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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속의 4.19
04/18/2016 21:04 댓글(4)   |  추천(3)

내가 어릴적에 살던 동네는 누하동이라 하는 곳이고 여기서 국민학교 1학년 12월부터 대학까지 살았던 것 같다. 국민학교는 청운국민학교라고 하는 학교이고 1961년에 졸업을 하였는데 진명여고의 강당인 3.1당에서 졸업식을 하고 당시 축사를 왔던 분 중에 한분이 경복의 교장선생님인지 교감선생님인지 였다. 국민학교 바로 길건너에 도상이란 상고가 있었고 그 아래로 국민학교 정문 바로 앞쪽에는 경복중고등학교가 있었고 학교 뒤쪽에는 맹아학교가 있었고 조금 나가면 진명여중고가 있었다. '대부분 학교들이 10분 내외면 도달할 정도로 가깝게 있었고..어느  정도 교류도 있었던 것 같다.

하여간 국민학교 6학년때에 4.19를 직접보고 중학교 1학년때는 5.16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고 있었다. 4.19의 발단은 3.15부정선거로 듣고 있었고 당시에 선거부정에 항의하다가  발전된 것이라 한다. 당시는 신문과 라디오 방송이 전부 였고 테레비젼은 거의 없고 사직공원에 1대가 설치되어 가끔 밤에 가서 수백명이 모여서 봤던 것 같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중에 갑자기 총성이 마구 들리더니 1-2시간 지나면서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데리러 오시고 나는 부모님이  안 오셔서 마침 동네어른이 있어 같이 따라간다고 하고서 하교를 하게 되었다. 집으로 가려고 나오니 많은 사람이 있었고 어떤 분들은 배가 피투성이가 되어 양쪽에서 부축을 받으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집으로 가지 않고 진명여고 정문 바로 옆에 있던 외할아버지 공장으로 가서 더 보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길바닥에 앉아서 데모를 하고 있었고 시민들의 일부는 바케스에 물을 나르고 일부는  빵을 나눠주기도 하였다. 결국 몇일 지나서 교수들의 데모가 있은 후에 이승만 전 대통령의 하야 발표가 있었고 이기붕 당시 부통령 당선자의 양아들?이 부친을 사살하고 자살을 했던 것 같이 기억한다.


당시에 유정천리라는 노래가 많이 사람들이 데모를 하는 중에 불렀던 것 같다. 그 전 선거에서 거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던 분이 선거유세중에 사망하고 그 후에  3.15 선거전인 2월달에 조병옥박사가 미국에 암치료차 갔다고 돌아가시면서 만들어진 노래같이 생각된다.


가련다 떠나련다 어린아들 손을잡고
감자심고 수수심는 두메산골 내고향에
못살아도 나는좋아 외로워도 나는좋아
눈물어린 봇다리에 황혼빛이 젖어드네
 

이곡에 당시

해공선생뒤를 이어 장면선생 홀로 두고 유석선생 떠나셨네...

자유당에 꽃이 피고 민주당에 비가오네....

피투성이가 되어서 이노래를 부르면서 절규하던 강렬한 사건은 잊혀지지 않는 추억의 한 장이다.


동창중에  청와대 바로 근처에서 병원을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총에 맞아서 여러명이 이 병원으로 피난을 왔으며 친구 부친은 유명한 외과의사(이미자씨가 교통사고가 나서 이 병원에서 수술하기도 했다고 함)여서 총상을 입고 들어 왔던 환자를 여러명 수술하고 잘 치료하고 무료로 봉사를 하였다고 들었다. 아마 당시 총상을 입었다가 죽음에서 살아남은 분들이 계속 병원에 연결을 하면서 좋은 인연을 맺었다는 것 같고...

하여간 좋은 동네인지? 아니면 위험한 동네인지는 모르나 그 후 5.16이나 김신조 사건 등 역사적인 사건을 직접 현장에서 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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