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 구슬 놀이
  • 구슬 놀이 (jaeok9876)

예수와 기독교
09/21/2013 14:09 댓글(0)   |  추천(1)

예수와 기독교


예수


325년, 바로 이때 유럽 문화를 풍족하게 하는 두 줄기의 강물, 즉 고대 그리스 문화와 유대 문화가 만나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동안 좀 변해 있었다. 다시 말해서 고대 그리스 문화는 그리스-로마 문화가 되어 있었으며 유대문화는 유대-기독교 문화가 되어 있었다.


예언자 나자렛 예수의 등장은 이스라엘의 신(神)과 국민의 관계에 아주 새로운 전환점을 이루었다. 그것은 신과의 관계를 사육제 축제처럼 만들었다. 축제는 항상 전도(顚倒)를 의미한다. 거기에는 바보가 왕이 되고, 왕이 격하된다. 그리스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신은 지극히 가난한 가정의 아이의 모습으로 육화(肉化)되어 태어난다.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그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여관에 들어갈 돈조차 없어 사실상 노숙자로서 마구간의 소와 당나귀 사이에서 신은 태어난다.


이 이야기는 유럽 후대의 문학사에서 그 끝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엄청난 결실을 낳았다. 힘없고 약한 사람들의 삶과 일상세계도 아주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예시했다.


물론 예수가 선택받은 자임을 보여주는 표시도 여기 저기 있다. 그의 모친은 처녀이며 부친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아니라 신이다. 요셉은 그것을 믿는 대가로 후세 사람들에 의해 거룩하다는 인정을 받았다. 그의 운명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암피트리온과 비슷하다. 암피트리온은 자신의 아내 알크메네가 제우스와 간통해서 낳은 헤라클레스의 양아버지가 되었다.


게다가 예수의 탄생 때는 별들이 아주 희귀한 자리에 배열되어 있었다. 즉 목성과 토성이 겹쳐졌다. 이래야만 최소한 세 명의 동방박사인 가스파르, 멜키오르, 그리고 발타사르만이라도 아기의 탄생을 예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아기가 장차 유대인의 왕으로 헤로데 왕의 지위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는 예언도 영웅들의 전형적인 이야기이다.


기적


영웅들의 전형적인 특징은 기적을 행하는 능력이다. 헤라클레스는 아우 게이아스의 마구간을 청소하지만 그리스도는 성전의 환전상들을 몰아낸다. 그는 앉은뱅이를 고치며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려내고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술이 떨어지자 즉시 술을 공급한다.


그는 폭풍을 잠재우며 미친 사람의 몸속에 맴돌던 한 무리의 귀신을 쫓아내 돼지들의 몸속으로 들어가게 하여 일제히 자살하게 만들며 물 위를 유유히 걷는다. 이로써 그가 선포한 것은 후세의 히피들의 삶의 모토인 “전쟁 대신에 사랑을 하라.”이다. 그는 용서의 힘을 믿으며 작은 것에도 만족하는 삶을 실천했다.


제자와 메시아


물론 그가 유일한 히피 예언자는 아니다. 이미 예수 이전에도 요한이 있었는데, 요한의 주특기는 요르단 강의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이었다. 그는 예수에게도 세례를 주었는데, 그가 예수를 요르단 강물에 담글 때 하늘이 열리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기뻐하는 자라.”하는 음성이 들렸다. 예수는 열두 명의 제자를 모았고 이들에게 자신의 사명을 전했다.


한동안 공동생활을 하고 난 뒤에 예수는 이들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나를 무엇이라고 말하더냐?”

제자들이 대답했다.

“그야 물론 여러 가지로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을 선지자 예레미야 또는 옐리야라고 하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을 요한과 혼동하기도 합니다.”

예수는 다시 물었다.

“그러면 너희들은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그들은 한동안 우물쭈물했다. 마침내 베드로가 말했다. 

“선생님은 메시아이시며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자리에서 예수는 교황청에서 근거를 두는 유명한 말을 했다.

“너는 베드로(그리스어로 반석을 뜻함)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제자들은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나 버나드 쇼는 베드로의 이 말로 인해 예수가 처음으로 자신을 메시아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어쨌든 그때부터 예수는 자신을 메시아로 표현했다. 이로써 일이 매우 심각해졌다.


바리새인들


메시아의 형상은 유대인들 사이에 정신적으로 확고히 자리 잡은 구세주였으며 그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도 그들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들은 메시아를 통한 시온의 재탄생을 기대했다. 이 희망은 바리새파(근본주의자들)의 중심 프로그램이었다. 이에 따라서 성서의 율법을 엄격히 지켰으며 보수적 귀족계급인 대제사장들과 정치적으로 연정(聯政)을 구성한 상태였다.


