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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이야기
11/02/2013 07:11 댓글(3)   |  추천(4)

자장면으로 우리의 팔, 다리는 이만큼 컸습니다.  자장면으로 우리의 추억은 가을 논처럼 풍요롭습니다.


그때 그 시절 땟국이 윤이 나게 흐르던 중국집 주인이 자장면 돼지비계의 고소한 맛과 함께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릅니다.


집을 자주 옮기면서 이삿짐을 나르면서, 아파트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먹었던 자장면으로 재테크가 되고 큰돈을 벌었던가요?


자장면을 먹고 도망간 ‘먹튀’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습니다. 칠흙 같은 밤 넘어지며 자빠지며 죽어라 도망쳤던 참외밭 서리와 같이 지금도 스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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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는 사다리가 없다 / 성석제

        


이제까지 자장면은 싼 맛에, 급히, 어디서나 평균적인 맛을 보장하기 때문에 먹었다. 따라서 맛있는 자장면을 먹기가 어렵다. 자장면은 요리의 천국인 중국에서 유래한 것은 틀림없지만 이젠 한국 음식이 되었다. 중국식으로 연원, 색깔, 향기, 생김새를 따져가며 맛을 찾아내려는 사람이 있다면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면서 말리고 싶다.


자장면은 장을 볶아서 만든 면이다. 자장면의 맛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춘장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국집에서 비슷한 춘장을 쓰고 있으므로 우열을 논하기 어렵다. 맛있는 자장면을 먹으려면 자장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야 한다. 휴가 나온 군인들이 버스에서 내려 곱빼기를 주문하는 청량리 주변이 그런 곳 가운데 하나다. 소규모의 사무실이 밀집된 을지로나 학생들이 많은 신촌도 그런 곳이다. 물론 화교들이 많이 살던 연희동이나 인천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 곳에 가서도 유명한 곳을 찾는 게 좋다. 유명하면 사람이 많이 모이고 여러 사람의 입맛에 맞는 평균적인 맛을 갖추게 된다. 그러므로 오래된 곳이 대체로 맛있다.


내가 자장면을 처음 먹은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이다. 그 당시 내가 콧등에 주름을 잡으며 노닐던 거리에는 일제시대에 지은 낡은 이층 건물들이 열을 지어 서 있었다. 영빈루라는 중국집이 있었는데 영빈루는 다른 식당과는 달리 2층에 있었다. 2층에 있다는 건 재료를 한 층 더 위로 날라야 한다는 뜻이고, 배달을 할 때 한 층 더 오르내려야 하며, 손님에게 계단을 오르는 수고를 하게 하니 장사에 지장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영빈루가 살아남았는가.


영빈루는 언제나 뒷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뒷문뿐 아니라 뒤창도 열고, 당시로서는 드문 환기 장치까지 달아 뒤쪽에서는 사시사철 김과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근처를 지나다 보면 다른 곳보다 자장 냄새가 훨씬 많이, 아니 독하게 났다. 굵지도 가늘지도 않은 부드러운 면발, 검고 윤기 나며 풍성한 소스, 강한 불로 알맞게 볶은 고기와 야채, 식초가 끼얹어진 단무지와 양파 형제의 이미지가 바로 그 냄새를 타고 사방에 퍼뜨려졌다. 밥을 먹고 나온 사람들도 그냥 지나가려면 어금니를 갈면서 인내력을 발휘해야 했으니 그게 영빈루의 상술 가운데 하나였다. 위치의 불리함을 유리한 것으로 바꾼 것이다.


내가 자장면을 먹기로 결심한 것도 바로 그 독특하고 신비한 냄새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1층도 아니고 2층이나 되는 그 고고한 왕국에 혼자 쳐들어갈 용기는 없었다. 그래서 일찍이 그 왕국에 다녀온 바 있으며 자장면에 환장한 두 모험가와 동행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층 건물 앞에 서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은총과 같은 자장면 냄새를 흠뻑 들이마셨다. 공짜니까. 그리고 서로의 손을 힘차게 잡았다 놓은 뒤,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으로 올라갔다. 셋 중 가장 깨끗한 옷을 입고 마른버짐이 없는 C가 앞장을 섰고, 셋 중 가장 지저분하지만 발걸음과 눈치가 빠른 P가 맨 뒤에 섰다. 올라갈수록 계단은 심하게 삐걱거렸고 냄새는 더욱 짙어졌다. 주렴을 들치면서 안으로 들어섰을 때, 우리는 자장 냄새의 폭탄에 맞아 일제히 목이 메었다.


