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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 가는 날
03/10/2016 10:03 댓글(0)   |  추천(10)


목욕 가는 날 / 정지아



빌라 입구에 들어서기도 전에 맥이 탁 풀렸다. 2층에서부터 거침없이 새나오는 고함 소리는 언니의 것이 분명했다. 엊저녁에도 언니는 수화기를 들자마자 안부인사 한마디 없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니는 엄마가 죽었능가 살았능가 궁금하도 않냐?”


손에 들고 있던 트레이닝 바지가 힘없이 주르륵 미끄러졌다. 야근을 하고 막 퇴근해 옷을 갈아입으려는 참이었다. 지난 설 직후만 해도 고질병인 관절염을 제외하고는 멀쩡하던 어머니였다. 무슨 일이냐고 차마 물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혈압으로 쓰러진 것일까. 아니면 운동 나갔다 교통사고라도 당한 것일까. 오만 가지 생각들이 기세 등등 머릿속을 휘졌고 다녔다. 의도하지 않은 긴 침묵이 화를 가라앉힌 것인지 언니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가시내야, 암일도 없응게 숨이나 펜히 쉬그라. 각설하고,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니가 와야 쓰겄다. 엄마 목욕 가는 날인디, 시댁에 일이 있어서 내가 못 가겄다. 긍게 니라도 내려와야제.”


친정과 한 시간 거리의 소도시에 사는 언니는 이 주에 한 번씩 어머니와 목욕탕에 다녔다. 그게 내일인 모양이었다.


“한 주만 미루면.......”


마감 때문에 주말 내내 근무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언니가 싹둑 말을 잘랐다. 말 자르는 데는 언니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아이, 니만 일허냐? 나도 일해야. 누구는 시간이 펑펑 남아돌아서 엄마헌티 댕긴 중 아냐? 느그 애는 어리기라도 하제. 우리 집 큰애는......”


언니네 큰아이는 고3, 게다가 언니는 고3 담임이었다. 아무리 지방이라고 해도 언니의 일상 역시 바쁠 터였다. 그래도 언니는 천성이 부지런하고 몸이 재서 나라면 석 달 열흘 해도 모자랄 일을 하룻밤에 뚝딱 해치우곤 했다. 그런 언니에게 기대 고향에 홀로 있는 어머니를 잊고 있었던 것이야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가만히 있으면 절로 고마워할 것을 굳이 제 입으로 떠들어 고마운 마음까지 싹 가시게 만드는 게 또 언니의 타고난 성품이었다.


“긍게 이번만이라도 니가 좀 오란 말이다.”

“다음번에 갈게. 내일은 출근이야. 언니 시간이 정 안 되거든 그냥 어머니 혼자 가시라고 해.”

“가시내가 속 펜한 소리허고 자빠졌네. 내가 열쳤다고 만날 어머니 모시고 댕기겄냐? 가지 말란다고 안 갈 양반이가니? 노친네 혈압이 높아서 혼자 때 밀고 나오면 반은 까무라진단 말이다.”

“때 밀어주는 사람 있잖아. 내가 돈 줄게.”

“하여간에 싹퉁머리하고는. 가시내야. 내가 돈 만 원 아낄라고 때밀이헌티 안 맡긴 중 아냐? 니가 엄마를 설득해서 때밀이한테 때를 밀라고 허든가 니가 허든가, 양단간에 니가 알아서 해야!”


그리고는 전화가 툭 끊겼다. 생색내기 좋아하는 사람이긴 해도 언니가 자기 일을 떠맡긴 적은 별로 없었다. 그게 되레 짜증을 돋웠다. 가만두면 알아서 할 일을 자기 성질 자기가 못 이겨 도맡아 해놓고 생색을 낼 건 뭐란 말인가. 하여간 그런 언니가 내려오라면 만사 제쳐두고 내려가긴 내려가야 할 터였다. 하여 부랴부랴 다른 사람에게 일을 넘기고 새벽부터 달려온 참인데 시댁에 있어야 할 언니 목소리가 쩌렁쩌렁 3층 연립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이미 돈 다 줬당게! 멫 푼 허도 않는다고 내가 멫 번을 얘기했잖애. 딸네들이 용돈 한 푼 안 준 것맹키 워째 돈 멫 푼 갖고 징징거려쌌소. 용돈 준 거 다 모다놨당가 저승 갈 차비 헐라요? 맛난 것도 사묵고 사람들 불러서 멋도 멕이고 기분 좀 내고 살란 말이요, 쫌!”


언니의 고함 소리에 뒤이어 어머니가 뭐라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듣지 않아도 뻔했다. 우세스럽게 왜 소리를 질러대냐며 눈을 흘기고 있을 터였다.


“내가 멫 번을 말해도 못 알아묵응게 글제. 소리나 잘 들린가 보씨요 쫌.”


쿵쾅쿵쾅 마룻장을 울리는 언니의 걸음이 가까워졌다. 걸어오는 동안에도 언니는 씩씩거리며 혼잣말을 늘어놓았다.


“황소를 삶아 묵었능가, 먼 놈의 고집이 고래심줄보다 더 씬가 몰라. 늙음시로 고집만 는당게. 아이고 징해라.”


아귀가 잘 맞지 않아 삐걱거리는 현관문이 언니 목청처럼 요란하게 열렸다. 열린 문 사이로 고래 힘줄보다 고집 센 어머니의 불만 가득한 혼잣말이 밀려나왔다.


“누가 지 애비 딸 아니랠까비 승질머리허고는..... 벨라 필요도 없는 놈의 것을 멀라고 비싼 돈 들여감시로 단다고 저 지랄인가 모리겄네. 돈이 썩어빠졌는갑다. 찾아올 사램도 없그만은.....”

