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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까지만 시키시지요
03/20/2013 11:03 댓글(2)   |  추천(3)

설거지까지만 시키시지요 / 이웅재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네 삶은 신산했다. 먹고 살기가 힘들었던 시기였다. 그런데 이제는 먹을 것이 넘쳐나서 문제가 된다. 삶의 질도 놀랄 만큼 향상되었다. 특히, 가사 노동과 관련시켜서 생각하면 더할 수 없을 정도로 편리해졌다. 밥은 전기밥솥이나 압력밥솥이 해주고 있고, 빨래는 세탁기가 알아서 해주고, 청소는 진공청소기나 로봇청소기가 대행을 해주고 있다. 게다가 냉장고란 놈이 먹다 남은 음식물도 척척 보관해 준다. 어디 그뿐인가? 그런 기기(器機)들로 인하여 생긴 여유로운 시간은 TV가 그 심심함을 풀어준다.


경제성장은 특히 가사노동의 불편함을 대폭완화 시켜준 것이다. ‘한강의 기적’만세다. 그런데 그것이 일상화 되다 보니까 또 다른 불만 이 움터 오른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고하였다. 이젠 밥하는 일 자체가 귀찮아졌다. 외식산업이 제철을 만나게 된 연유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허구한 날 밥상 차리는 일은 정녕 귀찮을 만하기도 하다. 결혼을 한 후 한 세대 정도를 지낸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래서 생긴 우스갯소리가 있다. 밥상을 차려주어야 하는 남편이 하루에 몇 번이나 아내가 차려 주는 밥을 먹느냐에 따라서 호칭이 달라진단다.


한 번도 안 먹는 남편은 ‘영식 님’,

1끼만 먹는 남편은 ‘일식 씨’,

2번을 먹는 남편은 ‘이식이 놈’,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먹는 남편은 ‘삼식이 새끼’라고 부른단다. ‘삼식이 새끼'다음은 무엇일까? 말하나마나 아예 눈앞에서 없어져버리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생긴 낱말이 '황혼이혼'이란다. 50세 이상의 부부가 이혼하는 것을 가리키는 낱말 ‘황혼이혼’, 조금 다행인 것은 그 말이 생겨난 곳이 우리나라가 아니고 일본이라는 점이라고나 할까? 1990년쯤 에서 부터 쓰이기 시작한 그 말은 2005년 일본 아사히 TV에서 '황혼이혼'이라는 드라마를 방영하면서 일반화 되었다고 한다.


2010년의 통계를 보면, 결혼 4년 이내에 이혼하는 부부는 전체 이혼자중 25%쯤인데 비해, 황혼이혼이 27% 정도가 된다니 문제는 문제다. 아울러, 사람들의 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황혼이혼'의 나이도 ‘50세 이상’에서 요사이는 ‘은퇴남편증후군’이라는 병명까지 생기면서 ‘60세 이상’으로 상향조정이 되었단다.


이혼소송을 신청하는 사람은 당연히 아내 쪽이라고 하니, 천하의 남편들이여, 조심할 지어다. “밥줘!” 라는 말은 절대 금지어의 목록1호로 정해 놓고 사용을 말 것이니라. 할 일이 없어도 집안에서 빈둥거릴 것이 아니라 어디 가까운 노인복지회관 같은 곳엘 나가서 탁구도 치고 당구도 치고, 노래도 배우고 에어로빅도 배우고, 바둑에도 시간을 할애하고 고상하게 사군자를 치거나 서예에도 취미를 가져볼 일이다.


그러다가 배가 고프면 회관에서 제공하는 3,000원짜리로 한 끼를 때우고, 저녁때에는 2,000원짜리 김밥이라도 사먹을 일이다. 어쩌다 한 번쯤 운수가 대통하는 날에는 처지가 비슷한 할배들끼리 더치페이로 막걸리라도 한 사발 들이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에는 입에 자물쇠를 채워야 한다. 집에 들어가서 묻지도 않는 아내에게 오늘 누구누구와 오래간만에 만났길래 한 잔 했더니 기분이 째지는구먼, 어쩌구 하다가는 당장 쫓겨나는 수도 있으니 천만번 자중할 일이다. 집에 도착을 하였다면 현관문 앞에서 정신을 가다듬고 심호흡을 한 번 하고서는 조심스레 문을 연 다음, 가급적이면 소리를 내지 말고 조용히 잠자리를 찾아 이불 속으로 쏘옥 들어갈 일이다. 그리고는 금세 약간의 코를 고는 체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이라 할 것이다.


어쩌다가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게 될 때에는 '황공하여이다'라는 표정으로 소리 내지 말고 식사를 끝낼 일이요, 식사가 끝난 다음에는 아내로부터 별도의 명령이 떨어지지 않더라도 자진하여 설거지를 할 일이다. 처음에는 그 잗다란 일을 하는 것이 남자의 체면에 큰 흠집을 내는 것으로 생각될지 모르는 일이지만, 그러지 아니하다. 그것 이야말로 아내에게 무언으로 전달하는 ‘나, 철들었소이다.’ 하는 자백 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설거지도 하다 보면 슬슬 재미가 붙기도 할 수 있다. 어렸을 적에는 소꿉놀이로도 하지 않았던가? 중요한 것은 즐거운 마음으로 하라는 점이다. 그까짓 것, 별로 힘이 드는 일도 아니지 않은가? 마음속으로 ‘즐겁다, 재미있다’고 생각하면서 할 일이다. 그러면 저절로 ‘자기암시’, ‘자기최면’ 이 되어 정말로 즐거운 일로 둔갑을 하여, 하지 않으면 오히려 심심해 못 견딜 지경이 될 것이다.


여기서 지나쳐 버려서는 안 될 중요한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설거지'로만 끝내라는 것이다. 라면 정도야 어떤 사내라도 다 끓일 줄 알 터이지만, 백 번 양보하여 '밥 짓는 일'에 까지는 진출하여도 큰 탈이 없으리라. 그러나, 그러나 반찬을 만드는 일에는 손대지 마라.


절대로, 절대로 ‘요리’에 까지 솜씨를 발휘하려고는 하지 마라. 그런 데에 까지 전문가가 되어버리면, 아내가 필요 없어진다. ‘너 없어도 나 사는데 불편이 없어.’ 그런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황혼이혼’을 신청하는 주체가 남편으로 자리바꿈하는 수가 생기게 된다는 말이다.


이것은 아내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차대한 사건이다. 이혼을 하더라도 제가 주체가 되어야 하는데 반대로 이혼을 당하게 되고 말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자존심을 생각해서도 그래서는 안 되고, 남편이 애걸복걸 매달리지도 않게 되니 위자료도 생각했던 만큼 충분히 뜯어낼 수가 없게 되고 만다.


그러니 아내들이여, 남편에게는 설거지까지만 시키시는 게 어떨까?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함만 같지 못하다는 말은 역시 금언다운 말이라는 생각이다. 손자병법에서도 ‘도망갈 구멍은 남겨 두라.’고 하였음을 잊지 말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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