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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생겼나?
10/20/2013 02:10 댓글(0)   |  추천(4)

나는 어떻게 생겼나?



나는 어떤 이유로 누구에 의해 이 세상에 태어났으며, 내가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뼈와 살과 피로 이루어진 물질적인 내 육체에도 근원적인 우주의 원리, 혹은 신의 섭리나 의도가 내재해 있는가? 내가 이 세상을 살다가 죽는 것의 의미란 무엇인가?


오늘은 너무도 자연스런 질문이지만, 너무도 엄숙한 명제를 놓고 이렇게 저렇게 사색해 보게 되었다. 생각해 보았자 금방 대답을 얻을 수도 없을 텐데 공연히 산책을 하면서 머리만 아팠다.


한 가지 발견한 사실은 우리 인류가 존재하는 방식에 관한 관점은 동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서로가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이었다. 커닝을 해서 제출한 답안지처럼 비슷한 철학과 존재론(ontology)들임을 깨닫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인류의 스승이라 일컬어지는 아리스토텔레스는 '변화하는 개개의 우주만물 속에 불변하는 진리가 있다.‘라고 했다. 여기서 불변하는 진리란 존재하고 있는 개개 사물의 존재와 관련된 원형, 정의, 그리고 근본적인 원칙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는 이를 형상(form)이라 했다. 이것은 모든 사물의 모범과 전형을 의미하는 플라톤의 이데아에 해당되는 개념이다. 이러한 형상은 사물을 구성하고 있는 재료 또는 질료(matter)에 내재하여 함께 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주장했다. 이는 플라톤이 우주를 이데아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철저히 구분하고 현실 세계를 이데아의 세계의 단순한 그림자나 복사품으로 해석한 것과 대조되는 것이다.


모든 존재하는 것에는 동시에 존재의 보편적인 원형이나 당위성이 내재해 있는 관계로,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개개의 특수한 사물을 분석해 나가다 보면 일반적인 진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경험적이고 귀납법적인 인식론이다. 반대로 보편적인 사물의 형상(form)에서 출발하여 특수한 사물의 특성을 유추하는 연역적인 사고도 가능한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기독교에 원용하여 스콜라 철학을 완성시킨 인물이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서 유물론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관념론적 원리로서 신이라는 관념을 취하여 기독교에 적용시켰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form)과 비교되는 신의 뜻으로서 보편적인 진리는 개개 사물 이전에 존재하며 동시에 모든 사물 속에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에게는 육체 이외에 신의 원초적이고 목적론적인 의도와 뜻이 함께 내재해 있다는 논리이다. 따라서 인간은 경험과 이성을 통해 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증명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모든 존재하는 것은 신의 창조원리에 따른 계층적 질서 아래 놓여 있다고 설명하였다. 그는 또한 완전하고 궁극적인 지식은 신을 아는 지식이고 그것이 바로 인간의 최종적인 행복이라고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창조의 가르침에 기초한 존재의 형이상학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의 경험적 방법과 신학적 사고를 양립시켰던 것이다.


성리학(性理學)의 이기론(理氣論)


성리학에서 이(理)란 존재가 존재이게 하는 소이연(所以然)의 원리로서, 변화속에서도 자기동일성을 유지하게 하는 존재의 본질을 뜻한다. 또한 기(氣)란 이(理)가 존재하는데 갖추어야 할 터전으로서 현실 존재의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구성 요소를 말한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form)과 질료(matter)의 개념과 정확하게 대칭되는 개념이다.


성리학에서는 인간존재에 대한 설명과 인간의 가치체계의 결정에서 이(理)와 기(氣)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에 대해 수많은 논쟁이 있어 왔다. 주자학을 창시한 주희(朱熹)는 이데아를 중시하고 이데아와 현실세계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했던 플라톤과 같이 이(理)를 중시한 이기 이원론(理氣二元論)을 펼쳤다. 또한 조선 성리학의 최고봉이라 간주되는 퇴계 이황 역시 이(理)를 상대적으로 중시하는 이존기비(理尊氣卑)의 정신 아래 이기이원론을 주장했다.


이러한 퇴계의 관념론적인 주장에 대해 율곡 이이는 존재론적인 관점에서 이기(理氣)의 불가분성을 강조하면서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의 입장을 견지했다. 가히 그는 질료와 형상은 함께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과 같이 실제적이고 경험적인 인식론을 펼쳤던 것이다.


우파니샤드


고대 인도의 바라문교 성전으로서 베다를 철학적으로 심화하고 발전시킨 우파니샤드(베다의 본질을 이룬다는 뜻)에서는 범신론적(汎神論的)인 우주론을 견지하였다. 우주 창조의 인격신인 ‘브라만’은 우주자연 등 일체를 성립시킨 다음 스스로 그 일체 속으로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브라만은 우주를 창조한 인격신인 동시에 우주의 본질인 것이다.


우파니샤드는 인간 내면의 주인이자 핵심인 ‘아트만(我)’을 상정하고 있는데, 우주의 근원인 동시에 보편적인 원리로서의 ‘브라만’과 아트만은 동일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것이 보편적 자아와 개체적 자아는 동일하다는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이다. 이것은 신의 뜻으로서 보편적인 진리는 모든 사물 속에 존재한다고 했던 토마스 아퀴나스의 주장과 같다.


마무리 이야기


이상에서 우주만물과 인간이 어떠한 성격으로 존재하는지, 존재에 대한 인식의 방식들은 어떠한지를 역사적으로 알아보았다. 사상과 철학의 체계가 동서양에서 놀랍도록 유사함을 느끼게 된다.


이 나이되도록 우왕좌왕 살고 있는 나 역시 내 안에는 존재의 보편적인 가이드라인이 되는 모종의 형상(form)이 있는 것인지, 있다면 그것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지 종잡을 수 없다. 나를 규정하고 있는 본질과 이데아가 하나님의 섭리인지, 아니면 순종할 수밖에 없는 불교의 연기적(緣起的)인 원리인지 참으로 혼동된다. 산책길에는 보편적 진리와 형상(form)을 간직했을 듯  싶은 나무들이 단풍으로 붉게 물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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