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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부부싸움
07/12/2018 08:07 댓글(6)   |  추천(14)

가끔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우는 것을 보곤 했다. 주로 어머니가 동창회에 다녀오거나 아버지의 친척들이 집에 다녀간 후에 다툼이 있곤 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아버지는 혼자 외출하는 적이 없었다. 늘 어머니와 함께 다녔고, 이발소나 목욕탕에 갈 때는 남동생을 데리고 갔다. 아버지에게는 사교술도 돈을 쓰는 요령도 없었다. 아버지는 군에 있을 때도 늘 부관이 따라다니며 결재를 했기 때문에 돈을 쓰는 일에 익숙지 않았다. 어딜 가도 어머니와 함께 가니 계산은 늘 어머니 몫이었다.


어머니는 친구들과 계를 여럿 하고 있었는데, 돈만 보내고 곗날 빠지는 날이 많았다. 아마도 아버지가 어머니의 외출을 좋아하지 않아 그런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가끔은 단장을 하고 계 모임에 나가기도 했다. 어머니가 계 모임이 다녀오고 난 후, 2-3일 안에 다툼이 일곤 했다. 늦은 귀가를 트집 잡아 아버지는 곱지 않은 말투를 건넸고, 어머니는 잘 나가는 동창 남편들의 이야기를 꺼내어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는 이북에서 월남한 외사촌과 5촌 아저씨 등의 친척들이 있었다. 일가친척들 중에는 우리 집 형편이 제일 나았던 모양이다. 명절도 아닌 때 찾아오는 친척들은 늘 궁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장사를 하는데 밑천이 모자라거나, 집을 옮겨야 하는데 보증금이 없다거나, 아이들 등록금이나 수학여행비가 없는 이들이 찾아왔다.


거의 대부분 다만 얼마라도 돈을 집어주어 보냈던 것 같다. 아버지는 내 것을 내어주면서도 말을 함부로 해서 인심을 잃곤 했다. 돈을 내어주면서 일장 훈시 비슷한 사족을 달곤 했다. 형편이 안되어 신세를 지면서도 섭섭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식구들과는 외식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으며 벌벌 떨던 사람이 친척들이 와서 죽는소리를 하면 번번이 돈을 내어 주니 어머니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올 리 없다. 그러니 친척들이 다녀간 다음에는 다툼이 생기곤 했다.


친척들 중에 아버지의 6촌 동생과 외사촌 등은 늘 그때 일을 고맙게 생각하고 아버지 노후에 자주 용돈도 드리며 잘 해 드렸다.


형제들이 모두 학교에 가고 집에 남아있던 나는 두 사람의 부부싸움이 전개되는 전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말다툼이 심해지면 물건이 한두 개 깨어지는 날도 있었다. 이렇게 다툼이 있고 나면 둘 중 한 사람은 내게 누가 더 잘못했는가를 묻곤 했다. 난 그때 남의 부부싸움에는 함부로 끼어들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다. 나름 고심 끝에 내 의견을 말해 주었는데, 나중에 두 사람이 화해를 하고 나면 내가 잘못했다고 지적한 사람은 섭섭함을 표하는 것이었다. 


부부싸움에서 잘, 잘못은 반반씩이다. 분쟁의 원인을 제공했으니 잘못이고, 그 분쟁을 해결하지 못했으니 잘못이며, 정말 상대방이 못된 사람이면 그런 사람과 결혼을 했으니 잘못이다.

 

두 사람이 화해를 하고 나면 함께 손잡고 시장에 다녀와 그날 저녁에는 고기반찬을 먹곤 했다.


부모님들의 크고 작은 다툼은 돌아가실 무렵까지 그치지 않았고, 다투고 나면 자식들에게 전화를 해서 역성을 들어 달라고 하소연하는 일도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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