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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일 (kj3624)

태실( 胎室)과 동기감응론(同氣感應論)
04/15/2016 19:04 댓글(0)   |  추천(0)

중국 한나라 때 미앙궁에 커다란 구리로 만든 종이 있었는데 갑자기 구리종이 치지도 않았는데 울리기 시작하여 기이하게 여겨서 조사를 시켰더니..종의 원료인 구리가 나온 아주 멀리 떨어진 광산이 무너지면서 종이 자기 고향의 사고를 애달파 울었다고 한다. 이것이 동기감응의 이론이다.  동기감응론(同氣感應論)은 풍수지리학(風水地理學)의기본이 되는이론으로  묘(墓)의  좋은 기운이나 나쁜 기운이 후손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말하는 것으로 발음(發蔭) 발목.(撥木)또는 동기감응이라고 한다.  좀더 보완하자면 묘지의 지기가 있어 우리가 묘지를 쓰면 그 묘지의 그림이 우리 머리속에 기억이 되고 묘지가 좋은 기운이 나오면 힘이 좋아지면서 잘 되고 묘지가 아주 나쁜 살기를 발산하는 것이면 생각할때마다 무의식중에 나쁜 기를 발산하여 힘이 약해지면서 잘 안 풀리는 것으로 보면 좋다. 우리가 고호의 그림이  명작이라하고 엄첨 비싸게 거래되지만 실제 고호는 정신병자로 그림에도 강한 살기가 스며들어 보거나 기억하는 사람에게 나쁜 기운을 발산한다. 내 경우는 기를 하다보니 무척 기에 대하여 예민하여 고호그림옆에 1시간 정도 있으면 기절하다 시피 잠이 들기도 한다.

그와 비슷한 것으로 조선조에서 왕자가 태어나면 태를 좋은 명산에 모셔서 태가 좋은 기운을 받아 살아있는 태의 주인에게 힘을 준다는 동기감응의 이론을 이용하였다. 그런 태실 중에 하나가 예천에 있어 풍수를 공부하던 시기에  방문한 적이 있다.  

경북 예천군은 군 명봉리 사도세자 및 문종 태실터가 그 곳이다. 보물급으로 알려진 문종대왕의 태항아리와 사도세자의 태항아리는 1930년대 이왕직 예식과에 의해 서삼릉으로 이장되면서 이곳의 석물들은 훼손돼 문종 태실비와 사도세자 태실비만 명봉사에 안치돼 있다고 알려졌다. 최근 발굴 조사를 실시한 결과 온전하게 남은 석함과 뚜껑 그리고 개첨석, 횡죽석 등 다량의 석물이 출토됐다.  풍수를 배우던 시기에 이곳도 방문하여 살펴보던 곳이다.

문제는 명산이 풍수적으로 좋은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좋은 곳에 묻어야 좋은 지기를 받아 동기감응에 유리하지 나쁜 곳에 태를 묻어서 나쁜 지기를 받으면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된다.

 

내가 풍수를 배운 선생은 친구로 고등학교시절이전부터 한학을 하고(집안이 양반가문으로 양반교육을 어느 정도 받음) 고등학교시절에도 논어 맹자 사서삼경 등을 자주 거론하기도 하면서 풍수도 공부하였던 것 같다. 수십년이 지나서 우연히 그 친구에게 풍수를  배웠다. 당시 친구는 40여년간 풍수를 공부하고 전국 많은 산을 설렵하여 경험이 많았다. 친구는 지기를  심안으로 보는 수준이여서 최고 수준의 풍수를 하고 있다.  처음 풍수를 배울 적에는 묘를 수백개 이상 올라가면서 묘지의 기를 느끼게 하고 그 기가 수맥이니 양기니 음기니 명당이니 하는 구분을 배웠었다.

하여간 현재 풍수를 하는 분들 중에 지기를 읽는 분은 극소수로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적으며 대부분은 패철이나 형상을 보는 식이라 실제와 차이가 많이 난다.

풍수는 가장 고도의 과학의 한부분으로 전자자기장의 한 분야로 보면 좋을 것이다.


하여간 당시 친구는 풍수에서 동기감응에 대한 것을 이야기 하면서 발복에 좋다고 하여 손톱-발톱을 깍아도 절대로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전부 오른 손 왼손 손톱을 별도로 모아 보관하였다. 그리고 이발을 가면 항상 자기의 자른 머리카락을 모아서 달라고 하여 가져와서 손톱과 머리카락을 사람처럼 방향을 잡아 상자에 넣어 좋은 명당에 매장하곤 하였었다.

내 경우는 풍수를 배우면서도 기 위주로 변형을 시키면서 동기감응보다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여 명당에서 직접 기를 받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명당에서 잠을 자고...명당에서 쉬고 명당의 기운을 섭취하고...


하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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