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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약(空約)
02/03/2019 17:02 댓글(0)   |  추천(5)

장인 어른은 6.25 당시 입대하여 통역장교로 근무를 하셨다. 아마 1.4후퇴란 것이 있는데 장인 어른은 1월 1일 전방에서 지휘부대에서 집차를 타고 전방 순찰을 나서서 일부는 산으로 올라가고 일부는 차에서 지키다가 길에서 행군하는 3열 종대의 대 병력을 발견하고 행열을 뚫고 빠르게 남하하다가 앞쪽으로 나오니 중공군들이 놀래서 따발총을 쏴대고 있어 운전하던 장교가 허벅지에 총알을 맞아 옷을 벗어 지혈을 시키면서 내려왔다고 합니다. 내려 오는 중에 고급장교가 잡혀있는 것도 보면서 

중공군 부대를 뚫고 내려와서 보고를 해서 중공군의 참전을 알렸던 것 같습니다.

그 보고가 1월 1일이지만 서울에 중공군이 들어온 것은 1월 4일경이라 1.4후퇴라고 합니다.


그 후 전쟁이 끝나고 중령으로 근무하시다가 도로공사가 창설되면서 모시던 장군이 예편하면서 도로공사 창설요원으로 군복을 입은 채로 참여하였다가 예편을 하고 도로공사에서 10년 이상을 근무하다가 퇴직하셨습니다.

2월 28일이면 도로공사 창립 50주년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경부 고속도로의 비사들을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도로공사를 만들면서 장비를 들여와야하는데 당시 달러가 없어 차관을 들여오라는 지시가 내려졌다고 합니다. 7만불을 필리핀에 있는 세계개발은행인지에서 받아 오라는 것인데 장비를 추려보니 70만불 정도가 나와서 접촉하니 유럽친구가 하나 와서 관광시키고 불고기 먹이고 한복 선물하고 능력을 보여달라고 하였더니 70만불 전액을 바로 주겠다고 연락이 와서 도로공사의 장비를 갖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통역장교라서 영어가 되니 그런 면에서 장비과장을 하면서 일 처리를 했다고 합니다.

하여간 경부고속도로는 도로공사의 주임무가 되는 대공사였던 것 같습니다

경부고속도로는 대전서 부산과 서울서 대전이 별도로 공사를 했는데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양쪽이 완공되고 뜸새를 추가 공사를 하여 연결시키는 기념식이 1970년 7월 7일 이였다고 합니다.


대통령의 축사 중에 이 고속도로는 여러 국민의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10년만 통행료를 받고 그 후에는 무료로 이용하겠다고 약속을 하였지만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고속도로는 유료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외국에 비하여 아주 짧은 기간에 최적액으로 건설을 했지만  땅의 수용으로 많은 사람이 땅을 째앗기고

부실 공사로 지속적으로 땜빵을 하거나 재 포장을 하는 등의 시향착오가 있었지만 그런 공사방법도 좋은 것일 수 있습니다. 어느 도로든 잘 먼들어도 망가지고 부실공사를 해도 망가지지만 한국처럼(당시) 돈도 물자도 없는 경우는 만들어 놓고 수리해 가면서 쓰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여간 박 전 대통령이 약속한 무료도로는  공약(空約)이 되었지만 경북 고속도로 공사의 경험이나 실적이 나중에 중동의 대규모 토목공사의 발주와 시공의 계기가 된 것일 것입니다. 거기다가 강압적으로 회사마다 공기를 마치게 경쟁적으로 몰라 간 것도  공사기간을 단축시키는 힘이 되고 결국 돈을 벌게하는 힘이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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