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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를리 (orullee001)

1945-46년, 해방된 조국의 생생한 현장 사진
01/16/2012 19:01 댓글(9)   |  추천(17)

1945년 8월 15일, 나는 2살반을 넘어가고 있을때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했다.

그날밤, 떠도는 소문에 왜왕이 항복하자 분을 이기지 못한 왜인들이 일본도를

들고 사정없이 한국 어린애들을 죽인다는 소문에 아버님 형제들이 5명의 자식들을

마차에 태워 경기도 소래면으로 피신을 시키기로 했다.

 

마차에 4촌들과 타고 그위를 볏집으로 덮어 짐처럼 위장을 하고 영등포역 근처에서

마차가 철로 건널목을 지나갈때, 떠들면 죽는다는 큰 사촌형님의 말에 숨을 죽이고

공포에 떨며, 마차 위에 짐을 싣기 위해 나무로 설치된 직사각형의 짐싯는 칸

나무사이로 밖을 볼때, 철로  건널목에는 전등불이 대낮 처럼 밝게 비치고 건늘목

초소에는 대검을 꼿은 총으로 무장한 일본 군인이 집총 자세로 서있었다.

 

그 일본군인이 내기억에 남은 유일한 일본인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한국이

해방을 맏았을때 그당시의 모습은 어땠는지, 항상 궁금증을 풀지 못하다 검색을 하다

타임 캡술에 숨겨저 있든 그당시의 생생한 사진들이 담겨 있는 아래 사진들을 찾았다.

 

아래 사진들은 미군종 포토 저널리스트인 Don O"Brien이 1945-46년 한국에 일본군

무장 해재를 위해 한국에 진주한 미군과 함께 한국으로 와서 찍은 사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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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인과 사진작가 O'Br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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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키나와에서 한국으로 출발전 미통신대.찦차앞 범퍼에 세워저 있는 도구는 찰조망을 자르는

장비.

 

유럽에서 기록사진을 촬영하든 미통신부대(미군은 통신 부대가 기록 사진을 찍는 업무를

담딩한다)는 히틀러의 패망으로 배를 타고 58일간의 긴 항해 끝에 유럽의 반대쪽에 있는

오키나와에 도착했다. 일본이 항복을 하고 그해 9월 이들은 오키나와에서 배를 타고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상륙하는 미군과 함께 인천에 상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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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항에 도착한 기록사진 요원들과 그들이 사용하는 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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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가 없는 천사 같이 선한 어린아이의 눈을 가진 이 노인이 정말 내 마음을 사로

잡는다.

 

마치 나를 보시면서, 오를리 나좀 보게, 나는 말일세, 평생 어떤 누구에게도 페를

끼치지 않고 대쪽 같이 정직하게만 살아왔다네, 라고 말씀 하시는것 처럼 내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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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에서 배한척이 물살을 가르며 평화로운 모습으로 어디론가 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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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폭탄 두발을 맞고 항복한 일본에서 귀국한 동포들의 모습.나는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귀국을 했는지 항상 굼금했다.

 

해방직후, 아버님 친구도 일본에서 돌아왔으나 그들은 고위직에 있었는지 비행기를

타고 여의도 비행장에서 내렸을 정도로 일본에서 잘 살았었다. 이야기는 1960년초, 아버님

친구들이 모여서 식사를 할때 직접 그분으로 부터 들은 이야기다.그래도 감이 잡히지 않았으나

윗사진을 보면서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옷을 입고 돌아왔는지 상상을 할수가 있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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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구걸을 하는 걸인의 모습.

 

무슨 사연으로 이렇게 거리에 나앉아 구걸을 하실까? 왜인들에게 가지고 있든

농토를 다 빼앗기고 가족이 뿔뿔이 헤어저서 였을까? 아니면 독립운동을 하시든

부친이 왜경에 잡혀 갖은 고문을 당하시다가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 두시고

저 세상으로 떠나시자 남은 가족이 고초를 격다가 혼자 되셨을까? 애절한 모습에

몸둘바를 모들 정도로 가슴아픈 사연을 무언으로 전하시는 아주머니의

애처로운 모습에 가슴이 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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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무장 해재를 위해 진주한 연합군 환영 행진. 이들이 신은 군화와 복장이

아마 일본군의 군복이 아닐가하는 추정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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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38선 이북에 진추한 소련군인들과 Don O'brien.  이북에서 남으로

피난을 온 사람들로 부터 6.25 전쟁 휴전후 이들이 저지른 만행을 정말 많이 들어서

이들이 나는 어릴때 괴물같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북한에 진주한 많은 소련군인들이 형무소에 같여 있든 죄수들도 섞여 있엇다는 사실을

나이들어 문서를 검색해서 알게 되였다. 평양에서 피난온 연세 많은 이웃으로 부터

소련어로 다와이(내놔), 호로쇼(좋다), 다다(yses), 니엣(No)라는 말을 배웟울 정도로 나는

수많은 소련군의 만행을 들으며 자랐다. 북한에서는 소련군을 통칭해서 로스케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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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작가 Don O'brien의 집차 앞에서 사진을 찍은 로스케.