따라서 어디선가 굴러들어온 청년이 스스로를 메시아라고 부르며, 공의(公義; 선악의 제재를 공평하게 하는 하느님의 적극적인 품성)를 통한 민족의 재탄생 대신에 ‘즉석 구원’ 또는 ‘현재의 순간에 이루어지는 재탄생’을 전파하는 행동을 용납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대제사장 가야파의 사주를 받아 정치적 음모를 꾸미게 되었고, 이 음모로 유대인들은 그 후 2000년 동안 피를 흘려야 했다.


대제사장들은 곤란한 질문으로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무리들 틈에 첩자들을 파견했다.

“우리가 더러운 로마인들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이 질문에 예수는 카이사르의 얼굴이 새겨진 주화를 지갑에서 꺼내어 이리저리 돌려 보였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바쳐라.”

그는 이 말로 유대인이나 로마인들 중 어느 한편을 동요시킬 수 있는 위험한 딜렘마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관한 후대의 기독교 교리는 바로 이 답변에 기초를 두고 있다.


만찬의 새로운 의미


예수는 자신의 생명이 가장 크게 위협받을 수 있는 예루살렘의 유월절 행사에 참석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정통주의자들의 손에 붙잡혔다. 특히 그의 입성은 대중들의 환호를 받았으므로 그가 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믿었다.


그는 상징적인 행동을 시연해 보임으로써 유월절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원래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던 유월절 식사를 그 자신의 희생을 기념하는 예배의식으로 만들었다. 그때부터 포도주는 그의 피며 빵은 몸이 되었다. 예수는 이집트 탈출에 대한 기억을 자신의 희생에 대한 기억으로 바꾼 것이다.


이 만찬은 기독교의 중심적인 의식이 되었다. 만찬 때 포도주와 빵이 정말로 몸과 피로 변하는지, 아니면 단지 상징일 뿐인지에 대해서 교파가 갈라졌고 많은 종파가 생겨났다. 반유대주의의 중심적 광기들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만찬의 희생의식과 연관되어 도식적으로 정착된다. 그것은 유대인이 성체를 더럽힌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후대의 대부분의 유대인 학살 사건은 유월절에 기획되고 벌어졌다.


배신


그 만찬은 배신이란 주제에 대해서도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장면을 보여 주었다. 예수는

“너희들 중의 하나가 나를 팔아먹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제자들은

“아니, 그럴 리가 없습니다. 도대체 누가 그러겠습니까?”하며 웅성거렸다.

예수는

“내가 지금 빵을 주는 자가 그자이다.”라고 말하고 빵 한 조각을 가리옷 유다에게 주었다. 그의 이름 ‘유다’는 나중에 기독교인들에게 언제나 유대인과 비슷하게 발음되면서 배신자 유대인들의 핵심인물이 되었다.


만찬 후에 예수는 게쎄마니 동산으로 가서 밤새도록 뜬눈으로 예감되는 자신의 죽음과 씨름했다. 그의 제자들은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드러누웠다. 그동안 유다는 유대인들의 국가 정보기관의 관헌들을 이끌고 와서 예수에게 입을 맞춤으로써 그들이 누구를 체포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그는 포상금으로 은화 30냥을 받았다.


한 관헌의 귀를 베어 떨어뜨린 베드로를 제외한 나머지 제자들은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줄행랑을 쳤다. 나중에는 베드로조차도 예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딱 잡아떼었다.


재판


대제사장들은 예수를 약간 고문하면서 심문했으며 신속히 진행시킨 재판을 통해 그가 신성모독죄의 구성요건을 갖추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다음 그들은 로마의 사법부로 그를 이송했다. 그 죄목은 반로마적 선동, 정당 침해적 행동, 그리고 미풍양속 오염 등이었다. 왜냐하면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빌라도가 질문했다.

“그 말이 맞느냐?”

예수가 대답했다.

“그렇소, 그러나 내나라는 저 세상에 있소.”

빌라도가 말했다.

“대수롭지 않은 정신병자로구먼.”

그리고 이때 마침 그의 손톱관리사가 손을 시원하게 식히라고 물을 한 대야 담아오자 빌라도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손을 씻어, 이 일에 아무 상관이 없음을 보이고자 하노라.”


마침내 빌라도는 다시 한 번 최후의 구명을 시도했다. 즉 옛 관례대로 군중은 죄인들 중 한 명을 특별사면하도록 청원할 수 있으므로 그는 죄가 없어 대수롭지 않은 예수와 악명높은 죄수 바라빠,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선택하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군중은 바라빠를 사면하라고 외쳤다.


