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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부는 언덕
08/27/2013 05:08 댓글(14)   |  추천(13)

 

바람타지 않는 생이 과연 있기나 하던가.

 

누군들 바람부는 언덕에 망연히 서있어 본 적 없을까.

 

 

바람을 만난다는 건
내가 꽃잎이 되고 꽃잎이 내가 되는 상상과도 같이

땡그랑땡그랑 지느러미를 흔드는 풍경 속의 바다처럼
내가 바람이 되고 바람이 다시 물결이 되는 그런 시안(詩眼) 속의
작은 떨림 같은 것일 게다

 

정원 시인의 시 일부다.

 

 

 

어떤 소설 제목 하나가 떠오르자 불현듯 테하차피에 가고싶어졌다.

인디언 말로 '바람의 언덕'이란 테하차피는 LA에서 북쪽으로 두 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오래전엔 인디언들이 모여 살던 마을, 특히 세도나처럼 기가 센(자기장이 강한) 지역으로

인디언들의 성지였다는 그곳. 모하비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자리한 태고사란 절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캘리포니아 컨 카운티에 자리한 태고사를 찾아 일요일 오전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조갑상의 소설 「테하차피의 달」은 미국 모하비 사막의 테하차피에 위치한 태고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소설의 배경인 태고사는 테하차피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예일대 출신인 미국인 무량스님이 한국 목수 두 명과 함께 철저한 한국 전통사찰을 짓는 방식으로

9년여 만에 완공을 보았다는 절이다. 얼치기 사기꾼 도목수로 인해 우여곡절도 많이 겪었다는데

지금은 단청입힌 대웅전과 종각이 산자락에 두둥실 솟아있단다.

테하차피의 달 작가는 태고사에 묵언수행을 하러 모인 네 남자의 사연을 들려준다.

1박 2일 동안의 묵언수행과 법회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아 그곳에 모인 네 사람의 시점을 교차,

종합하면서 이민의 문제와 삶의 다양한 국면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더 나은 삶을 꿈꾸며 고국을 등졌지만 정착하지 못하고 벼랑끝에 내몰린 이민자들.

그는 벼랑에 내몰린 이들의 삶을 병치해서 보여줌으로써 고립된 삶 또한 이해받을 여지가 있음을,

이를 통해 개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인디언의 聖地로 알려진 테하차피는 이로써 ‘다시 시작하는 끝’을 상징하게 되며 조락과 갱생,

시작과 끝을 반복하는 인생의 국면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한여름 태양이 뜨겁게 내리쪼이는 황야를 달리고달려 테하차피 초입 둔덕에 들어서자

벌써 기갈 센 바람의 기운이 느껴졌다.

한낮임에도 어딘가 스산하니 황량한 풍경, 폭풍의 언덕만큼이나 메마른 산야만이 한참토록 이어졌다.

풍력개발단지답게 산기슭마다 하얀 바람개비가 떼지어 돌고있었다.

울렁증이 일 정도로 어지러이 마냥 돌고도는 바람개비들.

그새 태고사는 까맣게 잊고 바람의 언덕에 매료되어 차창을 내린채

윙윙대는 바람소리에 흠씬 취해버리고 말았다.

오후 내내 바람맞은 여자되어 산 언저리를 마냥 배회하다가 척박한 골짜기를 빠져나올 무렵쯤엔

어느새 평원 저만치 석양빛이 스며들었다.

암튼 이번엔 기회가 닿지 않았으나 언젠가는 꼭 한번 태고사를 다녀올 작정이다.

 

 

헌데 뜻밖에도 거기서 우리의 첨단기술력을 만났으니....

LG화학은 미국 캘리포니아 최대 전력회사인 SCE가 추진하는 에너지저장시스템(ESS)

실증 사업의 배터리 공급업체로 최종 선정됐다고 한다.

테하차피(Tehachapi) 풍력발전단지 내 '모놀리스(Monolith) 변전소'에 리튬이온 배터리를 공급하고

  2015년까지 실증을 진행한다고. 이번 실증 사업은 북미 최대 규모인 32㎿h급으로,

약 100가구가 한 달 간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과 맞먹는단다.

ESS는 발전소에서 공급받는 전력을 저장하였다가 필요한 시점에 안정적으로 전송,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핵심 장치라고 한다.

 

 

                         아름다운 기억이야 그 자체로 빛이 나는 것이지만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들 역시

되살려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

 

<테하차피의 달 작가의 말>

 

 

함께 있으면서 갈등을 겪던 사람들 중 누군가가 죽었을 때 살아남은 자는 항상

죽은 자에게 지게 되는 것 같다.

 

 

해석되지 않은 과거란, 정체를 알 수 없는 일종의 수하물 같은 것으로,

현재 삶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름대로 단단하게 쌓았다고 믿는 삶의 제방을 언제든 무너뜨릴 수도 있는

크고 작은 빈틈을 눈여겨보지 않고, 그간 살아오며 체득한 지혜와 습관대로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모양 없이 찌그러진 달은 그나마 구름에 가려 있었다.