 

내가 들은 소련군의 만행 한토막, 시계를 가져 보지 못했든 소련군은 길에서서 지나가는

행인들의 팔을 검사해서 차고 있는 시계를 모조리 뺏어서 자신의 양팔에 차고 다니다가

태엽을 감을지 몰라 작동하지 않는 시계는 버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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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기울이나 곡물 껍질로 만든 검은 빵을 가지고 다니며, 베개로 이용해 잠잘때 사용하다가

배가 곺으면 비고 있는 검은 빵을 뜯어 먹으며, 영하 30도의 한 겨울에도 철길에서 철로를 베고

잠을 잔다는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들의 모습. 군표(점령지에 주둔한 군대가 발행하는 돈으로

현지에서만 통용이 가능하다)를 찍어 들고 다니며 가위로 잘라 가며 사용한 소련군의 영향으로

북한 경제에 큰혼동을 주기까지 했다. 내가 상상했든 괴물의 모습 못지 않게 이들에게서

야비함과 잔인함 마져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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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 O'brien이 소련군을 만나러 가위해서 38선을 향해가다 철로에 서있는 일본군의

장갑으로 무장한 열차를 발견하고 사진을 촬영했다. 상륙하는 미군에 대항하기 위해

특별 제작한 장갑 열차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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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열차를 끄는 장갑 증기기관차의 위용. 일본군이 열차까지 장갑을 입혔다는 사실은 그들이

일본열도와 한반도에서 최후의 순간까지 미군과의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이 원자탄을 개발하지 못했다면 일본 열도와 한반도에서 수많은 미군과 민간인들 피를 흘리는 인명

피해는 피할수 없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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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R Hodge 미육군 중장. 남한을 통치하는 군정장관 하지 중장이 배를 타고

인천항으로 들어오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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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기를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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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청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일본 총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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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청에 있는 행사장을 찍은 천연색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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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6년 귀국한 이승만 대통령 환영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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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정장관 하지 중장에게 화환을 증정하는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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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근교에 있는 작은 기차역. 사진을 찍은 오브라인은 아름다운 역사에 매료 되였다고 했으나

서울근교 어디에 이런 역사가 있었는지는 알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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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 전 대통령 환영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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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년간 일제의 만행에 지친 모습을 지닌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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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가행진을 지켜보는 서울 시민들의 모습. 내부모님 세대들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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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뱃대를 물고 구경하는 짚신을 신은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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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군 환영 가두 행진을 하는 보이스카웃과 구경하는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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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동해안에서 찍은 사진에서 보이는 노인은 눈길에서 비록 집신을 신고,

여기저기 기은 두루마기를 입었으나, 이분의 눈에서 발산하는 섬득할 정도로

무서운 눈빛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보이며, 일제에 압제에도 끄떡없이 버터낸 

무서운 저항력을 간직한 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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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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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중장과 서있는 이한국인은 키가 미국인과 같다. 집회에서 통역을 하시는

분은 영국유학을 다녀온 장택상씨.

 

하지 장군이 남긴 일화가 있다. 그내용은 한국에 식량이 부족하다는 보고를 받자

장군은, 계란을 먹으면 되지 않느냐는 말을 해서 현실을 무시한(현실을 몰라서)

말로 오랫동안 한국사회에 회자되였든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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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길을 걷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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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철도 종사자들 교육용 자료를 만들기 위해 한강 철교를 촬영하는 오브라이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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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통을 머리에 이고 있는 여인. 한국 어머니의 당당한 모습이 보이는 이한장의

사진에서 한국 어머니들의 공통 분모인 자식을 위해 서러면 어떤 희생과 역경도 이겨내는 한국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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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4년간 남태평양에서 운행했든 고물이 되여가는 C47 미군 수송기. 화물과 승객을 동시에 수송하는

이화물기는 한국에서 미군의 수송업무를 당당하기 위해 배치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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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어머니와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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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에서 서울을 향해 가는 객차. 회물칸을 개조해 승객을 운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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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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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과를 승객들에게 파는 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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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귀국한 할머니와 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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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귀국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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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구질하는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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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짱군을 이용해 받에 인분을 뿌리는 농부. 서울 근교와 경기도 지방에서는 물통 처럼 생긴 통두개에 인분을

담아 물지개로 지고 다녀서 윗사진은 서울 근교가 아닌 남쪽 자방에서나 볼수 있었든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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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각가의 찦자를 타고 있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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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군 환영 현수막 걸린 건물 앞을 여유롭게 유유히 지나가는 마차 행렬. 광복후의 서울은 현재와 달리

일본 처럼 차량은 왼쪽 통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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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는 이사진의 주인공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구분하지 못했으나 내가 보는 사진속의 인물은

여자가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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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널뛰는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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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신사가 목에 걸치고 있는 털목도리는 개털 목도리가 틀림없다. 일제는 만주지방에 주둔한

왜병들의 겨울철 옷을 만들기 위해 묶여 있지 않고 돌아다니는 길개를 잡을수 있는 권한을 많은

사람들에게 주었다. 이들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개를 잡아 고기는 먹거나 팔고 가죽은 일본정부에