이 에피소드는 구원을 아주 현실적인 차원에서 보여주고 있다. 즉 예수가 죄인들을 대신해서 죽은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예수는 죄인처럼 치욕스런 십자가형을 언도받았다. 모든 역사서들은 빌라도가 아니라 유대인들이 신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십자가의 죽음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예수의 모습은 유럽의 중심적 상징이 되었다. 신의 고문당한 몸이 회화의 중심에 자리를 잡았다. 양팔을 벌린 예수, 상처투성이의 몸, 아랫도리만 겨우 가린 천조각, 머리에는 가시왕관, 그리고 그 위에 로마어로 ‘INRI'(나자렛 예수 유대인의 왕)라고 쓰여진 팻말, 이 모든 것은 마지막까지 자신을 낮춘 행동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죽음과 신성에 대한 요구 간에 벌어진 갈등의 표현이다.


부활


그 다음에 벌어지는 사건들은 부활에 대한 보고를 위해 아주 중요하다. 예수의 사망 후에 창녀였던 막달라 마리아와 두 명이 여인이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서 깨끗이 씻고 기름을 발라 염(殮)을 했다. 그리고 예수를 믿고 따르던 부유한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 가족 동굴묘에 안치했다. 그 다음에는 커다란 돌문을 굴려 동굴 입구를 막았다. 이 장례식 과정은 죄인의 배역이 다시금 명예로운 남자의 배역으로 교체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대제사장들은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이 시신을 훔치고 나서 예수가 부활했다고 주장할까 염려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몇 명의 보초를 무덤 앞에 세웠고 돌문을 봉인했다. 그러나 새벽 무렵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왔을 때는 돌이 굴러가 무덤 문이 열려 있었고 그 안은 비어 있었다. 그녀는 시신이 어디로 갔느냐고 동산 관리인에게 물었다. 그는 그녀에게 “마리아야”라고만 말했다. 그녀는 그를 자세히 살펴보았고 바로 그가 부활한 예수임을 알아챘다.


며칠 후 부활한 예수는 제자들에게 나타났다. 제자들 중에서 의심 많은 토마는 예수의 몸을 손으로 만져보고 나서야 부활을 믿었다. 하지만 대제사장들은 제자들이 스승이 부활했다는 소문을 퍼뜨리기 위해 예수의 시신을 훔치리라고 생각했다. 14일 후에 예수는 제자들을 어떤 산으로 데리고 갔고, 자신의 가르침을 널리 전하라는 과제를 남기고 빛나는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곧이어 얼마 되지 않아, 정확히 말하자면 오순절에 하늘에서 작은 불꽃들이 제자들의 머리 위로 내려왔다. 성령이 놀랍게도 그들에게 외국어 능력을 주어서 제자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외국인들에게도 전할 수 있게 하였다. 이것은 성령의 작은 발걸음이었지만 인류 전체를 위한 거대한 일보였다. 즉 기독교는 유대인들의 구역(Ghetto)을 벗어나 세계적인 기독교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이제 ‘한 나라의 기독교’ 대신에 새로 나온 모토는 ‘모든 나라의 기독교인들이여, 단결하라!’였다.


바울의 역할


사도 바울은 처음에는 기독교를 박해하는 열성당원으로 출발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도중에 간질병의 발작으로 말에서 떨어져 그리스도의 환상을 보았고 그 후 사흘 동안 눈이 멀어 앞을 볼 수 없었다. 바울이 다시 시력을 회복했을 때 이미 그는 개종해 있었다. 그는 기독교인의 세례를 받았고 그때부터 자신을 바울이라 했다. 예수의 1세대 제자들과 달리 그는 훌륭한 가문 출신이었으며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었다.


기독교에 사상적으로 확고한 체계를 부여한 사람은 바로 바울이었다. 예수의 가르침은 그에 의해 독립해서 가르쳐지고 전수될 수 있었다. 그는 수많은 전도여행을 통해 외국에 교회들을 세웠으며 이로써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계를 넘어섰다. 그는 기독교로 로마 제국을 유대화했으며 그 자신도 예수처럼 세계사의 결정적인 인물이 되었다. 따라서 로마 카톨릭을 세운 공로는 사실상 베드로가 아니라 바울에게 있다.


예루살렘은 서기 70년, 유대인들의 반로마 봉기를 계기로 로마인들에 인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과 함께 로마제국 전역으로 흩어졌다. 가난한 자, 노예로 허덕이는 자들에게 기독교는 커다란 매력으로 작용했고 얼마 후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가 되었다.



(이 글은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교양’에서 발췌하여 정리한 것임.)   


종교/기독교 카테고리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