적막하기는 낮이나 밤이나 한가지겠지만 그래도 어둠에 묻힌 산을 보노라니

마음이 조금 느긋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인디언을 만나러 갔던 거 아닐까요? 그들의 혼령이 불렀는지도 모를 일 아닙니까.”
“허허,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차상열의 우스갯소리를 영감님이 받았다.
“오시는 길에 풍력발전기 보셨죠? 테하차피는 인디언 말로 바람의 언덕이래요.

거기다 이곳이 그들의 성지이기도 했다니 잠든 저 분이 어젯밤에 무턱대고 산에 가신 건 아닐 거라는,

그런 생각도 해볼 수는 있겠는데요.”

-소설 본문중에서-

 

             

 부산소설가협회가 1985년 7월 27일부터 2박3일의 제4회 여름소설학교를

             산청군 청암면 청학동에서 열었다.

교수진은 경성대학에 재직하다 동국대학으로 가신 시인 이형기, 추리소설가 김성종, 1천만원 고료 당선

     작가로 유명세를 떨치던 소설가 김수용, 여름소설학교의 단골 강사인 부산대학교의 김준오 교수,

평론가 김중하 교수. 그 외 국제신문의 소설쓰는 최화수, 부산의 원로 소설가 최해군, 부산일보에 적을

       둔 소설가 정종수, 부산여대 교수인 소설가 이규정, 경성대의 소설가 조갑상 등이었다....

맑은 호수, 숲, 도인촌, 하늘의 구름, 은하수.... 이젠 모두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그새 떠난 이도 적잖다. 정종수도 몇 해 전에 운명했고, 윤정규 형도 지난 해 유명을 달리했다.

모두 그리운 얼굴들이다. 그리고 김준오 교수도 이형기 시인도 이제 모두 유명을 달리했다.

<부경대 강인수교수의 사랑방에서 옮김>



결혼 후 십년쯤이 흐른 80년대 초에 접어들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문학에 자질이 뛰어났던 재원도 아니며 국문과 출신도 아니며 가계에 글쟁이가 있는 바도 아니니,

어디까지나 문학의 주변인일 따름이었는데 삼십대에 이르자 문득 글쓰는 일에 솔솔 재미가 붙는 거였다.

처음엔 시를 잡고 늘어졌다. 시로 도무지 승부가 나지 않자 시조로 이동했다.

시조 초회 추천작이 바로 이때 간 청학동이 소재였다. 지금은 원본조차 잃어버린 <두류에게>란 시조...

그게 85년 가을이었다. 그해 말 중앙일간지에서 공모한 독서감상문이 당선되며 시상식에 참석차

상경하면서 써둔 산문 몇 편을 들고 갔다.

심사위원중에 수필가가 있었기 때문에 그분에게 글을 보이고 싶어서였다.

당시 문학교실 같은 게 있었던 것도 아니니 그저 제 멋에 겨워 혼자 쓰고 또 쓴 글,

그 글에 대한 조언이나 평을 받아보거나 검증해볼 방도가 달리 없었던 터였다.

제비꽃이 피는 이듬해 초봄, 서정주 선생이 주관하는 <문학정신>지에서 축하전보가 왔다.

매원선생에게 쥐어주고 온 글이 수필로 대접받으며 곧바로 천료되어

금아선생의 글에서처럼 '서른여섯 중년 고개를 넘어'설 무렵 수필로 문단 말석에 오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도 쉬운 등단 과정이었다. 게다가 요즘과 달리 원고료까지 보내주는 거였다.

동시에 그 봄 부산문화방송에서 주최한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자가 되었다.

그즈음 폭포수처럼 글이 쏟아졌다. 해서 88년도 올림픽이 열리던 여름에 첫 수필집을 상재했다.

발간된 책표지가 도시 마음에 안 들던 차 그 기분을 상쇄하려 90년도 두번째로 산문집을 냈다.

환갑 무렵에 책을 한권 묶으려던 계획이 이러저러한 이유와 변명으로 세번째...다섯번째..

어쩌다보니 나 또한 활자공해를 보탠 격이 되고 말았다.

이젠 칠순에나 장정 인쇄 제대로 된 책 한권, 마음에 흡족하니 꼭 드는 그런 책을 만들고 싶다.

충청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학교를 마치고 경상도 사람을 만나 대구와 부산에서 중년기를 보내다

가로늦게 때아닌 이민 바람이 불어 50도 한참 넘은 나이에 미국에 와 오늘에 이르른 나.

그때 청학동에서 수인사를 튼 조갑상 교수. 나이가 엇비슷했던 그는 눈이 작고 말수가 적은 젊은이였다.

이마에 손수건을 동이고는 앞장서 풀섶 우거진 숲에 길을 내가는 그와 산행팀에 동행했지만

도통 말이 없는 과묵한 경상도 사람이었던 조갑상.

그처럼 허공으로 사라져버릴 말을 아끼고아껴 십년에 한번씩 소설집을 펴내는

그의 <테하차피의 달>을 접하고는 괜스레 얼굴 붉어지며 예전 부산시대 생각으로 몇자 중언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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