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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
02/07/2013 20:02 댓글(0)   |  추천(3)

냄새 / 목성균



처서 무렵, 습기가 없는 투명한 대기를 거침없이 투과하는 자외선의 강한 햇빛을 받고 곡식 이삭이 여문다. 곡식이 여무는 들녘의 소리, 누에가 섶에 오르는 소리처럼 은밀하게 들린다. 초가을 햇살은 곡식에만 나려 쬐는 게 아니고 들길의 여름 장마에 씻기다 남은 소의 섬유질 배설물에도 내려 쪼여서 푸새빨래처럼 말린다.


내가 어려서 이 맘 때면 문경양반이 손녀딸 순임을 데리고 들길에서 싸리 삼태기에 마른 쇠똥을 주워 담는 걸 보았다. 어느 때는 순임이 혼자 삼태기를 들고 다니면서 쇠똥을 줍기도 했다. 쇠똥을 주어다 기껏해야 바깥마당 거름더미에 넣든지 사랑방에 군불을 땠을 것이다.


문경양반 네가 동네서 제일 부자였다. 나는 불결까지도 치부의 방법이었던 문경양반의 알뜰한 생애를 존경은 하지만 들꽃처럼 예쁜 순임에게까지 쇠똥을 줍게 한 것은 잘 못이라고 생각했다. 순임에게서 쇠똥 냄새가 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문경양반이 돌아가신 지도 오래 되었다. 내가 이제 쇠똥을 줍던 문경양반 나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나도 지금은 처서가 지난 들길에서 잘 마른 쇠똥을 보면 용처(用處)야 여하튼 줍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조금도 불결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여름 장마 때 빗줄기에 뭉그러져 흐르던 쇠똥은 더러워서 바로 쳐다볼 수조차 없었는데 초가을 들길에서 보는 바짝 마른 쇠똥은 잿물을 내려서 삶아 빨아 가지고 냇가 자갈밭에 널어 바래는, 여름의 흔적처럼 풀물이 얼룽덜룽한 머슴의 무명 중의적삼처럼 정갈한 느낌이었다. 나는 쇠똥조차 정갈해지는 처서에 들길에 서면 쇠똥 줍던 순임이 생각났다.


여름날 저녁 때, 나는 소고삐를 잡고 뒤따라가며 소가 똥을 누는 걸 본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건강하고 충만한 배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후 나도 쇠꼴을 베러 산에 올라가서 저 아래 동네를 내려다보며 시원한 산바람 이는 나무 그늘아래서 배설 한 무더기를 크게 하고 행복했던 적이 있다. 묵직한 뒤의 급박한 사항을 가차 없이 해결해 치우는 쾌변(快便)도 행복했지만 산바람에 밑을 닦고 유감없이 닫히는 항문괄약근의 탄력감을 느끼며 괴춤을 끌어올리는 배변후의 기쁨 또한 등천할 것같이 시원했다.


소의 배설은 그보다 열 배나 컸다. 그러면 소는 나보다 열 배는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는 느릿느릿 걸으면서 꼬리를 약간 추켜들었다. 그리고 무례하게도 뒤따르는 사람을 개의치 않고 항문을 들어내 놓고 해산하듯 엄청 큰 배설물을 털버덕 하고 들길에다 떨어뜨렸다. 한 서너 무더기쯤 떨어뜨리더니 항문을 닫고 꼬리를 내렸다. 그리고 크고 순한 눈으로 저문 하늘을 바라보며 “움머-엉.” 하고 길고 게으른 울음을 울었다. 아주 기분이 상쾌하다는 태도였는데 나도 동감이었다.


세계은행의 조사보고에 의하면 성인이 하루에 누는 똥의 량은 서유럽과 북미 등 소위 선진국가 사람들은 150g이고 개발도상국가 사람들은 도시사람의 경우 250g, 시골사람의 경우는 그 보다 많아서 350g이나 된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기쁜 발견을 할 수 있다. 잘사는 미국사람의 행복지수는 36위인데 비해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방글라데시 사람의 행복지수는 세계에서 1위라고 한다.


사람의 배설량과 행복지수가 정비례한다는 사실이 나를 기쁘게 한다. 맛있고 부드러운 고단백질 음식을 먹는 사람은 구미(口味)의 기쁨만큼 배변이 불편한 반면 조악(粗惡)한 음식을 먹는 사람의 불만스러운 구미는 커다란 쾌변으로 보상받는다는 섭리의 형평이 나로 하여금 절로 ‘아멘’ 소리를 지르게 하는 것이다. 사람의 연명(延命)이란 별수 없이 섭취와 배설의 연속작용이다. 섭취가 즐거우면 배변이 안 즐겁고, 섭취가 안 즐거우면 배변이 즐겁다. 잘살고 못살고 간에 한가지의 즐거움은 누리도록 한 엄청난 조물주의 공정성을 경배하여 마지않을 수 없는 것이다.


쇠똥을 줍던 순임에게서는 무슨 냄새가 날까? 그게 늘 궁금했다. 그런데 어느 해 초가을 나는 순임의 몸 냄새를 맡아볼 수 있었다. 나는 쇠재골로 쇠꼴을 베러 갔다. 초경의 얼굴처럼 청초한 들국화가 산그늘 내린 길섶에 간택 밭는 규수처럼 수줍게 고개를 들고 있었다. 나는 발작적으로 들국화를 한 움큼 꺾어들었다.


그 때 저만큼 다래끼를 멘 처녀가 오고 있었다. 순임이었다. 일방통행 밖에 할 수 없는 다랑논 논둑길이었다. 순임은 오던 길을 되돌아가서 조금 넓은 길에서 비켜섰다. 그때 나는 순임의 옆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잠깐 스치며 보았는데 지금도 그때의 순임이 모습이 분명하게 기억된다. 들국화처럼 고운 옆얼굴이었다.


“오랜만이야.”

변성기의 뜨거운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덜 익은 산 복숭아처럼 솜털만 보송보송하던 쇠똥 줍던 순임을 본 후 처음이었다. 처음 본 것이라기보다 순임을 여자로 느낀 게 그 때 처음이었는지 모른다. 꽃이 순식간에 피듯 여자가 여자 되는 것도 깜짝할 사이였다. 나는 순임이 곁을 지나가면서 들깻잎이 반쯤 담긴 다래끼 안에 들국화 꽃을 넣어 주었다. 그 때 나는 분명히 순임의 냄새를 맡았다. 알싸한 들깻잎 냄새에 섞여있는 꽃 냄새 같은 은은한 여자의 냄새.


지금도 나는 초가을이면 코끝을 스치는 들깨 냄새를 느낀다. 그리고 산그늘 나리는 골짜기에 모로 서서 보여준 순임의 모습을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인지 내 생애에 큰 착오가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튼 순임의 몸에서는 전혀 쇠똥 냄새는 나지 않았다.


똥 냄새는 인돌과 스카톨이라는 고리모양의 유기화합물의 냄새라고 하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미량일 때는 꽃 냄새 같은 향기가 난다고 한다. 순임에게서 나던 그 종잡을 수 없는 흡사 꽃 냄새 같은 은은한 방향(芳香)이 그러면 순임에게 남은 미량의 쇠똥 냄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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