거기에 자장면 나라의 왕이 있었다. 왕께서는 왕관 말고 중국인들이 흔히 쓰는 빵떡모자를 쓰고, 한 손에 는 홀(笏)이 아닌 파리채를 들고 있었다. 우리가 자장면을 주문하자 그는 주방을 향해 마법의 주문 같은 중국말로 뭐라고 빠르게 소리쳤다. 우리는 귓속말로 그의 비대함을 비웃는 한편, 찬양하며 먹고 잽싸게 튀면 계단까지도 따라올 수 없을 거라고 결론지었다. 우리는 모험을 하려고 했으므로 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모험을 떠난 기사가 돈 내고 밥 사 먹고, 돈 내고 성에 묵고, 돈 내고 청룡열차를 타면 그게 어디 모험이냐. 우리의 신념은 흔들리지 않았고 흔들려 봤자 별 수 없었다. 돈은 원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삽시간에 자장면 한 그릇씩을 해치웠다. 육식을 못하는 나만 그릇 바닥에 돼지비계 몇 점을 남겼을 뿐, 그릇은 설거지가 필요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그 동안 가엾은 왕은 계산대에 엎드려 쿨쿨 자고 있었다. 엽차를 쭉 들이켠 뒤에, 걸음이 느린 내가 제일 먼저 일어섰다. 계산대 앞을 지나며 어깨 위로 오른손을 올려 엄지손가락을 편 후 뒤를 가리켰다. 다음 모험가가 같은 동작을 취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걸음이 날랜 P가 계산대 앞을 통과하는 순간, "날아라!" 하는 즐거운 구호가 C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러나 우리보다 빠른 존재가 있었다. 언제 잠에서 깼는지, 언제 일어났는지, 언제 날았는지 그가 이미 출구를 봉쇄하고 있었다.


몸과 문이 어찌나 그렇게 일치하는지 파리 한 마리조차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늘 뚱뚱했고, 뚱뚱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몸을 돌려 주방으로 뛰어들었다. 주방에서는 요리사들이 쉬고 있었는데 우리를 제지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 한가롭게 부채를 부치고 있었다. 우리는 지체 없이 미리 보아둔 뒷문, 늘 열려 있는 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러나 아뿔싸, 거기에는 사다리가 없었다. 밧줄도 없었고 낙하산, 하다못해 슈퍼보드도 없었다. 그냥 낭떠러지였다. 그 사실을 깨닫고 급정거하는 바람에 우리 셋은 모두 밀가루 반죽처럼 뭉쳐져 바닥에 나둥그러졌다.


그로부터 우리는 우리 중 누군가의 형이 자장면 값을 가지고 올 때까지 손을 들고 서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때 내가 먹은 그 자장면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자장면이었다. 맛있는 자장면을 먹으려는 사람들을 위한 사소한 충고- 모험과 편력을 더하라. 지옥에서도 맛있는 자장면을 먹을 수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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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 정진권



짜장면은 좀 침침한 작은 중국집에서 먹어야 맛이 난다.


그 방은 퍽 좁아야 하고, 될 수 있는 대로 깨끗치 못해야 하고, 칸막이에는 콩알만 한 구멍이 몇 개 뚫려 있어야 어울린다. 식탁은 널판으로 아무렇게나 만든 앉은뱅이가 좋고, 그 위엔 담뱃불에 탄 자국들이 검게 또렷하게 무수히 산재해 있어야 정이 간다. 방석도 때에 절어 윤이 날 듯하고 손으로 잡으면 단번에 쩍 하고 달라붙는 것이어야 앉기에 마음이 편하다.


고춧가루 그릇은 약간의 먼지가 끼여 있는 게 좋고 금이 갔거나 다소 깨어져 있으면 더욱 운치가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고춧가루는 누렇고 굵고 억센 것이어야 한다. 식초병이나 간장병도 다소 때가 끼여 있어야 가벼운 마음으로 손을 댈 수 있다. 짜장면 그릇으로 가장 흔한 것은 희고 납짝하게 생긴 것인데, 할 수 있으면 거무스레하고 이가 한 군데쯤 빠진 게 좋다.


