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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host Warrior
  • 오를리 (orullee001)

인간이 견디기 가장 큰 고통
09/14/2017 18:09 댓글(10)   |  추천(25)

지난 4월 나에게 고통을 주는 치아를 치과의사는 인정사정 없이 3개를 제거했다.그러자 당장

밥을 먹기가 힘들어졌다. 어금니가 모두사라진 입으로  밥을 씹자 어금니가 있든 자리에 밥알이

들어가 밥을 씹을때 밥알이 여지저기 그냥 굴러다닌다. 밥을 씹을수 없으니 밥을 먹기가 영

힘들어졌다.짧게는 20여년 전만해도 김치냄새 난다고 멸시를 받든 김치를 놓고 요즘 세계인

들이 김치에 열광하는 이유는 김치 유산균이 장수식품이라며 높이 평가를 해주고 있어서

뿌듯한데, 그렇게 좋다는 밥도,  장수 식품 김치도 씹어 먹을수가 없으니 적당히 씹어 위장

으로 넘길수 있는 쌘드 위치를 만들어 먹거나, 아니면 왈맛에서 냉동 TV음식을 사다가

먹었다. 


인간이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중의 하나가 먹을 음식이 없어서  먹지 못해서 격는 배곱음

이다. 내가 시도때도 없이 가끔 한국군에 징집당해 대전육근 통신학교에서 4개월반 배곱

았든 이야기를 쓰는데...그때 격은 배곱았든 경험이 이민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가

되였다.


북한의 김일성은 자식과 손주와는 달리 인민에게 이밥에 고깃국을 먹이겟다는 약속을

남발했다. 그래서 1968년에 청와대 까부수고 박정희 전대통령 목따러 왔다는 무장공비 

김신조목사와 친분이 있어 사실확인을 한적이 있다. 그는 60년대만 해도 북한은 배곯는

인민이나 군인은 없었다고 했다, 남한 처럼 보릿고개에 굶어죽는 인민이 없었고 더군다나 

인민군은 한국군 보다 그때만해도 배부르게 잘 먹었다고  했다.


그러나 김 일성의 아들 김정일이 집권하자 그는 북한인민 3백만이 굶어죽어도 눈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주체사상의 창시자 황장엽 선생은 김정일은 인민이 배가 곱으면 딴생

각을 하지 않아서 북한 정권에 대한 도전은 인민들이 생각조차 하기 힘들다며 정권유지

에 인민의 배곱음을 이용했다는 증언을 했다.


음식이 있어도 이가 없어서 먹을수 없어 격는 배곱음, 이런 고통은 그야말로 배부른 고통이다.

왈맛 냉동 음식을 계속 먹다가 보니 하루 이틀도아니고 질려서 먹을수 없어서 이것저것 사다가 먹을때

막내딸이 전화를 해서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다. 그래서 아빠는 요즘 이가 없어서 밥을 못먹고 엄마는

목과 팔이 아파서 음식을 만들지 못한다고 하자, 당장 음식을 온라인에서 주문해 보내주기 시작했다.

오늘도 12개가 담긴 음식이 싱싱한 상태로 대용 ICE에 채워져 배달 되였다.

왈맛 냉동 음식과 중량은 똑같이 14 온스다. 그러나 차이는 그맛에 있어서 딸이 보내주는 음식

은 그맛이집에서 만든 음식 처럼 맛이 있어서 질리지가 않게 먹을수가 있어서 장말 다행이다.

성격이 급한 이노병은먹고 싶은 음식은 아내가 해주기를 기다리기 보다 내가 직적만들어 먹었다.


그러나 나이들고 치아가 없어서 그런지 음식만들 기분도 기력도 없어서 딸이 주문해서 보내

주는 음식을 먹으며 8월달에 주문한 의치가 10월4일 VA병원 치과에 도착할때까지 견디는

수밖에 없다.

냉동 음식 사이 빅맥, 와퍼를  돌려가며 먹다가 지난 월요일 Arvys 쌘드위치를 사러 갔을때

음식을 주문하고 서서 음식이 나올때를 기다리고 있을때 귀엽게 생긴 어린 흑인 여점원이

음료수 컵을 한개 주었다. 그래서 점원에게 나 음료수 주문하지 않았는데...그러자 귀엽게

생긴 흑인 점원 아가씨 손으로 내모자를 가르키면서 나라를 위해 봉사해서 준다고 했다.


안받을수 도 없고...컵울 받아들자 주위에 있든 나이든 백인 부부가 손을 내밀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옛날 70년 월남전 반대 데모가 미전국에서 있을때, 군복을 입고 외출나가면

반전 젊은 세대들로 부터 입에 담을수 없는 욕을 먹거나 아니면 그들이 내 군복에 침을 밷기도

했는데...세월이 흘러 반세기가 지나자 괄세받든 월남참전 미재향군인들을 보는 미국민의

시선이 달라졌다.


공짜로 준 음료수 한잔 받아 마시며, 동정을 받은 기분이 들어 기분 잡친것 같아서..찬 음료가

목으로 제대로 넘어가지가 않았다. 그때  그 느낌을 정말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몇주전 사진의 모자에 노란 미육군 기병 모자 밴드가 필요해서 검색을 하자 모자 포함해

28불이었다.기병모자 밴드가 보통12-18불인대 모자 포함 28불이어서 주문을 해서 받은

모자가 사진의 모자다. 받아보니 재질이 별로였으나 소유한 4-5개 Western Hat중 가장

멋있게 보이는 모자다.


오늘 하루도 냉동음식으로 아침 점심을 먹고 저녁은 무엇을 먹을까를 놓고 고민중일때

후배가 전화를 했다. 선배님 뭐하십니까? 나 지금 불러그에 포스팅하나 자판기로 두들기고

있지! 아 그러세요, 다음에 전화드리지요. 아 괜찮아, 자판두들기며 후배와 이얘기 저얘기로

수다를 떨은후 전화를 끊고 보니 오늘은 뜨근한 국물이 먹고 싶었다.


감자 두개 껍질을 까서 반토막 내고 얇게 썰고, 반토막 남겨둔 양파를 썰어 넣고 감자국을

꿇였다 늙은 아내가 국이 다되였다고 밥먹으라고 성화다. 잠자국을 먹어보니 이미 식었다.

냄비에 다시 넣고 팔팔끓여 참기름 한수저 넣고 고추가루 한수저 넣고 휘휘저어 밥조금

넣고 먹자 냉동음식으로 느글느글해진 위장이 시원해지면서 뻥뚤리는 감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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