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 풍수와 건강 발복
  • 건일 (kj3624)

역사적인 날
12/08/2016 13:12 댓글(1)   |  추천(6)

오늘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여부가  결정되는 날이다. 아마 대법원에서 계류중인 박근혜 당선무효소송이 정상적으로 끝났으면 이런 날이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국가기관에서 부정댓글로 대선에 개입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당선을 했다는 소송은 원칙적으로 선거후 6개월에 마쳐야 하는데 대법원은 아직도 쥐고 있는 것이다. 아마 조만간 대법원도 어떤 결정을 내지 않을 까 생각이 된다.

하여간 내가 살아오면서 커다란 격변의 날들이 있었다. 이는 개인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이니...

우선 내가 태어난 날이 대한민국의 헌법을 만들어 공표한 날이다. 1948년 7월 17일(음력 6월 11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태어난 날이 역사적인 날인 경우가 있다. 국민학교시절 광복절 행사에서 꽃마차를 타던 선배들이 부러웠는데 이분들은 45년 8월 15일에 태어난 분들이다.

그 후에 내게 영향을 준 큰 역사적인 날이 1950.6.25 이다. ..이날부터 1953.7.27 까지 그리고  한참 후에 까지 이다, 부친이 6,25 전쟁 중에 징집되어 제주도 훈련을 마치고 강원도 전투에 투입되어 휴전때까지 최전선에서 계셨다. 14명이 1개 분대인데 1-2개 분대가 산 하나를 두고 뺏고 빼앗기는 전투가 계속 되었다고 한다.  하여간 어린 시절에 부친은 전쟁터에 동생과 나는  조부모와 아버지 형제 들의 가족과 같이 피난으로 강원도에서 더 오지로 이동했다고 한다.  당시는 아버지가 없으니 할아버지을 따라 피난을 했다고..

하여간 6.25는 거의 4년간 아버지와 단절을 하게 하고 내 경우는 영양실조와 천연두 홍역 등을 계속 달고 살면서 죽는다고 거의 웃목에 던져 두었다고 할 정도 였고 내가 사람구실하면 손에 장을 지진다던 큰아버지의 장담을 딛고 생존하여 아직도 숨쉬고 있다.

제대 후에 부모님은 동생만 데리고 서울로 살길을 찾아 올라가고 나는 국민학교를 혼자서 다니게 되었다. 그러다가 12월에 서울로 합치고 서울에서 서울시민이 되었다. 당시만 해도 서울 인구는 200만 정도라고 할 정도로 적었고 영등포조차 서울이 아니고 주로 4대문 안이 서울의 중심이 였다.

국민학교 6학년때 4.19 혁명이 일어났다. 바로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경무대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될 정도로 가깝다. 그날은 갑자기 총소리가 들리고 좀 있으니 부모님들이 학교로 오셔서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 시작하여 나도 이웃집 어른이 있어 따라간다고 허락을 받고 집으로 가지 않고 진명여고옆에 있던 외할아버지 집으로 갔다. 거기서 수많은 사람이 보였고 어떤 분은 배에 피를 줄줄 흘리면서 양쪽에 사람이 부축하고 옮겨지는 것을 보기도 했다.

그 다음해는 졸업하고 바로 길건너의 학교로 입학하였다. 바로 옆에 있는 학교이지만 당시는 중학교도 시험을 쳐야하고 내가 다니던 학교는 엄청 경쟁이 심한 학교였다.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에서 100명 정도가 이 학교에 지원하여 30명 정도가 붙었었다. 하여간 새로운 학교는 바로 경무대와 길하나를 두고 있는 꼴이 였다. 바로 학교 뒷길이 북악산을 끼고 도는 길이라서...그러나 여기서도 갑자기 난리가 나면서 군사구태타가 있었다. 국민학교-중학교를 다니면서 역사적인 사건을 보고 자랐고 계속 고등하교시절에 한일국교정상화로 학생들이 많이 반대를 했었고 3선반대 유신반대로 내 인생의 황금기는 텅빈 창고로 버려지게 되었다. 대학시절에는 학교에 절반도 못 출석하고 졸업을 한 것 같고..어떤 과목은 교수 얼굴 딱 2번 보고 성적을 받았던 것 같다.

하여간 엄청 다사다난한 역사의 흐름 중에 중요한 현장 바로 옆에서 살면서 직접 시위현장을 보기도 하고 참여하기도 하면서 지내 왔다.  경무대의 정문 앞에서 놀이터로 노기도 하던 시절도 있었고..내가 국민학교 시절에 친구집에 가서 놀던 그 장소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살해되기도 했다.

요즈음 정유라의 레포트는 한참 좋은 것이고 우리 대학시절은 독재유지를 위한 강압으로 학교에서 휴교를 수시로 하여 학교에 들어갈 수도 없던 시절이다. 당시만 해도 대학생은 남자 8% 여자는 0.1% 정도라고 할 정도로 적었다.그것도 2-3년전 선배들은 3% 정도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대학생이 적었고...

하여간 유신 이후에 직장을 잡고 사회생활을 하였는데..어느날 새벽에 부친이 갑자기 내방을 두드리면서 박대통령이 죽었단다,,,하고 이야기를  듣고 회사로 출근하니 어수선하였다. 하여간 독재시대에 직장을 잡고 사회에서 살아남는 것도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에도 빽이 많이 회자되던 시기이지만 그래도 대학출신이 적었던 시기라서...쉽게 살아오기도 한 것 같다.

그 후에 12.12사건이나 올림픽 등을 지나면서 다시 한번 역사적인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국민의 저항이 시작되고  야당의 주장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국민들이 혁명적인 데모로 이루어진 것 같다. 하여간 누가 옳고 그르고는 사람마다 다르다. 법을 다루는 사람이 보는 관점에서 다르고 국민이 가지는 감정이 다르다.

여기 블로거들을 보면 몇분은 엄청 존경하는 식의 이야기를 매일 글로 올리는데..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지? 미국에서 여론을 박근혜 찬양으로 만든다고 탄핵의 투표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죄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더 웃기는 것은 누구나 뉴스를 보면 판단할 정도의 수준은 되는 것 같은데...


하여간 대한민국은 부정부패의 사슬을 끊을 새로운 결정을 할 것이다. 조단위의 국가예산을 최순실과 그 측근들이 마음대로 쓰고 사업을 벌이게 지원해준 것이 가장 큰 문제이고 문화융성이란 요상한 말로 차은택이나 그 주변에 수천억씩 예산을 줬다고 한다.

하여간 죄가 있던 없던 상관없이 법에서 죄를 판정할 것이고 누가 흰 옷처럼 깨끗하다고 해도 ..그 분만이 알 것이니...일단 강하게 찬양고무하더라도 투표는 이루어 질 것 같고 탄핵이 부결되거나 가결되면 새로운 약사가 쓰여질 것이다.

 탄핵이 가결되면?

탄핵이 부결되면?

나라가 어디로 갈지? 국민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생존할지?

내 경우는 미국으로 미리 자식을 보내서 정착시켰고 우리 부부도 미국에 있어...탄핵이 되던 안되던

죽이던 살리던 별 영향이 없다.

 다만 진실이 통하고 믿음이 통하고 희망이 있는 나라로 방전하면 좋을 것 같다. 부정비리가 없어지고

언론자유가 보장되는 나라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되면 좋을 것 같다. 대통령의 개인이나 측근을 위한 정부가 아니라....



기타 카테고리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