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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로 보는 노벨상 후보 시인의 작태
02/27/2018 14:02 댓글(4)   |  추천(21)

한국에서도 사회전반에서 그동안 들어나지 않았든 성추행들이 미투운동으로 그 치부가 들어나고 있다.

그치부의 중심에 선 인물들은 남자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그남자들 중에서도 성추문의 정상에 서있는 남성들의 특징은 이들이 각분야에서 정점의 위치에 서있는 남성들이라는 사실이다.그래서 그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왕이나 제왕으로 불려졌다고 한다.


그중 한국에서 노벨상의 계절이 올때마다 가장 먼저 문학상 후보로 신문지상에서 거론되어 오든 고은 시인의 행태는 그가 거리에서 바바리코트 걸치고 서있다가 지나가는 여성 행인들 앞에서 자신의 거시기를 노출하는 정신병 환자의 행동을 동료와 후배 시인들 앞에서 거침없이 연출 하는 늙은 시인은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기를 선포했지만, 나는 그현장에서 그의 행위을 지켜보고 있든 동료와 후배 시인들이 그때 왜 그의 행위를 제지하지 않고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 경악스럽다.


그때 그현장을 20여년이 지나서 그당시 상활을 고발하는


"야 니들이 여기 좀 만저줘, 최영미 시인의 고발문"


▼최영미 시인 원고 전문 

내 입이 더러워질까봐 내가 목격한 괴물선생의 최악의 추태는 널리 공개하지 않으려 했는데, 반성은커녕 여전히 괴물을 비호하는 문학인들을 보고 이 글을 쓴다.

내가 앞으로 서술할 사건이 일어난 때는 내가 등단한 뒤, 1992년 겨울에서 1994년 봄 사이의 어느날 저녁이었다. 장소는 당시 문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종로 탑골공원 근처의 술집이었다. 홀의 테이블에 선후배 문인들과 어울려 앉아 술과 안주를 먹고 있는데 원로시인 En이 술집에 들어왔다.  


주위를 휙 둘러보더니 그는 의자들이 서너개 이어진 위에 등을 대고 누웠다. 천정을 보고 누운 그는 바지의 지퍼를 열고 자신의 손으로 아랫도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보는 놀라운 광경에 충격을 받은 나는 시선을 돌려 그의 얼굴을 보았다. 황홀에 찬 그의 주름진 얼굴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아- ” 흥분한 그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한참 자위를 즐기던 그는 우리들을 향해 명령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야 니들이 여기 좀 만져줘.”  

‘니들’ 중에는 나와 또 다른 젊은 여성시인 한명도 있었다. 주위의 문인 중 아무도 괴물 선생의 일탈행동을 제어하지 않았다. 남자들은 재미난 광경을 보듯 히죽 웃고….술꾼들이 몰려드는 깊은 밤이 아니었기에 빈자리가 보였으나, 그래도 우리 일행 외에 예닐곱 명은 더 있었다. 누워서 황홀경에 빠진 괴물을 위에서 내려다보더니 술집마담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했다.  
“아유 선생님두-” 

이십 년도 더 된 옛날 일이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처치하기 곤란한 민망함이 가슴에 차오른다. 나도 한때 꿈 많은 문학소녀였는데, 내게 문단과 문학인에 대한 불신과 배반감을 심어준 원로시인은 그 뒤 승승장구 온갖 권력과 명예를 누리고 있다.


공개된 장소에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물건’을 주무르는 게 그의 예술혼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나는 묻고 싶다. “돌출적 존재”인 그 뛰어난(?) 시인을 위해, 그보다 덜 뛰어난 여성들의 인격과 존엄이 무시되어도 좋은지.  


-시인 최영미 


같은  남녀 시인들 앞에서 자신의 거시기를 주무르다가 "니들이 여기 좀 만저줘" 했다는 그 늙은 시인의

거침 없는 행동을 그늙은 시인만 탓해서 끝나는 것은 아닐것이다. 그를 그런 괴물로 만든건 그들 따르는

동료와 선후배 시인들이 그가 그런 행동을 서슴없이 할수 있는 토양을 제공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니 당신 미첫소? 나에게 누가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의 대답은 이렇다.당신들은 그늙은 망나니 시인을 추켜 세우고,왕 차럼  떠받들며, 돈과 술을 바치며, 자신의 인격과 존엄이 땅에 떨어져도 그늙은 망나니로 부터 인정과 추천을 받아 시인으로 등단하였거나 아니면 등단하기 위해 그가 무슨 개망나니 짓을 해도 그로 부터 얻을 이익이 더 컷기 때문에 그의 더러운 성추행 행위를 지난 몇십년간 덮어 두지 않았습니까? 그를 지탄하는 모든 문인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의 양심에 한번쯤 물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한가지 다행인것은 저늙은 괴물시인 고은이 노벨상이라도 받게 되여 상받는 현장에서 벌령누어 "야 니들이 여기 좀 만저줘"하는 망나니 짓은 보지 않게 되여서 천만 다행이다.


