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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니샤드와 세계종교의 공존
11/28/2012 19:11 댓글(0)   |  추천(1)
 

우파니샤드와 세계종교의 공존



인도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라다크리슈난(Sarvepalli Radhakrishnan; 1888-1975)은 바라문교의 철학적 체계로서 베단타(바라문교의 경전인 베다의 본질을 이룬다는 뜻), 즉 우파니샤드의 정신에 입각하여 세계평화를 이루고자 했던 종교적 이상주의자였다. 그는 ‘인도철학(Indian Philosophy)'이라는 저서에서 인도와 세계의 철학을 상호 비교하면서 종교를 통해 동서가 융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베단타는 브라만교의 경전인 베다를 사상적으로 체계화시키고 철학적으로 심화시킨 것이다. 우파니샤드 철학으로 대변되는 베단타에서는 우주를 창조한 인격신으로서 브라만(梵)이 상정되어, 그가 우주와 자연 등의 일체를 성립시킨 다음 그 일체 속에 다시 들어가 있다고 주장한다. 즉 자연과 신의 대립을 인정하지 않고, 일체의 자연은 곧 신이며, 신은 곧 일체의 자연이라고 생각하는 종교관이다. 이를테면 범신론적인 우주론이다. 또한 인간의 주체로 간주되는 ‘아트만’과 인간을 만든 브라만은 동일하다는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사상이다.


이와 같이 브라만은 현상세계를 생기게 하며, 동시에 모든 현상이나 배후에 존재하는데, 우리 인간은 개별적 현상에만 관심을 쏟는 무지(無知)로 인해 브라만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브라만을 열심히 추구할 경우 개인존재의 본체인 아트만과 브라만은 합일하여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우파니샤드와 불교


우파니샤드에 의하면 인간 존재의 주체로서 아트만은 영원히 죽지 않으며, 인간 내면의 모든 감각기능의 중심이며, 인식작용으로는 알 수 없는 인식의 초월자이다. 아트만은 인간 내면의 통제자, 절대적인 근본원리 등으로 정의된다. 이에 대한 붓다의 답변은 무아설(無我說)이다. 붓다는 인간 내면에서 감각기능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절대적인 아트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언했다.


그러나 라다크리슈난은 붓다가 형이상학에 관한 문제에 대하여 대답하지 않은 무기설(無記說)을 인용하여 그가 아트만을 암묵적으로 시인했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무기설이란 인간이 가지는 궁극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의문에 대해 구체적으로 대답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라다크리슈난은 “만일 붓다가 절대자의 본질에 대해 대답을 미루거나 부정적으로 정의했다면, 이는 절대자의 존재를 시인하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붓다의 이 절대 존재는 우파니샤드의 아트만, 혹은 브라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라다크리슈난의 일관된 논리이다. 이는 마치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했을 때 역설적으로 신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는 논리와 유사하다. 라다크리슈난은 불교와 우파니샤드의 차이점을 의도적으로 축소하고, 불교를 단지 우파니샤드의 연장선에서 편향되게 해석했다는 비판을 많이 받고 있다.


우파니샤드와 기독교


우파니샤드에서 우주를 창조한 인격신으로서 브라만이 일체의 속에 다시 들어가 앉았다는 주장은 기독교의 인간영혼의 깊은 곳에 “하나님의 씨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난 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요한 1서 3:9).”라는 구절의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또한 “인간은 하나님의 모상을 따라 지음 받았다(창세기 2:7).”라는 말은 피조물 속에 신성이 들어있다는 우파니샤드의 논리와 유사한 것이다. 다만 기독교에서 인간의 신성성은 인간의 원죄설, 타락설이 과도하게 강조되면서 부정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우파니샤드의 논리는 불교보다는 오히려 기독교의 교리와 더 가까운 느낌이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고 말할 때 인간 내면의 ‘진면목(眞面目)’, 또는 ‘불성(佛性)’이란 이 세상의 작동원리로서 연기의 법칙을 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신성(神性), 또는 브라만은 아닐까? 불교와 기독교, 그리고 우파니샤드의 철학을 중심으로 이어진 힌두교는 모두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위대함을 전제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점들이 상호 이해된다면 라다크리슈난의 주장대로 우파니샤드의 철학에 의해 세계종교의 공존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해 본다.


Sarvepalli Radhakrishnan; 1888-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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