“아적 귀묵을 나이 아니요. 다 들리요이. 찾아올 사램이 없기는. 초인종 달 생각을 왜 했가니? 불러도 대답이 없응게 우편배달부가 그냥 가가꼬 그 귀한 전복을 다 베레놓고는. 당뇨에도 좋고 혈압에도 좋다길래 엄마 멕일라고 일부로 학부형헌티 부탁해서 자연산으로 산 것이구만. 전복만 생각하먼 내가 안즉도 속이 쌔름쌔름하요, 시방.”


언니가 한마디도 지지 않고 따박따박 말대답을 하며 새 초인종을 연거푸 눌렀다. 귀먹은 노인네들용으로 따로 나온 건지 초인종 소리가 빌라 입구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아이고 고만 눌러라. 전기세 아깝다.”

“걱정 마셔. 그럴까비 천 원짜리 건전지 넣는 것으로 했네. 일 년도 넘게 쓴다요. 그나저나 이 가시내는 왜 안 온다냐? 못 오면 못 온다고 말이라도 허제.”


마중이라도 나올 셈이었는지 계단참으로 불쑥 머리를 내민 언니가 자지러지게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워매 가시내야. 간 떨어질 뻔했다. 시커먼 것이 서 있길래 귀신인중 알았어야. 왔으면 들어오제 거그서 멋허고 있냐?”


시댁에 일 있으니 이번에는 네가 책임지라고 종주먹을 대던 엊저녁 일을 까맣게 잊은 채 언니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한걸음에 달려왔다.


“언니는 일이 있어 못 온다며?”

“워찌 그리 됐다. 이참에 니 얼굴도 보고 잘됐제 머.”


내 손에 들린 과일 박스를 낚아챈 언니가 잰걸음으로 계단을 오르며 소리쳤다.


“엄마! 오매불망 꿈에도 못 잊던 둘째 딸 왔소!”


언니의 고함 소리를 들었을 텐데도 내가 문 앞에 당도할 때까지 어머니는 나오지 않았다. 아니 나오지 못했다. 이제는 세상에 다시없는 반가움도 어머니의 쇠한 기력을 순간이나마 번쩍 일깨우기에 역부족인 것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늘 마을 입구에서 우리 자매를 기다렸다. 몇 시에 도착한다는 기별도 하지 않았건만 어머니는 번번이 배바위 아래, 아스라이 굽어진 신작로 끝에 시선을 던져둔 채 아픈 다리를 두드리고 있었다. 길게 드리운 산 그림자 속에 고즈넉이 서 있는 어머니에게 나는 한 번도 얼마나 기다렸냐고 다정히 묻지 못했다. 괜히 마음이 울컥하여 뭐하러 나와서 청승이냐고 되레 타박이나 주기 일쑤였다. 읍내로 이사를 한 뒤에는 빌라로 올라가는 언덕길이 어머니가 나를, 혹은 언니를 기다리는 장소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언덕이 시작되는 길 초입에서 어머니는 무슨 바위인 양 우두커니 앉아 있곤 했다. 마음은 그때보다 간절하여, 어머니는 지금 다리를 절뚝이며 허겁지겁 달려 나오는 중일 터였다. 스물다섯 평, 거실에서 현관까지의 거리가 어머니에게는 아득히 멀었다. 지팡이도 없이 기우뚱기우뚱 문밖으로 달려 나온 어머니는 맨발이었다. 그 발이, 또 신경을 건드렸으나 무엇하러 나오느냐는 말을, 이번에는 꿀꺽 삼켰다.


“아가 왔냐? 바쁠 것인디 멀라고 이 먼 길을 왔으까이. 니는 괜스리 씨잘데기 없는 소리를 해가꼬.....”


어머니가 내 손을 붙잡아 끌며 언니를 향해 눈을 흘겼다.


“아이고, 입만 열면 둘째 타령을 늘어논 게 누군데?”

“궁금헝게 그랬제 누가 오라는 말이었가니...... 니는 시키잖은 일만......”

“알았소. 알았응게 목간이나 갑시다.”


언니가 손도 재게 내가 사온 사과를 냉장고에 척척 넣으며 말했다.


“아이, 놔둬라. 고러크롬 너가꼬 되가니. 요새 사과는 신문지에 싸놔도 메칠 못 가야.”

“아이고. 상하도록 냅두지 말고 후딱 먹어치우면 되제.”

“나가 혼자 월매나 묵어서. 니는 살림허는 여자가 만사 대충대충, 그래가꼬 먼 살림을 산다고.....”


어머니가 사과를 바닥에 죄 꺼내고는 하나씩 일일이 신문지로 싸기 시작했다. 마주치기만 하면 개와 고양이처럼 아옹다옹, 잠시도 조용할 짬이 없는 두 사람이었다.


“아이고 참말로 못 말리겄네. 알아서 허씨요. 나도 어디 가먼 알아주는 살림꾼이그만. 우리 엄마 깔끔 떠는 거야 워느 장사가 말리겄어.”


성이 난 언니가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두 사람의 신경전은 늘 그렇듯 언니의 완패로 끝났다. 비누를 물에 불게 해놨다, 머리카락이 수챗구멍을 막았다, 책가방을 아무 데나 던져놨다, 도시락을 안 내놨다, 어린 시절, 언니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었다. 잔소리가 지겨워 버릇을 고칠 법도 하건만 언니는 날이 밝으면 어머니의 잔소리를 깨끗이 잊었고, 친구 만날 생각에 혹은 영화 볼 생각에 아무 데나 책가방을 던져놓은 채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럴수록 어머니의 잔소리는 강도가 높아졌고, 언니는 천성이 그렇기도 하겠지만 어머니가 그럴수록 뻐득뻐득 어깃장을 놓았다. 말다툼의 끝은 언제나 나였다.


