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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딸의 생일선물
12/12/2016 21:12 댓글(0)   |  추천(16)


아내와 딸의 생일선물

 

나의 직계가족은 나와 아내, , 아들, 며느리 모두 다섯이다. 우리의 생일은 한 계절에 모여 있어 한꺼번에 선물을 살 수 있다. 아들, 며느리 그리고 나의 생일은 6, 7월이고 공교롭게 며느리와 나의 생일은 같은 날짜다. 아내와 딸의 생일은 일주일 상관으로 12월이다.

 

나는 대범하고 무심한 성격으로 낯간지러운 선물을 못하고 살아왔다. 평생 그들을 먹여 살려온 정성과 평소의 은근한 관심으로 충분하고 매해 돌아오는 생일의 선물은 구태여 필요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불현듯 가족 간이라도 사랑과 관심을 표시하는 형식과 문화가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죽더라도 가족의 나에 대한 이미지를 그립고 애절하게 만들어 놓아야 할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아내와 딸의 생일을 맞아 오 헨리의 소설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듯 생일선물을 사러 다녔다.

 

막상 무엇을 선물할 것인가를 고민하다보면 평소 내가 가족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가를 절감하게 된다. 아내와 딸이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꼭 집어서 알 수가 없다. 또한 그들이 귀족적 취미를 가지고 있다면 유명상표의 물건을 사는 데는 나의 예산사정이 허락하지 않는다. 귀걸이를 살까, 발찌를 살까, 심지어 호화찬란한 언더웨어를 살까를 주저하며 하루 이틀이 덧없이 흘러갔다.

 

그런 과정에서 선물의 치수가 맞지 않아 낭패를 보는 선물 말고 누구에게나 맞는 (One size fits all) 선물을 생각하고 스카프를 사기로 했다. 캘리포니아의 겨울 날씨는 의외로 음산하니까 생일선물로 스카프는 제격이라 판단했다.

 

쇼핑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우선 시장조사부터 했다.  나는 가산디지털단지에 마천루로 지어진 아울렛 몰로 갔다. 스카프는 소품이라 상가가 모여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곳의 매장들을 다리 아프게 돌아 다녔다. 최대한 고급품을 싸게 사야 한다는 강박관념뿐이었다. 어느 가게에 들렸더니 이름도 생소한 루이까또즈(Louis Quatorze) 스카프가 가격도 무난하면서 고급 스카프라 했다.

 

나는 의사결정의 범위가 축소됨을 느끼며 삼성동의 현대백화점으로 갔다. 점심 전에 쇼핑을 시작했는데 오가는 전철의 긴 시간으로 이미 땅거미가 지는 때였다. 현대백화점은 곱게 번쩍이는 바닥의 대리석만큼이나 고급스러워 보였다. 1층의 어느 코너에서 스카프를 이리저리 뒤지며 자꾸 여러 가지를 물어봤더니, 격식 있어 보이는 판매원은 귀찮은 듯 일언지하에 얼마짜리의 스카프를 원하느냐 반문했다. 고급 스카프라고 보여주는 스카프의 가격은 천차만별이었고 심지어는 몇 백만 원짜리도 있었다. 과연 사치소비의 강남임을 절감했다. 뒤돌아 나오는 내 등이 부끄러워 발걸음을 재촉하여 나왔다.

 

다음 날 나는 왕복 세 시간이나 걸리는 그 먼 길의 아울렛에 가서 어제 보아 두었던 캐시미어 루이까또즈 스카프를 두 개 샀다. 중국 내 몽고 동북부 지역의 어린 산양의 털만을 모아 만들었다고 점원은 강조했다. 시험을 홀가분하게 치른 수험생이 되어 저녁에 쇼핑백을 뜯어보았더니, 아뿔싸 딸의 것이 캐시미어 스카프가 아니었다. 실수인지 고의인지 비슷해 보이는 폴리에스텔 소재의 급이 낮은 스카프를 함께 끼워 준 것이었다. 나는 바람이 몹시 부는 다음 날 그 먼 길을 후드를 뒤집어쓰고  또 다시 가서 물건을 바꿔 왔다. 스카프 생일선물을 사는 데 온전히 삼일이 소요된 셈이다.

 

우체국은 바로 집 앞에 있다. 캐시미어 스카프와 같이 가벼운 것도 미국까지 등기로 부치는 데는 물건 값의 절반만큼이나 든다. 일반으로 부쳐도 가긴 가겠지만 오랜만의 생일선물이 불확실하고 더디게 송달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등기로 부쳤다. 아내와 딸은 따로 살고 있어 각각 따로 부쳤다

 

아내의 스카프는 일주일도 안 되어 생일 이틀 전에 정확하게 배달되었다. 그녀에게서 카톡이 왔다. 주고받은 카톡은 다음과 같다.

이곳은 한겨울처럼 집안이 썰렁하니 늦잠을 자게 돼요. 오늘 아침을 먹으려는데 우체부가 똑똑.... 눈을 비비고 보니 내 소포배달에 깜놀!!!! 1+1 선물 감격입니다.”

내 년엔 더 존걸로... 담이에게도 뭘 보냈는데 받았는지 궁금

ㅋㅋㅋ 담이에게도. 어데서 사셨는지 궁금하옵니다.”

마리오 아울렛

어찌 아시고, 담이한텐 백화점에서 산 걸로 하겠음. 등기로 부쳤으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겠음.”

아니야 배가 훨씬 커, 정말

 

카톡이 끝나고 아차 싶었다. 점원의 말대로 루이까또즈 캐시미어 스카프가 고급 스카프라면 기지를 발휘하여 백화점에서 샀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할 걸 후회가 되었다. 아울렛에서 샀다 해놓고 금방 비싼 고급품이라는 걸 주장하기 위해 배가 배꼽보다 훨씬 크다고 주장하는 나의 아둔함이란 내가 생각해도 우습다.

 

기를 쓴 노고 끝에 해 준 선물이 별로 인정을 못 받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내가  진정한 생일선물을 죽기까지 해준다면 백화점과 아울렛을 귀신같이 구별하고 차별하는 나의 아내도 진정으로 고마워할 것으로 믿는다. 일란성 쌍둥이 구별 못하듯, 백화점과 아울렛을 구별하지 못하는 우리 딸은 더욱 더 감격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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