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 Ghost Warrior
  • 오를리 (orullee001)

1949년, 오끼나와의 미군 찝차 무덤
11/14/2011 18:11 댓글(5)   |  추천(4)

세계2차 대전에 등장한 찝차는 제삼제국 나치 독일의 공냉색 군용 차량 쿠불바겐이

모델이었다. 1941년부터 1945년까지 Willys는 Willys MB(명박의 약자가 아님^_^) Ford는

Ford GPW를 같은 설계도를 이용해 양사는 특장 찝차외, 일반 Jeep차를 510,000만대를

생산했다. 그중 5,1000 대를 소련에 리스 해주었다. 2차대전후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이 미제 찝차를 타고들어 오고, 또 이들과 함께 돌아온 소련군 소령이었든

북한의 김일성도 초기에 이찝차를 사용했다.

Jeep_Slat_grills.jpg

개발후 초기 모델의 그릴은 길고 얇은 쇠철 조각을 창살 처럼 사용했으나 Ford 는 얇은 철판 대신 철판을 찍어내 찝차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남아 오늘날도 찝차의 그릴은 변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많은 찝자들, 2차대전과 한국전후 다 어디로 사라졌지?

 

jeep-cemetary-Okinawa-1949-a.jpg

  1949, 11월 11일, Life 사진기자 Carl Mydams가 오키나와에서 페기된 미군용 찝차를

촬영했다.일본점령 미군에 새로운 모델인 M38 찝차가 배치되자 용도 페기된 구형

찝차는 오키나와의 찝차 무덤으로 보내졌다.

jeep-cemetary-Okinawa-1949-d.jpg

 

jeep-trailer-cemetary-Okinawa-1949-a.jpg

찝차를 개발한 Bantam은 생산능력이 없어 미국정부가 Willys와 Ford 양사에 설계도를 넘겨주며

생산을 재촉해 찝차용 트레일러만 생산해 미정부에 납품했다. 사진의 트레일러는 전량 

Bantam이 생산한 제품들이다.

 

jeep-cemetary-Okinawa-1949-tires.jpg

 산처럼 쌓여있는 찝 타이어...오키나와 있었든 찝차 무덤의 사진은 

Life 잡지에 실리지 못했다고 한다.

 

미국은 미군과 함께  해외로 나간 장비중 무기만(소총, 포, 전투기는

주둔국과 협상을 통해 리스해줄 수도 있음) 제외하고 미본토로의

반입을 법으로 금하고 있다.

 

그러나 미본토에서 사용하든 페기된 군용차량은 민간에게 탱크까지

판매가 가능하다. 각주마다 페기된 미군용 차량을 보존하는 단제가

몇개씩 있다.

 

그명칭은 MVPA(Military Vehicle Preservation Association)로

"군용차량본존회"로 아래 사진에서 보듯 완전 재생한 군용차량은

국경일이나 특별한날 퍼레이드나 전시 행사에 사용한다.

helicopter.jpg

 휴에 헬기까지 등장한 군용차랑 전시회

4th.jpg

한국전때 미군과 한국군이 사용한 3/4톤 닷지(Dodge)

Ben.jpg

전시회 행사에 참석한 소년 

JeepwwII01.jpg

 초기 찝차의 그릴과 대조를 이루는 이찝차의 그릴은 Ford가 철판을 찍어서

생산했다...

M715%20Brandt%203.jpg

 

 

RIFFLES.jpg

셔만 탱크도 전시회에 참석헸다 

usmc.jpg

 

troop%20tank.jpg

전시회에 참석한 잡갑차 

WC57Patton1.jpg

패튼장군의 지휘용 WC-57 모델 닷지 

dscf1192.jpg

 1952년산 M38A1, 캔사주에 있는 MVPA회원이 $5,000에 매물로 내놓은 찝차

상태가 좋아 구입할 생각을 했으나, 이왕이면 2차대전때 사용했든 찝차를

구입하기로 했다.

 

퇴역한 미군 군용 차량의 부속은 미국에서 어떤

부속이나 구입이 가능하다. 아래 사진의 찝차 바디는 미국에서

생산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찝차 바디를 생산하는 나라는 유일하게  필리핀

외에 없다. 사진의 바디 가격은 $2,975로, 재생할수 없는 찝차 바디를 대체

할수 있는 필수품이다.

mbtub.jpg

 

 

2012년에는 재생할수 있는 상태의 2차대전때 사용힌 찝차를

구입해 차고에서 엔진부터 바다까지 재생을 하며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기본폴더 카테고리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