“둘째만 친딸이고 나는 다리 밑서 주워왔제? 긍게 죽어라고 나만 잡는 것이여, 글제? 글제? 이럴라먼 멀라고 나를 주워왔능가, 둘째나 끼고 살제.”


언니가 번번이 나를 물고 늘어지면 어머니는 쯧쯧 혀를 찼다.


“온냐, 니 말 한번 잘했다. 쟈가 원제 책가방 던져논 거 한 번이라도 봤냐? 쟈는 철 듦시로 지 빤스 한 번을 내 손에 안 맡겼다. 나는 쟈 월경이 원젠가도 몰러야. 니는 니 손으로 니 서답 한 번 빨아봤냐? 아이고, 황송허게 서답 빨래는 무신....... 수돗가에 휙 던져놓지나 않으먼 나가 업드레 절을 했겄다. 말만 한 처녀가 낯 부끄럽도 안 헌가 원....... 니 월경 날짜는 동네 개들도 다 알 것이다, 아매.”


그쯤 되면 언니는,


“누가 오로크롬 나노라고 했간디! 이것이 다 엄마 작품이여, 엄마 작품!”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쾅 방문을 닫았다. 그런 언니가 자라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도 어머니와의 다툼은 예전 그대로였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니는 불난 데 부채질허냐? 내가 열 살 묵은 애기도 아니고, 썽질이 나 죽겄그마 웃기는! 후딱 인나기나 해. 목간이나 가게.”


가슴이 봉긋해진 후로 나는 언니와도 어머니와도 목욕을 하지 않았다. 목욕탕 다닐 돈이 없어 너나없이 집에서 목욕을 하던 시절, 나는 행여 누가 볼세라 부엌문을 꽁꽁 걸어 잠갔다. 밖에서 어머니가 뜨거운 물을 더 부어주겠다고 해도 나는 절대 문을 열지 않았다. 워쩌믄 저런 것꺼정 빼닮았으까이. 너무 깨끔을 떨어도 팔자가 외로운 벱인디. 혹 물이 식었을까, 잠긴 문밖에서 서성거리던 어머니의 한숨 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했다.


“목욕은 무슨, 나 새벽에 샤워하고 출발했어.”

“아따, 한 번씩 아조 정내미가 떨어지게 해야 니는. 누구는 샤워 못해서 목간 가잔 중 아냐? 말뽄새허고는.”

“아니다. 후제 나 혼자 가도 됭게 오늘은 그냥 집에 있자. 느그도 피곤할 텐디 쉬야제. 서울서 여그가 워딘디.”


어머니가 얼른 언니를 막아 나섰다. 열 살 땐가 목욕하는 모습을 고모에게 들킨 뒤 사나흘 밥도 안 먹고 울기만 했던 나를 어머니는 아마 기억하고 있을 터였다. 아이, 정제가 침침해서 참말 암것도 못 봤어야. 결국 고모가 달려와 어르고 달랜 끝에 나는 겨우 울음을 그쳤다. 언니는 그 일을 까맣게 잊은 모양이었다. 어쩌면 언니는 나와 함께 목욕한 적이 없다는 것조차 잊었는지 몰랐다. 언니는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고는 돌아서서 잊어버리는, 산뜻하기 짝이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이고, 원제는 목간 갈 때가 됭게 근질근질해 죽겠담서? 왜? 나는 못 부려묵어 안달이등만 둘째 딸 봉게 물고 빨고 헐 시간도 모자랄 것맹키요?”


쏘아붙인 언니가 내 등짝을 야무지게 후려쳤다.


“가시내야, 엄마 가신 뒤에 나헌티 고맙다고 헐 날이 올 것이다. 긍게 잔말 말고 따라나서야.”


주춤주춤 언니 뒤를 따랐다. 성큼 앞서 나간 언니는 현관 앞에서 어머니 신발을 가지런히 놓고는 귀퉁이에 놓인 지팡이를 집어들었다. 지팡이를 산 것도 언니였다. 내가 몇 번 사주겠다고 했는데도 어머니는, 아적 괜찮다, 할망구맹키 지팽이는 무신, 번번이 고개를 저었다. 늙은 티를 내고 싶지 않은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사지 않은 것인데. 어느 추석 다니러 왔더니 어머니가 지팡이를 짚은 채 언덕 아래 서 있었다. 어머니 마음을 내 것인 양 헤아릴 수 있다고 짐작한 것이 어쩌면 내 자만이었을까.


“잡으씨요.”


언니는 팔걸이라도 되는 양 자기 왼팔을 내밀었다. 어머니가 익숙하게 그 팔을 붙잡고 걸음을 내디뎠다. 계단 난간 앞에서 언니는 지팡이를 받아들었다. 어머니는 오른팔로 언니에게 의지한 채 왼손으로는 계단 난간을 짚고 걸음을 옮겼다. 나와 있을 때, 어머니는 언제나 계단 앞에서 여그서부터는 나 혼차 갈 수 있어야, 가만히 내 팔을 놓았다. 언니와 보조를 맞춰 느릿느릿 계단을 내려가는 어머니를, 천천히 뒤따랐다. 말없이도 두 사람의 행동이 더할 수 없이 자연스러웠다. 반층을 겨우 내려온 어머니가 걸음을 멈추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업힐라요? 보는 사람 암도 없소. 업히씨요.”


언니가 답삭 등을 내밀었다. 어머니는 기겁을 하며 아무도 없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휘휘 손사래를 쳤다.


“야가 왜 이런댜? 내가 무신 얼둥애기도 아니고 업히기는....... 씰데없는 짓 고만허고 가자.”


언니의 옷소매를 잡아당기는 어머니 얼굴이 반짝반짝 윤이 났다. 계단참 창문으로 쏟아지는 초여름의 햇살 탓만은 아니었다.