이노병은 시를 좋아한다.1957년 중반 10대때 김소월의 시집을 끼고 살았다.  전쟁후 모든것이 사라져 내 자신이 노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손에 넣을것이 없든 시절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나는 시 한구절 주절이며 현실에서 도피해 환상의 세계에 빠져 들어가 허우적 거리다 잠들고 다음날 아침이면 가방들고 일터로 나갔다가 저녁이먄 학교로 향했다.


그시절 한국의 저명한 문인들은 명동에서 막걸리 한잔 기울이며 전쟁으로 페허가 된 한국에 태어남을 원망하며,  시를 쓰고 노래를 불렀다.EBS방송은 명동백작이라는 다큐로 전쟁후 암담한 그시절을 재조명해주었다. 문인들만 그런게 아니었다. 현실의 암담함을 느끼는 젊은층은 가난한 한국에서 태어난 자신을 원망하며 구미에서 태어나지 않은 자신의 가난한 신세를 한탄하며 살다가 30이 넘어서야 지난날 자신의 행동에 무엇이 잘못되였는지를 깨닫고 보수적인 사고를 가진 한국인으로 변해갔다.


전란후 혼란의 시기에 명동에서 활약한 박인환 시의


목마와 숙녀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바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木馬)를 타고 떠난 숙녀(淑女)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主人)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少女)는
정원(庭園)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않는다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않아도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바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한다
두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박인환의 시 "숙녀와 목마"를 읽을때 마다 나는 왜 그가 한국이나 중국의 저명한 시인들을 건뛰어서 저먼나라 영국의 시인이었든 버지니아 울프를 등장 시켰는지 궁금하다.  유럽백인들은 자신과 닮은 백인종외 다른 인종들인 환인종이나 흑인종의 사람들은 사람이 아닌 짐승 취급 하는데 말이다.  그의 이시 배경을 해설한 한 사람은  6.25 전쟁으로 잿더미가된  한국의 현실에서 박인환은 정신질환에 시달리다 강물에 빠져 스스로 생명을 끊은 버지니아 울프의 비극적 삶과 자신이 살던 시대를 동일시했다고 보고 있다.


이와함께 박인환은 영국의 버지니아 울프와  프랑스 작가 장 콕토(1889~1963), 이탈리아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를 좋아했다. 그도 젊은 시절의 내 세대들이 격은 것 처럼 한국에서 태어남을 원망해서 아시아인들 보다 유럽인들이 선망의 대상이 되였든 것이었을까?




미국으로 이민후 많은 세월이 흐른후, 1998년부터 나는 거의 매년 고향을 찾아갔다. 역이민을 생각하면서.그리고 세월이 흘러도 시를 좋아하기는 변함이 없었다. 첫번째 고향가기전해 온라인에서 가입한 시인 카페에서 초대를 받아 시인모임 행사에 참여했다. 회장은 그당시 정권의 실세인 한 장관의 동생이었다. 나를 안내한 한 여류 시인은 행사에 참석한 한 동료 여시인을 지목하며, 저기 저애, 회장의 애인 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자 회장이나 애인이나 다 부인과 남편이 있으니 그들의 관계가 내연의 관계라고 했다.


그후 한 문인카페에서 시인등단의 기회라고 시 한편 써서 보내라고 이메일이 왔다. 그래서 시한편 써서 보내자 시 부문 당선 되였다고 연락이 왔다. 이와함께 문인지에서 츨판하겠다고 했다. 나는 당연히 그것으로 등단의 절차가 끝난것으로 알았으나 등단이 되였으니 백만원을 내라고 했다.  내 내답은 간단했다. 백만원짜리 등단 이라면 사절한다고... 그러자 이사람 저사람으로 부터 이노병이 한국에서 오래전에 떠나가 현실을 모른다면서 등단에 백만원은 한국에서 공식비용이라고 하면서 등단심사 교수님에게 수고비와 출판비에 그만한 돈은 당연한 경비라고 했다.그리고 추천 교수님 만나러 갈때는 술한병 사들고 오라고 해서 8군영내 들어가서 시바스 리갈 한병 사들고 교수님과 만나서 전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도 한심한 짓을 한것이었다.


백만원이면 그당시 천불인데..망설이자 나의 열성 팬들이 나도 모르게 대신 내주었다. 그래서 팔자에 없는 문인으로 등단을 하면서 두번 다시 문인들의 모임에 나가지 않는다. 백만원이면 누구나 문인이 될수 있는 세상에서 등단한 문인들의 세계는 돈으로 썩어서  돈 썩는 악취가 진동해서 코를 막을 정도로 부패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썩지 않은 순수한 문인들과 단체들이 있겠지만 말이다, 대부분 한국의 문단은 돈으로 연결고리가 맺어져 있다고 보면 과히 틀리지 않는다고 말할수 있다.


나는 백만원 내고 문인으로 등당한후 문학직품을 거의 읽지 않는다, 시도 수필도 쓰지 않고 대신 잡문이나 쓴다. 돈과 마음과 어떤 이는 몸까지 챙겨주고 등단한 문인들이 쓴 문학작품에서 역겨운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문인들의 성추행과  함께 연극 연예인들의 추잡한 성추행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이제 한국드라마도 멀리 할때가 온것 같다. 요즘 이노병은 직업군인의 질병인 이명증이 심해져서 운전도 하기 힘들어져 방콕으로 지내다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 노래가 된 시 명동백작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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