 기원전부터 카작스탄으로 이동해 거주하든 종족이다.


한고조 유방이 세운 한나라가 멸망한후 오,촉, 위나라가 싸우다 위나라의 사마씨가 반란으로 진나라를 세워 중국을 통일한후 막대한 군대를 유지할 필요가 없어지자 한족대신 오랑케인 아리안계 이민족들이 군대에 편입된후  서기 306년 8왕의 난을 거처 오랑캐의 시대인 오호16국의 막이 열렸다. 


갈족(?族)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퍼온 내용


갈족(?族)은 흉노족의 일파이다. 5호(五胡)는 흉노족, 갈족, 선비족, 저족, 강족 등의 다섯가지의 오랑캐(胡:비한족을 격하시켜 부르는 말)를 가리키는 말인데, 갈족은 흉노의 일파로서 따로 구분하기엔 무리가 있다. 같은‘호’라 해도 실제로는 엄연히 달랐다. 저족이나 강족도 용맹했지만, 흉노, 갈족은 선비족에 비하면 기마 실력은 부족했던 것 같다.  오호십육국 시대 흉노의 나라는 전조, 대하, 북량이 있었고, 갈족의 나라는 후조, 선비족의 나라는 전연, 후연, 남연, 서진, 남량 등이 있었다.


흉노의 한나라는 서진을 멸망시키고 화북 지역을 지배하였으며, 이후 흉노의 일파인 갈족의 석륵(石勒)이 후조(後趙)를 건국하자, 유요는 국호를 조(趙 : 후조와의 구분을 위해 보통 前趙라고 부른다.)로 고치고 화북을 310년 유연이 죽자 아들 유화가 즉위하지만 유총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찬탈했다. 311년 동해왕이 사망하자 유총은 갈족 석륵에게 명령을 내려 동해왕의 장사행렬을 습격토록 지시했다.


전조유요(劉曜)의 수도 장안(長安)을 병합한 석륵(石勒)이 319년 나라를 세우고 351년까지 존속했던 십육국 시대에 유요는 회수(淮水) 이남을 장악하고 있었고 회수 이북에는 후조(后?)가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던 시점이다.


갈족의 도적들이 제멋대로 날뛰며 권세를 부리는 바람에 가산이 전부 소진되었다. 석민은 군주의 지위에 앉아 본래의 성인 염씨로 바꾸고 석씨일족을 비롯해 갈족을 몰살시켰다. 이에 갈족들은 서로 앞을 다투어 업성을 떠났고, 업성 주변에 있던 한족들은 이에 뒤질세라 업성으로 들어왔다. 그런 뒤 염민은 업성에 남아 있던 갈족은 보이는 대로 죽이라고 하였다. 20만여 명이 죽었는데 시체는 성밖에 버려져 들개나 늑대들의 먹이가 되었다.


선비족 모용씨가 세운 전연(前燕)은 요동 진출을 노리는 고구려를 의심해 이 동방의 강자와 일전(一戰)을 불사했고, 갈족( 族)이 세운 후조(前趙)는 전연을 견제하기 위해 고구려와 동맹을 맺었다. (퍼온글 끝)


구굴 검색으로 퍼온 지도


이지도에서 고구려와 동맹을 맺은 갈족의 나라 후조와 고구려의 거리가 가깝다는 사실을 확인할수 있다.한족인 염민에게 20만이나 살해당한후 살아남은 갈족이 피난처로 갈수 있는 나라는 육로와 바다를 건너 갈수 있는 고구려 신라 백제가 있었다. 신라왕들의 무덤을 지키고 있는 소구두(페르시아계)인 동상도 있어 신라에는 이민족이 거주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주고 있다.


고구려 각저총의 씨름도에 이방인.


필자가 미국외교한 W.F. Sands가 만난 백정의 조상들이 갈족이라고 추정하는 이유는 이란계 아리안족인 그들이 백인들의 특징인 파란눈과 희색, 갈색눈, 붉거나 짙은 갈색의 머리색상을  가졌기 때문이다.60년대에 김원룡 박사가 쓴 고고학 관련글 내용중에 6.25사변전 북한 평양 박물관에는 금발의 백인미녀 미이라가 있었는데 왜 한반도에서 백인종의 미이라가 발견되였는지, 그이유를 도무지 설명할수가 없다는 글을  읽은적이 있는데, 필자는 그 금발의 주인공인 백인여인 미이라는 분명 한반도에 진출한 갈족일수도 있다는 추정을 하고 있다.



백정에 관한 내용을 검색중 조선왕조를 개국한 이성계의 전주이씨 600년간의 후손들의 하플로구룹

에서 유태계와 영국계 유전자도 보유하고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근엄한 조선조 마지막 왕가에도 외국계 이민족의 피가석였다는 사실은 한민족은 더이상 단일민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인정해야 할때가 되였다.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조사에 따르면 백정의 수가 7,538호, 33,712명이었다 한다. 조선조 500년간

그들을 조선인과 동화시켜 농업에 종사케해 세수를 올리려고 무단히 노력했든 조선왕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조선인과의 동화를 거부하며 그들끼리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남았다.


그럼 그 많든 백정들은 다어디로 사라졌을까?  백정은 1894년 갑오개혁에 따라 신분해방으로  평민이 되였지만 일반민 사이에서 백정에 대한 인식이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해방후 건국한 대한민국은 국방군(국군의 전신)에 입대를 지원한 백정의 후예가 백정이라는 이유로 거절되였으나 6.25전쟁을 거치며 혼란기에 민족의 대이동으로 평민들과 동화되며, 그들의 자취가 우리들의 이웃에서 사라졌다.


현대 한국에서 백정의 후손을 찾아 볼수 있는 계층은 아이러니 하게도 한민족이 멸시하든 아라안의 체형을 가지고 연예계에 진출한 이목구비가 뚜렷한 연예인 그룹에서 찾아 볼수 있고 이들의 조상을 추정할 수있다. 이와 함께 19세기말 저물어가는 조선왕국을 찾은 많은 서구인들은 조선조의 고관대작들을 만났을때 그들이 아리안 처럼 피부가 희고 이목구비가 또렷해 중국인이나 일본인과 큰 차이가 있다는  글을 남겼다. 조선조 백정들은 이미 옛날 부터 소리 없이 소문없이 지배층까지 혼혈이 되여 한민족의 일부분으로 그모습이 살아남아 있다. 


Epilog

훈족의 미스터리 저자인 필자는 아마추어 사가로  위내용과 사진은 구글 검색으로 누구나 얻을수 있는 자료임을 밝힙니다. 선조들이 이민족의 특징을 천한상으로 족쇄를 체워 그들과의 혼혈을 막으려 했으나 21세기에는 그비천한  이민족의 신체특징이 장점이되여 선망의 대상이 되여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고 또 느낄수가  있습니다.긴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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