두어 달 전인가, 좀처럼 먼저 전화하는 법 없는 어머니가 웬일로 전화를 걸어왔다. 잘 지내지야? 안부를 묻고는 무슨 할 말이 있는 듯 어머니는 잠시 머뭇거렸다. 혹 돈이 필요한가 싶어 캐물었는데 어머니의 답이 뜻밖이었다. 생각해봉게 큰 뒤로 니를 뽀듬아본 기억이 없어야. 후제 니 오먼 한번 뽀듬아볼란다. 헐 일이 없응게 싱겁게 벨 생각을 다 허지야? 그랬는데 안아보지 못한 것은 나 하나인 모양이었다. 정다운 남편이라도 되는 듯 언니 팔에 기댄 어머니의 얼굴이 수줍은 소녀처럼 발그스름했다.


언니는 어머니를 조수석에 앉혔다. 뒤에 앉은 내가 안전띠를 매주려고 하자 언니가 끼어들었다.


“냅둬야. 굽은 허리도 아프신 것맹키고 답답하셔서 일부러 안 맨 것이여.”


나는 무참하게 손을 거뒀다. 묘한 기분이었다. 그건 언니의 말이 아니라 내 말이어야 했다. 말없어도 어머니 마음을 헤아리는 건 언제나 내 몫이었다. 언제부터 어머니와 언니가 이렇듯 가까워진 것일까.


언니의 운전 실력은 나보다 한 수 위였다. 호기심 많은 언니는 80년대 말, 선생이 되자마자 차부터 덜컥 뽑아서는 주말마다 이리저리 쏘다녔다. 경력도 경력이지만 언니 운전은 여는 김 여사들과 달리 거침이 없었다.


차가 오거리를 지났다. 읍내에는 목욕탕이 하나였다. 댓 살 무렵 간적 있는 읍내 목욕탕은 설 전에 묵은 때를 벗기려는 사람들로 초만원이었다. 그 사람들 틈에서 햐얗게 질려 어머니 뒤만 졸졸 따라다닌 게 목욕탕에 관한 내 기억의 전부였다. 그날도 언니는 부산을 떨고 다니다 어머니에게 등짝이 벌겋게 달아오르도록 맞았다. 언니 등에 남은 어머니의 붉은 손 모양이 그날의 몇 안 되는 기억 중 하나였다.


“명성탕이 아직도 있나봐.”

“있기야 허제. 하도 낡아가꼬 할매들 말고는 아무도 안 가서 글제.”

“명성탕이 원제적 명성탕이냐.....”


어머니가 무심히 말을 받았다. 옛날 그대로 온천 표시가 그려진 낡은 명성탕 간판이 휙 스쳐갔다. 명성탕 가서 훌훌 때나 벗겼으먼 쓰겄다. 한창때의 어머니는 밭일을 마치고 돌아와 대문을 꽁꽁 잠그고 등목을 할 때마다 입버릇처럼 말했다. 어머니는 몇 푼 하지 않는 목욕탕조차 맘대로 가지 못하는 세월을 살았다. 그 세월이 주름처럼 깊이 박혀 지금도 어머니는 이 주일에 한 번 이상은 목욕탕에 가지 않는다.


“쩌번에 차 수리허는 바람에 차 없이 와서 가차운 명성탕으로 갔등만은 바가지에 때가 꼬질꼬질허드라. 우리 엄마, 의자허고 바가지 씻니라 힘 다 뺐제. 그담부터는  엄마가 나서서 쫌 비싼 온천탕으로 가자고 허신다야.”

“언니가 좀 씻어드리지.”

“지는 오도 안음서 가시내가 누구를 불효자석으로 만들라고 허네. 나가 첨부터 안 했가니, 해봤자 엄마가 도로 허는디 머.”

“엄마 성에 차게 하면 될 거 아냐? 언니 나이가 몇이야. 엄마를 오십 년을 보고도....”

“시끄러 가시내야. 고로크롬 잘났으면 손끝 야문 니가 와서 허등가. 지 혼차 먼 대단한 일을 한다고 명절 때 말고는 오도 않은 년이 말은 청산유술세.”


어머니가 곁에서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이가, 사둔 넘말 헌다. 청산유수로 말함사 니 따라올 사람이 있가니. 기억 안 나냐? 장날이면 댓 살 묵은 어린것이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별 참견을 다했니라. 고추 팔러 가요? 요번 장에는 고추금이 좋아야 쓸 것인디 워쩌끼다, 험시로 니가 쯧쯧, 쎄를 차면 어른들이 배꼽을 잡았당게.”

“아따 엄마도 뻥이 쪼간 쎄요. 다섯 살배기가 멀 그랬겄소? 쫌 나이 든 뒤등가 글겄제.”

“아이가, 니는 발 떼기 전에 입부텀 뗐어야. 새살이 월매나 좋았는디, 그 새살 덕택에 매도 반으로 줄었그만은. 니는 눈치도 월매나 빨랐능가 나가 매타작을 허끄나 워쩌끄나 생각만 혀도 제까닥 눈치를 채고는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달구똥 겉은 눈물을 뚝뚝 흘렸어야. 엄마, 나가 잘못했소. 나가 죽일 년이요. 다시는 안 그럴랑게 한 번만 봐주씨요이 험시로. 어린것이 그러는디 매타작을 헐 수가 있어야제. 매야 우리 둘째가 오지게 맞았제. 쟈는 먼 놈의 고집이 쇠심줄맹킹가 이날 입때껏 잘못했단 소리 한 번을 안 했어야. 그래농게 워쩌다 한번씩 다리가 터질 때꺼정 맞았제.”

“아무튼지 징글징글헌 년이여. 원제지? 다리 터질 때꺼정 맞고 지 성질 못 이겨 눈 뒤집은 날 있잖애. 멋 땜시 그랬능가는 생각도 안 나네.”


