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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할아버지
11/27/2016 11:11 댓글(0)   |  추천(11)

(퍼온 글)


이상한 할아버지 - 정영휘

  ‘이상한 할아버지’는 어느 초등학교 다니는 손자가 할아버지에 대해 쓴 글의 제목이다.

내용이 시대상을 단적으로 반영하는 것 같아 흥미를 자아내게 한다.

내용을 요약하면 대충 이렇다.

  할아버지는 분명 똑똑하다. 할아버지가 강의하시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어떻게 저렇게 자연스럽게 강의를 하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똑똑하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다. 컴퓨터에 있는 파일을 어떻게 복사하는지 알려드려도 금방 까먹고 또 물어본다. 자신의 휴대전화에 있는 어플도 삭제할 줄 모른다. 이런 할아버지가 한심하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 할아버지가 전자기기를 잘 사용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나한테 자꾸 물어볼 테니 말이다. 

  이 할아버지는 손자의 글을 읽으면서 생각을 했다고 한다.


첫째, 녀석이 한심한 할아버지를 걱정한 이유에 대해서다. 그는 할아버지가 힘든 삶을 살 거라는 것 보다, 자꾸 물어보고 귀찮게 할 것을 걱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게을러지지 말아야한다는 것이다. 컴퓨터를 만지다가 문제가 생기면 딸이나 손자를 불러 해결할려고 했지, 스스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자책이다.

셋째, 미래를 살아갈 노인들의 자세에 대한 생각이다. 이 대목에서 이분은 다른 노인의 글을 인용하며 자신의 심정을 고백한다. 

  참 열심히 멋지게 살았다. 65세에 정년퇴직을 하면서 이젠 편하게 즐기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 내 나이 아흔 다섯이다.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30년이 흘렀다. 30년, 열심히 했다면 뭣이든 해 냈을 게 아니가? 지난 30년이 한스럽다. 작심을 했다. 지금 당장 영어공부 시작하기로….

  이 이상한 할아버지는 이 글의 종장을 이렇게 끝 매김 했다. 나 이제 갓 일흔을 넘었으니 오늘 작심을 해야겠다. 먼저 컴퓨터에 문제가 생기면 녀석에게 묻기 전에 내 스스로 알아내는 노력부터 할 참이다. 한 번에 안 되면 한 번 더하고 늦어지면 기다리면서 말이다.

 
  예전엔 글자를 알고 책을 읽을 줄 알면 우선 무식쟁이는 면했다.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사람, 다시 말해 글자를 모르는 사람은 무식자로써 비하(卑下)의 대상이 되었다. 또 고전이나 문학 전집을 읽는 것이 최고의 지성과 교양을 함양하는 기본이 되고, 붓글씨나 펜글씨의 글쓰기 솜씨가 그 사람의 지적 수준을 대변하는 척도이기도 했다.  

  어느 사이엔가 이 기준은 확 바뀌었다. 아무리 사서삼경(四書三經)에 통달하고 칸트와 쉐익스피어를 깊이 공부했다해도,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다룰 줄 모르면 앞에서 등장한 노인들처럼 무능하고 하찮은 존재로 취급되기 십상이다. 몰론 여기서 무능하다는 말은 무식하다는 말은 아니다. 여기 등장한 손자도 할아버지의 강의를 들었을 땐 할아버지가 매우 똑똑하다 하지 않았는가. 

   나는 얼마 전에 스마트폰을 ‘노트2’로 바꾸었다. 아직 계약기간이 남아있어 기기 값을 매달 추가 부담해야하고, 월 사용료도 다른 노이들에 비하면 월등히 많이 내야하는 부담을 감수하면서. 하지만 실제로 나는 그 이상의 보상을 받으며 현대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갑자기 시상(詩想)이 떠오르거나 글의 소재가 생기면 당장 HP에 메모를 할 수 있고, 메시지나 카카오톡의 속도가 두 배 이상 빨라졌다. 외국에 있는 자식 놈 들과 카톡으로 공짜통화를 할 때면 돈을 번다는 느낌조차 들기도 한다. 

  이 때 문득 떠오르는 게 있다.  60년대였을 것이다. 외국에 사는 친척들과 전화통화 한 번 하려면, 동내 약국이나 우체국에 가서 줄을 서 기다렸다 차례가 돌아오면 한 통화 하는 데, 그것도 통화료 때문에 오래 얘기하지 못하고 안부 몇 마디 묻곤 이내 수화기를 내려놓아야했다. 그러던 게 불과 몇 십 년 전인데, 나의 한 세대 동안에 이 처럼 딴 세상에서 살 수 있다니, 정말 꿈속에서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전에 나는 호주머니에 문고판 책이나 신문 몇 쪽을 넣고 다녔다. 지하철에서 일기 위함이다. 그러나 요즘 내 주머니에는 신문이나 책이 없다. 스마트폰으로 각종 신문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수신 되는 이-메일도 구태여 집에 가서 컴퓨터 앞에 앉지 않아도, 아무데서나 볼 수 있어 밖에서 나도는 시간이 낭비가 아니다. 

  요즘, 나 보다 훨씬 젊은 후배들이 수첩을 드려다 보며 약속 날짜를 적고, 전화 수첩을 호주머니에서 꺼내 전화 거는 걸 보면 이건 아닌데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 지난 날 그가 한창 활동할 때, 발랄하고 영민했던 기량을 아는 터라 이제 너무 무력해진 모습에 연민을 느끼게 된다. 머리 쓰기 귀찮아서,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이대로 사는 게 편해서…, 제 나름대로 여러 핑계 꺼리를 내세워 도망치려하지만 세상이 어디 그런가. 조금만 마음을 다잡으면 얼마든지 더 편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데, 왜 굳이 뒤처지는 세상을 살며 손자들에게까지 ‘이상한 할아버지’가 되려고 하는가 말이다. 

  2013년 한국인 삶의 키워드는 원대한 미래, 국가의 발전 같은 거대담론 보다 ‘현재, 일상, 소소한 행복’을 우선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카너먼 교수는 인간의 행위를 결정하는 것은 경제적 논리가 아니라, 심리적 해석에 기인 한다는 이론으로 상을 받았다.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일상의 가벼운 느낌들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는 한 가지 더 심각한 얘기를 덧붙이고 있다.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사람일수록 은퇴한 후 우울증이나 심장계통의 질환에 걸려 사망할 확률이 7배나 높다고. 하루하루의 생활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입증한 대목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게으름 피우지 말고, 노인 티 내지 말고, 낙오자를 자처하지 말고, 방콕대학생(방에 콕 들어 박혀 사는 사람) 되지 말고, 속과 겉이 모두 꾸부정하게 되지 말고 살아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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