바쳤다. 개털이나 가죽으로 만든 겨울 목도리는 육이오 전쟁중에도 주로 만주지방에서 내려온 동포

들이 많이들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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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언론 사진 가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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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탁통치 반대 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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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을 위한 행사인지는 알수 없으나 성조기를 든것으로 보아 미군환영 행사장 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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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 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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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사장을 경비 하는 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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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과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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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홍등가. 영문으로 미군의 출입을 금지하는 팻말이 붇어있고 뒷쪽에 미군 헌병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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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고한 배우 김승호의 영화 마부를 생각나게 하는 조랑말이 끄는 마차와 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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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 기억에 남는것 중의 하나가 인력거다. 서울 어디에서나 볼수 있었든 인력거, 어머님과 함께

타기도 했든 이인력거는 육이오 전쟁 수복후 서울로 돌아오자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러 어린나에게

굼금중을 불러 일으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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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 스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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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시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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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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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의 모습으로 보아서 이들은 일본으로 돌아가는 일본인 가족 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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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일을 팔고 있는 아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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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경회루 지붕에 난 잡초를 보면 눈물이 날정도로 애처롭다. 일제는 조선인들만 고통을 준게

아니고 문화재까자 돌보지 않아 지붕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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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유로 시가 행진을 하는지 알수가 없었으나 현수막을 읽어보니 대한민국임시정부 귀국 환영

시가 행진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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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붕으로 보아 일본인들이 두고간 보동산인 적산 가옥에 살고 있는 사람들 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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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당시 연예인. 사진을 촬영한 O'Brein님은 이사진과 아래 그리고

또 한장의 여인 사진 설명에서 이분들을 연에인이라고 설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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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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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덕궁 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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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을 먹고 있는 두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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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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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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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 조직한 국방 경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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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에 서있는 증기 기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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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도 전복 사고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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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재가 발생한 서울의 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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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대가 남긴 파라슛을 점검해보는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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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가행진을 구경하는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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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대문 근처로 추정되는 건물과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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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내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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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깃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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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반을 찬 패잔 일본군 가장과 등짐을 진 그의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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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의 무장해재를 하면서 미군이 접수한 군수품중 일본군의 99식 소총은 회수해서 한국국방

경비대가 사용했으나 그외 군수품의 행방은 어떤 기록에서도 찾아 볼수가 없다.그궁금증을 풀수있는

사진이 바로 김포비행장에 줄줄이 서있는 일본군 전투기다.연합군이 Code Name Sonia로 불렀든

이전투기들은 Mitubishi K1-51 Type99 기종이다.20여대로 보이는 이전투기들은 건국후 들여온

10대의 연습기 창랑호 보다 백배나 전투력을 갖춘 기종이다. 이전투기들 다어디갔지?. 진주한 미군은

일본 열도와 한국내에 남은 일본군의 모든 전투기나 탱크와 각종무기는 모조리 잘라내거나 아니면

도저로 갈아뭉개 고철로 만들어 한대도 남기지 않았다.이자대전후 나치 독일이 남긴 무기도 같은

운명에 처해졌다. 살아남은 장비는 미군이 연구용으로 선택된 몇개의 무기는 예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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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대문 밖으로 보이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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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차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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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척에 있는 한 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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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접수한 마약. 아편으로 알려진 이마약은 일본이 한국인을 이용하기 위해 아편을 사용

했다는 증거물로 알려졌다. 아편까지 이용해 한국인을 착취한 이들에게 동일본 대지진때

의연금을 걷고 낸 한국인들, 그렇게 36년을 격고도 도와주면 독도문제 들고 나오지 않을것

처럼 믿엇든 한국인들 참 너무 순진하다. 좋은 일본 사람은 죽은 일본넘외에 없다는게 나의

믿음이다.그당시 이런글 썻으면 아마 나를 보고 모진 사람이라고 댓글이 줄줄이 달렸을

지도 모른다.

 

일본에 또다시 대지진나면 정부에서 조금 도와주고 민간 차원의 모금이나 도움은 절대 없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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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진사들과 가깝게 지낸 작가와 한국 사진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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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의 각번을 차고 도끼질하는 이남성은 아마 일본군에 징집

되였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젊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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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뭇짐진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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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에 세워진 신사 앞에서 있는 미군과 미군의 찝차 모습에서 조선이 해방 되였다는

사실을 읽을수 있고, 소녀가 신고있는 게다짝과 신사의 생생한 모습에서

일본이 남긴 잔재가 무엇인지를 읽을 수가 있다. 사진의 신사가 있든 대지는

현재 도서관과 공연장으로 변했다. 원래 남삼에는 두개의 신사가 있었다고 한다.

이사진에 보이는 남산위 신사와 현동국대 근처에 또다른 신사가 있었다고 한다.

 

사진속 등장하는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고무신이나 운동화 아니면 구두를 신고있는 것과

비교해 농촌에 거주하는  노인들께서 1945년 그당시 신고 있는 짚신은 정말 충격적이다.

해방된 조국은 그당시에도 이미 도시와 농촌의 삶의 격차가  그렇게 컸다는 것을 알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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