나 역시도 가물가물한 기억이었다. 우리 자매 일이라면 어머니 기억이 제일 환했다.


“중학교 입학식 날이었제. 니 교복 물려 입으랬다고 멫 날 메칠 울고불고 하덩만은 입학식 당일 아침에 학교 한 가겄다고 머리 싸매고 누웠잖애.”


까맣게 잊었던 기억이 볕 좋은 봄날의 새싹처럼 들썩들썩 솟아올랐다. 두 살 위인 언니가 그해 겨울, 살이 6킬로나 찌는 바람에 3학년인 언니는 새 교복을 얻어 입고, 신입생인 나는 헌옷을 물려받았다. 그게 분했던 것일까?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아침 한바탕 난리를 치른 기억은 선명했다.


“울고불기는 누가, 그냥 말을 안 했지.”

“말 안 허고 밥 안 먹는 고것이 니헌티는 울고분 짓이나 매한가지 아녀?”

“그래, 기억났다. 아이고, 고래심줄이 누굴 닮긴 누굴 닮아. 엄마 닮았제. 거품 물고 쓰러진 애헌티 엄마가 찬물 끼얹은 것은 생각나요? 기어이 등 떠밀어 보낸 엄마가 더 징하고 독허네.”

“나가 그리 안 독했으면 나 혼자 느그 둘 대학꺼정 보낼 수나 있었가니? 느그들은 나가 날 때부텀 독했는 중 알지야?”


운전을 하던 언니가 문득 옆자리를 돌아보았다. 어머니는 무슨 생각에 잠겨 먼 산자락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백내장 수술을 했는데도 시력이 마이너스인 어머니에게 먼 산은 아련한 아지랑이처럼 어른거릴 터였다. 저 산자락 어디, 학이 둥지를 튼대서 학말이라 불리는 어머니 친정이 있었다. 어머니에게도 우리와 같았던 어린 시절이, 소녀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외조부모가 일찍 돌아간 터라 그러고 보니 나는 어머니의 친정에도 가보지 못했다.


“엄마는 어린 시절에 어땠어?”

“워쩌긴 뭐가 워째. 꼭 니 같앴제머.”

“큰 외삼촌이 그러드라. 공부 뽇치는 것도 글코, 말없는 것도 글코, 자존심에 고집꺼정 니가 엄마 판박이랴. 외할아버지 몰래 야학 갔다가 머리를 잘렸는디, 그러고도 보재기 뒤집어쓰고 담 날 또 도망갔다메? 독하기는 어릴 때부텀 독했그만 뭐.”


붙임성 좋은 언니는 외가 식구들하고도 사이가 좋았다. 외삼촌 다 돌아간 지금까지도 외사촌들과 연락을 하고 지내는 모양이었다. 어린 시절, 언니가 어머니 졸라 외가에 다니러 간 방학에도 나는 어머니 뒤를 졸졸 따라다니거나 방 안에 틀어박혀 책만 읽었다. 그 사이, 언니는 어린 어머니와 조우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는 책을 읽는 것보다 더 좋은 공부가 숱하다는 것을 애석하게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공부가 하고 싶었응게...., 공부나 실컨 하다 죽으면 원도 한도 없겄드라. 그때는 살기가 어찌 그리 폭폭했능가. 느그는 모릴 것이다. 내가 보낸 그 험한 세월을 느그가 짐작이나 허겄냐.... 허기사 알 필요도 읎다. 느그는 존 세상 살아야제, 암만.”

“존 세상을 우리만 살면 쓰가니. 엄마도 같이 살아야제, 더도 말고 한 오십년만 더 사씨요. 더 살먼 나도 쪼깐 귀찮아질랑가 모릉게.”


가슴 먹먹한 어머니 말을 언니가 산뜻하게 낚아챘다. 부러운 재주였다. 공부야 그럭저럭 했지만 뒤끝 야물지 않고 오지랖만 넓은 언니가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아가는 비법일지 몰랐다.


“오십년? 아이고 징허다. 니는 안즉 젊어 사는 것이 재밌을랑가 몰라도 나는 징글징글허다. 먼놈의 날이 그리 더디 새고 더디 저무는지 하루가 천 년인디 오십 년? 재미난 니가 내 몫꺼정 다 살아라. 아나 오십 년!”


어머니도 우스갯소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나는 새삼스런 마음에 어머니의 옆모습을 찬찬히 살폈고, 언니는 깔깔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온천탕 앞에 차를 세웠다.


“니는 어머니 모시고 들어가그라. 나는 차 세우고 올랑게.”


어머니가 언니 팔 대신 내 팔을 붙잡았다. 붙잡는 시늉만 한 것인지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언니와 길을 걸을 때보다 걸음새도 부자연스러운 것 같았다.


“힘을 주지 왜?‘

“지팡이 짚는디 뭐.”


울컥 뜨거운 것이 목울대를 건드렸다. 언니한테는 잘만 기대더니, 라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으나 나는 끝내 말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아니라 내 자신에게 해야 할 말이었다. 멀리 산다는 핑계로, 직장에 다닌다는 핑계로, 아이들 핑계로, 대학을 졸업한 후 나는 나날이 어머니로부터 멀어졌다. 어떠한 세월도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아옹다옹 서로 부대끼며 살아온 어머니와 언니의 지난 세월이 오늘 고스란히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었다. 나와 어머니의 세월도.


