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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백교교주 전용해와 구원파교주 유병언의 닮은점
07/24/2014 03:07 댓글(6)   |  추천(9)

 

1937년 4월 13, 일제 식민지 치하 경성부(서울)에서 백백교와 교주 전용해의 살인행각이 조선일보 호외로

알려지면서 조선8도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전용해를 체포하라, 경성부  왜경은 경찰병력을 총동원해

전용해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용해는 경찰의 추적을 받으면서도  경찰을  비웃기라도 하듯

몇일간 시내에서 여유있게 도피 자금을  마련해 경성부(서울)를 탈출해 경기도 양평으로 향했다.

 

악명높은 왜경을 따돌리고 유유히 경성부를 빠져나간 전용해는 양평지역 책임자 이한영의 집으로 갔다.

경찰이 전용해를 추적하는 사실을 모르는 이한영은 전영해를 극진히 대접했다. 막대한 재산을 전영해에게

바친 이한영은 전용해로 부터 3명의 첩을 하사 받았다.

 

전용해는  하사한 3명의 첩을 방으로 들게한후 이한영을 방으로 그방으로 들여 보냈다.이한영이 다음날 아침  인기척이 없어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전용해는 사라지고 세 여인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목이 졸려 죽어 있었다.


경찰의 추적은 그동안에도 계속되어 양평의 단월면까지 형사대가 내려와 수사에 나섰다. 백백교 지역책

임자들이 계속 채포되자 전용해는 이삼득의 집으로 도주했으나  그이후에 전용해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경성부 형사대의 추적에도 신출귀몰하듯 전영해는  자취도 없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1937년 4월 6일, 양평군 단월면 행소리의 비솔고개라고 불리는 산봉우리 부근에서 나무를 하던 마을 주민이 끔찍한 시신을 하나 발견했다. 나무꾼은 단월면 주재소에 달려가 신고를 했다. 주재소 순사들이 달려가 시체를 확인하자, 시체는 오른손에 칼을 쥐고 있었고 오른쪽 뇌가 반쯤 손상되어 있었다. 사진을 남기지

않은 전용해의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경찰은 그의 아들을 불렀다. 현장에 도착한 그의 아들은 시신을

보자 마자 아버님 하고 울부짓어 경찰은 전용해의 죽음을 확인할수 있었다.

 

부검의의 부겸결과 전용해는 칼로 뇌동맥을 끊어서 죽은 것으로 밝혀졌다. 왜경은 이시체를 희대의 살인마

전용해가 자살한 시체라고 결론짓고 사건을 종결했다.

 

 

전용해의 죽음에는 여러 가지 의문이 남아 있다. 전용해와 같은 희대의 살인마가 스스로 뇌동맥을 끊어

자살했다는 것에 민중은 수긍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일부에서는 장자봉, 장손희, 장해순 등 세 명의 첩을

잃은 이한영의 복수에 의해 전용해가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추정하고 있으나 당사자인 전용해가

죽었기 때문에 그진실은 영원히 묻혀 버렸다.

 

경찰이 채포한 백백교 간부들의  재판과정에서 밝혀진 확인된 살인이 314건, 백백교 간부와 교주 자신이  

자행한 총 살인은 1,000-2,000건으로 추산하고 있다.

 

50-60년대 월간지에 자주등장했든 일제치하 식민지 시절 백백교 교주의 죽음과 구원파 교주 유벙언의

죽음은 짝퉁처럼 너무나 닮은 꼴이다. 경찰이 확인한  백백교 간부와 교주의  살인 314건과 유병언이

자신과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 1987년 오대양 32명 자살 사건과  세월호 참사 사망자 294명을 합치면

320명으로 사망자까지 비슷하다. 두교주의 시신발견도  닮았고, 죽음도 의문이 남아 있는 것도 너무 닮았다.

백백교 교주 전용해의 끊임없는 살인, 자신의 잘못으로 세월호 참사로 294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어도

자신이 무슨짓을 했는지에 대해 반성이나 사과 한마디 없는 유병언은 전형적인 사이코패시(Psychopathy)

로 분류되는 범죄자들이다. 마지막으로 두사이비 교주가 닮은 점은 이들이 사라지기전 여인들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점도 닮았다. 

 

미국에서 세월호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면 아마 수많은 심리사들이 등원되여 유병언이라는 한 인간에 대해서 그가 어떤 인간인지에  대해 대대적인 심층 심리분석을 내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어느  방송매체에서도 유병언에 대한 심리사들의 분석이 없어 그가 어떤 인간인지도 알수가 없다.. 필자가 보는 유병언은 과대 망상증 환자로, 자신이 대통령과 동급의 거물이라고  착각하며 행동한다. 10만의 종교잡단 지도자가 주한외교 사절을 초청해 놓고 벌인 행사에서 연설을 하며, 자신을 세상 사람들에게 과시한 유병언의 행위를 보면 그는 심각한 수준의 중중 과대 망상증 환자가 틀림없다.

 

이와함께 유병언은 Little(Short)man syndrom(키작은 사람 증후군)과 학력 콤프렉스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다.미국에서 흔히 사용되는 키작은 사람 증후군이란,  키작은 사람이 자신의 키는 작아도 나는 이렇게

큰 사람이라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신의 부와 능력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과시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을

일컷는 말이다. 