그리고 그 집 주인은 뚱뚱해야 한다. 머리엔 한 번도 기름을 바른 일이 없고, 인심 좋은 얼굴엔 개기름이 번들거리며, 깨끗지 못한 손은 소두방만 하고 신발은 여름이어도 털신이어야 좋다. 나는 그가 때에 전 검은색의 중국옷을 입고 있길 바라지만 지금은 그런 옷을 보기 어려우니 낡은 스웨터로 참아두자. 어떻든 이런 주인에게 돈을 치르고 나오면 언제나 마음이 편안하다.


내가 어려서 최초로 대면한 중국 움식이 짜장면이고(짜장면이 정말 중국의 전통적인 음식인지 어떤지는 따지지 말자.), 내가 맨 처음 가본 내 고향의 중국집이 그런 집이고, 이따금 흑설탕을 한 봉지씩 싸주며 “이거 먹어해, 헤헤헤.” 하던 그 집 주인이 그런 사람이어서, 나는 중국 음식이라면 우선 짜장면을 생각했고 중국집이나 중국사람은 다 그런 줄로만 알고 컸다.


스무 살 적 서울에 처음 왔을 때도 나는 짜장면을 잘 사 먹었는데, 그 그릇이나 맛, 그 방안의 풍경, 비록 흙설탕은 싸 주지 않았으나 그 주인의 모습까지도 내 고향의 그 짜장면, 그 중국집 그 짱궤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변두리만 다녀서였을까? 해서 내가 처음으로 으리으리한 중국집 그 엄청난 중국 요리 앞에 앉았을 때 나는 그것들이 온통 가짜 같았고 불안했다.


그 동안 서울 시골 할 것 없이 음식점이 많이도 불어났다. 한식, 중국식, 일본식, 서양식, 또 무슨 식이 더 있는지 모른다. 값이 비싸다는 데도 있고 보통이라는 데도 있고 싼 듯한 곳도 있다. 비싸다는 곳은 잘 모르지만 보통이라는 데는 더러 가 보았다. 그러나 얻어먹을 때는 불안하고 내가 낼 때는 갈빗대가 휘어서 그곳의 분위기와 음식 맛을 한 번도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내가 그래도 마음놓고 갈 수 있는 곳은 그 싼 듯한 곳일 수밖에 없고, 그 싼 듯한 곳 중에선 위에 말한 그런 주인의 그런 중국집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싸구려 한식은 집에서 늘 먹으니 갈 필요가 없고, 싸구려 왜식이나 양식은 먹어 봤자 국적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국적 있는 왜·양식을 먹으려면 비싸다는 데 내지 최소한 보통이라는 데는 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 친애하는 짜장면 장수 여러분도 자꾸만 집을 수리하고 늘리고 새 시설을 갖추는 모양이다. 돈을 벌고 나보다 훌륭한 고객을 맞고, 그리하여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것이야 물론 그분들의 정당한 소원이겠지만, 그러나 적어도 우리 동네와 내 직장 근처에만은 좁고 깨끗지 못한 중국집과 내 어리던 날의 그 짱궤 같은 뚱뚱한 주인이 오래오래 몇만 남아 있었으면 한다.


그러면 나는 어느 토요일 저녁때 혹은 일요일 점심때 호기 있게 내 아이들을 인솔하고 우리 동네 그 중국집으로 갈 것이다. 아내도 그때만은 잠시 가계부를 잊고 흔쾌히 따라나설 것이다. 아이들은 입술에다 볼에다 짜장을 바르고 깔깔대며 맛있게 먹을 것이고, 아내는 아이들을 닦아 주면서 역시 맛있게 먹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모처럼 유능한 가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퇴근길에 친구를 만나면 나는 그의 손을 이끌고 내 직장 근처의 그 중국집으로 선뜻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는 양파 조각에 짜장을 묻혀 들고, 또는 따끈한 군만두 하나를 집어들고 “이 사람 어서 들어” 하며 고량주 한 병을 맛있게 비운 다음 함께 짜장면을 나눌 것이다. 내 친구도 세상을 좁게 겁 많게 사는 사람이니 나를 보고 그래도 인정 있는 친구라고 할 것 아닌가.


짜장면은 좀 침침한 작은 중국집에서 먹어야 맛이 난다.




*짜장면과 짱궤는 자장면과 장궤의 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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