어머니와 나는 말없이 묵묵히 걸었다. 어머니의 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명절에나 다녀간 나는 어머니의 관절염이 얼마나 심해졌는지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30미터 남짓 걸은 어머니가 로커들 사이에 놓인 평상에 털썩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어머니의 작은 키를 고려하여 맨 아래쪽 로커를 열었다. 어머니가 로커 앞에 주저앉아 옷을 벗기 시작했다. 팔이 아픈 것인지 윗옷을 벗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유월 초인데도 어머니는 십수 년 전 내가 사다 준 분홍색 내복을 입고 있었다. 내복을 벗은 어머니의 왼팔이 팔꿈치부터 손목까지 거무죽죽했다. 만져보니 굳은살이었다. 쑥스러운 듯 어머니가 배시시 웃음을 빼물었다.


“다리가 아픙게 밥할 때마동 왼팔을 싱크대에 걸쳐놓고 힘을 안 주냐. 그더다봉게 원제부턴가 굳은 살이 박헷어야. 보기는 흉해도 아프든 않응게 암시랑도 안타.”


자리에서 일어난 어머니가 한쪽 팔로 평상을 짚은 채 남은 팔로 힘겹게 바지를 벗었다. 반쯤 내린 바지 밑으로 헐겁게 늘어난, 요즘은 시골 노인네들도 입지 않는다는 하얀 면 팬티가 드러났다. 새로 넣은 듯한 검은 고무줄이 얇아진 천 사이로 내비쳤다. 삭은 세월의 흔적에도 불구하고 팬티는 막 삶은 듯 새하앴다. 민망하여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아이, 니가 좀 벗겨드리제 멋흐고 있냐? 가시내, 인정머리하고는!”


쿵쿵 발소리도 요란하게 등장한 언니가 짜증 섞인 타박을 늘어놓으며 얼른 어머니를 붙잡았다.


“엄마도 그요. 쫌 도와달라고 헐 것이제 때도 밀기 전에 옷 벗다 진 다 빠지겄소.”

“내가 얼둥애기냐. 옷도 못 벗게.”

“쫌! 땀 좀 보씨요.”


언니가 소맷자락으로 어머니 얼굴을 훔쳤다. 그제야 콧잔등이며 인중에 송송 돋아난 땀이 보였다. 언니는 어머니를 평상에 앉히고는 엉덩이를 이쪽저쪽으로 들어 올리며 순식간에 옷을 벗겼다. 군더더기 없이 날렵하고 깔끔한 솜씨였다.


“아이, 수건, 수건 쫌 다오.”


양팔로 재빨리 거웃을 가린 어머니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내가 건넨 수건을 어머니는 가슴부터 아랫도리까지 늘어뜨리고는 한 손으로 가슴을 부여안았다.


“아이고, 참말로, 유난을 떨어요, 유난을. 다 늙어빠진 엄마 몸을 누가 본다고 그요? 그냥 편하게 들어가면 좀 좋아.”


언니가 팔을 내밀었고, 어머니는 눈을 흘기면서도 얼른 그 팔을 붙잡았다. 나는 욕실용품이 든 비닐  가방을 들고 가만가만 뒤를 따랐다. 뒤에서 바라본 어머니의 벗은 엉덩이는 팔꿈치처럼 굳은 살 투성이었다. 어머니는 앞에 있었고 걸음은 거북이처럼 느리기만 하여 나는 지난한 세월의 흔적이 새겨진 어머니의 벌거벗은 엉덩이를 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집에 다니러 올 때마다 나는 무슨 핑계를 대서든 애초 계획보다 앞당겨 돌아갔다. 어머니가 싫어서는 아니었다. 다리를 절뚝이며 싱크대에 왼팔을 걸쳐놓고 나 먹일 나물을 데치는 어머니를 지켜보는 것이 나는 죽기만큼 괴로웠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머지않아 잊을 수 있었고, 그래서 나는 번번이 도망치듯 어머니 곁을 떠났다. 내가 도망친다고 세월이 어머니를 비켜가는 것은 아닐 터, 반년 만에 만나면 어머니는 더 늙어 있었고, 그만큼 더 괴로웠으며, 하여 더 빨리 떠날 핑계를 찾았다. 더 이상 도망칠 수도 없게 언니는 나를 늙은 어머니와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한 것이다. 그것이 시댁 운운하며 나를 고향으로 불러 내린 언니의 교활한 목적이었다. 우리 집 여자 중 독하기로는 언니가 최고였다.


어머니를 팔에 매단 채로 언니가 구석을 가리켰다.


“의자 세 개, 대야 세 개, 손끝 야문 니가 엄마헌티 퇴짜 안 맞게 야무지게 닦아봐라, 한번.”


나는 어머니와 나 사이, 멀어진 세월의 묵은 때를 벗기듯 목욕타월에 비누를 흠뻑 묻혀서는 박박 닦기 시작했다. 의자의 가운데 구명까지 샅샅이. 비누칠을 한 후 가장 뜨거운 물로 몇 번이나 행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봐라, 니보담 백배 낫지야?”


어머니가 자랑스러운 듯 언니의 옆구리를 질퍽이며 말했다. 어린 시절, 어쩌다 내가 설거지라도 하고 나면 어머니는 저렇듯 자랑스러운 얼굴로 살강을 죽 훑어보곤 했다. 니가 설거지를 하면 그릇들이 반짝반짝 윤이 나야. 아이고, 손끝도 야무지제. 우리 강아지. 친정에만 오면 석 달 열흘 밀린 잠이나 자고 가기 전,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헹, 쓰잘데기 없는 짓 허느라 노상 바쁘구만, 가시내야. 아토피가 왜 생긴 중 아냐? 사램이 세균허고도 적당히 어울려 살아야 헌단다. 니맹키 깔끔을 떨어싼게 옛날에는 없던 벵이 생기는 것이여. 요새 겉은 최첨단의 시대에 말이여, 작작 쫌 허고 펜히 살아 펜히.“

“아이고 새살 떠는 것맹키 일을 쫌 해보제. 깔끔한 것 멋이 나빠야? 세균이 고로크롬 좋으먼 니나 세균허고 동무해 살그라. 누가 니 새살을 이기겄냐? 세균도 앗 뜨거 도망갈 것이다, 아매.”

