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 구슬 놀이
  • 구슬 놀이 (jaeok9876)

석남꽃
11/06/2013 09:11 댓글(1)   |  추천(2)

 

노랑만병초가 뭐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

 

 

 

석남꽃 / 서정주



머리에 석남(石南)꽃을 꽂고

네가 죽으면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나도 죽어서


나 죽는 바람에

네가 놀래 깨어나면

너 깨는 서슬에

나도 깨어나서


한 서른 해만 더 살아 볼꺼나

죽어서도 살아서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서른 해만 더 한 번 살아 볼꺼나



내 글 써 논 공책을 뒤적거려 보니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라 제목한 이 시는 1969년 7월 15일 새벽 한 시에 쓴 것으로 되어 있으니, 이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관악산 밑으로 이사오기 바로 한 해 전 일인데, 그 때의 공덕동 집에도 나무와 풀섶이 꽤나 짙어 모기가 많아서 그 때문에 짧은 여름밤을, 열어 논 창 사이로 날아드는 모기떼와 싸움 깨나 하고 앉았다가 쓴 것인 듯하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것은 내 육체의 꼴이지, 마음만은 그래도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한밤중쯤은 할 수 없이 그 영생(永生)이라는 걸 또 생각해야 견딜 마련이어서 물론 이런 걸 끄적거리고 버티고 있었을 것이다.


영생이란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마치 가을 으시시한 때에 홑옷만 한 벌 입은 푼수도 채 안 되는 내 영생의 자각과 감각 그것에 그래도 그 속팬츠 하나 몫은 넉근히 되게 나를 입힌 건 저 '대동운옥(大同韻玉)'이란 책 속의 것으로 전해져 오는 신라 때의 저 석남꽃이라는 꽃 얘기다. 그래 으시시해 오는 싸늘한 이 가을날에 이런 홑옷, 이런 속팬츠도 혹 아직 못 입은 사람들이 있을까 하여 먼저 그 얘기를 옮기기로 하니, 싫지 않거든 잘 목욕하고 이거라도 하나 받아 입으시고 오싹한 신선이라도 하나 되기 바란다.


신라 사람 최항(崔伉)의 자는 석남(石南)인데, 애인이 있었지만 그의 부모가 금해서 만나지 못하다가 몇 달 만에 그만 덜컥, 죽어 버렸다.


그런데 죽은 지 여드레 만의 한밤중에 항은 문득 그의 애인 집에 나타나서, 그 여자는 그가 죽은 뒤인 줄도 모르고 좋아 어쩔 줄을 모르며 맞이해 들였다. 항은 그의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있었는데, 그걸 나누어 그 여자한테 주며,

"내 아버지 어머니가 너하고 같이 살아도 좋다고 해서 왔다."

고 했다.


그래 둘이는 항의 집까지 가서, 항은 잠긴 대문을 보고 혼자 먼저 담장을 넘어 들어갔는데, 밤이 새어 아침이 되어도 웬일인지 영 다시 나오질 않았다. 아침에 항의 집 하인이 밖에 나왔다가 홀로 서 있는 여자를 보고,

"왜 오셨소?"

하고 물어, 여자가 항과 같이 왔던 이야기를 하니, 하인은,

"그 분 세상 떠난 건 벌써 여드레나 되었는데요. 오늘이 묻을 날입니다. 같이 오시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했다.


여자는 항이 나누어 주어 자기의 머리에도 꽂고 있었던 석남꽃 가지를 가리키며,

"그 분도 이걸 머리에 틀림없이 꽂고 있을 것이다."

라고 했다.


그래, 그런가 안 그런가 어디 보자고 항의 집 식구들이 두루 알고 따지게 되어, 죽은 항이 담긴 널을 열고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아닌게 아니라 항의 시체의 머리에는 석남꽃 가지가 꽂혀 있었고, 옷도 금시 밤 풀섶을 거쳐 온 듯 촉촉히 젖은 그대로였고, 벗겼던 신발도 다시 차려 신고 있었다.


여자는 항이 죽었던 걸 알고 울다가 너무 기가 막혀 잠시 숨이 넘어가게 되었다. 그랬더니 그 기막혀 숨넘어가려는 바람에 항은 깜짝 놀라 되살아났다. 그래 또 서른 핸가를 같이 살아 늙다가 갔다.


이것이 '대동운옥(大同韻玉)'에 담긴 그 이야기의 전부를 내가 재주를 몽땅 다해 번역해 옮긴 것이니, 이걸 저 아돌프 히틀러의 비단 팬츠보담야 한결 더 좋은 걸로 간주해서 입건 안 입건 그건 이걸 읽는 쪽의 자유겠지만, 하여간 별 가진 것이 변변치 못한 내게는 이걸 읽은 뒤부턴 이게 몸에 찰싹 달라붙은 대견한 것이 되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 나는 이걸 읽은 뒤 십여 년 동안 이야기 속의 그 석남꽃을 찾아 헤매다가 겨우 올봄에야 경상도 영주에서도 여러 날 걸어 들어가야 하는 태백 산맥의 어떤 골짜기에서 나온 쬐그만 묘목 한 그루를 내 뜰에 옮기어 심고, 이것이 자라 내 키만큼이나 될 날을 기다리며 신선반(神仙班)의 영생의 마음 속 연습을 계속하고 있다.



수필 카테고리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