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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The Stranger)
01/18/2013 20:01 댓글(0)   |  추천(1)
 

이방인(The Stranger)



실존주의 철학에 의하면 인간은 이 세상에 우연하게 던져져 실존하고 있다고 한다. 인간이란 절대자의 보편적인 목적과 의도에 따라 창조된 피조물이 아니며, 다만 각자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 각자의 본질과 됨됨이가 사후적으로 결정된다고 하였다. 우리의 삶이란 근본적으로 무의미하며 끝내는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우리를 둘러싼 우주와 사회는 우리의 실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므로 우리 모두에게 무관심하고 무차별한 것들이다. 우리가 이성적이길 바라는 사회의 질서, 법, 도덕 등은 비이성적일뿐이다.


우리가 사회의 체제와 습관 등이 무가치하고 인생이 결국은 무의미함을 깨달을 때 우리는 돌아가 의지할 안식처도, 희망도 없는 절대 고독 속에 내던져진 이방인임을 자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사회에 적응하고 무의미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데 여기에 우리 인생의 부조리(Absurdity)와 모순이 있다 한다.


실존주의의 철학에서 파생되는 부조리라는 개념은 알베르 카뮈가 쓴 소설 ‘이방인’에서 최초로 소개되었다. 우리 인생의 부조리가 허구의 소설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우리의 실제적인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지 짚어보고자 한다.


뫼르소와 부조리


이방인에서의 주인공 뫼르소(Meursault)는 사회적인 관점에서 극도로 단순한 인물이며 기존의 어떠한 가치체계에도 무관심한 사람이다. 그의 무관심은 그저 무관심한 것이 아니고 그의 존재와 관련한 ‘우주의 자비로운 무관심(benign indifference of the universe)'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그를 둘러싼 우주와 사회는 그에게 특별히 보탬도 되지 않지만 특별한 해가 되지 않는 무관심을 보인다는 측면에서 자비로운 무관심이다. 그는 의식적으로 존재하는 자기 자신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무가치하다는 생각에서 사회에 동화하지 못함은 물론 결국은 사회에서 유리되어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소설의 첫머리에서 뫼르소는 어머니의 사망부고를 받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제였을 것이다. 잘 모르겠다.’라고 독백한다. 그는 일말의 감정도 없이 어머니의 죽음을 단순히 인식할 뿐이다. 이후 어머니의 장례식에서도 그는 차가운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장례식 특유의 예법에도 벗어나는 행동을 보여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추억도 회상하지 않고, 자식된 도리로서의 자책감도 전혀 없다.


뫼르소는 사회적인 관습과 어긋나게 어머니의 장례식 이튿날 옛 사무실 동료였던 마리를 만나 동침한다. 그녀는 뫼르소에게 ‘당신이 나를 사랑한 것과 같이 당신이 사랑하는 또 다른 여자가 있어 당신에게 결혼하자고 한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한다. 이에 대해 뫼르소는 아주 정직하게 ‘당연히 예스라 하겠다.’라고 대답한다. 이는 뫼르소의 여자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의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다. 여자에 대한 진정한 애정과 사랑의 감정이 없으므로 여자로부터도 소외된 이방인인 것이다.


뫼르소는 아주 우연하게 친구 레몽의 변심한 애인을 벌주고자하는 음모에 피동적으로 가담하여 그녀의 아랍인 오빠를 살해한다. 그가 아랍인을 살해한 데에는 근본적인 동기가 없었고, 다만 아랍인이 빼어 든 칼날에 되비치는 햇빛이 너무 눈에 부셨다는 것이 살해의 이유이다. 그는 살인행위로 인해 그가 불합리하다고 여기는 사회의 규범과 실질적으로 연계되고, 그의 존재가 법의 구속을 받아야 하는 부조리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뫼르소는 감옥의 교도관과의 대화에서 자기 행동에 대한 참회보다는 법의 구속으로 인한 귀찮음을 호소할 뿐이다.


뫼르소는 감옥에 갇힘으로서 최초로 자기 주위의 환경을 심각하게 둘러보고 사회란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그는 주위의 가구를 둘러보며, 가구의 모서리와 흠집, 나무의 결과 색깔 등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사회와 그것의 작동원리에 대해 숙고해 본다. 그럴수록 그는 주변 환경, 또는 사회와 유리되어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그는 더욱 사회와 관습, 법을 무시하고 증오하면서 더욱 큰 소외감을 느낄 뿐이다.


뫼르소는 살인의 대가로서 선고된 사형이란 벌을 마침내 수용한다. “나는 최근 몇 개월간 듣지 못했던 내부로부터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조금의 잘못도 없는 내 자신의 목소리였다. 인생이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30에 죽든, 70에 죽든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갈 것이고 세상은 여전히 돌아갈 것이다.”라고 독백한다. 이 목소리란 자신의 자유로운 의식의 목소리라 할 수 있다. 이로서 뫼르소는 자신의 벌을 합리화하고 사형집행을 순순히 받아들이게 된다. 또한 자신이 열중하고 결정했던 모든 일들이 모두 옳았다고 믿는다. 그는 별들이 촘촘히 박힌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우주의 자비로운 무관심’에 최초로 가슴을 열고 자신이 언제나 행복했었음을 자각한다.


사회와 인생에서 소외되었던 뫼르소는 이 세상이 아무 것도 그에게 해준 것이 없는 것처럼 세상으로부터 아무 것도 취하지 않고 죽게 됨을 영예스럽게 생각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그는 부조리를 극복할 수 있는 인간 의식을 인간에게 주어진 무한한 축복이라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자기 자신의 의식 이외에 모든 것들은 우리를 소외시키는 타자에 불과하다.’라는 것이 소설 ‘이방인’의 철학적인 주제이다.


질문


현대인들은 때때로 우리의 사회가 불합리하고 개인에게 무자비, 무관심, 냉혹함을 뼈저리게 통감하게 된다. 그렇지만 불합리하고 모순투성이의 사회에  불가피하게 적응해야 하는 모순의 숙명이 있다.


과연 우리 존재의 실질을 규명하고 인도할만한 본질은 없는 것인가? 또한 우리를 둘러싼 사회가 그렇도록 비이성적이고 냉혹하기만 한 것인가? 불교의 연기법에처럼 우주와 인간을 이끌어 가는 보편적인 원리도 없으며, 하나님이 섭리하고 규정하는 삶의 목적과 의미도 없는 것인가?


오늘날도 수많은 뫼르소들이 사회와 우주의 ‘자비로운 무관심’에 절망하면서 부조리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Albert Ca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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