“엄마 새살도 나 못지않구만. 괜히 힘 빼지 말고 앉기나 허씨요.”


깨끗이 닦아놓은 의자 위에 수건을 펼치고는 어머니가 힘겹게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목욕 가방을 연 언니가 초록색 때수건을 내게 건넸다.


“아나, 오늘은 나, 펜히 쉴란다.”


그러니까 초록색 때수건은 어머니 것인 모양이었다. 무좀이 있는 어머니는 수건도 때수건도 당신 것을 절대 쓰지 못하게 했다. 심지어 비누도 따로 썼다. 언니가 샤워젤 대신 비누를 건넸다.


“엄마는 때 밀기 전에 비누 써야. 비누칠 끝내면 깨끔허게 헹궈서 온탕으로 모셔라이.”


어머니의 주름진 몸은 비누칠하기가 쉽지 않았다. 수십 겹으로 늘어진 뱃살이 밀가루 반죽인 양 밀렸다. 어머니가 내 손을 붙잡았다.


“아이, 비누칠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어야. 혼차 헐란다. 이따 등이나 쪼깐 밀어주면 돼야.”


나는 어머니의 손을 가만히 뿌리쳤다. 살 한 겹을 한 손으로 붙잡아 한껏 당긴 후에야 비누칠을 할 수 있었다. 나와 언니가 이 뱃속에서 열 달을 머물렀다. 있는 대로 팽창하여 두 생명을 품었던 뱃가죽이 팽창했던 그만큼 늘어진 것이리라. 한 겹 한 겹 젖혀가며 정성스레 비누칠을 했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 또한 내 벗은 몸을 본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당신 몸에서 생명을 얻어 알몸으로 세상에 나온 딸이 당신 못 보게 몸도 마음도 꽁꽁 싸매고 저 혼자 살아온 지난 세월 동안, 어머니는 적적했을까, 쓸쓸했을까. 같은 어머니가 되고도 나는 아직 어머니의 마음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어머니의 눈길은 때를 미느라 출렁이는 내 가슴을 향해 있었다. 한때는 내 가슴도 어머니 닮아 자그마하니 봉긋했었다. 애 낳고 마흔 넘어 나이만큼 늘어진 내 가슴을 더듬는 어머니의 시선이 애처로웠다.


"아이, 인자 니도 늙은 티가 난다이. 허기사 니가 올해 마흔여섯이제? 아이고, 징하게도 오래 살았다. 하도 몸이 안 좋아 니 초등학교 입학허는 것이나 보고 죽을랑가 어쩔랑가, 내 속도 모르고 방긋방긋 웃는 니 얼굴만 보먼 애가 탔는디 니가 벌써 마흔여섯이여이?“


내 손길이 허벅지를 향하자 어머니는 움찔 다리를 오므렸다.


“아이, 인자 됐다, 내가 할란다. 이?”


어머니가 애원하듯 내 손을 다시 부여잡았다. 아따, 참말로. 가만히 좀 있으씨요. 부모 자식 사이에 멋이 부끄럽다요. 언니라면 당연히 했을 그 말을 나는 차마 입 밖에 내뱉지는 못했다. 대신 힘주어 어머니 가랑이를 벌렸다. 거웃 무성해야 할 둔덕이 초경도 하지 않은 소녀의 것인 양 맨질맨질했다. 나이 들면 어느 순간 여자는 다시 소녀로, 아이로 변해가는 것일까. 그 긴 순환의 고리를 겪은 후에야 생명은 한없이 기꺼이 이승을 떠나는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다시 한 번 비누를 묻혀 어머니의 둔덕을 어루만졌다. 하얗게 센 거웃 몇 개가 수줍은 듯 고개를 숙였다. 움찔거리긴 했으나 어머니는 내 손에 몸을 내맡겼다. 몇 번만 더 권하면 마지 못하는 척 어머니가 했을지도 모르는 일들이 많았다. 외식이나 여행도 그중 하나였다. 멀라고 비싼 돈 주고 맛도 없고 달기만 한 음식점 음식을 먹느냐는 어머니 성화에 못 이겨 언젠가부터 외식을 하지 않았다. 몇 번 더 잡아끌었다면 기꺼이 맛있게 그 음식을 먹을 수도 있는 어머니라는 것을, 어리석게도 나는 오늘까지 알지 못했다. 어머니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고 좋은 데 데려간 것은 어머니 쏙 빼닮았다는 내가 아니라 어머니의 타박덩어리, 언니였다.


“아이, 내가 느그 아부지헌티 지은 죄가 많아야.”


내 손은 이미 종아리를 향해 있는데 어머니는 꿈꾸는 듯한 눈길로 자신의 거웃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몸이 아픙게 니 아부지가 곁에 오는 것이 무서웠어야, 나는. 아부지 잠들 때꺼정 없는 일을 만들기도 허고. 기미가 보이먼 얼릉 벤소로 내빼기도 허고, 월경 핑계도 대고. 그러다 딱 잡힌 날에는 염치도 없제, 아파 죽것는 사람 붙잡고 그 짓이 허고 싶냐고, 됩대 큰 소리를 쳤어야. 한번은 느그 아부지가 그럴라믄 첩을 얻든 바람을 피든 자개 맘대로 할란담시로 느그 언니맹키 있는 디로 고함을 질르고는 한밤중에 집을 나가부렀는디....... 그날이 안즉도 눈에 선해야. 그날 밤새워 술 묵다 피를 토함시로 쓰러져가꼬 벵원에 갔는디 암이라고 안 허냐. 암만 아파도 한번 해줄 것을, 고로크롬 쌀쌀맞게 내친 것이 마지막일 중 누가 알았가니.......”