 

한국에서 학력콤프렉스에 비교 될만한 말로, 유병언은 자신의 고졸 콤프렉스를 커버하기 위해 아마추어

사진작가 수준에 불과한 자신의  사진작품들을 대가의 수준으로 인정받기 위해 많은 돈을 썼으나 그결과가

어떻게 되였는지는 독자들이 모두 잘알고 있다.

 

마지막으로, 유병언의 시신이 발견된후 그의 죽음이 타살이냐, 자살이냐 아니면 자연사냐로 의견이

분분한데, 필자가 보기에 유병언의 사인은 타살 되였을 가능성이 크다. 타살로 보는 이유는 송치재 별장을

나오면서 육포와 스쿠알렌, 검은콩을 챙겨 가지고 나왔는데 쫏기는 자에게 생명과도 같은 10억원이 넘는 많은 돈을 그대로 두고 별장에서 빈몸으로 나왔을 리가 없다. 그의 시신에서 그가 소유했을 만한

신분증이나 돈이나 귀중품이 발견되지 않은 것과 시신이 똑바로 누워 있는 자세도 타인에 의해 연출된

흔적으로 볼수 있다. 아니면 그가 지병으로 사망한후 그의 시신을 누군가가 뒤져 귀중품을 훔친후 그의

시신의 자세를 발견당시 처럼 자살 처럼 보이게 연출햇을 수도 있다.유병언이 홀로 남겨진 이유는 그를

호위하든 자들의 배신이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 할수 없다.

 

공산주의 이론을 정립한 칼 마르크스(Karl Marx)는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고 외침과 동시에 기독교를

박멸하려든 그의 노력은 와해한 공산주의 국가와 북한을 통해서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종교를 빙자해

개인의 재산을 갈취하며 가정을 파괴하는 사이비종교야 말로 이지구상에서 옜날에 없어졌어야 했으나

 IT시대에도 사교가 번창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가 사교에 빠져 재산을 잃고 가정이 파괴된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지 없는지는 법에 대해 문외한인 필자가 알수 없으나 정부는 당연히 이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믿고 싶다.

 

 

 

 

아래 자료는 백백교에 대해서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퍼온 자료들입니다.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일제 점령기 1937년 4월 13일. 조선일보는 사교 백백교의 사건을

알리는 호외. 

백백교2_zch71.jpg

 백백교주 살인마 전용해가 경기양평 산중에서 자살을 알리는 조선일보 기사

백백교1_zch71.jpg

“일제는 가고 새 세상이 온다”

경성 앵정정에 있던 전용해의 본가와 ‘김두선’이라는 가명 문패.

이렇듯 이른바 ‘금화사건’이 발생했을 당시만 해도 전용해와 표면상 교주인 차병간은 가까스로 검거망을 벗어났다. 전용해와 차병간은 지방을 전전하며 비밀리에 교단을 재건했다. 이후 전용해는 서울로 잠입해 앵정정에 본부를 마련하고, 지방에 있는 심복 교도들을 서울로 불러모았다. 백백교 간부들은 평안도, 황해도, 강원도 등을 순회하며 무지몽매하여 세상 물정에 어둡지만 다소 자산이 있는 사람들을 은밀히 포섭했다.

“우리 백백교 교주님은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는 분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천위(天位)에 등극할 인물이다. 지금 일본의 통치 아래 있지만, 가까운 장래에 반드시 백백교 교주의 통솔 하에 독립이 될 것이다. 그때 각 교도는 헌성금(獻誠金)의 다소와 인물의 능력에 따라 대신, 참의, 도지사, 군수, 경찰서장 등에 임명될 것이다.”

“오래지 않아 큰 전쟁이 날 터이니 교도들은 자산을 팔아가지고 상경하라. 교주는 신통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므로 반드시 그대들의 생명을 보장할 것이다.”

“3년 내 조선에 서른 자 이상의 큰 홍수가 날 것이다. 일반백성은 모두 물에 빠져 죽더라도 헌금한 우리 백백교도는 금강산 피신궁(避身宮)에 들어가 목숨을 구할 수 있다. 홍수 이후 교주 전용해가 등극하여 천위에 오르면 헌금액에 따라 관직을 제수할 것이다.” (‘백백교 사건의 정체’, ‘조광’ 1937년 6월호)

백백교 간부들은 정감록의 예언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정도령과 소리가 비슷한 교주 ‘전도령’이 후천개벽 세상의 주인이 될 것이라 호언했다. 관존민비의 봉건적 인습에 사로잡힌 사람에게는 관직을 주겠다는 말로, 투기심이 강한 사람에게는 ‘불로장생, 부귀영화’라는 말로 입교를 권유했다.

일단 백백교에 입교하면 교주의 명령에 따라 토지, 가옥, 가재도구 일체를 정리해 서울 본부로 올라왔다. 교주는 신입 교도가 가지고 온 현금을 헌납하게 했다. 데리고 온 가솔 중 미모의 처녀가 있으면 ‘시녀’로 바치게 했다. 교주는 앵정정 본부로 불려온 시녀에게 ‘신의 행사’를 빙자해 욕정을 채웠다. ‘믿음이 약해’ 교주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는 여성은 심복 간부에게 넘겨줬다. 간부가 거느린 첩은 모두 이러한 ‘절차’를 거친 여성이었다. 교주는 수십명의 첩을 거느렸다. 7~8명의 첩을 거느린 간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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