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 풍수와 건강 발복
  • 건일 (kj3624)

성경속의 음택
05/15/2016 22:05 댓글(0)   |  추천(1)

이스라엘민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축복의 문제이다. 아담의 자식인 카인과 아벨에서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결국 이때문에 형제간에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제사를 받고 안 받고가 생존의 문제였던 것 같다. 그 후에도 형제중에 한사람에게만 축복을 하는 바람에 사건이 나기도 했다.


 


창세기 50장은 창세기의 마지막 장이다,  49장에 야곱이 죽는 장면이 나오며 유언이 나온다.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이 굴은 가나안마므레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의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 .

야곱이 죽으면서 조상의 땅, 조상이 묻힌 선영의 조상발치에 간절히 가기를 원했다. 가나안 땅에 있는 굴에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 그리고 이삭과 리브가 레아 등이 영면하고 있는  곳에 가기를 바랐다. 그곳이 명당으로 조상의 그늘로 들어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요셉은 숨을 거둔 그의 아버지에게 마지막 경의를 표합니다. 야곱의 장례는 아브라함이나 이삭의 것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성대하게 이루어졌습니다. 40일간 약재료를 넣고 애굽 백성들이 70일간 애곡하는 것은 이 장례가 국장(國葬)으로 이루어졌음을 말하며 동시에 이것은 애굽에서 요셉의 위치와 위광(威光)을 보여줍니다. 당시는 조상을 미이라로 만들어 나중에 부활하는 몸을 가지게 한 것 같다. 그래서 40일 동안 향과 약으로 시신을 처리하고 장례를 70일간에 걸쳐서 지낸 것 같다. 아마 먼 거리의 조상발치로 가기 위한 것일 것이다. 이는 부가 뒷받침해야 가능한 일이다.

장례에는 많은 돈이 들어간다. 쉽게  경조사에는 많은 사람이 오고 먹고 자고 해야하는 비용이 들기 시작한다. 70일간 많은 사람이 먹고 자려면 그만치 많은 경비가 들어가고 자손들이 조상의 영면 장소로 가는 거리나 기간도 엄청 많은 비용이 들어 갈 것이다.


요즈음은 3일장이나 4일장 5일장 정도가 보통이다. 장례절차가 미국은  비교적 유족이 힘이 덜 들지만 한국의 경우는 24시간 계속 장례식장에 머물러야 한다. 아침부터 밤늦게오는 분의 접대와 곡 절 등으 장례절차를 하는 것이 엄청 육체적으로 힘이 드는 부분이다.  현시대는 국장인 경우 최대 9일이며 보통 5일장이나 6일장 7일장 등 장례위원회에서 결정하게 된다.


풍수를 배우면서 많은 묘지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안동 주변에는 이름난 양반문중이나 조상묘들이 많이 모셔져 있어 풍수의 현장 실습지로 되기도 한다. 실제 명당과 별 상관이 없지만 행태를 도출하여 명당이라 하기도 한다.

전부는 못 보았지만 의성김씨, 진성이씨, 하회유씨, 동래정씨, 호박골심씨(청송심씨)의 조상묘나 시조묘 등을 수십곳을 살펴본 적이 있다.

이분들은 대부분 양반이 였고 부를 지니고 있어 장례식이 좀 길었던 것 같다. 마을 뒷산에 묘자리를 찾아 묻는 것이면 별로 시간도 많이 안 들고 비용도 적겠지만 조상선영에서 멀리 떨어지면 시신을  들어메고 수십킬로나 수백킬로를 이동해야 한다.

영양에서 살던 정진사분이 돌아가시고 안동으로 묘자리를 잡는 과정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분은 조상선영으로 가지 않고 좋은 곳을 찾아 모셨다고 한다. 정해진 묘자리가 없이  여러 지관을 대동하고 마을 사람을 꽤 많이 대동하고 시신을 모시고 계속 길을 가게 된다고..하루 5-10킬로 내외로 이동하고...중간 중간 내려서 먹고 마시고 주변 산에 명당을 찾으면서 이동을 하는데..영양에서 안동까지 대략 120킬로 정도 된다고 보면된다. 이 거리를 약 2달간에 걸쳐서 이동하면서 장례를 치웠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당시에는 서민들은 먹고 사는 것이 엄청 힘이 들던 시기라고 양반집에 상이 나면 동네잔치가 되는 식이고 여유있게 광을 풀어 몇달간 음식을 풍족하게 먹을 수 있게 했다고 한다. 물론 적당한 노임도 챙겨줬을 것이고...

야곱은 죽은 후에 70일간 곡을 하고 다시 장례절차가 남은 것이 진행되는데...곡하는 기한이 지나매 요셉바로의 궁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원하건대 바로의 귀에 아뢰기를 우리 아버지가 나로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파 놓은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 하였나니 나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 내가 다시 오리이다 하라 하였더니 바로가 이르되 그가 네게 시킨 맹세대로 올라가서 네 아버지를 장사하라하여 긴 거리를 형제들과 병거와 기병 등 대규모 인원이 가게되고 간 후에 요단 강 건너편 아닷 타작 마당에 이르러 거기서 크게 울고 애통하며 요셉이 아버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애곡하였더니 ...다시 도착 후에 일주일간 애도기간을 가졌다고 한다, 아마 장례절차는 100일이 훨씬 넘을 정도고 수많은 사람이 먹고 마시고 이동하고 하니 풍부한 재산이 없으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정진사의 시대는 500년 정도 전이지만 야곱은 수천년 전이란 차이점은 있어도 장례가 수십일씩 걸리며 엄막대한 경비가 들어가고 이런 장례는 특수한 왕 수준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을 것 같다.

또 흥미로운 것은 명당의 개념과 조상발치에 들어가려는 부분은 어디나 같은 것 같다.


  


 


 


 


 


 



 


 





 


 


 


 


음택풍수 카테고리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