아버지는 내가 세 살 때 세상을 떴다. 아버지가 곁에 없었던 탓일까. 어머니가 여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나는 자꾸 잊어버렸다. 아니,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어머니는 더 이상 여자가 아니었다. 어머니였을 뿐이다. 그런 어머니도 욕정으로 잠 못 드는 밤이 있었을지, 나는 난감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두고두고 느그 아부지헌티 미안해야. 왜 그렁가 늙을수록 더 미안탄 말이다. 아프다고 노상 밀어내고는 나 혼차 이리 오래 살고 있어서 그렁가 워쩡가..... 이러다 백 살 채우먼 워쩌끄나. 느그 아부지헌티도 미안코, 느그헌티도 미안코.”


나는 어머니의 다리를 툭 쳤다.


“언니가 오십 년만 더 살라고 안 합디여? 오지랖 넓은 언니가 오직이 잘 챙길 것인디 먼 걱정이요.”


나도 모르게 까맣게 잊고 있던 사투리가 줄줄 흘러나왔다.


“니는 언니만 못허가니? 니는 니대로 죽을 동 살 동 참말 잘했어야. 니가 철철이 사 보낸 옷이 옷장 한가득이잖애. 옥매트랑 멋이냐, 생선 굽는 것이랑..... 아이고 세도 못허겄다. 그 돈 버니라 몸도 약헌 니가 월매나 힘들었을 것인디.... 니 생각허먼 아까와서 나가 쓰덜 못하겄어야.”


마음의 짐 덜자고 개중 하기 쉬운 일로 면피한 것을 아까워 쓰지도 못하는 것이 어머니의 마음이리라. 내 부끄러움이라도 덜어주려는 것인지 어머니가 벗은 내 등을 어루만졌다.


“그나저나 그 옷이나 다 입어보고 죽어야 헐 것인디 아까와서 워쩌끄나.”

“그 옷 다 입어보고 죽을라면 언니 말대로 천상 오십 년은 더 살아야겄소.”


사우나에 다녀온 언니가 땀을 번들거리며 곁으로 다가왔다.


“아이가, 서울년 다 된 중 알았등만 전라도 말도 헐 줄 아네? 용하다야.”


갱년기 증상이 심해 여성호르몬을 복용한다는 언니는 애도 안 낳은 사람처럼 가슴이 풍만했다.


“언니는 시집 한 번 더 가도 되겄네. 나 처녀적보담도 낫구마.”

“썩을 년! 부작용이 월매나 심헌디, 돈도 수월찮아야.”


언니가 때 미는 사람처럼 양손에 때수건을 끼고는 짝짝 경쾌하게 손뼉을 쳤다.


“등이나 대그라. 엄마도 돌아앉으씨요. 나는 야 밀고 야는 엄마 밀고, 그러믄 쓰겄네.”


망설이다가 나는 돌아앉았다. 누구에게 맨 등을 보이고 돌아앉았던 적이 있었던가. 나는 잠시 생각했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언니의 손끝도 제법 야무졌다. 샤워타월로 대충 혼자 닦기만 했던 등이 따가울 지경이었다.


“워매! 가시내야. 니는 때도 안 밀고 사냐? 무슨 놈의 때가 국수 가닥도 아니고 우동 면발이네그랴.”

“그만, 그만허소. 아파 죽겄네.”


언니가 착 소리가 나게 내 등짝을 후려쳤다.


“애도 아니고 엄살은. 쫌 참아. 누가 니 껍질 벳길까비? 밀 때는 따끔따끔 혀도 밀고 나면 월매나 시원헌디. 하기야 때를 밀어봤어야 알제. 니, 목욕탕, 크고 난 뒤 첨이제?”


수십 년 묵은 때가 타일 바닥 위로 툭툭 떨어지는 게 내 눈에도 보였다. 언니 말대로 아프면서도 시원했다.


“그래, 언니 덕분에 머리 굵고 처음 목욕탕 구경한다. 고마워 죽겄네.”

“시끄러 가시내야. 고마우먼 밥이나 사.”


때수건을 물에 헹구고 다시 한 번 손뼉을 친 언니가 고개를 내밀며 소리쳤다.


“엄마, 둘째 때 미는 솜씨는 워떻소? 나보다 낫소? 하기사 물어 뭣해, 뭔들 나보다 못하겄어? 엄마 죽고 못 사는 둘짼디. 헹, 나만 찬밥이제 이날 입때껏.”

“아녀, 때 미는 솜씨는 니가 낫다. 둘째는 먼 길 오니라 힘들어 그렁가 영 힘이 없어서 못쓰겄다.”


주름진 살이 밀려 아플까 조심한 것인데 어머니는 시원하지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리라 짐작했던 어머니 마음이 오늘처럼 늘 헛다리를 짚었던 건 아니었을까. 알몸인 탓인지 시선 둘 데 없이 민망했다. 언니가 내 등짝을 두 번 탁탁 두드리고는 사내처럼 호탕하게 웃었다.


“가시내야, 오늘은 니가 찬밥이란다. 비켜라.”


내가 물러난 자리에 언니가 앉았다. 쓱쓱 대패질을 하듯 언니는 힘차게 팔을 움직였다. 어머니의 만족스러운 나지막한 신음 소리가 손님이 거의 없는 탕 안에서 공명했다. 나도 때수건을 들고 언니의 등을 밀기 시작했다. 난생처음 보는 언니의 등은 더할 수 없이 부드러웠다. 오늘은 싹퉁머리 없고 인정머리 없는 나를 위해 언니가 준비한 특별한 날이었다. 어쩌면 나를 위한 날이 아니라 어머니를 위한 날일 수도 있었다. 아무러면 어떤가. 오늘은 어머니도 나도 언니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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